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설교 | 목회 칼럼 | 신학상식 |성경개론(O.T) | 성경개론(N.T) | 속독성경 | 자유게시판 | 영혼의 쉼터 | 매일아침큐티 | 교회와이단 | 관리자


교회와 이

 

 

 

 



  제목 : 곡식(알곡)과 가라지
  본문 : 요 6:63-71
RevSuh  2015-08-23 23:45:50, 조회 : 1,615, 추천 : 284
설교동영상보기 ☞   목록에서 icon을 직접 클릭하셔도 됩니다.



곡식(알곡)과 가라지(요 6:63-71)(3/11/01)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의 천국의 비유에서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셨다.  좋은 씨만 뿌렸는데 곡식만 나지 않고 가라지도 났어요. 그래 종들이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을까요? 하니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되니 추수 때까지 그냥 두라고 한다. 추수 때 먼저 가라지는 묶어 불사르게 하겠다고 하셨어요.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미 임했으나 불신자나 악인에 대한 심판은 유보되었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이 세상에서 천국의 모형인 우리 교회에 적용한다면 교회 안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심판 때까지는 함께 섞여 있겠다는 말씀이기도 한다.  교회에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신자들의 모임이지만 그 신자들 중에는 곡식 중에 가라지가 섞여 있듯이 아주 많지는 않겠지만 가짜 신자도 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예수님을 은 30에 판 가룟유다가 있었다. 오늘 본문 66절에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12제자 이외에 다른 제자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서 다수가 물러갔다. 예수님을 떠났다. 더 이상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 오늘 우리 교회 안에 거짓 신자나 가라지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께서는 자주 비유를 들어 천국의 진리를 가르치셨다. 그 이유는 어려운 하늘의 진리를 세상 것들을 들어 쉽게 이해시키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예수님의 말씀 중에 어려운 것이 없지 않다.
위 본문의 말씀이 그 중에 하나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산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제자들까지도 수군대며 어렵다고 불평했다.
그런데 이 말씀은 56절 말씀으로 해석할 때 이해가 된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들은 예수님안에 거하고 예수님은 그들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자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예수님과 친밀한 영적인 연합을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주석가 헨드릭슨도 결과가 영적이라면 다시 말하자면 산다는 말씀이 영적인 영생이라면 그 원인 즉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말씀도 영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영적인 말씀을 육신적으로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했던 사람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나를 먹으면 영원히 산다고 하시니 어려웠다. 이해가 안 되었다. 그 말씀은 예수를 믿고 따르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더더구나 유대인들은 피는 생명이요, 먹을 수 있는 고기도 피를 빼지 않고 먹어서는 안 되었다. 하물며 사람의 피를 마시다니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우리가 식인종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 결과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저들은 생명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말씀과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생명이신 구주 예수님을 떠났다.
그렇다! 오늘도 교회에 나오는 신자 중에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대 진리로 믿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왜요? 영적인 진리를 육적으로 해석하려 하기 때문이다. 초이성적인 진리를 이성으로만 해석하려 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영적인 진리는 이성을 초월하기에 바로 이해하려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떤 도움인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내가 가면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다. 오순절 그 성령님이 약속대로 오셨다. 그 성령님의 역할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라 하셨다. 그 성령님은 예수의 영이시다. 진리의 영이시다. 말씀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바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성경은 성령께서 깨우쳐 주셔야 바로 이해가 된다. 마음이 열린다. 진리로 받아들인다. 영의 양식이 된다. 신앙이 자란다. 건강해진다.  말씀대로 살게 된다. 그렇지 못하면 이해가 안 된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영적으로 굶는다. 결국은 그 영이 죽고 만다. 생명의 말씀으로 계셨다가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님과 관계가 없다. 예수님이 떠나신다.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 이민홍 교수는 마태복음 20장 1절의 포도원의 품꾼에 대한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해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데 어찌 아침 일찍이 와서 종일 일한 품꾼과 겨우 1시간밖에는 일을 못한 오후 늦게 온 품꾼에게 똑같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과연 내가 믿을만한 정의의 하나님이신가?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요 수학자였던 B. Russell은 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 라는 책을 썼다. 그의 불신의 이유 중에 예수님이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말씀이 있다. 무화과 때가 아닌데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시므로 무화과나무가 마른 사실은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성경이 진리로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사건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왜요? 이성으로만 말씀을 이해하려고 했어요.  이 교수도 말씀이 이해가 안되니 그는 중학교 때 구원의 확신을 가졌는데 점차 진리를 의심하게 되고 18년간을 교회를 떠나 방황했다.  