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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문제를 해결하는 길
  본문 : 요 4:46-54
RevSuh  2015-05-31 23:29:55, 조회 : 1,530, 추천 :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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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해결하는 길(요 4:46-54)(102200)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10:45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
예수님은 그 목적에 따라 사시다가 그 목적대로 십자가에 죽으시었다. 33년의 생애 중에서 3년 중에서 공생애가 섬김의 정해진 시간이었다. 예수님은 그 시간에 맞춰서 당신의 생애를 조정하셨다.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유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내려 가셨다. 유대 예루살렘에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믿었다. 거기서 환영받고 인기가 더해갔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때에 높임을 받지 못하시는 고향 갈릴리로 내려오셨다. 왜요? 명성과 인기가 더해지는 유대에 머물러 계신다면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와 핍박으로 무모한 충돌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섬김의 기회가 짧아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섬기실 낮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다, 따라서 갈릴리 가나로 오신 예수님은 오시자마자 섬기신다. 왕의 신하의 병든 아들을 고쳐 살려주셨다.
그러면 우리는 이 치유의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여기 인생의 고난과 문제가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고난이 있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가버나움에서 병이 들어 죽게 된 왕의 신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왕의 신하는 누구인가? 여기 왕은 헤롯 아그립바 왕으로 갈릴리의 분봉왕이었다. 그 왕의 신하다. 여기서 신하 역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유대인 역사가 조세푸스는 그가 헤롯 왕의 친척이었거나 궁중관리였거나 혹은 군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어떤 사람들은 헤롯 왕의 젖동생 마나엘이나 또는 헤롯의 청지기 구사였으리라고 한다. 그러나 모두 추측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누구였든지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그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 아들은 어린아이는 아니다. 그저 어린 아들이다. 그리고 헬라어에 아들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어서 어쩌면 외아들이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랬다면 왕의 신하에게 그 아들은 얼마나 소중했겠나? 얼마나 그 집에서 사랑을 받았겠나? 아마도 외아들이었다면 가정에 희망이 아니었겠나? 그런데 병들었다. 무슨 병인지 말씀이 없다. 그러니 병명을 알 수 없다. 다만 47절에 보면 저가 거의 죽게 되었다고 했다. 중병이다. 왕의 신하다. 게다가 외아들이었다면 당시에 명의를 모두 수소문해서 다 찾아 갔을 것이다. 불러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백약이 무효였다. 소망이 없었다. 얼마나 답답했겠나? 괴로웠겠나?
여러분, 이것이 인생이다. 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병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왕도 병든다. 농부도 병든다. 외아들, 외동딸을 차별하지 않는다. 불교의 석가는 사람은 생노병사한다고 하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늙기 전에 아니 아이 때에 병으로 죽기도 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우리 성도 중에도 간경화로 고생하시는 성도, 속내장으로, 눈 때문에 고생하시는 성도,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성도, 고혈압이나 당뇨로 고생하시는 성도가 있다. 왤까? 잘 모른다. 그러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질병을 통해 건강을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신다. 나의 연약을 깨닫게 하신다. 때로는 쉬게도 하신다. 때로는 자신을 성찰할 기회가 되게도 하신다. 그런데 이유가 알려졌던 그렇지 않던 누구에게나 신자에게도 고난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신자에게도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이다. 아니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한다 하셨다. 그러므로 신자는 고난이 올 때 나만 당하는 것처럼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불평하거나 놀라지 말아야 한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면 고난 때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여기 아들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와서 간청한다. 여기 왕의 신하를 보라. 사랑하는 아들이 병들어 죽어간다. 얼마나 마음이 탓겠나?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효력이 없었으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유대에서 많은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무슨 병자든지 고치신다는 예수님이 갈릴리로 오신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어떻게 했는가?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가나로 가서 그는 예수님께 달려갔다. 가버나움에서 가나는 다 갈릴리 지방이지만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우리의 리수로 한다면 85리 정도였다. 따라서 걸어서 왔다면 8시간 거리였다. 아들을 사랑했던 아버지, 아들 살리려는 일념으로 예수님 갈릴리 가나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달려갔다. 거기서 제일 먼저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겸손히 요청한다. 내려 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여기 청했다는 말은 미완료시제다. 그러니까 한번만 내려 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요구한 것이 아니다. 반복해서 지속해서 고쳐주소서, 내려오소서 간청하였다. 그는 왕의 신하다. 예수님은 갈릴리 목수의 아들이시다. 아마도 그는 나이도 예수님보다 많았을 것이다. 사회적 신분도 높았다. 그러나 신분, 체면을 접고 사정했다. 정말 겸손해졌다. 고난 때 우리는 예수님께 와야 한다. 예수님께 나오는 자, 예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겸손해야 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무엇인가? 왕의 신하가 겸손히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사정한다. 한번만 아니다. 계속 조른다. 여러분, 예수님의 성품으로 보아서나 지금까지 병든 이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에서 보나 내가 예수님이 내가 내려 가리이다. 고쳐 주리이다 안심하세요 하실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낙심될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같은 가나에서 잔치집에 포도주가 모자랐을 때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때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책망하셨다. 여기서도 그랬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니라! 표적과 기사만 바란다. 간청했던 왕의 신하를 책망하신 것이다.
