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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재림과 그 결과
RevSuh  2010-05-12 16:06:10 hit: 2,487

재림과 그 결과

종말론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 사건은 재림과 그 결과인 부활과 마지막 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재림
재림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기초이며 하나님의 계획의 완성에 대한 시작의 표가 되는 사건이다.

재림의 명확성
많은 성경 구절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께서 친히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다. 말세에 대한 강화에서(마 24-25) 예수님은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고 하셨다.

몇몇 다른 경우의 강론에서도 인자의 오심을 언급하셨다(27, 39, 42, 44). 두주간 후에 가야바 앞에서의  재판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전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고 하셨다(마 26:64). 마태복음이 다른 복음서보다 더 많이 기록하고는 있지만 마태, 누가 그리고 요한복음은 역시 재림에 관한 예수님의 같은 말씀을 담고 있다. 마가복음 13:26과 누가복음 21:27은 마태복음 24:30과 병행구절이다. 그리고 요한은 우리에게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을 말해 주고 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예수님의 말씀에 더해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다른 직접적인 언급이 적지 않다.
재림은 사도적 카리스마의 부분이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를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바 만물을 회복하실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행 3:19-21).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15-16에서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하였다.

다른 직접적인 언급으로는 데살로니가후서 1:7, 10과 디도서 2:13이 있다. 다른 신약의 저자들도 역시 재림을 언급하는데 히브리서 8:28; 야고보서 5:7-8; 베드로전서 1:7, 13; 베드로후서 1:11; 3:4, 12; 요일 2:28이다. 그러므로 재림은 신약성경에서 아주 폭넓게 가르치는 교리이다.

시간의 불확실성
재림의 사건은 성경에서 아주 분명하게 강조되고 단언되고 있지만 그 시간은 아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명확한 시간을 정하셨으나 그 시간은 계시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당신도 천사도 그의 재림의 시간을 모른다고 하셨고 그의 제자들도 모르게 될 것을 언급하셨다(막 13:32-33, 35; 역시 마 24:36-44). 예수님의 재림 시간은 그의 승천 바로 전에 그가 언제 이스라엘에 나라를 회복하실 것인지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그의 반응에 잘  암시되어 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요’.
예수님은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시는 대신에 제자들에게 그들이 온 세상에 그의 증인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의 재림의 때는 드러나지 않았다. 예수님은 반복하여 기대하지 않은 때의 재림을 강조하셨으며 그 결과로서 깨어 있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셨다(마 24:44, 50; 25:13; 막 13:35).

오심의 특성

인격적
예수님의 재림은 인격적이다. 예수님은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고 하셨다. 바울의 ‘주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살전 4:16) 라는 언급은 재림이 성질상 인격적이라 하는데 조금도 의심이 없다. 예수님의 승천때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고 천사들이 한 말은 분명히 그의 재림이 그의 승천때처럼  인격적일 것을 분명히 한다.

육체적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재림이 영적인 오심을 통해 오순절에 성취되었다고 한다. 마침내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셨고(마 28:20)  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고 하셨다고 한다. 따라서 재림에 대한 헬라어 ‘파루시아’는 바로 임재를 가리킨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주님의 오심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라고 한다. 재림은 그가 어떤 장래의 시간에 오신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오순절 이래로 그리스도는 실로 중생의 순간에서부터 각 신자와 함께 하시고 신자안에 계신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이 영적 임재를 가리키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영적으로 함께 하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약속하신 재림이 아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의 대부분이 사실 오순절 60년후에 한 것이며 그 약속은 아직도 장래에 오심이었다.

가견적
여호와의 증인은 그리스도는 1914년 10월 1일에 그의 통치를 시작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지상에 보이게 재림하신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의 승천 이래로 보이는 몸을 갖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문자적인 재림도 아니다. 재림은 하늘에서 있었으며 그리스도는 보좌에 오르셨다. 그러므로 그의 임재는 성격상 하나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성경의 재림과 결코 조화되지 않는다. 사도행전 1:11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의 떠나실때와 같은 것이며 그것은 확실히 볼수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우심을 주시했기 때문이다(9-10)
다른 재림에 대한 언급으로 마태복음 24:30도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여 볼 수 있게 오실 것을 분명히 하였다.

