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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9장 일치 오순절파
RevSuh  2017-02-10 13:49:20 hit: 1,344

제9장 일치 오순절파
Oneness Pentacostalism


  오순절파 중에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국제연합오순절 교회가 있다(UPCI). 일치 오순절파도 삼위일체를 잘못 해석하는 파에 속한다.

1. 역사
  일치 오순절파 운동은 20세기 초 하나님의 성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1913-1916년 오순절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성회에 가입하였는데 그들 중에 존 쉐피(John Sheppe), 프랭크 에와트(Frank J. Ewart), 그리고 가필드 헤이우드(Garfield Haywood)가 있었다. 이들은 사도행전 2장 38절에 근거하여 세례는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주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한 하나님에 대한 표현의 양태로 보았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보여주신(계시된) 표명, 양태, 직분, 혹은 관계들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하나님의 성회는 1915년 제3차 총회에서 그 가르침을 반대했고, 1916년 센트루이스(St. Louis)에서 개최된 제4차 총회에서는 근본적인 진리의 진술로 삼위일체의 믿음을 강력하게 확인했다. 총회의 이런 결의로 하나님의 성회에 가입한 585명의 목사 중에서(그들의 회중) 156명이 탈퇴했다.
  1916년 하나님의 성회를 떠난 일치 오순절파 목사들 중에 얼마가 알칸사스 (Eurek Springs, Arkasas)유렉 스프링스에 모여 사도적 성회의 총회를 형성했다(EAAA). 이 총회에 하나님의 성회에서 이탈한 모든 신자들이 가입했다. 이것이 일치 오순절 운동의 시작이었다.
  이를 전후해서 일치파 교단 안에서는 교리적인 분열과 분파, 합동이 이루어졌다. 마침내 사도적 성회의 총회는 세계 오순절 성회와 연합했다(PAW). 세계 오순절 성회가 직면한 하나의 도전은 그 교단의 직위 안에서 발생된 인종적 긴장이었으며, 다른 일치파 교단들 안에도 인종 차별이 살아 있었다.
  1931년 11월 다양한 인종 차별의 일치파들이 통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오순절 성회를 창립하게 되었다(PAJC). 그러나 흑인 지도자들의 일부는 그들의 관심사(그들은 통합 배후 동기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였던 그 협정(Arrangement)을 신뢰하지 않았고, 그대로 세계 오순절 성회에 남아 있기로 했다. 10여 년이 지나 1945년 가장 큰 백인 조직들은 꾸준히 오순절 교회(PCI)와 일치파 그룹들, 그리고 연합 오순절 교회(UPC)로 통합을 시도했다. 연합 오순절 교회는 하나님의 성회보다 훨씬 더 경건하며 옷이나 행동에 관한 엄격한 거룩의 규정들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 일치파 그룹이 1971년에 발생했는데, 이 그룹은(AWCF) 연합 오순절파 다음으로 크다. 그리고 세계 오순절 성회(PAW)는 세 번째로 큰 일치파 오순절 교단이다. 그러나 일치파의 신앙을 견지하면서도 그 어디에도 가입하지 않고 한 지도자가 목회하는 교회들도 많다.
  오늘날 57개국 90개의 교단들이 일치 오순절파에 가입되어 있다. 세계에 일치파 신학의 옹호자들은 5백만 명이 있으며(어떤 평가로는 그 이상임) 미국에 1백만 명이 있다. 하나의 조직체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일치파 조직은 국제 연합 오순절파인데 일치 오순절파 신자의 75%가 가입되어 있다. 이들은 미국에 60만 명 이상의 교인들이 있다. 이 그룹은 매년 10-15%씩 성장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교회 중에 하나다. 연합 오순절 교회는 미국에 380개의 교회가 있다.
  이 교단은 출판 사업에 적극적이며 불꽃의말씀 출판사는 100여 종 이상의 책들을 출판하고 있다. 성경대학(사도적 성경대학과 연합오순절 성경대학)과 복음적인 선교 그리고 미디어 사역에도 적극적이다.

