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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3. 교리
RevSuh  2016-08-22 12:00:51 hit: 731

3. 교리

1) 하나님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세계 교회의 입장은 몰몬교와 유사하다. 암스트롱은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어 엘로힘에 근거해서 인격적 신들의 복수를 믿는다. “하나님은 한 인격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인격들의 가족으로서 하나님을 묘사한다. 그는 이어서 엘로힘은 교회 혹은 가정 또는 왕국과 같이 하나의 단일 복수나 집합적인 명사다. 다른 말로 하면 엘로힘은 둘이나 혹은 그 이상 개인들의 한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엘로힘은 하나님의 나라이거나 혹은 하나님 가족이다.  암스트롱은 하나님의 복수를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아니다.
  엘로힘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하나님, 신들, 재판자들이나 천사들로 번역된다(출 31:6; 22:28). 올브라이트(Albright)는 이 말은 보편주의에 대한 고대 근동의 경향에서 장엄복수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았다.  카일(Keil), 딜만(Dillmann) 그리고 드라이버(Driver) 같은 학자들은 엘로힘을  장엄복수로 본다. 그러나 성경 자체에서 보면 창세기의 첫 장에서 이 말은 한 하나님의 연합과 그러나 인격들의 복수를 허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창 1:2, 26). 엘로힘이 참되신 하나님을 가리킬 때 그 분은 인간에게 계시된 모든 신적 활동의 주체로서 사람에게 모든 참된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하나님의 한 분이심과 복수 인격을 주장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나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하나님에는 결국 천사가 포함됨은 물론 수많은 구원받은 신자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구별이 사라지고 만다. 성경에 하나님을 하나님의 왕국이나 하나님의 가족으로 말한 곳은 없다.

2) 삼위일체
  암스트롱의 신학에서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가족이고 하나님의 나라다. 물론 신격은 아버지와 아들로 제한한다. 그러나 장래에는 그 신격에 더 많은 인격이 포함될 것이다. 하나님의 가족이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스트롱은 “삼위일체 교리는 거짓 선지자들의 교수의 결과이며..... 이교의 거짓 선지자들이 소개한, 성령이 제삼위라는 이단적이고 거짓된 교리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인결과”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세 인격으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거짓 선지자나 이교의 가르침이 아니다.  암스트롱의 문제는 초대교회사나 교리사를 무시한 채 이성으로 이해가 힘든 삼위일체의 교리를 이성적으로 설명하려는데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삼위일체 교리가 다신론이 되고 말았다. 삼위일체 교리는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이성적이기보다는 초이성적인 진리다. 하나님의 지혜에 속하는 진리이므로 인간의 지혜로 다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은 한 분 하나님이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의 세 인격으로 계신다고 한다. 우리가 할 일은 이해가 안 된다고 이단적인 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본서의 ‘제2부  정통 기독교의 신앙’ 을 참고하라.

3) 예수 그리스도
  암스트롱은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의 그리스도론은 여호와의 증인과 유사하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영원부터 존재하셨다. 그는 아버지와 하나이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종속되신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을 구분되지 않는다. 구약의 야웨(여호와)는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 야웨는 마리아에게서 낳은 존재로 사람이 되었다. 그때까지 그는 아들이 아니었다고 한다.
  마리아에게 잉태되기 전에 그리스도(The Logos)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두 원회원(아버지와 그리스도) 중에 한 분이었다. 그는 아버지처럼 영원토록 존재하셨다. 그러나 그가 마리아에게 잉태되기 전 하나님의 아들로 언급한 하나님의 말씀은 없다. 그의 인간 출생은 그의 첫 번째 출생이었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그리스도는 죄를 지을 수 있으나 죄를 짓지 않았다. 그는 시련과 시험을 통하여 완전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완전하게 지켰다. 그리하여 우리의 구주와 맏아들이 될 수 있는 영적 성품을 온전히 발전시켰다. 그는 죄의 값을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원의 희생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최종적으로 어떤 사람도 구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수요일 날 십자가에 달리셨고 유대인의 안식일 끝인 토요일에 다시 살아나셨다. 부활된 몸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영생하시며 영원히 사신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영적인 아들이시며 신적 존재이다. 그 몸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 몸은 사라졌다.
  암스트롱은 신론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에 기독론과 성령론에서도 잘못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만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면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종속된다고 주장한다. 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이 아닌 영적인 존재라고 한다. 그리고 부활 후에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고도 한다. 이런 모든 주장은 성경적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암스트롱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전과 후가 육체와 영, 죽음과 영생의 분깃점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부활 후의 그리스도는 육이 아닌 영일뿐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은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여호와의 증인을 그대로 닮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당신의 부활을 성전에 비유하면서 육체인 몸으로 살아나실 것을 알려 주셨다(요 2:19-21). 그리고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일까 하여 의심하는 도마에게 십자가의 상처를 직접 만져 보라고 하여 부활체가 십자가에 달린 실제 몸임을 보여 주셨다(요 20:27). 예수님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고 그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인격적인 몸을 지니시고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다시 오신다(마 1:16-25; 눅 24장; 행 2:31-36; 빌 2:5-8; 골 1:15-18; 살전 4:16-18; 히 4:14-16; 벧전 2:24-25; 계 11:15, 17; 20:4-6, 11-15).

