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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삼위일체의 하나님
RevSuh  2010-02-23 21:57:35 hit: 3,834

삼위일체의 하나님

삼위일체란?
  하나님의 삼위일체는 기독교 신앙에 근본적인 교리이다.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 신앙은 역사적 기독교의 정통신앙이 아니다.  거의 모든 이단들이 삼위일체를 부인 내지는 오해하고 있다. 이는 초대교회때부터 오늘까지 교회의 역사가 증명해 준다.
  그럼에도 삼위衢셈?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과 지혜로 이해가 힘들다. 따라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도 힘들다. 흔히들 삼위일체를 세잎 크로바나 물의 액체, 고체, 기체와 같은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삼위일체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관례로 설명하기도 한다. 한 사람이 아버지요 아들이요 형제가 될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성경이 가르치는 삼위일체를 드러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삼위일체란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서 분명하게 가르치는 진리이다. 삼위일체의 교리가 정립되기는 초대교회때 삼위일체의 교리를 반대하는 이단적인 사상때문이었다.
  영어의 삼위일체(trinity))는 그 말이 세 인격만 강조하지 삼위일체안에 연합은 강조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성경적인 삼위일체는 하나님은 세 구별된 인격이시면서 그 인격이 동등하며 연합된 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세 인격으로 계시지만 역시 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세 인격이 동등하게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삼위일체는 분리하여 존재함이 없이 세 연합된 인격으로 존재하신다. 따라서 완전하게 한 분 하나님처럼 연합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삼위일체에 대한 오류는 크게 보면 아래 세 가지였다.

1. 삼신론
  초대교회의 사가들이었던 John Ascunages와 John Philoponus같은 사람들이 가르친 것으로 세 분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삼위일체안에 있는 연합을 무시하였다. 그결과 한 분 하나님안에 세 인격 대신에 세 분 하나님을 주장하게 되었다.

2. 사벨리안주의나 양태론(Modelism)
  양태론적 삼위일체는 사벨리우스(Subellius c. A.D. 200)에 의해 주장된 이론으로 삼신론을 반대하기 위함이었다. 사벨리우스는 아버지, 아들, 성령의 세 분을 말하지만 이 세 분은 단지 한 분의 세 양태로 존재했을 뿐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한 분 하나님의 세가지 표명일 뿐이라는 것이다.

3. 아리안주의(Arianism)
  아리안주의는 터틀리안에 그 근거가 있는데 아들은 아버지에게 종속되신다는 것이다. 터틀리안의 사상은 오리겐(Origen)에게서 더 발전되었는데 그는 아들은 본질에서 아버지에게 종속된다고 하였다. 이 이론은 마침내 아리안주의가 되고 말았는데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게 되었다.
  아리우스(Arius)에게는 한 분 하나님만 창조되지 않은 분이셨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에게서 낳으신 분이기 때문에 아버지에 의해 창조되신 분이다. 아리우스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아리우스의 이런 사상은 주후 325년 니케아회의(the council of Nicea)에서 정죄되었다.

성경적인 삼위일체

1. 하나님은 본질에서 하나이다.
  초대교회에서는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본질에서 하나이신가를 묻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아리우스(Arius)는 그리스도는 본질에서 아버지와 같으시지만 아버지는 그리스도보다 크시다고 하였다. 그런데 삼위일체는 본질에서 하나 즉 한 본질을 가리켰다. 이 한 본질은 신명기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와 연관짓는다(히브리어 echad는 복합의 연합; 연합된 하나이다). 이 언급은 하나님의 유일성만 아니라 하나님의 연합도 강조한다(참고, 약 2:19). 그것은 세 인격은 하나님의 속성 전체를 소유하시지만 하나님의 본珦?나누이지 않는다. 본질에서 하나님은 역시 삼위일체의 세 인격이 서로 독립적으로 활동하시지 않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비난을 반박하시는 예수님의 끊임없는 주제였다(참고, 요 5:19; 8:28; 12:49; 14:10).

2. 하나님은 인격에 관하여 셋이시다.
1) 각 인격은 하나님으로서 같은 본질을 가지셨다.
2) 각 인격은 하나님의 충만함을 소유하셨다. 하나님안에는 세 개체나 구별된 형태 그리고 서로 다른 분으로 나란히 계시지 않는다.