2. 조직
  국제 일치 오순절파는 회중적인 정치 체제를 따르며 개교회들은 자치적으로 운영된다. 교회들의 동의로 유사한 장로교 정책이 통용되고 있다. 교회는 지방(구역), 넓은 지역 그리고 (전국적인) 총회가 있다. 이는 마치 장로교회의 노회, 대회, 총회와 비슷한 조직이다. 최고 감독을 포함한 지도자들은 모임을 통해 선출된다. 본부는 헤이즐우드(8855 Dun Road, Hazelwood, Mo, 63042)에 있으며 교단의 조직, 출판, 선교를 담당한다. 지역 교회들은 미국과 캐나다와 세계 여러 나라에 퍼져 있다. 국제 연합 오순절파는 외국의 선교 사업을 크게 강조한다. 추수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은 세계 전역에 복음 전파를 할 수 있도록 조직되어 있다. 웹사이트는 이 운동의 다양한 하부 조직들과 현재의 소식들 그리고 총회에 대한 정보를 함께 연결시켜 주고 있다.

3. 신학

1) 예수는 아버지, 아들 성령이시다

  예수는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이시다. 예수는 한 분 참 하나님이시다. 예수는 그의 전체로서 하나님이시며,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은 한 신격이 임시로 떠맡은 단지 다른 역할들일 뿐이다.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구절들이 인용된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불렀다(요 1:1; 20:28; 딛 2:13; 벧후 1:1; 요일 5:20). 주(요 20:28; 롬 10:9-13; 빌 2:9-11)와 하나님으로 예배 받으셨으며(마 28:17; 히 1:6), 하나님으로 기도했다(행 7:59; 고전 1:2; 고후 12:7-10).
  역시 일치 오순절파는 성경의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한 분이심을 가르친다고 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라”(신6:4)고 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이같은 진리는 성경에서 거듭 주장되고 있다는 것이다(사 42:8; 43:10-11; 44:6; 고전 8:4-6; 엡 4:4-6; 딤전 2:5). 따라서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며, 결국 성령이 말씀하는 한 분 하나님은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일치파 신학자 데이빗 버나드(David Bernard)는 “단지 한 분 하나님만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아버지시오(말 2:10)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그 논리적 귀결은 예수님이 그 아버지시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마치도 한 분 하나님만 계신다면, 성령이 하나님이시니 예수님은 반드시 성령이 되셔야 한다는 주장과도 같은 것이다.
  예수가 아버지라는 주장을 지원함에 있어 일치 오순절파는 예수가 이사야 9장 6절에서 전능한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불렸다는 것에 주목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곧 아버지시라는 것이다. 더구나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나는 아버지와 하나라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들의 공동 정체성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일치 오순절파가 믿는 몇몇 구절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예수가 아버지임을 가리킨다고 한다. 예를 들어, 로마서 1장 7절에서 우리는 바울의 인사를 읽을 수 있다.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평강이 있을지어”다(NASB). 일치 오순절파는 이 구절에서 ‘...와(그리고)’라는 말(헬라어 kai)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는 평등한 ‘곧’(으로) 번역되어야만 한다고 한다. 따라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 곧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번역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고 아버지는 하나로, 그리고 같은 인격으로 본다.  
  또 아버지와 아들은 성경을 통해서 동일한 활동에 동참하여 일하시는 것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이시며 같은 인격이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예수가 기도를 응답하신다(요 14:14; 15:16). 아버지와 아들이 예수님께로 사람들을 이끄신다(요 6:44; 12:32). 아버지와 예수님이 죽은 사람들을 살리신다는 것이다(요 6:40; 롬 4:17).
  더 나아가 예수가 성령이심을 증명하기 위해 일치 오순절파는 자주 고린도후서 3장 17절을 인용한다. “이제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 거기에 자유가 있다”(NASB). 그들은 이 구절에서 예수가 주님이시며, 그는 신자들의 마음을 여시는 성령님과 분명하게 동일하시다고 본다. 그러므로 예수는 성령이시다. 역시 성령은 예수님과 성령이 성경에 기록된 활동에서 같은 일을 하시기 때문에 그들의 공동 정체성은 분명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예수와 성령이 죽은 자에서 예수를 일으키셨다(요 2:19-21; 롬 8:9-11). 예수와 성령이 신자들의 마음에 거하신다(요 14:16; 골 12:27). 예수와 성령이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신다(롬 8:26; 히 7:25).
  그러므로 일치 오순절 신학에서 성령은 한 분 하나님(예수)을 위한 다른 용어이다. 성령님은 분리된 정체성을 지닌 분이 아니시고 활동하는 데 하나님의 특별한 역할을 떠맡으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으로서 하나님(예수)은 신자의 마음 속에서 활동하시며 그의 거룩한 영향력을 행사하신다.
  또 예수가 아버지요 아들이시며 성령이시라는 사상을 지지하기 위해 마태복음 28장 19절과 사도행전 2장 38절을 든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지시하시기를 “그러므로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고 그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세례에 대한 언급을 발견하게 되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것이다. 이 구절들을 함께 붙여서 일치 오순절파는 예수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름’이란 말은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단수인데, 이는 반드시 아버지, 아들, 성령이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보편적 의미로 하나님이다. 아들은 표명된 하나님, 특별히 인간의 육신으로 계시되신 하나님이다. 성령은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그 자신을 나눠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일치 오순절파에 의하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구별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구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시다. 아버지와 아들 둘의 정체는 같은 한(인격)에 있다. 아버지는 신성에 속하며, 아들의 편재는 아버지다.
  일치 오순절파는 아들은 육신이거나 인성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거하시는 위대하고 영원하신 성령이시다.  그들은 분리된 두 인격이 아니라 두 가지 성품이다. 인성과 신성, 아들과 아버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일치 오순절파 학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란 용어는 단지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 아들은 예수의 육신이거나 인성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인간 육체다.  그 아들은 항상 성육신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구속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이 임시로 떠맡은 특별한 역할을 가리킨다.
  그러나 일치 오순절파의 작품 안에서 그 아들은 인간성만 있거나 육신으로 나타내신 하나님을 의미할 수 있다. 즉 인성 안에 거하시는 신성이다. 역시 비록 예수가 아버지요 예수가 아들이지만, 이것은 아버지가 그 아들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으로 성육하신 신성을 가리키듯이 신성만을 가리키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가 그 아들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 구분은 중요하다. 아들의 신성은 아버지시다. 이처럼 일치 오순절주의는 엄격하게 하나님의 이름이 중심이 된 신학을 적용하고 있다. 그들은 신약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란 말은 단순히 예수를 위한 단수 이름들일 뿐이라고 한다.

