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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
RevSuh  2008-08-19 16:42:36 hit: 2,586

파라과이 동부의 열대 우림에는 아체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하는 원주민들로 혼자 짐승을 사냥해와도 마을사람이 다 함께 먹는다고 한다. 그 대신 열매나 과일 같은 채집물은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돼 가족끼리만 나누어 먹는단다. 그러니까 사냥과 채집에 따라 나눔의 범위가 다른 것이다. 미국의 인류학자 카플란과 킴힐 교수가 아체족을 관찰한 후 1985년 인간분배 행위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들은 아체족의 분배원칙을 자원획득의 확실성에서 찾았다. 열매나 과일은 누구나 노력하면 손에 넣을 수 있으나 사냥은 항상 잡혀 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육류공급이 힘들었던 이들은 사냥을 계속 실패할 경우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기회가 없게 된다. 결국 아체족은 이런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냥으로 얻은 고기를 남과 나눠먹게 했다는 것이다. 수긍이 가는 판단이요, 연구라고 본다. 아체라는 원주민들의 지능 지수가 얼마나 높은지는 알 길이 없으나 분명한 것은 저들은 누가 뭐래도 공동체의 삶을 위한 지혜가 풍부하였다.
  
그리고 보면 저들 보다 더 문명한 사회, 더 배운 사회 그리고 더 많이 수확하고 저축하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회라고 더 공동체의 생활이 풍요로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문명한 사회는 개인화하고 더 이기적이 되면서 나눔의 지혜를 잊고 말았다. 그 결과 빈부의 격차가 심해져서 공동체 안에 부자와 가난한 자의 벽이 두터워지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무시하며 적대시하게 되고 말았다. 그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다함께 잘 살아보자는 공산주의가 아니겠나? 그러나 공산주의는 나눔의 지혜인 사랑의 원칙대신 폭력에 의한 분배의 원리만을 고집함으로 잘 사는 자는 사라지게 만들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를 못 가진 자, 가난한 자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나눔의 원리에 성실한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택하시어 3년을 가르치시면서 함께 생활하시므로 나눔의 원리를 실천하셨다. 예수님은 말씀과 생각, 인격과 소유를 모두 함께 나누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모든 관계가 나눔을 통해서 성숙케 됨을 가르치셨다. 그 제자들이 지도했던 첫 기독교의 공동체였던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가난한 성도가 많았음에도 가진 성도들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성도와 나눔으로 궁핍한 성도가 없었다. 예루살렘의 첫 기독교회가 나눔을 실천한 본보기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성경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풍성한 추수를 허락하신 이 감사의 절기에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가? 가을은 우리에게 축복을 받아야 할 자가 아니라 축복을 받은 자임을 깨우쳐 준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 사랑, 소망, 기술, 재능, 추수의 열매를 함께 나누며 살 때가 아니겠는가? 이 때야 말로 나눔의 실천으로 청지기의 삶을 살아 가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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