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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죄인의 친구요 구주이신 예수님
  본문 : 요 8:1-11
RevSuh  2015-11-03 15:07:59, 조회 : 1,833, 추천 :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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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친구요 구주이신 예수님(요 8:1-11)

어느 날 아침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끌고 와서 우리가 돌로 치리이까 라고 물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재판관으로 옹립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차라리 그를 체포하기 위해 올무에 빠뜨리려는 계책이었다. 만일 예수님이 돌로 치라고 하면, 그가 외친 사랑은 거짓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만일 돌로 치지 말라고 하신다면 율법을 어기고 율법의 권위를 부인했으니 고소를 받아 마땅했다. 예수님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궁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을 침묵으로 받으시고 마침내 그들의 계획을 이렇게 지혜롭게 물리쳤는데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치라. 그리고 그 여인도 정죄하지 않으셨다. 다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이 사건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 말씀이 우리에게 실천하도록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제가 신학교를 다니던 60년 초반부터 수년간 총회 신학교의 교수진은 가히 최고로 달려가는 정상이었다. 저는 그렇게 훌륭한 교수님들 밑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을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교수님들은 실력도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인격이 훌륭하셨다. 몇몇 교수님은 참으로 성자라 할만 하셨다. 그렇게 겸손하시고 진실하실 수가 없었다. 정말 경건에서 뛰어나신 분들이었다.
그런데 그 분들이 경건회 시간에 기도를 하시던, 설교를 하시던 모두 주여! 저는 죄인이로서이다 하셨다. 자신들을 죄인으로 간주하셨다.
오늘 본문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끌고 왔다. 그리고 예수님께 모세의 율법은 돌로 치라고 명령했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소 라며 다그쳐 물었다.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아마 손에 손에 돌을 들고 금방이라도 그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질 자세였다.
신명기 22장 22절에는 간음한 자는 남자나 여자 모두를 죽이라고 했다. 그게 법이었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모르실 리가 없으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침묵이었다. 아마 고소자들은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좋아했을지 모른다. 의기양양해서 선생은 어찌 생각하오 말이나 들어봅시다! 얼마나 다그쳤겠나? 본문에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고 했다.
침묵하시던 예수님은 엎드려 땅에 글을 쓰셨다. 그러면 무슨 말씀을 쓰셨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그러나 ⑴ 예수님께서는 그 고소자들의 죄를 써 나가셨을지 모른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이 아니신가.
⑵ 예수님은 7수 혹은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썼을지 모른다.
⑶ 그렇지 않다면 그 여인과 간음한 남자의 이름을 썼을지 모른다. 그도 정죄해야 한다.
⑷ 그것도 아니라면 하나님의 죄 용서와 자비하심에 대해서 쓰셨을 것이다.
모두 추측이다. 그런데 그들이 묻기를 마지않으니 주님은 굽혔던 허리를 펴셨다. 그리고 깜짝 놀랄 말씀을 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손에 손에 돌을 들고 간음 중에 잡힌 죄 많은 여인을 치려했던 그들! 분명 그들은 자기들은 의인이라 죄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간음 중 현장에서 들킨 여인을 더러운 여자는 죄인으로 돌에 맞아 죽어 마땅했다. 그래서 죽을 죄인으로 정죄했다.
그들은 이 여인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결혼을 했다면 어떤 남자와 사는지? 어떤 형편에서 간음하게 되었는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결과만 보았다. 간음을 했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죄에 빨랐다. 사실 이 여인이 끌려 올 때는 장막절 기간이었다. 모든 백성들이 성 밖 오막에서 기거했다. 탄탄한 문이나 울타리가 없었다. 모두 흩어져 산다. 그러니 남자와 여자가 만나기가 쉬웠다. 아마 이 여인도 어느 유부남의 유혹에 빠져 간음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더 죄가 큰 유혹자였을 그 남자는 놔두고, 이 여인만 잡아 끌고 왔다.