그리고 이 종파, 저 종파 다니며 만족을 얻기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내의 권유로 교회에 다시 출석하며 드문드문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성경을 펴고 읽다가 바로 마태복음 20장 11-12덜을 다시 읽는데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느낌과 이해가 왔다.  성령님이 역사하셨다. 그리고 보니 지금까지 자신의 불평이 거기에 그대로 다 적혀 있었다.  거기서 깨달은 것은 나는 처음에 온 자가 아니라 나중에 온 사람이란 자각이었다. 품꾼으로 써 주는 이가 없어 종일 장터에서 초조하게 서성대던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임을 깨닫게 되었다. 비로소 해지기 한 시간 전에 간신히 포도원에 들어온 일꾼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걸림돌이 되던 성경이 이해가 되면서 의심과 불신으로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렸다.  지난 18년의 방황에 대한 후회로 가슴이 져며왔다. 회개의 눈물을 흘리니 성령께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기쁨을 부어 주셨다. 그날 그는 다시 살아났다.
여러분! 성경이 믿어지지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로 믿어야 한다.  그렇게 안 되나? 기도하세요. 설교말씀이 전혀 들어오지 않나? 기도하세요.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나? 성령님께 가르쳐 달라,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세요. 성령님께서 마음을 열어 달라, 내 지성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세요. 그때 의심이 사라지고 이해가 되고 믿어지고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 될 것이다.
왜 예수님이 떠나게 되나? 왜 가라지가 되나?
성경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우리의 구원이 영원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한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게 하셨다”고 했어요. 따라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구원으로 예정하신 자는 세상에 태어나서 반드시 예수를 구주로 믿어 죄사함받고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는 구원으로 예정된 자는 결코 가라지가 되는 일이 없다. 예수에게서 떠나는 수가 없다. 그러면 택함을 못 받은 자는 믿으려 해도 안되지 않겠나?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 나는 택함을 받지 못했으니 믿어봐야 소용이 없지.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고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예수를 구주로 안 믿는 사람 중에 나는 택함 받지 못했으니 안 믿는다는 사람도 없다. 안 믿는 것은 자의로 자기 결정을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따랐다. 이적과 기사를 보고 놀랐다. 떡 먹고 배불렀다. 병 낫고 건강해졌다. 그래 예수를 따라다녔다. 믿었다. 그러나 그 신앙은 피상적이었다. 그래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것은 생명의 떡된 나를 먹는 것이다. 내 말을 믿고 받아들임으로 나를 육신의 떡이 아니라 참 생명, 영생을 주는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야 한다 하시니 말씀이 어렵다. 이해 못하겠다. 못 믿겠다. 예수를 스스로 자의로 떠났다. 예수를 떠난 이유는 하나님이 택하지 않으셔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원인을 깊이 파고 들어가니 또 다른 원인이 있었다.  65절, 이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였노라. 말씀대로였어요. 스스로 말씀이 어렵다, 믿다가 그만 뒀어요. 예수를 버리고 다시 세상으로 나갔어요. 왜요? 아버지께서 택하시지 않았어요. 예수께 오도록 하나님께서 이끄시지 않았어요. 구원은 하나님이 하신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다. 저들은 그 은혜를 받지 못했어요. 사람의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는 없어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아요. 예수를 믿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생명의 구주로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끄신 자요 구원의 은혜를 받았어요. 그러면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은혜를 안 주시는가?  그건 우리는 몰라요. 신비한 하나님의 뜻이예요. 그러나 역시 그들이 원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곡식은 예수를 떠나지 않는 자는 영생할 자는 누구인가?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않을 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어요. 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도 떠나려느냐? 68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이어서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습니다 라고 했다.  그렇다! 여기 두 말씀은 서로 밀접하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 알았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는 성경에서 결코 사람에 대해 쓰지 않았다. 제자들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알고 믿었다. 그가 하나님이시니 생명의 주님이시다. 그러니 그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었다.  예수님께 생명의 말씀이 있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 믿고 아는 자는 결코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다. 예수님의 말씀이 성경이 자신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는 자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먹는 자! 다시 말하면 말씀으로 예수 앞에 나오는 자, 말씀으로 예수님을 소유한 자, 말씀으로 예수님과 연합하는 자다. 이렇게 생명의 떡인 말씀을 먹고사는 자는 곡식이요 알곡이요 결코 예수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내가 생명의 떡이신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듯이 예수님과 밀접하게 교제하며 연합한 자임을 확신하게 되는가?  성찬에 참여할 때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 지시고 흘리신 예수의 피는 내 죄를 사하시기 위해 흘리신 피요 십자가에 찢기신 예수의 몸은 나를 대신해서 받으신 심판의 채찍이요 이 사실이 성찬에 참여할 때 말씀을 통해서 분명한 사실로 깨달아지고 확인이 된다.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 나는 예수님과 하나되었다는 확신이 온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나는 죄와 함께 죽었고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하나님의 참 생명으로 살았다. 이제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있다. 