뜻하지 않게
비록 재림 전에 몇 가지 징조들 - 멸망의 가증한 것(아 24:15), 대환란(21) 그리고 해가 어두워짐(29) - 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정확한 시간을 암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재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예상밖일 것이다. 예수님의 교훈은 재림 전에 오랜 시간의 지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근신하지 않게 될 것이며(마 25:1-13; 참고, 벧후 3:3-4) 재림이 마침내 발생했을 때 너무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준비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마 25:8-10). 재림의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었다는 것은 재림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친다.

승리와 영광스러움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은 그의 초림때 낮아지심과 겸허한 상황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영광스러울 것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는 권능과 영광으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마 24:30; 막 13:26; 눅 21:27). 그는 천사들과 천사장에 의한 사자들을 동반하실 것이다(살전 4:16). 그는 그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아 모든 나라를 심판하실 것이다(마 25:31-46). 분명히 그는 승리와 영광스러운 만유의 주가 되실 것이다.

재림의 통일성
복음주의 진영에 크고 영향력 있는 한 그룹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실제로 두 단계일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 단계들은 휴거와 계시 혹은 성도들을 위한 오심과 성도들과 함께 오심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대환란에 의해 구별될 것이다. 그 기간은 7년의 기간일 것으로 믿는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환란주의자라고 하며 그들 중 다수는 세대주의자들이다.

휴거나 성도들을 위한 오심은 은밀할 것이며 교회밖에 있는 자에게는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휴거가 환란 전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일어날 수 있기 전에 아직 성취된 예언이 없다. 결과적으로 휴거는 어느 순간에나 일어날 수 있거나 그 일반적 용어에서 휴거는 임박하다. 휴거는 큰 환란의 고통에서 교회를 구원한다. 그리고 7년의 끝에 가서 주님은 다시 오신다. 그때 큰 승리로 오시며 그와 함께 교회를 데리고 오실 것이다. 이것은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두드러진 영광스러운 사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의 이 지구상에 천년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전환란설에 대조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의 다른 견해는 그것이 통일된 사건이며 단 한번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재림에 관한 모든 예언들이 하나의 사건을 언급한다고 본다. 이에 반해서 환란전설자들은 예언의 어떤 것은 휴거를 가리키며 다른 것들은 요한계시록을 언급한다고 한다.

그러면 재림은 단일 사건인가? 다시 말해서 통일된 사건인가? 두 단계의 사건인가? 그것은 재림을 가리키는데 사용된 용어와 관계가 있다. 재림을 위한 세 가지 용어는 파루시아(Parusia), 아포칼피시스(apokalypsis), 그리고 에피파네이아(epipahaneia)이다. 환란전 설자들은 파루시아는 휴거를 가리킨다고 논증한다.  이것은 신자가 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세상에서부터 구원받는 신자의 복된 소망인 재림의 첫 번째 단계라는 것이다. 다른 두개의 용어들은 환란기의 끝에 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오심을 언급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재림을 지칭하는 그 용어들을 일정하게 조사해 볼 때 환란전설자들에 의한 구별을 지지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데살로니가전서 4:15, 17에서 파루시아라는 말은 그것이 휴거를 나타낸다고 하기가 힘든  한 사건을 가리키는데 쓰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선포한 것으로 살아있는 우리 주님의 재림때까지 떠나지 않은 자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 주님 께서도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하늘에서 강림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있는 자도 떠난 자와 그들과 함께 끌어올려져서 공중에서 주를 만나서 주와 함께 항상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은밀한 재림을 발견하기는 아주 어렵다. 여기 더하여 파루시아는 데살로니가후서 2:8에서 사용되었는데 거기서 그 환란후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불법의 사람, 적그리스도를 공적인 방법으로 멸하실 것이다. 더나아가 그리스도는 파루시아에 관해 말하기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하셨다(마 24:27).