여기서 우리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우리는 남보다 내가 낫다는 우월감에 빠지기 쉽다. 내가 옳다. 자칭 의인이 되기 쉽다. 편견이다. 그래서 너무 쉽게 남을 정죄부터 한다. 내 눈에 들보를 두고 남의 눈에 티를 빼라고 소리치고 고발한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혀 땅에 글을 쓰셨다. 그때 저희가 이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그들의 양심에 빛을 주셔서 그들의 죄가 드러났다! 그때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다 가고.. 여인만 남았다. 손에손에 들었던 돌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모두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여기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더 잘 지키기 위해 계명에 수많은 세칙을 613개나 만들었다. 해야 할 것 248개와 하지 말아야 할 것 365개를 지키기 위해 고심했다. 그때 우리는 간음한 일이 없고 간음한 이 더러운 여자와는 다르고 우리는 의롭고..
그러나 그들도 마음으로는 간음죄를 범했다(마 5:27). 의인이 아니었다.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간음한 여자만 아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도 모두 죄인이었다.
우리도 죄인이다. 다만 구원받은 죄인일 뿐이다. 그러니 겸손해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낫다, 옳다, 교만해선 안 된다. 남을 쉽게 정죄해서도 안 된다. 누구도 소망이 없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 주님을 모르는 내 주변에 모든 사람을 우리와 함께 주를 믿어 구원받을 수 있는 내 전도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정죄하기에 빨라선 안된다. 우리는 전도에 빨라야 한다. 나도 죄인이다.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요 구세주이시다.
구약 시대 간음은 사형죄에 해당했다. 목을 매달아 죽이거나, 돌로 치거나 칼로 찔러 죽였다. 또 제사장의 딸이 간음했을 때는 불태워 죽였다. 여기 간음 중에 현장에 잡혀 끌려온 여인! 그 때가 아침이었다. 아침부터 간음하는 사람이 있겠나? 아마 밤 중에 죄를 짓다가 발각이 되어 잡혔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밤새 어디엔가 갇혔다가 날이 밝자마자 예수님께 끌고 온 것 같다. 그러니 밤새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겠는가? 돌에 맞아 죽는 환상에 시달렸을 것이다. 마침내 많은 사람들 앞에 그것도 성전으로 끌려 왔으니 얼마나 부끄러웠겠나?
죄를 지으면 부끄럽게 된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도 죄를 짓고 나무 잎으로 몸을 가렸다. 죄를 지으면 형벌을 받는다. 그래서 두렵다. 아담과 하와도 죄를 짓고는 숨었다. 죄는 우리를 부끄럽고 두렵게 한다. 이 여인 모세의 율법을 따랐던 종교지도자들에게 고소를 당했으니, 정죄받고 죽어야 했다. 죽는 것이 이 여자의 운명이었다. 거기 둘러선 모두가 다 이 여자의 고소자요 사형 집행자였다. 모두가 이 죄 많은 여인의 원수요 적이었다. 만일 이 여인이 유대인의 공의회 재판에 회부되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정죄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 그 모든 사람과 다른 한 분이 계셨다. 그 분은 손에 손에 돌을 들고 치려했던 그 많은 사람과 달랐다. 정죄자와 달랐다. 그에게 호의와 동정을 보여 주셨다.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정죄하는 대신 땅에 글씨만 쓰셨다. 그리고 일어나셔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 여인을 변호해 주셨다. 그러자 그 여인을 둘러싸고 돌로 치려던 살기에 찬 자칭 의인들은 다 사라지고 그 한 분만 남았다.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녀의 눈에는 그 예수님만 보였다. 예수님을 바라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과 같으셨다.  너를 고소하는 자가 없느냐? 주여, 없나이다. 이 여인 주님과 단둘이 만났다. 주님은 아직도 그녀의 재판자셨다. 아마 두려웠을 것이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아마 속으로 고백했을 것이다. 그 예수님은 심판의 말씀 대신 소망의 말씀을 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라! 죄사함받고 구원받아 평안히 갔을 것이다. 죄인으로 예수님께 끌려온 이 여인은 의인이 되어 평안히 돌아갔다. 성경에 율법은 모세로부터 왔으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왔다. 예수에서만 자비와 진리가 만난다. 그 안에서만 의와 평화가 입맞춘다. 그렇다!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었다. 우리도 죄인이었지만 예수님 만나 용서 받고 구원받아 이제 하나님이 자녀가 되지 않았는가?  그 예수님께서 오늘도 죄인을 부르신다. 그러므로 소망이 없는 죄인은 아무도 없다.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로마서 8장 1절 말씀대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쉴 수 있다. 예수님은 오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를 부르고 계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후편과 속편이 있다. 죄 용서 받은 자, 구원받은 자는 책임이 따른다. 11절에 보니‘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구원 받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구원 받은 후에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죄인으로 용서 받기 전에 죄 많은 삶과 다른 새 삶을 살 책임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다시는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이기 보다는 차라리 일반적으로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네 죄 많은 습관을 중지하라, 다시 죄로 돌아가지 말라, 조와 분명하게 관계를 끊어라. 그렇다.