  성삼위일체에 대한 고대교회 교리의 도표
  이는 성경에 기록된대로 한 분안에 계신 세 인격의 삼위일체를 잘 묘사해 주고 있는데 삼위는 구별되시지만 역시 한 분 하나님으로 연합되신 분임을 가리키고 있다.
                                              
                      성부  
                        ↓                          <* 도표는 성부,성자, 성령이 삼각형인데 웹에서 삼각형을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아     하나님       아
          니                         니  
       다         ↗      ↖         다  
               성자       성령           
              
              ←    아니다  →
                                                              
   (성부, 성자, 성령님 모두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성부는 성자가,   성자는 성부가, 성부는 성령이,           
   성령은 성부가 그리고 성자는 성령이 성령은 성부가 아니시다)
                

구약성경의 가르침
  구약성경에서 삼위일체는 용어나 정의가 나와 있지 않지만 몇몇 구절에서 하나님은 삼위 본체의 존재를  내포하고 있다.
  창세기 1장의 창조에 대한 설명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이 창조사역에서 나온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창 1:1) 그때에 성령님은 수면에 운행하셨다(창 1:2). 창세기 1:1에서 하나님이란 말은 하나님에 대한 복수형이다. 비록 이것이 분명하게 삼위일체를 가르치지는 않지만 그 말은 확실히 1:26에서 우리에게와 우리의 라는 복수 대명사에서 그것을 허용한다.
  시편 110:1에서 다윗은 ‘여호와’와 ‘내 주’ 사이에 인격의 구별됨을 인식하였다. 다윗은 메시야는 보통 인간 왕보다 위대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암시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메시야를 신성의 나의 주님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에서 이사야 7:14은 하나님께서 처녀에게서 낳은 분이시며 역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이 되실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것은 메시야의 신성에 대한 증명이다. 역시 이사야 48:16과 61:1은 삼위일체를 내포하고 있는 말씀으로 이 구절들은 신격의 세 인격 모두를 언급하며 서로 구별된 분으로 나온다.

신약성경의 가르침
  성경이 가르치는 삼위일체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 계시며 세 인격 모두 하나님으로 불렀다.
  성경은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불렀다(고전 8:6). 아들을 하나님으로 불렀다(히 1:8-10). 그리고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불렀다(행 5:3-4).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다(신 6:4).
  위의 네 성경구절의 언급은 삼위일체 교리를 확증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는 명령을 하시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하라고 하셨다’(마 28:19). 이 구절에 세 인격의 연합됨과 동등되심이 의도되었음이 분명하다. 마리아의 잉태에서도 삼위 하나님이 포함되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하나님)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세례에서 세분 모두 구별되시었다(참고, 33:21-22). 요한복음 14:16에서 세 분의 연합이 다시 언급되었다. 아들이 아버지께 신자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시도록 성령을 보내주시기를 구하셨다. 세 분의 연합이 분명하다(롬 8:9-11).
세 분(아버지, 아들, 성령)이 신자안에 계심을 말씀하였다. 고린도후서 13:14의 축도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동등하심과 연합되심 모두를 강하게 확언하였다(참고, 역시 고전 2:4-8; 계 1:4-5)

삼위일체 교리의 어려움
  삼위일체 교리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도 없다. 따라서 삼위일체교리는 이해가기 위한 교리가 아니라 믿어야 하는 교리이다. 실제로 성경의 중요한 교리는 거의가 다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동정녀탄생, 십자가의 대속, 부활과 승천, 재림과 심판이 모두 믿어야 하는 진리이다.
  삼위일체의 진리를 성경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용어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으심의 의미
마태복음 1:20에서 낳으셨다는 것은 그리스도는 그의 인성에서 나으신 것이지 신성에서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하나님이셨다(미 5:2). 그러나 베들레헴에서 낳으심으로 인성을 덧입으셨다. 성령님의 역사로 마리아의 초자연적인 잉태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죄가 없으심을 확실히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낳으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고 선포되었다(시 2:7; 행 13:32-33; 롬 1:4). 이런 구절들은 예수님의 아들되심이 부활의 결과임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부활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지 않는다. 예수님은 영원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시편 2:7과 사도행전 13:35은 낳으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아들되심의 공적인 선언을 묘사한 것이다.