2) 예수의 아들 되심은 일시적이다
  그들은 성경이 결코 예수의 아들됨이 영원한 아들이신 분임을 가리키지 않는다고 한다. 영원한 아들이란 용어는 성경에서 결코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또 성경에 하나님 그 아들이란 말도 없고 그 대신 아들은 태어나신 자였다고 한다(요 3:16). 이는 예수가 시간의 한 정점에서 아들이 되신 것을 가리킨다. ‘영원함’ 그리고 ‘태어나신’ 이라는 말은 서로가 직접적으로 모순이다. 만일 어느 누가 영원하다면 그는 결코 태어난 자가 될 수 없다. 만일 그가 태어난 자라면 그는 영원하지 않다. 그는 동시에 영원한 아들과 태어난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치 오순절 신학에서 예수는 그의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이며, 그 아버지께 순종한 그 아들이시다. 그는 아버지에게 기도하신 아들이시며, 그 아들의 기도를 응답하신 아버지시다. 그는 아버지께 버림받은 경험을 한 인간이시며, 십자가에서 그의 아들을 버리기 위해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예수는 계셨으며, 지금도 계신 바로 한 인물이다.
  그리스도의 아들 되심은 어느 날 끝나게 될 일시적인 역할이라고 본다(고전 15:28). 따라서 그들에 의하면 천년왕국이 완성될 때 예수님의 아들 사역도 마치게 될 것이다. 아들 됨이 존재하기를 그치기 위한 이유들이 존재할 때 하나님(예수)이 아들로서 그의 역할에서 활동을 중지하실 것이며, 그 아들 됨은 아버지 창조자 그리고 만유의 지배자로서 그의 원래의 역할인 하나님의 위대하심으로 되돌아가실 것이라고 한다.

