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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예수님을 전하는 이유
  본문 : 요 5:19-29
RevSuh  2015-06-22 17:28:55, 조회 : 1,617, 추천 :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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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전하는 이유(요 5:19-29)(121700)

유대교, 마호메트교 그리고 개신교에서 각각 열 분씩 모여 서로 신앙의 공통점을 찾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보기로 했다. 모두 세 종교가 연관이 있다. 그런데 서로의 주장이 너무 달랐다. 특별히 예수님에 대한 관점이 사뭇 달랐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은 선지자요 랍비일 뿐 메시아나 구주임을 믿지 못했다. 마호메트교에서는 예수님을 훌륭한 선지자지만 그 후에 나온 마호멧이 마지막 선지자라고 주장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제자 중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네가 옳다고 하셨다. 네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라 하셨다.
유대교에서 어찌 말하던지 마호멧교에서 어찌 말하던지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정확하게 바로 아신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알려면 하나님께서 무어라 하시는지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가? 우리는 왜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한다.
이 세상에는 문제도 많다. 예수님이 사시던 시대처럼 오늘도 질병이 많다. 가난이 있다. 전쟁이 있다. 환경 오염이 심각하다. 범죄에 마약에 사고에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누구나 당면하는 문제가 있다. 늙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늙으면 우울하고 힘이 없고 할 일이 줄어들고 시력과 청력이 약해지고 두려움이 커지기 쉽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죽음이 가까이 있다. 그래서 늙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누구나 늙게 된다. 물론 죽음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은 손님으로 찾아온다. 죽음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이다. 그리고 누구도 경험해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렵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며 슬퍼하며 통곡한다. 죽음을 피할수만 있다면 어떤 댓가라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만인에게 공평한 것이 죽음이다. 그런데 여기 기쁜 소식이 놀라운 소식이 있다.
21절,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시다. 그래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3년의 공생애 동안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셨다. 죽은 회당장의 딸을 살리셨다. 그뿐이 아니시다. 죽어 장사되어 사흘이나 되어 그 시신이 부패한 나사로도 살리시었다. 누가 죽은 자를 살리겠나?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자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죽은 자도 살리신다. 육신이 죽은 자만 살리시나? 아니다. 죄와 허물로 영이 죽은 자도 살리신다. 따라서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구원받는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새 생명을 주신다. 이것을 중생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죄로 죽은 자를 중생하게 하신다. 그뿐이 아니다. 결국 사람은 누구다 다 죽는다. 누구나 무덤에 장사된다. 그러나 주님이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다시 오실 때 무덤에 장사되어 잠자던 자들이 깨어 일어날 것이다. 부활하게 될 것이다.
28절을 보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 살아나니라 하였다.
여러분, 죽음 앞에서는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무엇도 소망을 줄 수 없다. 의술이 죽음을 막을 수 없다. 대통령의 권세가 죽음을 막지 못한다. 만병통치약이 효과가 없다. 그러나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죽었던 영이 산다. 죽어도 생명의 부활로 살아 영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전해야 한다. 예수를 전하면 죽은 자를 살린다. 그 뿐이 아니다. 내 신앙이 산다. 산 신앙이 무엇인가? 죽었던 내가 새 생명의 감격, 구원의 감격이 있다. 구원이 감격스러우면 감사가 넘친다. 사랑과 희생이 넘친다. 신앙의 승리자가 된다.
성경은 예수님을 심판주시라고 말씀한다.
어느 분이 이런 설문조사를 했다. 죽음 후에 하나님께 가서 제일 묻고 싶은 질문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이것이 알고 싶었다. 내가 천국에 속할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속할 것입니까?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공통된 관심사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하나님, 어째서 선한 사람에게 고난이 오는 것입니까? 사실 이 질문은 오늘에 생긴 것은 아니다. 구약의 욥기는 의인의 고난을 깊게 다루고 있다. 전도서 7장 15절에서도 솔로몬이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다. 16절에서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고 전한다.
요즈음 한국에 또다시 금융비리가 불거지고 있다. 수백억이 로비자금으로 쓰였다느니 단돈 몇 푼에 기업체를 사서 합병했으니 말들이 무성하다.
왜 이런 비리가 그치지 않는가? 부정 척결하려는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나 남았느냐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잘 버티면 된다. 설사 잘못되어 잡힌대도 몇 년 징역살고 나오면 평생 먹고 사는데 대수냐? 그래 부정이 뿌리 뽑히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다시 고개를 든다.
왜 정직한 사람은 죽어라고 일해도 먹고살기가 힘든데 어떤 사기꾼들은 가만히 앉아서 수억 수십억 수백억을 주무르느냐? 어디 땀 흘려 일할 맛이 나느냐? 그래서 돈이 제일이다. 배경이 제일이다. 부정을 부채질한다.
