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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이후
revdavidsuh  2008-08-19 16:23:48 hit: 2,221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는 것은 당연하리라. 이런 점에서 시작이 없으신 하나님만이 영원하시다. 죽음은 생의 한 과정이다. 누구나 이 세상에 나서 살다가 떠난다. 그러나 그럼에도 죽음은 고통스럽다, 슬프다. 왠가? 죽음 자체가 죄의 결과, 죄의 값이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자의 죽음은 천국에 들어가는 하나의 관문이 되므로 불신자의 죽음처럼 불행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슬프다. 따라서 신자가 죽음 앞에서 슬퍼하고 우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없는 자처럼 절망하고 슬퍼하지는 않아야 한다. 그것은 죽음이 우리의 생의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생보다 더 나은 천국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에게 죽음은 보다 나은 본향으로 가는 길이 된다. 그러므로 신자는 죽음 자체의 어두움만을 보고 슬퍼하지 말고 죽음 이후에 있게 될 천국의 영광을 내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근래에 우리교회는 뜸했던 장례식이 줄을 이었다. 물론 큰교회에서야 늘상 있는 일이지만 크지도 않은 교회에 너무 장례식이 많았다. 그러니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은 우리교회로 나오는 것을 꺼려하게 되지 않겠는가? 혹시라도 나도 이 교회에 다니다가 제명(?)을 다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혹시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의 사명은 성도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주 안에서 잠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죽음 이후를 생각하고 바라만 볼 수 있는 신앙과 영안(靈眼)만 있다면 장례식이 많은 교회는 영생을 소원하는 성도들이 선호해야 할 교회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실제로 내가 아는 성도의 죽음을 보고 느끼며 유가족과 함께 슬퍼하고 위로하면서 하늘의 소망으로 새로워지지 않겠는가? 더구나 젊은 나이에 부름을 받는 성도를 보면서 내게도 죽음은 올 수 있음을 깨닫게 되고 남은 날을 계수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곳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고 하지 않았는가?(전 7:2)
   이 땅에서의 삶은 설사 80-90을 산대로 짧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삶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잘 죽을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루하루를 죽음을 염두에 두고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을 내다보며 살아야 할 것이다. 잘 살기만큼이나 잘 죽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한다. 어느 신자는 새벽기도회에서 기도하다가 주님께로 갔다. 이런 복된 죽음은 장례식 때 한번 나도 잘 죽어야지 하는 바람만 가지고는 안 된다. 날마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내 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 때 우리는 복된 임종과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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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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