3) 예수님은 창조 때 선재하시지 않았다
  그러면 신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우주 창조에 관여하셨음을 가라키는 구절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버나드(Bernard)는 “아들에 의한 창조를 말씀하는 성경 구절들은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떠나 한 인격으로 창조에서 실질적으로 존재했음을 의미할 수 없다. 구약은 한 개인이 우리를 창조하였으며 그는 아버지 여호와시다”라고 한다.
  스들에 의하면 성경이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할 때,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당신이 거하기 위해 계획하신 것으로서 장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하셨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말씀으로가 아니고는 비록 아들이 창조 때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그 아들에 대한 그의 예지를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아들의 선재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은 단지 아버지의 마음속에서의 선재일 뿐이다.

4) 삼위일체는 거짓된 교리다
  이단의 특성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 중 하나는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유니테리안파나 여호와의 증인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 주된 원인은 인간의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신성을 부인하기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하지만, 일치 오순절파에서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삼위일체를 부인한다. 그 이유는 앞에서 보았듯이 아버지나 성령으로부터 어떤 의미의 구별된 예수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치 오순절파는 성경이 한 분 하나님에 대해서만 말씀한다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신 6:4; 딤전 2:57). 그리고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며(말 2:10), 아들이 하나님이시며(요 1:11) 성령이 하나님이시라(행 5:3-4)고 언급하는 말씀으로부터 결론내리기를 예수님은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이시라고 한다. 그들은 전형적으로 삼위일체론을 삼신론의 형태로 특징짓고(세 구별된 신들을 믿는) 삼위일체란 말은 성경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삼위일체론자들은 종종 그들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마태복음 3장 16-17절에 호소한다(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아버지는 말씀하셨고, 성령님이 예수님께 내려왔다). 일치 오순절론자들은 이것은 전혀 삼위일체를 지지하는 말씀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은 예수는 아들이시며(인간) 아버지(하나님) 모두이셨다고 주장한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사람은 역시 편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는 그 음성에 대한 책임이 있으셨다고 한다.
  예수는 이렇게 동시에 지상에 계셨고, 하늘에 계셨으며, 다른 활동에 관여하시고 계셨다. 예수의 성령이 하늘에서 말씀하고 그의 몸이 요단강에 있을 동안에 비둘기의 형태로 그의 성령에 대한 모형을 보내시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치 오순절주의자들은 삼위일체를 부인하기 위해 공교하게 이성과 성경 그리고 역사를 들어 논증한다.
(1) 이성에 호소하여 일치 오순절자들은 만일 사람이 예수가 아버지시오 성령이심을 부인한다면 이는(골 2장 9절이 단언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 삼위일체론자들이 신격으로 가정한 제2위격이 추정된 신격의 제1위 인격에게 기도하는 것은 부조리하게 된다고 말한다(히 7:25). 어떻게 추정된 신성이 그 자신을 신격화함이 없이 기도할 수 있는가?  신적 인격은 도움이 필요 없고 인간만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의 인성이 하나님의 영원한 영에게 기도하였음을 가르친다. 신성은 도움이 필요 없으며 인성만 도움이 필요하다. 더구나 마가복음 13장 32절은 아들이 재림의 날이나 시간을 모른다고 했으며 아버지만 아신다고 지적했다. 만일 아들이 그 자신 안에 아버지께로부터 구별된 신성이 있었다면 그는 재림의 날과 시간을 모르실 수 있겠는가?
(2) 성경에 호소하여 삼위일체에 반대하는 다른 논증은 많은 성경구절이 있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언급된   곳에 성령의 언급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장 3절에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  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는 말씀이 있다.. 바울의 많은 서신의 서두 인사에도 아버지와 예수의 언급뿐 성령은 없다(예, 고전 1:3; 고후 1:2). 이것은 만일 하나님이 세 인격들의 각자가 동등한 삼위격이었다면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일치 오순절자들은 삼위일체의 논증 중에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어 이름 엘로힘이 복수형이라는 데 주목하 지만, 그것은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데는 불충분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들은 이것은 단지 엄위에 대한 복수형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엄위를 가리키지 그의 추정된 복수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 논증들은 삼위 일체를 믿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3) 역사에 호소하여 일치 오순절자들은 삼위일체의 교리는 이교도의 나라에 뿌리가 있다고 한다. 앗수르, 바벨론 그리고 다른 이교 나라들은 삼위일체의 어떤 형태를 믿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의 사상은 기독교에서 기원되지 않았다. 교회사의 초기 신학자들 중에 어떤 이들은 이교 사상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며 기독교 교리에 이단을 소개하기도 했다. 일치 오순절자들은 교회의 교부들, 로마의 클레멘트(A.D. 100), 이그나티우스(A.D. 110-15) 그리고 저스틴(A.D. 150)은 삼위일체 교리에 반대한 이들이며, 이들은 일치 오순절 교리를 가르친 초기의 실례라고 주장한다.