맏아들의 의미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맏아들이란 말을 든다. 이 말은 그리스도가 시간속에서 시작되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맏아들이란 말은 단순히 장자란 뜻이 아니다. 구약성경에서 장자는 상속의 두 배를 받았으며(신 21:17) 다른 가족을 지배하는 특권이 있었고(창 27:1-4. 35-37) 특별히 우대를 받았으며(창 43:33), 다른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창 37:22). 비유적으로 이 말은 우선순위나 대권을 의미한다(출 4:22; 렘 31:9).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그렇게 쓰였다. 골로새서 1:18에서 그리스도가 맏아들로 언급된 의미도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시며 모든 것에서 뛰어나신 분임을 의미하였다. 히브리 1:6에서도 맏아들은 그리스도의 대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천사들이 그를 예배했다. 하나님만 예배를 받으신다. 시편 89:27 ‘맏아들에 대한 가장 분명한 설명일 것인데 하나님께서 메시야가 장자가 될 것을 확언하셨다. 즉 그가 지상의 왕들 중에 가장 높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맏아들은 온세상의 왕들을 다스리시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따라서 장자란 말은 메시야로서 예수의 높으신 분을 가리켰다.

독생자의 의미
  독생자란 말은(only beyotter, 참고, 요 1:14, 18; 3:1; 요일 4:19) 시간의 시점을 암시하지 않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로 유일하심을 의미한다. 이 말은 같은 종류에서 유일하다는 것이다. 독생자는 예수님이 모든 지상과 천상의 존재들 위에 유일하심을 묘사하는데 쓰였다. 창세기 22:2, 12, 16은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독자라는 개념을 반영해 주고 있다.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일하심을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묘사하였다(요 1:14).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유일한 아들이셨고 영생은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을 통해서만 예비되었다(요 3:16). 위의 성경 구절들을 살펴볼 때 독생자는 낳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인격의 유일하심을 표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일하시며 하늘에서 아버지에 의해 보내심을 받으셨다.

삼위일체 교리의 중요성
  왜 교회가 그렇게 삼위일체의 교리에 관심을 가지는가? 왜 정통과 이단의 잣대가 삼위일체가 되는가? 그것은 삼위일체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며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1) 속죄가 위태로워진다. 예수님이 만일 창조된 존재일 뿐이며 완전히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어떻게 그가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진노를 짊어지실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위대한 피조물이라도 피조물은 우리를 참으로 구원할 수 없다.

2) 만일 우리가 아들의 완전한 신성을 부인한다면 믿음으로만 의로워지는 진리도 위협받게 된다. 예수님이 완전히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신 분으로 신뢰할 수가 없다.

3)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에게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겠는가? 무한하시고 전지하시기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수 있으시다. 아무리 위대한 피조물이라도 그에게 경배하는 것은 우상숭배일 뿐이다. 그것은 예수님이실지라도 그가 신성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마찬가지다(빌 2:9-11; 계 5:12-14).

4) 예수님이 피조물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구원을 피조물에게 돌리고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 것이 되고 만다.

5) 하나님의 자존하심과 인격성이 위태로워진다.
  만일 삼위일체가 없다면 창조전에 하나님의 존재안에서 인격간에 관계가 없었을 것이며 참된 인격이나 관계를 할 창조의 필요성도 없을 것이다.

6) 우주의 연합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만일 하나님 자신안에 완전한 복수와 연합이 없다면 우주안에도 다양한 요소들 가운데 어떤 궁극적인 연합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7) 구원은 삼위 하나님의 역사다. 우리의 구원은 아버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아들 하나님이 십자가의 희생으로 이루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적용하신다. 따라서 삼위일체의 교리는 분명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며 인간구원의 초석이다.   
  참으로 예수를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자는 이 교리의 난해성과 상관없이 삼위일체를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는 아버지 하나님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하기 때문이다.                        


          글/ 서춘웅 목사
기독교의 기본진리(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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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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