바울의 말처럼 내 안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 할 수 있다. 또 있어요. 말씀을 통해서 내 인격이 예수님을 닮아간다. 구원받은 자,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상 사람과 구별된 삶을 살게 된다. 어떻게요? 말씀으로 교훈을 받고 책망을 받으면서 의로 훈련을 받아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여러분! 수요일 사도행전 공부를 한다. 모여서 들으면서 어찌되나? 계속 책망을 받는다. 왜 걷지 않고 차를 타는데 왜 전도한다고 욕하거나 핍박하는 자도 없는데 왜 말씀을 통해 계속 교훈을 해 주시는데, 왜 전도 안하나? 해야지, 가야지, 아니 적어도 전도주일만이라도 전도하러 가야지, 기도해야지, 그래서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된 선한 일 전도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산다. 이렇게 말씀이 내 신앙과 생활의 양식이 되고 규범이 되는 성도는 결코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다. 결코 세상으로 나가지 않는다. 시련과 환난이 와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말씀으로 위로받고 용기를 얻으며 세속의 물결을 거슬러 싸우며 승리한다.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는 어느 성도는 1977년 10월 결혼을 했다. 아내는 예수를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로 온 집안의 구박과 배척을 받았다. 믿음으로 한 결혼! 그러나 다 불신자인 가정이어서 할아버지부터 반대가 적지 않았다. 그래 할아버지! 5년만 기다려 주세요. 지켜봐 주세요. 그러시면 할아버지께서도 저의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눈으로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주님 위한 가정이루고 그 뜻이 이루기 위해 모든 인간 조건들을 무시하고 어떤 역경도 함께 뛰어넘기로 작정했다. 만사형통하리라! 5년만 잘 견디면,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주리라! 로마서 8장 28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신 자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굳게 의지했다. 그런데 결혼 6개월만에 아내는 연탄가스로 죽다 살아났다. 그후 첫 아이가 자연 유산되었다. 아내는 병저 누웠다. 역경과 시련이 꼬리를 문다. 온 집안이 다 수군거린다. 큰소리치고 반대하는 결혼하더니 꼴좋다! 짓밟히고 모욕당하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둘째 아이를 주셨다. 하나님! 이 아이를 세계 선교를 위해 온전히 드리겠습니다. 여호수아 1장을 읽으며 담대하게 선교 전선에서 쓰임받으라는 말씀에 이름도 담대로 지었다. 그런데 태어난 지 1주일도 채 안되어 이름 모를 병으로 죽었다. 낙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성경을 읽고 또 읽어도 머리로만 알뿐 가슴은 여전히 슬프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장에 갔다 돌아오니 아내가 어느 날보다 얼굴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아내 옆에 히브리서 12장 8절 말씀이 펼쳐져 있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우리는 참아들이다. 사생자가 아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였다. 집안에서 반대와 조롱이 심해도 첫째, 둘째 아이를 다 잃었어도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신 자요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요 무엇을 더 바라겠나? 얼마나 감사하던지,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 슬픔이 기쁨으로 변했고 원망이 감사로 변했다. 그들 부부, 평신도 선교사 청원을 교회에 냈고 받아들여졌다. 참 신자, 곡식, 알곡 신자는 예수님, 생명의 말씀이 계시매 어디로 갑니까? 말씀 때문에 시험, 환난 중에도 신앙 떠나지 않고 오히려 더 성숙해지는 성도다.
누가 예수를 끝까지 믿고 따르나? 곡식이요 알곡이요 영생하는가?
70절이다. 내가 너희 12를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그 중에 한 명, 예수님을 판 가룟유다는 제자로는 부름을 받았으나 하나님이 이끄시지 않은 자요, 구원으로 예정되지 않은 자였다. 어느 신학교 교수는 가룟유다는 회개하고 구원받았다고 책을 썼는데 그 신학교 다니는 전도사가 그 책을 읽고 가룟유다도 구원받았다고 가르쳤다고 해요. 어찌된 일인가? 인간적으로 보니 가룟유다가 억울한 것 같고 그래 동정심이 생겼는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은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팔 자요, 마귀였다. 물론 예수님의 11제자도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쳤다. 절대 예수님을 안 버리겠다고 장담했던 베드로도 멀찍이에서 예수님을 따르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기까지 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제자들도 부름을 받기 전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예수님을 떠났어요. 그러나 여러분! 요한복음 21장을 보라. 베드로와 도마와 나다나엘과 요한과 야고보와 다른 두 제자 모두 7명이 갈릴리 호수에서 배타고 그물을 던져 고기잡고 있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 거기까지 찾아가셨다. 그들 중에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신앙을 회복시켜 주셨다. 베드로만인가? 다른 제자들도 모두다.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주시어 땅끝까지 능력있는 증인되게 하셨다. 어찌된 일인가?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예정된 자, 택하신 자, 예수님께로 오게 하신 자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 끝까지 사랑하신다. 우리의 믿음이 약해 주님 잡은 손 놓치나 주님은 결코 놓지 않으신다. 로마서 8:29-30, 이미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고 의롭다 하신 자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하였다. 확실한 구원이요 영생이다.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에는 곡식만 이렇게 구원받은 자만 예수님을 결코 떠나지 않는 성도만 있기를 소망한다. 오늘 말씀을 적용해 볼 때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는가? 곡식이요 알곡이요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자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로 이끄신 자인가? 감사하세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세요. 그리고 생명의 말씀으로 날마다 교훈을 받으시고 책망받으시며 의로 훈련을 받아 인격적으로 더욱더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세요. 말씀으로 선을 행하기에 온전히 갖춰진 자 되어 선행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며 사시기 바란다.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Amen

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Best view at 1280x1024 ◇ 2008ⓒ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