또다른 두 용어도 전환란론자들의 개념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아폴칼피시스나 에피파네이아가 아닌 파루시아가 교회에 의해 기다려진 복된 소망임을 의미하였다. 바울은 그의 독자들이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다폴칼립시스)을 위해 기다리는 지식에서 풍성한 것을 인해 감사하였다(고전 1:7; 역시 살후 1:6-7을 보라).
베드로가 아포칼립시스와 연관해 신자의 기쁨과 상급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고 하였다. 이런 언급은(1:7과 1:13과 함께) 베드로가 편지를 쓰는 대상의 신자들이(교회의 한 부분) 그리스도의 아포칼립시스에서 그들의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될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환란전설에 따르면 교회는 이미 피루시아때 그 상급을 받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또 신자의 소망의 대상으로 에피파네이아에 관해 말했다. 그는 디도에게 신자들은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나타나실(딛 2:13) 복된 소망을 기다림으로 경건하게 살라고 하였다. 에페파네이아의 유사한 사용은 디모데전서 6:14과 디모데후서 4:8에서 발견할수 있다.
재림에 대한 용어의 다양한 사용이 재림에서 두 단계가 있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 말들은 분명히 하나의 사건을 가리키는 용어로 서로 바꾸어 쓸수 있는 것이다.

재림의 임박성
예수님의 재림의 임박성을 성경이 말씀하는데 그러면 어느 시간에나 오실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먼저 어떤 예언들이 성취된 후에야 오시는가?
환란전 재림론자들은 그리스도는 어느 순간에나 오실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빛안에서 우리는 항상 준비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방심한 중에 휴거되지 않기 위해서다.

이 견해에 사용되는 몇 개의 논증이 있다.
1.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재림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의 재림을 준비하도록 재촉하셨다(마 24-25). 만일 그리스도의 재림전에 있어야 할 대환란같은 다른 사건이 있었다면 왜 주님이 알려지지 않은 시간에 대해 말씀하셨는지를 이해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우리는 적어도 그 재림이 그 다른 사건들이 일어날때까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주의 재림이 임박했으므로 열심히 기다려야 함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예, 롬 8:19-25; 고전 1:7; 빌 4:5; 딛 2:13; 약 5:8-9; 유 21). 그것은 그 재림이 아주 곧 그리고 어느 순간일 것을 가리킨다.

3. 우리가 우리의 복된 소망(딛 2:13)을 기다린다는 바울의 언급은 하나님의 계획에서 다음 사건이 주님의 재림임을 요구한다. 만일 다음 단계가 그 대환란이었다면 우리는 소망과 기대를 가지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신에 두려움과 근심이 우리의 반응이 될 것이다. 우리 주님의 재림이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다음 사건이었기에 거기에 왜 그것이 어느 순간에 일어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런 이론은 옳은가?
그의 재림을 지켜보라는 그리스도의 명령과 그의 재림이 있을 것같지 않은 때와 분명항 표적이 없이 일어날 것을 경고한 것이 촉박한 재림을 가리키는 것인가? 재림은 이미 200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다. 따라서 우리는 재림이 언제 있을지 또는 얼마나 더 재림이 지연될지는 알지 못한다. 재림이 언제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 어떤 때를 아는 것을 제외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언급은 그들이 재림이 촉박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는 그 시간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는 적어도 그의 비유 세가지를 통해서(귀족이 먼 나라로 감, 눅 19:11-27; 지혜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 마 25:5; 그리고 달란트 마 25:19) 거기에 이미 지연이 있었음을 암시하셨다.