여기 왕의 신하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바로 찾아왔다. 그리고 분명하게 소원을 아뢨다. 제 아들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가버나움에 저의 집으로 오셔서 제 아들을 좀 살려주세요.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냉담했다. 기적만 바란다고 책망하셨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고난 때 여기 왕의 신하와 같이 기도한다. 하나님, 의사도, 약도 제 병에는 시원치 않습니다. 하나님 고처 주십시오. 기적을 보여 주십시오. 어디 병뿐일까?
사업의 실패도, 자녀의 탈선도, 부부간에 불신, LA에 사는 한인들 하루에 세 쌍이 충동적으로 이혼을 한다고 한다. 한 교회를 섬기는 교우간에 불화, 가족 중에 믿지 않는 이가 있다. 문제가 많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나만의 고민도 있다. 그래 괴롭다. 그래 기도한다.  주님, 사업이 번창하게 해 주세요. 서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예수 믿게 해 주세요. 문제 해결해 주세요. 계속 기도한다. 그런데 응답이 없다. 낙심한다. 기도를 중단한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냉담한 반응은 거절이 아니었다. 응답을 위해서 그에게 필요한 게 있었다. 왕의 신하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었다. 예수님이 왕의 신하의 믿음이다. 왕의 신하의 기도는 간절했다. 분명했다. 반복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지적처럼 그의 믿음은 기적을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약한 믿음이었다. 그는 예수님이 그의 집에까지 오셔서 아들의 손을 잡고 안수해 주시면 나을 것임이다. 보고 믿는 신앙이다. 예수님은 더 큰 믿음을 요구하셨다. 마태복음 8장 7,8절에 보면 로마의 군인 장교 백부장이 그의 하인 하나가 중풍병으로 고생할 때 예수님께 와서 겸손히 간구한다. 예수님 제 하인을 좀 고처 주세요. 예수님께서 내가 네 집에 가서 고쳐 주리라 하실 때 그가 무엇이라 했는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말씀만 하소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며 칭찬하셨다. 그리고 병을 고쳐 주셨다. 여기 왕의 신하에게는 이런 신앙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적을 보지 못하고도 믿는 신앙을 요구하신 것이다. 또 있다.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죽으면 예수님도 어쩌실 수가 없으리라는 제한된 신앙이었다. 죽어도 다시 살리실 수 있으신 하나님으로 믿지 못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신앙을 요구하신 것이다. 그리고나서 왕의 신하에게 예수님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하셨다. 살 것이다가 아니라 지금 살아났다. 병에서 놓여났다. 회복됐다. 간구에 응답해 주셨다. 그 말씀을 들은 왕의 신하는 어찌 하였는가? 믿음이 생겼다.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믿고 집으로 내려가더니,.. 믿었다. 말씀만 하여도 나을 줄 믿었다. 예수님을 모시고 가지 못했으나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내려갔다. 그 길에서 집에서 아들의 소식을 가지고 올라오는 종들을 만났다. 예수님 말씀대로 아이가 살았다는 것이다. 정말이었다. 확인해 본다. 낫기 시작한 때가 언제냐 하니 어제 제 7시였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고 하신 바로 그 시간이었다.
여러분, 문제를 놓고 기도하시나? 그런데 아직도 응답이 없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을 요구하실지 모른다. 왕의 신하의 믿음에 머물고 있다면 백부장의 신앙으로 나가세요. 이루어 진 것을 보지 못했어요.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에서 흔들리지 마세요. 낙심하지 마세요. 계속 구하세요. 그리하여 응답을 받으시기 바란다. 여기 왕의 신하처럼 믿음대로 되는 축복을 경험하시기 바란다.
기도의 응답받은 왕의 신하는 어찌 되었나? 병든 아들의 병이 나았다. 아들의 문제, 아버지의 문제 어머니의 문제요 가정의 문제가 해결됐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니라. 온 집이 믿으니라. 이는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신 두 번째 기적이다. 첫 번째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이었다. 그런데 두 기적의 결과는 모두 그 결과가 믿음이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 그리고 여기 두 번째의 기적은 왕의 신하와 그 가족이다. 예수를 믿었다.
이 사건이 가르치는 진리가 무엇인가? 믿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은 반드시 믿음을 낳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성도에게도 환란이 온다. 그러나 고난에는 반드시 선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 여기 백부장은 고난을 통해 귀한 진리를 깨닫게 됐을 것이다.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온 가족의 큰 고통이었으나 그 고통을 통해서 고난을 인해서 예수님께 나가게 되고 병이 나았고 생명이 구주이신 예수님을 온 가족이 깨달아 믿고 구원받게 되었다. 고난 속에 하나님의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뜻이 있음을 믿게 되었다. 히브리서 12장 5절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고 하였다.
여러분, 여러분의 오늘의 고난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내 기도의 응답이 즉각적으로 있으면 있는대로 기다리라고 하시면 기다리는대로 안 된다고 하시면 안 된다는 대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 것이다.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하세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으시라. 그리하여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고난이 변하여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시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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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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