용서 받은 자, 구원 받은 자는 과거의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죄의 행위를 끊어야 한다. 다시 돌아가선 안 된다. 그것이 간음이든, 그것이 도둑이든.  왜 용서해 주시고 왜 구원해 주셨나? 이제부터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살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께 와서 구원받은 이 여인, 아마 돌아가서 자기가 아는 자기처럼 죄에 빠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께 데려 왔을 것이다. 이 여인은 자기가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돈 삶의 이유를 말했을 것이다. 내 죄 사함 받고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변했습니다.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변화된 삶을 간증했을 것이다. 이 여자의 변화된 삶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됐을 것이다.
  얼마 전 어느 크리스챤 신문에 전도왕 최명자 전도사와의 인터뷰를 한 내용이 실렸었다. 최 전도사는 79년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됐다고 하다. 처음 4개월은 목사님 말씀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주일 목사님의 설교가 가슴에 와 닿으니 기쁨이 솟아나는데 억누를수가 없더래요. 그래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느 가게에 들려 그 주인 아주머니에게 그 날 받은 말씀을 증거하며 예수님을 자랑했더니 예수가 그렇게 좋다면 나도 한 번 가 보자며 다음 주일 등록을 하게 됐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매주일 사람을 교회에 등록시키게 됐다. 일 년에 400명 이상을 등록시켰다. 그는 병이 많았다. 유방암까지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자기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그런데 열심히 전도하는 동안 병이 다 낫다. 그녀는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 전도상까지 받게 됐다. 전도의 비결이 뭐냐 물으니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고 방법은 따로 없다. 책을 사용하지도, 전도훈련을 받지도 않았다. 그저 와보라! 자기의 변화된 것, 예수 믿는 기쁨과 축복을 간증한다. 교회 자랑, 목사님 자랑, 성도 자랑, 자랑만 했는데 사람들이 가 보자 그래서 전도왕이 됐다.
한 번은 전도하는데 그렇게 완강하게 거부하더래요. 그 영혼이 너무 불쌍해서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당황해서 교회 나갈테니 제발 울지만 말아 달라고 달래더래요. 영혼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다! 믿는 자는 구원 받은 자는 책임이 있다. 구원 받은 자로 전도할 책임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전도다. 와 보라! 예수를 몰랐던 때와 지금 예수를 믿고 내가 변한게 하나 쯤은 있지 않겠나? 교회 좋다는 소문이야 못 내겠나?  
여러분! 주님이 언제 오실지 이 전도도 한없이 내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 주신 오신다고 생각하면 쓸데없는 일, 무모한 일에 얼마나 마음 쓰고 몰두하나? 무엇이 제일 귀한 일인가?  오늘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죄악을 끊고 죽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서 그 영혼을 구원해라 그것이 주님이 바라시는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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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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