유사하게 종들의 비유(마 24:41-51)는 그 종들은 그들의 특징을 증명하기 위한 기간을 포함하고 있었다. 여기에서도 어떤 사건들은 재림전에 일어났다. 예를 들면 베드로는 늙고 쇠약해지며(요 21:18), 복음은 온 나라에 전파될 것이며(마 24:14) 그리고 성전은 파괴될 것이다(마 24:2). 그의 말씀, 주의하라! 그리고 너희는 그 시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기 위한 지연과 조화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는 재림이 임박함에 관해 말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임박한 재림이 하나의 사건 자체보다는 재림을 둘러싸고 있는 사건들의 복잡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임박함과 재림 자체를 절박함으로 이 복잡함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부활
개인적 종말관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중요한 결과는 부활이다. 이것은 죽음에 직면해서 신자가 가질 소망의 기초이다. 비록 죽음은 피할 수가 없지만 신자는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될 것을 기대한다.

성경의 가르침
성경은 분명하게 신자의 부활을 약속하였다. 구약은 우리에게 몇 개의 직접적인 언급을 해 주고 있다. 첫 번째는 이사야 26:19이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어놓을지어다’

다니엘 12:2은 신자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마찬가지로 가르치고 있는데 ‘땅의 티끌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하였다.
역시 부활의 사상은 에스겔 37:7-14에서도 단언하고 있다.
이런 직접적인 언급에 대해서 구약은 우리가 죽음이나 스올에서 구원을 기대할 수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시편 49:15은 말씀하기를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 몸에 대한 언급이 없는 한 스올에서 불완전한 존재가 우리의 마지막 상태가 될 수 없다. 시편 17:15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깨어남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구약이 몸의 부활에 대한 언급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과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이 부활을 가르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에 의해 질문을 받으셨을때 그는 그들을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지식의 결핍으로 인한 잘못이라며 그들을 책망하셨다(막 12:24). 그리고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그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시라”(26-27). 베드로(행 2:24-32)와 바울(행 13:32-37)은 시편(시 116:10)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예언으로 보았다.

히브리서 11:19은 부활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관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라고 명령하였다. 물론 신약은 부활에 관해 훨씬 더 분명하게 말씀한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부활에 관해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여러 경우를 보고하고 있어 가장 분명한 언급은 요한복음 5장에 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들이 살아나리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5, 28-29).

부활에 관한 다른 언급들은 요한복음 6:39-40, 44, 45과 나사로의 살아난 이야기에 있다(요 11: 특히 24-25).
신약의 서신들 역시 부활을 증거한다. 바울은 분명하게 믿고 가르치기를 장래에 몸의 부활이 있다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부활을 가장 길게 논의하고 있다. 그 교훈은 특별히 51절과 52절에 잘 요약되어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이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안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부활은 역시 데살로니가전서 4:13-16에서 분명하게 가르쳤고 고린도후서 5:1-10에도 합축되어 있다. 그리고 바울이 공회앞에 나타났을때 그는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행 23:6)고 외침으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의견 충돌을 일으켰다. 그는 베릭스 앞에서도 유사한 선언을 하였다(행 24:21). 요한 역시 부활의 교리를 단언하였다(계 20:4-6, 13).

삼위 하나님의 역사
신자의 부활에는 삼위 하나님께서 모두 관여하셨다. 바울은 우리에게 아버지가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을 일으키실 것임을 알려 주었다(롬 8:11). 그리고 신자의 부활에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특별히 고린도전서 15:12-14에서 바울에 의해 특별히 강조된 요점인 일반 부활사이에 특별한 연관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은 헛것이며(고전 15:12-14), 골로새서 1:18에서 바울은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 1:5에서 요한은 예수님에 관하여 유사하게 ‘죽은 자에서 처음 나신 자’로 언급하였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의 소망과 확신을 위한 기초이다(살전 4:14).

