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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기적을 경험하는 신앙
  본문 : 요 6:1-15
RevSuh  2015-07-12 10:29:01, 조회 : 1,591, 추천 :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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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경험하는 신앙(요 6:1-15)(2/11/01)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 12바구니가 남았다. 사실로 들리는가? 그렇지 않으면 우화처럼 생각되는가? 그러나 이 말씀이 기록될 때 이 사건을 본 다수의 증인들이 살아 있었다. 그만큼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이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복음서가 모두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이 사건이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3년 공생애 기간 동안 많은 기적을 행하셨으며 제자들 역시 표적과 기사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따라서 실제로 행한 기적의 수는 성경에 기록된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기적은 어떤 목적이 있는가?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다. 이 사건도 예외가 아니다. 더 나아가 구원받은 신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해서는 이 사건에서처럼 기적을 경험하는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적을 경험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면 잘 산다는 구라파를 여행해 보라고 한다. 유럽의 호텔들의 복도에 있는 전등들을 사람이 그 자리에 있을 그때만 켜진다고 또 공공장소의 화장실에 화장지가 없는 곳이 많단다. 그리고 식당에서 주는 음식의 양이 미국과는 비교가 안 되리만큼 적다고 해요. Hollywood 거리에서 선물 가게를 하시는 장로님이 그러시는데 유럽 인들이 여행을 좋아도 하고 즐긴단다. 하지만 선물을 사는 데는 여간 인색하지가 않다. 애들과 함께 가족으로 여행 온 이들이 가게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물건을 이것저것 만지며 고르면, 다 안돼! 그리고 제일 싸고 적은 것 하나 사 가지고 나간단다.
우리는 풍성풍성하게 쓰고 먹고산다. 이것이 정상적인 생활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우리는 부자다. 그런데 최근에 에너지 파동이 생겼다. 엊그제 신문을 보니 비즈니스 시간이 끝났는데도 외 등을 켜 놓으면 벌금을 $1,000을 물린데요. 캘리포니아에 인구가 폭증한 것도 아닌데 정전에 절전에 이게 웬일인가?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한국도 정전의 위기가 없는데! 사실은 캘리포니아는 전기가 많이 모자랐다. 우리가 여기 살면서도 그걸 몰랐어요. 그런데 공장에 불이 안 들어오고 내 집에 불이 나가니까 알게 되었다. 제자들이 그랬어요. 예수님과 함께 이곳저곳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기적을 행할 때 떡이 없어서 고생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큰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왔다. 예수님께서 그 무리를 보시면서 어떤 마음이셨을까? 아마 추수할 곡식으로 구원받을 불신자로 보시고 기뻐하셨을 것이다. 목자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양떼처럼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을 것이다.  그 무리의 수는 5,000명이나 되었다. 당시 계산법대로 여자들과 아이들의 수를 빼낸 것이니 전체 무리의 수는 최소한 10,000명은 되었을 것이다.
여기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라 온 5,000명은 누군가? 기적을 보려고 몰려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역시 손님이라면 손님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제자들 그 누구도 저들을 그들이 대접해야 할 손님으로 보지 못했다. 예수님! 그들에게 보지 못할 것을 보게 하신다.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빌립은 아침에 가룟유다의 회계 보고를 들었는지 모른다. 오늘 아침 현재 잔고가 200데나리온이요.  그러면 그렇지. 우리는 부자다. 먹고 마시는데는 부족할 게 없어. 그런데 5,000명을 먹어야 한다시니 빌립의 계산이다. 이 사람들로 조금씩만 먹게 할지라도 200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합니다. 가지고 있는 것과 필요한 것을 계산해 보니 턱없이 부족했다. 깨닫게 됐어요. 예수님 안 됩니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안 됩니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아마 수소문을 했을 것이다. 대책을 마련했을 것이다. 여러분 중에 혹시 점심으로 싸온 떡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이가 있소? 말씀하시오. 알아본 결과 한 아이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있었다. 5,000명에게 그것이 전부였다. 턱없이 부족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부족을 고백하게 되었다.