경찰의 수를 늘리고 검찰의 기능을 강화시켜도 범죄를 잡을 수 없고 범죄자 부정과 치부를 막을 수 없다. 최근에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의 대립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왜요? 사형을 시킨대도 범죄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범죄자들이 세상 법을 재판관을 육신이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또 항변한다. 공의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왜 하나님을 믿고 선한데 정직하게 땀 흘려 사는데 가난하기만 한가? 왜 몸을 아끼지 않고 남들을 돕는데 병저 누워서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게 하십니까?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니 낙담한다. 대충대충 세상사람 살아가는 대로 살면 되지. 그래 신자지만 불신자와 특별히 다르지 않게 사는 이들도 많게 되었다. 그래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가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아직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고 있다. 선인이 잘 안 되고 악인이 잘 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천국이 아닌 죄악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사람 정부를 통해서 상선벌악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심은 대로 거둔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전파 탐지기를 발명한 몇 년 후에 Robert Watson Watt 경은 카나다에서 속도위반으로 체포되었다. 그는 그가 만든 함정에 걸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내 자신의 고안품에 희생자가 됐다. 그렇다. 행한 대로 받게 되어 있다. 죄를 지면 죄값을 받는다. 물론 큰 죄를 짓고도 법망에 걸리지 않고 세상 법정 심판을 받지 않는 이가 있다. 세상의 법을 무시하는 권세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죽음으로 모든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29절을 보세요.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정에 서야 한다. 27절에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님께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전해야 한다. 사람의 심판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예수님의 심판이 있다. 어떤 심판인가?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예수님의 심판은 최후의 심판이요 몸과 영을 지옥에 멸하는 영원한 죽음의 두려운 심판이다. 이를 두려워한다. 누가 이 심판에 서나? 세상 법망을 피해 범죄를 일삼는 자들! 세상 법 위에 있는 권세자들! 악하게 잘 살고 건강하게 평안이 죽은 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29절에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여러분, 장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 이 엄연한 사실을 전해야 하는 이웃 불신자들을 경고해서 예수를 믿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 자신을 세속의 잠에서 깨우기 위해서도 절대로 필요하다. 우리의 눈은 너무 근시안이다. 세상만 본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이듯이 살고 있다. 보이는 것이 물질이고 육신이다. 하나님을 섬겨도 사람을 의식한다. 사람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쉽게 낙심한다. 사람들의 말에 신경을 쓴다. 그래서 선을 행하다 주님의 일을 하다가 쉽게 낙심도 한다. 세상은 부와 사치 아름다운 육체미, 좋은 차, 좋은 집, 마약, 향락에 자꾸 빠져든다. 우리도 영향을 받는다.
여러분, 어느 분이 왜 이슬람을 믿는 아랍 국가들이 그렇게 반미 감정이 심각한지를 이렇게 분석했다. 한 마디로 미국은 현실 집착이고 아랍은 사후에(세계)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마약, 성, 범죄, 육체미 사치한 옷은 사탄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을 쳐부숴야 한다. 범죄자를 다루는 형벌에서도 그들은 잔인하다. 도적질을 하면 손을 자른다. 우리는 분노한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는가? 우리 몸의 지체가 범죄했을 때 잘라버려라 불구자로 천국 가는 것이 건강한 몸으로 지옥 가는 것보다 낫다. 성경이 무어라 말하나? 우리의 생이 이 세상에서 끝난다면 신자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자다. 그렇다. 예수님의 심판이 있다. 예수님의 심판을 전하면 우리의 삶의 초점을 오늘에서 내일로, 사람의 판단에서 주님의 판단에 맞출 수 있다. 주님 앞에 서서 상급의 심판 때 칭찬이 있을 것이다.
Ⅲ. 어떻게 예수를 전할까?
29절에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온다고 했다. 언뜻 보면 이 말씀은 무슨 선한 행실이 구원의 조건이 아닌가? 선한 일만 하면 구원받고 영생하듯이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서 선행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를 내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것을 가리켰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를 영접하게 할 수 있는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전해야 한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
여러분, 저는 효과적인 전도는 임신과 그 반응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나가서 말씀을 예수를 전한다. 말씀의 씨가 떨어졌다. 말씀을 들은 이들의 마음 밭이 길바닥, 돌짝밭, 가시덤불의 밭일 수 있다. 그러니 우선 옥토가 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옥토에 말씀의 씨앗, 생명이 떨어졌으니 신앙으로 말하면 이제 태신자로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태신자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새 생명의 잉태를 인해서 기뻐할 것이다. 모든 성도에게 알릴 것이다. 임신한다고 다 건강한 아이가 출산하나? 자연 유산도 되고 심지어는 인공 유산도 시킨다. 그러니 조심하게 해야 한다. 말씀의 생명이 죽지 않고 잘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사랑으로 돌봐 주어야 한다. 임신하자마자 아이 낳는 엄마가 있나? 10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조급하지 말아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병원에 가서 의사의 도움도 받고 새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 새 생명 낳는 예정일이 저마다 다르겠으나 내 집에 초대해서 대접하고 구역에 초대해서 대접하고 야유회에도 초대, 부흥회도 초대, 그래서 온전한 신자로 태어나게 해야 한다.  
오늘 여러분의 전도에도 이런 태신자가 많이 생겨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관심과 기도와 돌봄속에서 새신자가 태어나기를 기원한다. 새생명이 태어나면 가만히 놔두나? 땅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다. 손때가 탈 정도다. 안아준다. 입 맞춘다. 먹여준다. 옷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준다. 말도 가르친다. 걸음마도 가르친다. 그러면서 자라지 않는가? 새신자를 이렇게 사랑하고 돌보자. 그러면 성장할 것이다. 그 분이 전도할 것이다. 우리교회는 생명의 재생산의 역사가 풍성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오늘 생명의 주님, 심판의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확실히 심으시고 태신자를 만드셔서 한 영혼을 꼭 구원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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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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