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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질병과 예수님
  본문 : 요 5:1-9
RevSuh  2015-06-08 09:54:01, 조회 : 1,814, 추천 :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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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예수님(요 5:1-9)(110500)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가나로 내려오신 예수님! 왕의 신하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어 죽게 된 것을 고쳐 주셨다. 그리고 명절에 다시 예루살렘을 올라가셨다. 그 당시 관습대로 하면 적어도 유대인 성년 남자는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야했다. 따라서 여기 명절은 아마 그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명절 중에 제일 큰 명절은 유월절이었고 만일 예수님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이었다면 거의 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니까 갈릴리 지방에서 거의 일년을 계시면서 일하신 것이 된다.
따라서 그 후에 란 말씀은 시간적으로는 짧지 않은 기간이고 바로 앞에 나오는 사건으로 보면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치신 후가 된다. 그러면 예루살렘에 올라오신 예수님은 어디로 가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 베데스다 못으로 가시어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이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사도요한이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우리가 깨달아 알기를 원한 진리는 무엇이었는가?
이 세상에는 질병이 많다는 사실이다. 예수님 예루살렘에 올라가시어 갈 곳이 많으셨을 것이다. 적어도 갈릴리로 내려가신 후 거의 1년이 지났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양문 곁 베데스다라 하는 연못으로 가셨다. 여기 양문은 예루살렘성의 북쪽에 있는 성문이다. 양문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암도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한 제물의 양들이 그 문을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그 물결에는 제물시장이 있어서 양들을 팔고 있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 곳을 찾으신 것은 그 양문 곁 제물시장에서 양을 사시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 곁에 있는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목적지였다. 베데스다는 좋은 이름이다. 긍휼의 집이란 뜻이다. 이곳은 지금 성앤 교회가 선 자리다. 고고학자들이 그 곳을 발굴했는데 네 모퉁이는 주랑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가운데 연못이 있었으며 지붕이 있는 정자 비슷한 행각이 다섯 개가 있었다. 오늘 본문은 그 행각 안에 병자들이 가득했다고 하였다. 거기 많은 병자가 모여 있었다. 소경도 있고, 절뚝발이도 있고 혈기마른 자들도 있었다. 많은 병, 옛날이나 오늘이 다르지 않다. 죄많은 세상에는 병도 많다. 그 옛날에는 이름 모를 병이 많았다. 오늘은 병명을 부치고 치료약을 개발했을 뿐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아니 차라리 옛날에 없었던 많은 병이 새로 생겨났다. 의약의 발전에 따라 병도 더 발달하는 것 같다. 그러니 여전히 병이 앞서가고 의학은 그 뒤를 따라갈 뿐이다.
엊그제 어느 민간 신문에 전면 광고제목이다. 물러가라 암! 돈도, 명예도, 건강 없이 무슨 소용입니까? 우메켄 항암시리즈로 암 걱정없는 행복한 미래를 지키십시오. 정말 암과 상관이 없이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 약장사가 잘 되는가 보다.
그러면 왜 하필 그 베데스다 연못에 있는 행각에 수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는가?
4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이든지 낫는다. 병 낫는다는 소문 때문 이였다.
