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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드릴까?
  본문 : 요 4:20-24
RevSuh  2015-05-16 19:31:23, 조회 : 1,723, 추천 :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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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드릴까?(요 4:20-24)

어느 분은 예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 인간 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하며 긴급하며 영광스러운 행위가 바로 예배다. 과연 신자에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에있겠는가? 예배의 중요성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이 우리에게 분명히 지적해 준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일이 많이 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가장 즐거워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예배는 어떠한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는가? 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가? 예배에서 나는 정말 하나님을 즐거워하는가? 이민생활을 핑계해서 내 신앙 생활 속에서 예배는 하나의 형식에 그치지 않는가? 기쁨의 즐거움의 감격의 예배 대신에 마지못한 하나의 의무가 되고 있지는 않는가?
여러분, 오늘 우리는 내 신앙생활의 활력을 위해 예배생활부터 새롭게 해야 하겠다. 그러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내 신앙이 새로워질 수 있는 진정한 예배는 어떤 것인가?
첫째로, 진실한 마음으로 정직함으로 생활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예배이다.
신앙생활이 다 그러하듯이 우리의 예배생활은 영적이어야 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의 예배관은 바로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우리 사마리아인의 조상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했는데 당신네 유대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예배할 곳이 있다고 하더이다 하였다. 이 여인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육신적으로만 생각하였다. 장소가 그렇게 중요했다. 내 육신의 몸의 참여가 중요했다.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 예배라고 본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주일날 아침 교회당의 좌석을 차지하고 찬송을 부르고 헌금을 하고 설교를 들으면 그것이 예배의 전부가 아닌가?
어떤 교파에서는 이런 예배는 형식에 가깝고 참 생명이 없다고 보고 감정위주로 온갖 세속 악기까지 다 동원한 음악 프로그램 중심의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는 예배이다. 이런 예배도 일리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지닌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도 예배에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내 감정에 치우치고 쉽게 흥분해서 하나님보다 내가 중심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지적하시는 사실,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하라. 이 말씀은 우리의 예배가 영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 합의한 예배를 드리라는 의미이다. 트럼펫, 심벌즈까지를 다 동원해서 교회당이 떠나가라고 큰 소리를 낸다고 하나님이 그 예배를 기뻐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다 감정과 우리의 육신에 호소하는 행위이다.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원하신다. 영이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 예수님께서는 예배의 형식엔 관심이 없으셨다. 마태복음 15장 8-9절에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그러니 너희가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입술의 감사, 입술의 찬송, 입술의 경건은 훌륭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입술 대신에 마음을 보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실망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배를 준비해야 하겠는가? 주일 아침 예배준비가 화장대에 앉아 얼굴이나 화사하게 하고 흰머리털이나 뽑는 것이 아닐 것이다. 마음 문을 열어 놓고 죄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얼굴에 노에비아를 발라 환하게 만들기 전에 내 마음에 죄를 회개하여 아름다운 심령을 만들자. 환한 심령을 만들자. 화장대 앞에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여러분, 예배의 준비는 월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우리의 전 생활이 되어야 한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사는 것을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화장대에서 내 얼굴을 보는 시간보다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한다. 그리해서 우리의 몸과 찬송과 헌물을 바치기 전에 정직한 마음과 진실된 삶이 앞서야 한다.
둘째로, 우리의 예배는 진리에 근거하여야 한다.
우리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방 종교의 우상이 아니시다. 철학자들의 이론적인 귀결인 막연한 제1 원인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성경대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서 알았고 성경을 통해서 믿게 되었다. 이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예배의 방법을 예배의 의미를 예배의 의무를 말씀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모든 말씀이 성경 안에 계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성경중심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 사람의 교훈이 판을 치는 논리 강론이나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철학 강의는 예배가 아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였다. 예배는 진리 중심이요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중세의 의식 중심의 예배는 개혁자 루터와 칼빈에 의해 말씀중심의 예배로 회복되었다. 설교단은 예배당의 중앙에 놓여지게 되었다.