본질에서 육체적임
신약의 몇몇 구절은 몸이 생명으로 회복될 것을 단언한다. 그것들 중에 하나는 로마서 8:11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참고, 빌 3:20-21).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바울은 또 그들의 무덤에 그 몸이 아직도 누워 있는 사실과 상반되지 않는 영적인 부활의 형태로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는 견해가 이단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그가 후메오네와 빌레도의 견해를 정죄했을 때 이 점을 강조했다. 그들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는 이론을 주장으로 혼란을 초래케 하였다(딤후 2:18).

신약에는 부활에서 육체적 본성에 대한 간접적인 증거가 있다. 신자의 구속은 단지 영이 아니라 몸을 포함한 것임을 말씀한다(롬 8:22-23). 고린도전서 6:17-20에서 바울은 몸에 관한 영적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다(:15). 그 몸은 성령의 전이다(:19). 그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신다(:13). 몸에 대한 강조의 견지에서 곧 이어지는 그 언급은 분명히 육체의 부활을 위한 하나의 논증이다. ‘하나님이 주를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리라’(:14). 전체 구절의 결론은 ‘그러므로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20)는 것이다.

부활의 육체적 성질을 위한 다른 간접적인 논증은 예수님의 부활이 성질상 육체적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때 그들은 그들이 영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크게 놀랐다. 그는 그들에게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8-39)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을 안심시키셨다(참고, 요 20:27).

무덤이 비었고 그 몸이 그리스도의 반대자들에 의해 결코 제지되지 못한 것은 그의 부활의 육체적 성격에 대한 그 이상의 징후이다.

우리의 부활체는 우리의 원래의 몸과 거기서 유래된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우리 원래의 몸의 소생이 아니다. 차라리 거기에는 변화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유비는 뿌리의 석화가 있다. 원래의 대상의 윤곽을 보유하고 있으나 그 구성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부활체의 성질에 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몸을 가질 것이지만 동시에 영화된 인간의 모양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불완전함과 우리가 지상에서 있었던 궁핍에서 자유하게 될 것이다.

의인과 불의한 자
성경의 대부분의 언급은 신자의 부활이다. 이사야 26:9은 부활이 상급일 것에 대해 말씀한다. 예수님은 의인의 부활을 말씀하셨다(눅 14:14, 역시 20:35). 빌립보서 3:11에서 바울의 소원과 소망은 어찌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것이었다.
  
공관복음이나 바울의 글에나 죽은 자에서 불신자가 살아난다는 분명한 언급이 없다.
다른 한편 불신자의 부활을 언급하는 몇몇 구절이 있다. 다니엘서 12:2에 ‘땅의 티끌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을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자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요한은 예수님의 유사한 언급을 보고하고 있다(요 5:28-29). 바울은 벨릭스 앞에서 한 그의 변호에서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그들이 가리키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행 24:14-15)고 하였다. 그리고 신자와 불신자 모두가 마지막 심판에 설 것이며 포함될 것이다. 따라서 두 부활은 필연적이다.

마지막 심판
재림은 역시 마지막 대심판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된 자들에게는 불의한 자들 중에 있게 될 심판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삶은 변호될 것이므로 기대하며 바라보는 것이다. 마지막 심판은 우리의 신분이 공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장래의 사건
마지막 심판은 장래에 있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그가 의로운 에녹과 엘리야를 그에게 있게 하시려고 하늘로 취해 가셨을때 그리고 지상에 파괴적인 홍수를 보내셨을때(창 6-7) 또 아나니아와 삽비라(행 5:1-11)를 치셨을때 이미 그의 심판을 드러내셨다. 쉘링(Friedmich Schelling)과 다른 이들 중에서는 세계의 역사는 세계의 심판이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역사 안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세상에 대한 심판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심판에 관해서 말하는 것의 전부가 아니다. 하나의 명확한 사건은 장래에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마태복음 11:24에서 암시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다른 경우에 그는 분명하게 장래 부활과 연관하여(요 5:27-29) 그가 시행하실 심판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5:31-46에는 이 심판에 대한 확대된 언급이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 9:27)고 하였다. 다른 분명한 참고 구절은 사도행전 17:31; 24:25; 로마서 2:5; 히브리서 10:27; 베드로후서 3:7 그리고 계시록 20:11-15에 있다.