왜 이 베데스다 연못은 이런 소문이 냈는가? 왜 이런 소문이 났겠는가? 아마도 이 연못의 물은 온천수였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적인 치료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때로 치료가 되기도 하나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그것을 깨닫고 아마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에만 낫는다고 소문을 냈을 것이다. 낫는다는 소문 때문에 거기 병자들이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장소에 큰 기념교회가 서 있다. 그 교회 현관쯤 되는 곳에 큰 대리석 같은 판이 있는데 그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어요. 너무 사람들이 많이 둘러싸고 있다. 알아보니 그 대리석 판에서 기름 같은 것이 나오는데 그 기름을 손에 묻혀 아픈 곳에 바르면 낫는다는 것이다. 그래 저마다 먼저 기름을 손에 묻이느라 난리다. 그리고는 얼굴에, 목에, 허리에, 발에, 다리에 대고 문질러 댄다.  오늘 우리 주변도 마찬가지다. 큰 병원마다 초만원이다. 병 고친다는 기도원에, 병 고치는 은사집회에, 다이어트 치료센터에마다 병자로 가득하다. 병이 낫는다는데... 그럼에도 오늘도 의사들이 새로운 기술이 신약이 치료할 수 없는 병이 얼마나 많은가? 왜 이렇게 질병이 많은가? 왜 아직도 암이나 에이즈나 그밖에 병들은 정복이 안 되고 있는가? 잘 몰라요. 그러나 이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신자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 본문은 이것이 인생이고 세상이라고 가르쳐 준다.  여러분! 신자인 내게 왜 이런 병이 시련이 고통이 오나? 하나님 왜 하필 접니까? 그러나 여러분! 세상에 완전히 건강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병에 걸린다. 육신이 건강한가? 영적으로 병들어다. 그러므로 나만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고통이 있어요. 그러니 인내해야 한다. 이 세상이 천국이 아님을 영원히 살 곳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정을 떼라는 거예요. 천국에만 아픈 것이 없다. 병고가 없다. 우리의 영원은 본향이 이 세상이 아니고 천국이다. 오늘의 내 병고는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세요! 예수님! 베데스다 못가에서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는 가련한 병자들! 병고의 짐을 지고 낫기를 간절히 바라는 병자들을 찾아가셨다. 그들 중에 계셨다. 그리고 그 중에 한 병자에게 관심을 두셨다. 6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서 오랜 줄 아시고.., 7절 보세요. 주여 물이 동할 때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들어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님이 관심을 보이신 병자는 누구인가? 5절, 38년 된 병자다. 병이 가장 중한 사람,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보았자 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들어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소망이 없는 사람! 가장 오랫동안 아니 어쩌면 반평생이 아니라 한 평생을 병으로 시달린 한 사람을 주목하셨다. 관심을 가지셨다.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다.
여러분! 예수님은 항상 그렇게 하셨다. 고난당하는 자, 병든 자, 외로운 자, 소외당하는 자, 가난한자들과 함께 하셨다. 사도행전 27장을 보세요. 죄수의 몸이 되어 로마로 압송되어 갈 때 큰 광풍에 배가 깨져가니 수일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잠을 못 자고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소망이 전혀 없게 됐을 때 23절,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생사의 기로에 선 바울을 찾아가신 예수님/ 어두움, 풍랑, 배고픔, 공포 속에 함께 계셨다.
여러분! 마가복음 4:37을 보세요.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나 배에 물이 들어와 가라앉을 형편이 됐다. 그들의 형편을 38이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죽게 됐다. 죽게 됐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 죽게 된 자리, 저들이 탄 배에 물이 들어와 가라앉게 된 그 배에 계셨다.
그렇다! 여러분! 고난 때에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리고 곁에 계신다. 그 예수님이 누구신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죄값을 대신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생명을 바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의 주님이시다. 주님을 죽게 된 자를 살리시며 죽은 자도 살리시는 생명의 주님이시오 바다와 바람도 꾸짖어 잔잔케 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 예수님은 우리의 어떤 문제, 어떤 고민과 고통 어떤 질병, 실패, 어떤 시험보다도 더 크시다. 그러니 여러분! 답답한 일 당해도 낙망하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그 예수님이 계신다. 예수님이 바로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 고난 중에도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에서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도 우리를 끊을 수 없다. 내 고난 속에 주님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병자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 어찌 하셨나? 6절을 보세요. 소망 없는 38년 된 병자를 주목해서 보시며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여러분! 예수님 우리의 형편 모르심이 없으신다. 우리의 고통 모름이 없으시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아신다. 6절, 그 병자의 병이 오랜 줄 아신다. 그런지 아시면서 왜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나? 우리의 소원을 직접 들으시기를 원하신다. 기대하신다. 귀를 기울이신다. 우리의 고통문제 아신다. 그러나 구하라 하신다.
여러분! 갈릴리 바다의 풍랑으로 배에 물이 들어오자 제자들 어찌했나? 물론 죽겠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 고난 때 우는 것 가지고 소리치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 제자들 예수님을 깨웠다. 예수님,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을 깨웠어요. 예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어요.
