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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5장 그리스도의 형제회
RevSuh  2016-05-06 15:55:14 hit: 1,111

제5장 그리스도의 형제회
          (Christ Delphianism)


  그리스도 형제회는 1988년 분열하여 개혁파와 보수파로 나뉘었으며 회원들은 그 둘 중 하나에 속해 있다. 개혁파는 전성기에는 5만 명의 회원이 있었으나 1992년 현재는 그 중에 4,000명이 남아 있고, 보수파 형제회는 미국에 2,0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1. 역사

그리스도의 형제회는 1848년 존 토마스(John Thomas, 1805-1871)가 그리스도의 제자교회에서 분리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토마스는 영국 런던에서 성장했으며 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1832년에 의사가 된 후 미국으로 이민했다.  토마스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기독교의 기본적 신조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교파들은 그 관행과 초기의 가르침에서 초대교회의 단순함과 순수함으로 표현된 진리를 배교했다고 주장했다. 시민전쟁 기간(1864) 토마스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크리스트아델피안’(Christadelphian)이라는 이름을 채택했다.
  1871년 토마스가 죽은 후에 그리스도의 형제회는 변화가 일어났다. 1890년대에 회원이었던 로벗 로벗츠(Robert Roberts)와 제이 J. 앤드류(J.J. Andrew) 두 사람이 소위 ‘부활의 책임성이라고 부르는 문제에 대한 논쟁으로 분열했다. 이 분열로 인해 두 개의 별개 운동이 생겼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만 영생으로 부활한다고 주장한 개혁파 그룹과 마지막 심판 때 의인처럼 악인도 모두 부활하게 된다는 보수파 그룹이다.
  1970년대에 두 그룹이 연합을 시도했다. 세계, 인간의 본성, 성경의 영감 그리고 교제의 교리에서 일치했지만, 부활의 책임에 대한 문제로 합동을 이루지는 못했다.

2. 조직

지역 회중은 에클레시아(Ecclesia)로 부른다. 지역 교회는 외부의 영향력 없이 스스로 자치적인 에클레시아를 가진다. 에클레시아는 많은 나라에 산재해 있다. 그리스도의 형제파 교회가 후원하는 대학이나 신학교는 없다. 몇 개의 성경학교들이 있어서 여름에 개강한다.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에 기능적이거나 계급적 구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에클레시아를 다스리는 중앙 조직이 없지만 연회로 모인다. 지도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보수가 없다. 에클레시아의 모임은 홀을 빌리거나 회원의 가정에서 갖는다.
  개혁파 그리스도의 형제회는 출판사를 통해 많은 자료들을 출판하는데 「주일학교 잡지」(The Sunday School Journal), 「그리스도 형제회 소식」(Christadelphian Tidings), 「파수꾼」(The Watchman)이 있고 보수파의 간행물로는 「그리스도의 형제회 변호」(The Christadelphian Advocate)가 있다.


3. 교세

  형제회는 집합을 배제하며 회원 수를 집계하지도 않으나 대체로 미국에 7,000명,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5,500명 정도의 성도의 신자가 있다. 세계적으로 130여 개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남동아시아 그리고 유럽에 1,000개의 회중이 있고, 오스트레닝이나와 뉴질랜드에 큰 그룹들이 있으며, 영국과 아일랜드에 300개가 넘는 에클레시아가 있다.

4. 교리

  그리스도의 형제회의 교리는 역사적 기독교의 교리와 일치하는 내용이 적지 않으나 정통 교리에서 벗어난 점도 적지 않다. 따라서 여기서는 같은 것은 특별하게 언급하지 않고 다른 것만 그 차이점을 소개하려고 한다.