5) 믿음으로만의 구원이 아니다
  일치 오순절주의의 구원은 성취하기가 힘들다. 그들의 신학에서는 중생하기 위해 신앙, 회개, 예수의 이름으로만의 물세례(침수) 그리고 성령의 세례(방언을 말함으로 증명이 됨) 모두 중생에 필요하다. 그 중 마지막 두 가지 요인,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복음적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들이다.
사람이 구원받은 후 구원에 머물려면 반드시 거룩한 표준들에 따라 지속적으로 엄격하게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거룩한 표준에는 죄에서 자유한 승리의 삶을 사는 것이 포함된다. 일치 오순절 회중들은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에 동의해야 하는데 담배나 댄스, 술을 하지 않고 극장에 가지 않는 것이다. 테레비전을 보는 것은 종종 무가치한 것이다. 여자들은 화장을 하거나 보석으로 꾸미거나 바지 입는 것을 피하고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남자들은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한다. 이런 것들은 거룩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일치 오순절주의자들은 요한복음 3장 5절이 가르치는 물세례는 하나님이 사람을 중생케 하시는 방편이라고 한다. 물세례는 사람을 천국 백성으로 만들며 역시 죄가 용서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물세례는 일치 오순절파의 구원관에서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사도행전 2장 38절을 인용하면서 일치 오순절자들은 세례는 반드시 예수의 이름으로 거행되어야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물세례가 죄의 용서를 위한 것이고 죄에서 구원받을 유일한 이름이 예수의 이름이기 때문에(행 4:12) 물세례에서 예수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역시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성령의 세례인데 이는 항상 방언이라는 첫 증거를 수반한다. 방언으로 말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성령으로 세례 받지 않았다고 한다. 사도행전 2장 1-4절; 10장 44-48절; 그리고 19장 1-7절에서 성령으로 세례 받은 자의 첫 번째 증거는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제1세기에 진실이었던 것은 오늘날도 참되다고 본다. 만일 사람이 방언으로 말하지 못하면 그것이 몇 년이 걸리든 방언이 올 때까지 이 은사를 지속적으로 구하라고 한다.
  여기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일치 오순절 신학에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기보다 차라리 엄격한 형식(공식)을 따른다는 점이다. 이 공식에서 이탈하면 구원을 빼앗기게 된다. 일치 오순절파에서의 구원은 차라리 성화에 해당하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3단계의 구원 과정이 있는 셈이다. ⑴ 회개와 신앙  ⑵ 예수 이름으로 세례  ⑶ 성령 충만의 은사다. 따라서 그들의 구원관은 믿음으로만의 은혜 구원 대신어느 정도 계율적이고 행위(공로적)인 요소가 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경건 생활에 힘쓰려고 규범들을 정해서 강조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으나, 구원받은 신자답게 거룩하게 살려는 소원과 의지를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곧 구원을 위한 조건처럼 된다면 그것은 은혜 구원의 참된 복음이 될 수 없다.
일치 오순절파 교리의 비판
3.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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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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