여러분! 예수님은 고난때 우리 곁에 계신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소리를 듣고자 하신다. 주여 고침받기 원합니다. 짐을 벗기 원합니다. 문제해결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시험 물리치게 하옵소서. 고통의 소리가 아니라 간구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야고보서 5장 13절에서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기도하라 했다. 그렇다! 고난당하시나? 병으로 시달리시나? 시험받나? 기도하세요. 예수님 들으신다. 기도하면 어찌 되는가? 여러분! 여기 38년 된 병자,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니 어찌했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저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부터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저를 좀 물에 넣어주세요. 그러면 나을 것입니다. 저는 낫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어찌 하셨나? 8절,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9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일어나라, 걸어가라, 명령하시니 명령대로 됐다. 고난의 질병이 물러갔다. 건강해졌다. 무엇을 말해 주는가? 베데스다 연못가에 많은 병자 중에 38년 된 병자에게 찾아가신 이는 예수님이시다. 그를 주목하신 이도 예수님이시다. 그에게 낫고자 하느냐 질문하신 이도 예수님이시다. 일어나 네 상을 들고 걸어가라 하신 이도 모두 예수님이 하셨다.
그렇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방법이다. 오늘 우리가 많은 사람 중에서 택하심을 받고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받고 죄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제 천국을 상속받는다. 이 모든 것 누가 했나? 모두 하나님께서 하셨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나를 내가 다른 사람과 달라서인가? 잘나서인가? 지식이 많아서 의로워서인가? 날 구원해 달라고 예수님께 찾아와서 졸라서인가? 아니다. 주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당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그리하셨다.
21절이 그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를 살리느니라. 병든 모든 신자가 다 낫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자를 고쳐 주신다. 그러니 구원받은 자 고침받은 자 큰 고침 받은 자다. 웬 은혜요, 웬 사랑인지 모른다. 감격이 있고 감사가 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이렇게 사는 것이 신앙이다. 그럼에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은 거저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 편에서 엄청난 희생, 비싼 대가를 치르셨다. 하나 뿐인 아들 예수님을 우리 죗값 대신에 심판하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아들을 내 주시고 나를 대신 자녀 삼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겠나? 아니다. 어느 형편에서도 자녀된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환난때, 고난때, 병고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 모른체하지 아니하신다. 버려두지 않으신다. 우리 곁에 계신다. 우리 형편을 아신다. 긍휼히 여기신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신다. 911 긴급전화가 있다. 911을 돌리면 즉시 구조대와 연결이 된다. 구조대는 우리의 전화번호에 의해 우리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낸다. 그리고 즉시 경찰과 소방서 그리고 구급차와 연락이 된다. 만일 911을 부른 사람이 문제를 설명할 수 없더라도 크게 문제가 없다. 소리만 처도 구급차는 어디서 전화했는지를 알고 달려간다. 그런데 여러분 때로 911 번호도 바쁠 때가 있다. 구조대가 달려오는 동안에 시간이 걸려 심장마비로 쓰러진 사람, 물에 빠진 사람, 절벽에서 떨어진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여러분! 병고에 시달리나? 슬픔을 당했나? 실패했나? 낙심되나? 나를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주님이 계신다. 두려워 마세요. 기도하세요. 말씀을 묵상하고 보고 그리고 질병에서 자유함을 슬픔에서 기쁨을 좌절에서 소망을 실패에서 승리를 주님의 능력과 지혜로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은 위기때 고통때 병고로 시달릴 때 바로 우리 곁에 계신다. 911 긴급기도전화벨을 울리기만 하면 된다. 예수님께는 통화중이 없다. busy가 없다. 위기때 넉넉하다.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들으신다. 우리의 이름을 아시며 우리의 상태와 형편을 아신다. 즉각 도우신다. 38년 된 병자가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어갔다. 우리도 그리 될 것이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말씀으로 위로하신다. 용기 주신다. 인내하게 하신다. 영적인 지혜 은혜를 주신다. 레이 월필드란 분은 1955년 직장 일로 출타 중일 때 폭풍이 아내와 자녀들이 캠핑하고 있던 포쿠노스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는 아내와 자녀들을 다 잃고 말았다. 여러 주간 슬픔과 혼동에서 방황하며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시편 73:26를 읽게 됐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 그 말씀을 읽는 순간 레이 월필드는 무거운 절망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씀을 이해하게 됐다. 하나님께서 치유 못하실 슬픔이란 이 세상에 없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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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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