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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삽시다
revdavidsuh  2008-08-19 15:52:18 hit: 2,134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분명하지 않지만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일일 연속극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연속극에는 사람들을 웃기는 소재가 무척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의 문화는 원래가 웃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랫동안 불교와 유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된 삶이다 보니 매사에 정숙(靜淑)이 미덕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따라서 스스럼없이 감정표현을 하는 것은 천박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찍부터 예술이 발전하기를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 한국 교회는 가능한 한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교회가 되었다. 특별히 주일예배의 분위기는 엄숙함은 물론 위엄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보니 설교시간에도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말씀을 듣기만 할 뿐 설교자의 얼굴조차도 쳐다보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아멘소리도 없었다. 한마디로 예배의 분위기는 축제가 아니라 딱딱한 기념행사와 비슷했다.
   물론 감정표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경우에는 주로 죄를 뉘우치는 회개와 통성기도 때 뿐이었다. 기뻐하며 박수를 치거나 아멘으로 화답하는 경우는 1년에 한두 번 있는 부흥회 때뿐이었다. 그것도 아멘은 저절로 나오기가 힘들어 부흥강사들이 유도하거나 ‘아멘 하시오’로 강요(?)해야 했다.
   이런 예배의 분위기를 바꾼 것은 오순절파의 예배형태가 소개되면서 부터였다. 저들은 예배 때 박수치고 아멘하며 손을 들고 심하면 일어나서 춤을 덩실덩실 춘다. 물론 지나친 자신의 감정표현은 전체 예배의 질서를 깨뜨리고 조용한 예배를 원하는 신자들의 방해가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예배가 기쁨이요 감격이요 축제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면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닐 것이다.
   죄인이 죄와 그 결과의 심판에서 구원받았는데 어찌 기쁘지 않게나. 창조주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요 그 아버지의 사랑과 보호와 축복을 경험한 내가 그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어찌 기뻐하지 않겠나? 따라서 예배 때 적당한 감정표현은 예배에 활기와 생기를 준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한다(살전 5:16).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기뻐할 수 없다면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면서 기뻐할 수 있겠는가? 항상 기뻐하려면 예배부터 기쁨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UC 얼바인의 수전 새무엘리 센터가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코믹물의 비디오를 본 결과 스트레스 호르몬을 감소시키는 엔돌핀과 성장호르몬이 각각 27%와 87%씩 증가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웃음은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한다는 것이다. 웃음을 생각만 해도 건강해진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항상 기뻐하는 것’이 신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면, 또 예배가 축제가 되어야 한다면 기쁨과 웃음은 신자의 필수가 아닌가? 굳은 얼굴에서 부드러운 얼굴로, 찡그린 얼굴에서 웃는 얼굴로의 변화야말로 우리가 천국가는 그 날까지 이 세상에서 힘써 가꾸어 가야 할 신자의 얼굴이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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