여러분! 이것이 오늘 우리의 실상은 아닌가? 부족한 것이 없다. 나는 배부르다. 몇 백명에서 몇 천명 감원 소식이 꼬리를 문다. 내가 그 한 사람이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 건강은 어떤가? 어느 집사님이 담석으로 수술을 하셨다. 돌이 있는 것은 알았다. 간에 가서 붙어있다. 그런데 실제로 사진을 찍고 수술을 하게 되니 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네 군데나 수술을 해서 9개가 아닌 50개 이상의 돌을 빼냈다. 실제는 생각보다 건강에 더 문제가 컸다. 사실 누구나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하면 모두가 환자다. 여러분! 영어 잘 하십니까? 한국에서 영어 잘한다 생각했더니 미국에 오니 국민학생 만큼도 못한다. 모두 영어 하는 사람 앞에서 영어 하면 옛말처럼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아예 안한다. 영어 실력 부족을 절감한다. 나는 지식인이다. 여러분! 하지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얼마나 더 많은가? 믿음은 어떤가? 나는 모태 신앙이고 나는 체험 신앙이고 나는 개척 교회도 세웠고 나는 교회를 지었고.... 그러나 여러분! 시험당해보라. 왜 그렇게 쉽게 낙심하는가? down이 되는가? 예수님 닮은 성품은 찾을 데가 없다. 말 한마디에 옛사람이 그대로 살아난다. 예수님 닮는 것이 내 신앙의 목표인데... 내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는가? 때로는 주일도 못 지킨다. 마태복음 19장 16절에 보면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라고 묻는다. 예수님께서 계명들을 다 지키시오 라고 하니 그 청년이 하는 말이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증거, 부모 공경, 이웃사랑을 다 했습니다. 지켰습니다. 제게 무엇이 더 부족합니까? 네가 온전하고자 하느냐?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라!  이 청년 부자는 자기가 완전한 줄 알았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줄 알았다. 계명을 다 지키는 줄 알았다. 사랑하며 산 줄 알았다.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가지 사랑이 부족했고 그것 때문에 영생의 문턱에서 물러서고 말았다. 사실 계명을 다 지킨 게 아니었다.  사실은 하나도 제대로 지킨 것이 아니었다. 여러분! 내 신앙은 이 부자 청년의 신앙만한가? 한 가지가 부족한가?
로마서 12:3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라 이 말씀대로 생각해 보라!  부족한 것, 모자란 것이 너무 많다. 부족을 아는 것이 채움 받는 첫 걸음이고 기적의 시발점이 된다. 왜 그런가? 제자들을 보세요. 제자들에게는 어쩌면 200데나리온의 돈밖에 없었다. 그 돈으로 떡을 사도 조금씩밖에는 먹을 수가 없으니 턱없이 부족하다.  또 거기에는 200데나리온 어치의 많은 떡도 없었다.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인데 5,000명에게 그게 무슨 가치가 있겠나? 부족을 절감하니, 무능하니, 불가능한 것을 깨닫게 되니 어찌 했는가?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어찌 하면 좋습니까? 도와주세요. 예수님 어찌 하셨나?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되었느냐?  좀 준비성이 있어 봐라. 나무라시고 꾸짖으셨나? 할 수 없군. 손님이라도 굶겨 보내는 수밖에 없지.  예수님께서 어찌 하셨나? 적은 것 그러나 무시하지 않으셨다. 그까지 껏 하지 않으셨다. 필요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예수님은 달라하셨다. 적은 것을 달라고 하셨다.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왜요? 여러분! 떡을 서서 먹겠나?  앉아서 먹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무슨 말인가? 떡 먹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능히 먹게 하시리란 확신이 있었다. 믿음이 있었다. 그래 앉게 했다. 먹을 준비했다. 앉으라 하신 예수님. 그들에게서 받으신 그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놓고 감사하셨다. 축복하셨다. 그리고는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셨다.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부족, 무능을 깨닫고 놀란다. 큰일났다. 사람의 수단, 방법을 동원해 본다. 그러나 불가능하다. 염려와 근심에 빠진다. 그래 불행하게 산다. 그저 모자라는 궁핍한 삶을 산다. 불신자의 삶이 되고 만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기적을 경험하기 원하느냐? 물질이 모자라나? 염려하지 말고 내게 바치라 하신다. 적은데요. 안다. 바쳐라. 성경공부하라, 봉사하라, 나는 몸이 약합니다. 병약한가? 안다. 그래도 바쳐 봉사하라. 구역장, 교사해라.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 못한다. 그러나 가르치라 하신다. 성가대 하라. 저는 음성이 안 좋아서요. 안다. 그러나 감사함으로 즐겁게, 기쁘게, 자원해서 드리라 하신다.