1) 하나님
  그리스도의 형제회는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므로 무오하다고 믿으며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라고 한다. 역시 신론에서도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는 존재라고 한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교리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토마스나 켐벨은 모두 삼위일체란 말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캠벨과 토마스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데 토마스는 그 용어뿐만 아니라 그 말 뒤에 있는 개념까지 배격한다. 물론 이런 입장과 배경에는 삼위일체보다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반대가 더 크다.
  그럼에도 그리스도 형제회는 삼위일체를 부인하는데 삼위일체론은 모순적이며 이해할 수 없으며 비성경적이라고 한다. 그들은 성부만이 하나님이시므로 영원하신 하나님, 즉 성부를 믿는다고 한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 형제회는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유니테리안 보편론자들과 다르지 않다. 삼위일체의 개념은 로마, 그리스, 바벨론, 애굽의 이방 신화에서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역시 그리스도의 형제회에서는 하나님은 편재하시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하늘에만 계신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고 말씀한다(왕상 8:27; 대하 2:6; 욥 11:7-9; 시 139:7-10; 렘 23:24; 행 17:22-31).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없다. 하지만 영으로서 하나님은 물질적인 대상들이 공간을 차지하는 의미에서 어떤 곳을 차지하고 계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든 장소에 계시기만 한 것이 아니다. 모든 곳에 충만하게 임재하신다.

2)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형제회는 예수는 선재하시지 않았다고 한다. 예수는 1900년 전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하나님은 한 분이다. 참된 하나님은 한 분만 계시다. 예수님과 아버지는 구별된 인격이시다.
  2. 하나님은 죽지 않으신다. 그리고 죽으실 수 없으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셨다.
  3. 예수님은 하나님께 그의 복종을 지적하셨다: 능력과 교훈 그리고 생명 안에서 형제파는 그리스도의 무       죄한 본성을 부인하며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죄성을 지니셨다고 한다. 다만 그리스도는 그의 죄성을       극복하셨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선재를 말씀한다(요 17:5, 24; 요 1:1-3, 14). 그리스도의 형제회는 예수님이 선재하시지 않았다는 주장에 맞춰 요한복음 1장 1절을 해석한다. 말씀을 헬라어 단어로 옮기면 로고스가 된다. 그것은 내적 생각이나 이성이 외부로 표현된 형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유출되었다는 점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러나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것은 그밖에 모든 것이 있기 전에 그가 계셨다는 뜻이다. 말씀이 없었던 때는 없었다. 계셨다는 말은 말씀의 영원한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그 말씀이 하나님을 향하여 계셨다는 뜻이다. 이는 말씀의 인격적 존재를 구축한다. 아마도 요한은 은연중에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유출되었다는 어떤 사상을 반박함으로써 신격에서 아주 구별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말씀과 하나님은 하나이시나 구별되신다. 예수님에 대해 어떤 신성이 있으시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이시라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지만 여전히 신성을 지니고 있다는 그리스도형제회의 주장은 요한복음 1장 1절이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3) 성령
  그들은 성령님은 인격이라는 교리를 거부한다. 성령은 본래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 혹은 힘이시라고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형제회는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할 뿐아니라 하나님과 구별되는 분이심도 부인한다. 이런 경향은 이들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에 초래된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니케아 신조는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를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신다고 했다. 성경은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중재하시며 택한 백성을 위로하시고 인도하시며 가르치신다고 말씀한다(요 16:13; 고후 13:14; 딤전 4:1; 약 4:5; 요일 5:6).

4) 인간
  그들은 인간이 영혼이기 때문에 죽을 때 의식이 끊어지며 죽을 때 인간의 실존은 완전히 소멸된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며(요 11:25-26), 신자가 죽는 것은 주와 함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빌 1:21-23). 물론 육신은 죽으나 영은 죽지 않는다.
  인간의 죄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의 형제회는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 그들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죄는 성경에 나오는 귀신이라고 본다. 사탄이 곧 인간의 육체적 욕구라고 한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격적인 존재이다. 사탄이 죄로 우리를 유혹할 수 있으나, 사탄은 우리의 정욕 자체가 아니다(창 3:1-7; 마 4:1-11).

5) 마귀
  그들은 마귀가 실제 살아있는 피조물이나 존재가 아니라 차라리 마귀는 인간의 본성 안에 깊이 놓여 있는 하나의 악한 원죄라고 본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했듯이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격적인 영물이다. 인격 대신에 하나의 악의 원죄로 해석하는 경향은 슐라이어마커(Friedrich Schleiermacher) 이후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들의 견해다.