성경은 그 심판이 재림 후에 있게 될 것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리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다(마 16:27). 이 사상은 역시 마태복음 13:37-43; 24:29-35; 25:31-46; 그리고 고린도전서 4:5에서도 발견된다.

재판장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자신을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으셔서 모든 나라를 심판하시는 분으로 묘사하셨다(마 25:31-33). 비록 하나님이 히브리서 12:23에서 재판장으로 언급되었으나 다른 여러 구절들을 참고해 볼때 하나님은 아들에게 이 권위를 위임하셨음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가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에게 심판을 시행하는 권위를 주셨다. 왜냐하면 그가 인자이시기 때문이다(요 5:22, 27; 역시 행 10:42).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쓰기를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고 하였다. 디모데후서 4:1은 그리스도가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리라고 하였다.

우리가 그 정확한 것은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우리 신자들도 그 심판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19:28과 누가복음 22:28-30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을 암시하셨다. 신자들도 보좌에 앉아 세상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고전 6:2-3; 계 3:21; 20:4).

심판의 주체들
모든 인류가 심판받게 될 것이다(마 25:32; 고후 5:10; 히 9:27). 바울은 경고하기를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리라고 하였다(롬 14:10). 모든 비밀이 드러날 것이며, 일찍이 일어난 모든 것이 평가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자들의 죄가 포함될 것인지에 의문을 가진다. 그러나 이 문제는 신자가 칭의되었다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죄들의 재검에 관한 언급은 보편적이다. 벌코프(Berkhof)는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신자의 죄들은 드러났으며 물론 그들은 용서된 죄로 드러날 것이라고 하였다.

악한 천사들도 이때에 심판받게 될 것이다. 베드로은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다고 썼다(벧후 2:4). 유다서 6절은 그와 동일 말씀을 쓰고 있다. 다른 한편 선한 천사들은 심판받을 모든 자를 함께 모음으로 그 심판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심판의 기초
심판의 기초는 세상에서 산 그들의 삶이 될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그 심판에 나서야 할 것에 대해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다(고후 6:10). 예수님은 부활에 대해 모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셨다(요 5:29).

마태복음 25:31-46은 선한 행실이 차이를 낸다는 언급을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앞에 나타나 선행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내게서 떠나라고 하셨다(마 7:21-23).

심판때 평가의 표준은 하나님의 드러난 뜻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요 12:48)고 하셨다. 심지어 명확하게 율법을 듣지 못한 사람들도 심판받게 될 것이다. ‘무릇 율법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롬 2:12).

그 심판의 최종성
한번 지나가면 그 심판은 영구한 것이며 변경할 수 없는 것이다. 의인과 불의한 자는 각각 그들의 마지막 장소로 보내질 것이다. 그 평결이 바뀔수 있다는 암시는 없다. 그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교훈에서 예수님은 그의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영원한 심판으로 가라고 하시나 의인은 영생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5:46).

재림에 연류된 것들과 그것의 결과들
1. 역사는 단순히 그 경로를 달리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뜻의 안내 아래 완성으로 갈 것이다. 그의 목적들이 결국에 성취될 것이다.
2. 신자로서 우리는 주님의 확실한 재림에 대한 기대로 깨어 근실하게 일해야 한다.
3. 우리의 지상의 몸은 훨씬 좋은 어떤 것으로 변화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아는 불완전한 것들은 사라질 것이며 우리의 영원한 몸은 고통, 질병, 혹은 죽음이 없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4. 정의가 분배될 때가 올 것이다. 악은 처벌되고 믿음과 성실함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5. 재림의 확실성과 이어질 심판의 최종성의 견지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명령이다.  
  

          글/ 서춘웅 목사
하나님의 계시
성령과 그리스도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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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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