4) 성령
  암스트롱은 성령의 인격이나 신성 모두 배격한다. 그에 의하면 성령은 인격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 쓰시는 능력이다. 그것은 인간이 전기를 쓰는 것과도 같다. 하나님의 성령은 그의 정신이며 그의 능력이요 바로 그의 본질이다. 그러나 성령은 아버지나 그리스도처럼 구별된 인격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인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나 성경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으며, 성령은 신격의 제3위로 아버지와 아들과 구별되는 인격이시라고 가르친다. 성령은 다른 인격처럼 수동적으로 인격성을 드러내신다. 그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에서와 같이 속일 수 있다(행 5:3-4). 바울은 성령을 근심케 말며(엡 4:30)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했다(살전 5:19). 스데반은 성령을 항상 거스린다고 그의 유대인 청중들을 고발했다(행 7:51).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으며(마 12:31; 막 3:29)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롬 8:26).
  성령은 능력이 아니라 의지, 지성 그리고 감정을 지닌 인격이시다. 그리고 이 인격은 아버지와 아들과 신성의 본질을 공유하신다. 그는 참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5) 인간
  암스트롱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만 상존하지 않는다. 인간의 마지막 운명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창조주가 되는 훈련에 착수했고 하나님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께로 태어나기 위해 영적으로 발전한다. 부활로 인해서 혹은 죽어야 할 존재에서 불멸의 존재로 인간에서 신적으로 즉석의 개종을 인해서이다”라고 한다.
  그럼에도 인간이 하나님이 되는 것은 즉각적이기 보다 점진적이라고 한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영적으로 점점 더 하나님같이 성장하여 부활의 때에 가서 즉각적으로 죽을 몸에서 불멸로 바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성경 어디에도 인간이 하나님이 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영원히 하나님이시므로 결코 변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조물주이시며, 인간은 그의 피조물일 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인간은 흙으로 빚어진 유일한 존재일 뿐이다. 결국 허버트 암스트롱의 이론대로 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며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은 사라지고 만다. 그 신관은 유일신이 아니라 다신론이요 몰몬교나 초대교회 때 가장 큰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의 신관과 흡사하다.

6) 행위구원
  기독교의 특징은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진리는 성경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중세 교회는 믿음에 선행을 더해야 한다는 행위구원을 만들었다.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 성경대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은혜 구원을 회복했다. 그러나 이단들은 인간의 이성에 부합된 행위 구원을 주장하 고 있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세계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구원이 행위 구원이라면 자연히 구원은 과정이라고 해야 한다.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암스트롱은 “이 세상의 하나님이 눈을 멀게 하고.....당신을 속여 행함(works)없이 다만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라......그리고 재빠르게 바꾼다. 당신은 구원받았다. 그러나 성경은 아직 구원받은 사람은 그러나 아무도 없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 하나님의 세계 교회에 의하면 구원은 현재의 생에서 시작되나 부활에서 완성된다. 구원은 회개, 신앙 그리고 물세례로 구성된다. 그러나 아무도 이 세상의 삶에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구원 계획을 완성했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구원은 단지 거기서 시작만 되었다. 기성 교파들은 그저 믿으라고 가르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러면 당신은 즉시 구원받았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거짓된 것이다” 라고 말한다.
  암스트롱은 세례를 구원의 필수 요소로 주장한다. 그는 물세례를 받기까지는 누구에게도 성령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 없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물세례를 명하셨다. 이 명령에 도전하거나 무시하거나 혹은 등한시하는 것은 확실하게 죄의 형벌을 받을 불순종의 행위가 될 것이며 그런 사람은 구원을 상실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겐 물세례만이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암스트롱은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날이 그의 안식일임을 드러내셨으므로 그것은 삶과 죽음의 차이를 만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 형벌은 영원한 죽음이다.
  암스트롱의 구원관은 믿음 대신 행위와 은혜 대신 율법의 성취를 주장한다. 구원은 하나의 긴 과정으로 부활 때 완성되며 예수를 믿으면 율법을 지킬 능력이 부여되어 계명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침수의 물세례를 받는 것이나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은 인간이 훌륭한 생활로 하나님께 도달하는 성취가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내려와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를 위해 율법을 이루신 것이다. 따라서 구원을 위해서 사람이 이루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원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얻는다(요 3:16). 그리고 그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다(엡 2:8-9).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는 누구도 자신을 자랑할 수 없다.
안식일과 구약의 절기 및 규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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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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