진리로 예배하라는 이 말씀은 성경의 교훈, 진리가 중심된 예배를 드리란 뜻이다.
여러분, 말씀 중심의 예배가 무엇인가? 목사가 성경 중심의 메시지를 전하면 되는 것인가? 물론 그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예배는 목사가 드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말씀은 생명있는 씨앗이다. 예배자는 그 마음 문을 열고 마음 밭에 그 말씀의 씨를 받아야 한다. 깊이 심어야 한다. 그 시간에 싹이 나야 한다. 예배 시간 후에 그 열매가 맺혀야 한다. 생활의 열매가 나타나야 하다. 이것이 참 예배이다. 말씀에 부딪치고 반응하는 예배자가 되라. 귀에 들어간 씨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마음 밭에 받으라.
여러분, 진리의 예배는 목사의 성경 중심의 설교나 강론 중에 무슨 온갖 좋은 교훈을 많이 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귀로 듣고 즐기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 말씀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전해졌을 때 마음에 부딪치고 그 반응으로 내가 그 말씀이 진실이요 참됨을 내 생활 속에서 보여 주는 것이다.
셋째로, 예배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와야 한다.
예수님 없이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올 수 없다. 우리에게 인간 제사장은 필요없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다.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장애가 사라졌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성막의 모든 구조는 사실상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는지를 가르치시기 위한 그림이었다. 거기에 나오는 제단, 놋대야, 진설병, 향, 막(휘장), 속죄소는 사실상 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올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친히 주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바로 예배드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모셔야 한다. 언제나 예배 시간에는 주님을 대동해야 한다. 주일 아침 성경 찬송가를 챙기기 전에 주님이 내 마음에 계시는가를 살펴보자. 성경 찬송가는 주일 아침 성급히 먼지를 털어 챙겨 나올 수 있다. 그것도 어려우면 교회에도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주님은 물건이 아니시다. 살아계신 인격이시다. 한주일 동안 주님과 함께 살지 아니하고 주님을 주일 아침에 모실 순 없다. 기도로 교통하지 아니하고 함께 나올 수 없다.
여러분, 나는 오늘 아침 주님 없이 예배드리려 하지 않는가? 나 혼자 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예배의 감격이 없지는 않은가?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친척중에 한국에서 모 기관에 꽤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이다. 구청장을 만나러 갈 때 함께 가 본 일이 있으시다. 구청장이 그렇게 낮은 계급이 아니다. 동장만 되어도 세도를 부리는 사람이 많았다. 하물며 구청장이겠는가? 그런데 그 분과 함께 가니 구청장이 90도로 인사하며 미처 몰라 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혼자 가면 면회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주님과 함께 와야 한다. 그래야 내가 부족해도 나 위해 죽으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를 영접해 주신다. 우리가 예배에 완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주님이 완전케 하신다.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그리고 축복하신다. 나는 예배 시간에 주님과 함께 하나님께 나오는가?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겠나?
어느 날 갑자기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자 이삭을 제물로 내게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100세에 난 외아들을 양처럼, 제물을 잡아 예배드리라. 이 충격적인 예배의 요청에 아브라함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마음에 투쟁을 했다. 하나님과 아들! 그는 육신적 정 애착과 밤새 투쟁했다. 그리고 아침에 그 마음이 하나님께 진실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리아 땅의 한 산으로 아들과 함께 삼일길을 갔다. 진리대로 했다. 그리고 이삭을 제물로 잡으려 했다. 사실상 거기서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그는 주님과 함께 예배드리러 나아갔다. 아브라함은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예배드릴 것을 보여 주었다. 그 예배는 열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 이삭 대신 양을 잡아 드리게 했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이 증명되었다. 그에게 큰 복을 주어 후손이 창성하고 만민이 복을 얻는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셨다.
여러분, 내 신앙생활이 형식적이고 의무적이고 기쁨이 없는가? 내가 어떻게 예배드리고 있는지 주일마나 내 자신을 살피자.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생활에 기쁨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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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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