여러분! 한 소년은 자기 점심을 다 드렸다. 남긴 게 없다. 강제로 뺏긴 게 아니다. 자원해서 기쁘게 드렸다. 그 떡과 물고기 그 적은 것이 기적의 조건이 됐다.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내게 바치라! 하나님! 둘이면 바치지요. 번제라도 드리겠습니다. 그리 안했다. 창세기 22장 보세요.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번제의 쓸 나무를 쪼개 가지고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한 곳으로 갔다. 하나 뿐인 아들 이삭을 기쁘게 드렸다. 어떻게요? 하나님이 주신 아들! 하나님이 쓰신다니 드렸다. 없던 아들을 주신 하나님. 내가 죽여 바쳐도 다시 살리시리라. 어찌 됐나? 아들을 하나 바치니 그 아들도 살고 그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하게 됐다. 그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나시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었다. 왜 드리라 왜 하라 하시나? 없는데 부족한데 더 주시기 위함이다. 채워주시기 위함이다. 기적을 경험하며 살게 하시기 위함이다. 기쁘게 드리니 어찌 되었나?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축사하시고 나눠주신다. 앉은 모든 무리와 제자들에게 일일이 떡을 떼서 주시고 물고기도 나눠주셨다. 그랬더니 다함이 없었다. 조금씩 먹은 것이 아니다. 배불리 먹었다. 더 달라면 더 주셨다. 그리고 나서 먹고 싶은 원대로 먹었다. 5,000-10,000명이 다 먹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릴 것이 없게 하라! 다 배불리 먹었어요. 남은 조각이 왜 필요한가? 왜요? 먹고 남은 부스러기 이제 말라비틀어진 보리떡 조각 어디에 쓰겠나? 누가 그걸 먹겠나? 그렇다고 거기 모인 군중 누구에게 가지고 가라고 주시지도 않으셨다. 그런데 왜 거두라, 버리지 말라 하셨나? 왠가? 아까워서였다기보다는 적은 것 그러나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더 주시는데 모자라는 것 채우고도 남게 주신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다. 바치면 하나님께서 넘치게 주신다는 진리를 오늘 우리에게도 가르치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우주와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다. 우리의 부족을 다 아신다. 그런데 부족함에도 모자람에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쁘게 드리고 선하게 쓰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선한 청지기로 인정하신다. 더 주면 더 아름답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하늘 문을 여시고 모든 아름다운 것으로 더 주신다. 모자란 것 채워주신다. 넘치게 주신다. 더 크게, 더 많이, 더 아름다운 일 많이 할 수 있게 하신다.
여러분! 열왕기상 16장에 아합 왕 때 온 나라가 왕후 이세벨의 꼬임으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자 하나님께서 그 땅에 3년 6개월간 비가 오지 않는 심판을 내리셨다. 가축은 물론이고 사람이 마실 물까지 말라 버렸다. 가축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너는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서 한 과부에게 공궤를 받으라 하셨다. 그 사르밧에 가니 그 과부는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다. 엘리야는 그녀에게 그릇에 물을 조금 가지고 와 나로 마시게 하라. 물 좀 달라. 마실 물이 없었다. 엘리야도 안다. 그래 과부에게 물을 조금 달라. 많은 물이 없었다. 조금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과부 어찌했나? 예, 물을 뜨러 간다. 과부가 아끼는 물을 뜨러 간다. 그런데 엘리야는 또 청한다.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가져오라. 나는 떡이 없습니다. 가루 통에 가루 한웅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붙어 있을 뿐입니다. 이 나뭇가지를 줍는 것은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아들과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 합니다. 저와 제 아들의 마지막 양식입니다. 이것이 저의 생명입니다. 드릴 떡이 없습니다. 13절, 두려워말고 가서 내 말대로 해라. 먼저 떡을 만들어 나로 먹게 하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해 만들라.
어디 가루와 기름이 있다고요? 이게 마지막인데 나와 아들은 뭘 먹고요?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나? 기쁘게 드렸다. 먼저 드렸어요. 그리고 나니 하나님께서 어찌하셨나? 기근이 다하기까지 가루 통에 가루가 마르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가진 것이 적다. 그러나 달라고 하신다. 그리고 드리면 더 많은 것을 주신다. 축복하신다.
그런데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5,000명-10,000명이 배부르고 나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왕을 삼으려 했다. 그때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다. 떡 먹이는 왕을 원치 않으셨다. 떡으로만 살려는 저들을 경책하신 것이다.
어느 성경학자가 여기 오병이어의 기적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다. 5는 모세의 오경(성경)을, 12바구니는 12지파를 가리킨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을 먹인 것이다. 또 떡 7개로 4,000명을 먹인 기적은 이방인을 위한 것인데 7은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4는 사방에 사는 지구의 모든 백성을 가리켰다. 결국 예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다 먹이시는 구주시란 뜻이다. 의미있는 해석이다. 예수님은 육신의 떡만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영혼의 떡을 주신다.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영육의 삶을 풍성하게 하신다.
여러분! 풍성한 삶, 기적을 경험하며 사시기를 원하시나? 우리는 물질도, 건강도, 지식도, 믿음도 모두 부족하다. 그러나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말라. 그것은 불신자의 삶이다. 부족한 것, 적은 것, 모자라는 것, 하나님께 드리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선하게 쓰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해 주신다. 채워주신다. 남게 하신다. 없다고, 부족하다고 채움 받는 것 아니다. 적은 것 드려서 섬길 때 더 큰일하라고 넘치게 주신다. 이 신앙으로 항상 은혜가 풍성한 삶을 사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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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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