6) 구원
  그리스도 형제회의 구원관은 은혜 구원이 아니라 행위 구원이다. 그들은 예수의 죽음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지 못한다고 한다. 예수는 타인의 죄를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음이 선고된 상태에서 구속이 필요한 모든 인류의 대표자로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대속을 위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모범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모범적인 삶에 대한 반응으로 의로운 행위를 통해서 얻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행위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말씀하고 있으며(벧전 2:4; 3:18), 믿음으로 구원받고 그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임을 분명히 한다(엡 2:8-9).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 같은 단순한 믿음이 필요하다(막 10:15).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형제회는 자연히 세례도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믿음에 행위를 더해야 구원받는다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경우와도 같다. 세례가 구원받은 신자의 신앙 생활에 필요하지만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 세례는 그 순서상 구원받은 후에 오는 것이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은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결과임과도 마찬가지다.


7) 천국과 지옥
  그리스도 형제파는 지상천국을 가르친다. “구원받아 영생할 자들은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의인이 보상으로서 들어가게 된다는 천국에 대한 가르침은 공허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온유한 자가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는 주의 말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마 5:5).
  그러나 믿는 자는 사후에 그 영이 주와 함께 있게 된다. 그곳이 지금 이 세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앞서 간 성도들과 천사들이 있으며 또한 오늘 이 세상의 죄로 인한 모든 불행이 없는 곳은 분명 이 세상은 아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영광스러운 도성으로 천국을 말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 세상의 완전한 회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는 말씀을 들어 천국은 이 세상이지 다른 곳이 아니라는 주장은 잘못이다.
  신약과 구약의 땅에 대한 약속의 일반적인 경향은 지역적이 아닌 방법으로 성취된다. 따라서 그 초점은 특별한 상속에 있다기보다는 행운에 대한 역전의 원리에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로 온유한 자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땅은 문맥으로 보아 세상이기보다 천국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지옥에 관해서는 성경에서 엄격하게 무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여러 이단 종파들의 주장과 같은 것이다. 제7일 안식일 교회, 하나님의 세계 교회 그리고 더 웨이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형제회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후에 영혼의 불멸을 부인하기 때문에 악인이 사후에 처하게 될 영원한 형벌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형제회는 종말에서 강한 천년설을 옹호한다. 충성된 신자는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며 모든 민족의 죽을 인간들에게 섬김을 받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전 영광으로 회복될 것이다. 천년기 말에 죄 자체는 파괴될 것이며, 지구는 영생의 선물을 받은 자들에 의해 채워질 것이라고 한다.


8) 교제
  그리스도의 형제회는 그들의 교리 안내에서 극도로 교의적이다. 교리적으로 배교했다고 생각하는 이들과는 교제하지 않는다. 역시 회원들은 공무에 참여하지 않으며 공직에 나설 수도 없다.


요약과 평가

  그리스도의 형제회는 알렉산더와 토마스 캠벨이 설립한 그리스도의 제자 교회부터 존 토마스(John Thomas)에 의해 분리된 파다. 토마스는 성경에 용어가 없다는 사실을 들어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했으며 초대교회의 단순성과 순결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 운동은 토마스가 1871년에 죽으면서 부활의 책임에 관한 문제로 두 파로 분리되었다. 개혁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 영생을 위해 부활한다는 입장인 데 반해서, 보수파는 마지막 심판 때 의인처럼 악인도 모두 부활하게 된다는 입장이다.
  형제파는 초대교회를 이상으로 삼고 교회의 회복을 꾀했으나, 초대교회의 이상은 희석되고 역사적 기독교의 핵심 진리들만 외곡하고 말았다. 이들은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 십자가의 대속, 은혜 구원, 영혼불멸, 천국과 지옥을 모두 부인하는 분명한 이단이 되고 말았다.
  그리스도의 형제회의 문제는 성경의 해석에서 교회의 역사와 전통적인 해석은 무시한 채 지나치게 독자적으로 이성적인 해석을 한 것이다. 그 결과 가장 중요한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하게 되면서 신론, 기독론, 성령론이 모두 정통 기독교의 교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다른 이단들이 그러하듯이 역사적인 기독교의 신조들을 초대교회의 가르침에서 이탈된 것으로 보는 잘못된 편견과 이해의 부족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임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이단적인 교리를 주장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몰몬교,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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