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설교 | 목회 칼럼 | 신학상식 |성경개론(O.T) | 성경개론(N.T) | 속독성경 | 자유게시판 | 영혼의 쉼터 | 매일아침큐티 | 교회와이단 | 관리자


교회와 이

 

 

 

 



  제목 : 참 자유
  본문 : 요 8:31-36
RevSuh  2016-01-09 14:45:55, 조회 : 2,131, 추천 : 388
설교동영상보기 ☞   목록에서 icon을 직접 클릭하셔도 됩니다.



참 자유(요 8:31-36)(071501)

미국은 영국과 스코틀랜드 등지에서 신앙의 자유와 정치적 차별에서 자유를 갈구했던 이민자들로 구성되었다. 이런 자유에의 열망은 후에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을 하게 했고 마침내 흑인 노예 해방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런데 사실 자유는 노예들의 해방이나 나라의 독립이전에 각 개인에의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칸트라는 독일의 철학자는 자유는 사람의 출생의 권리라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참된 자유가 없이는 인간다운 삶은 불가능하다.
오늘 본문 말씀도 자유에 대한 말씀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누려야 하는 참된 자유를 말씀하신다. 그리고 어떻게 그 자유를 획득하고 누릴 수 있는지도 말씀해 주신다.
그러면 누구나 누려야 할 참된 자유는 어떤 것인가?
가끔 한국 신문에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지낸 황장엽씨에 대한 기사가 나오곤 했다. 그는 북한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을 입안하고 세운 유명한 정치인이다. 그가 망명해 왔을 때 사람들이 거는 기대는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안에서 본 북한은 어떤 곳일까? 북한의 위정자들이 남한을 보는 관점은 무엇인가? 북한은 남북통일을 어찌 생각하고 있는가? 한국이나 미국의 대북한 전략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조금 그 비밀이 밝혀지는 듯하더니 이내 침묵이다. 정부에서 입을 막은 것이다. 요즈음 미국에서 대북정책의 입안에 도움을 얻기 위해 황장엽씨의 미국 방문을 추진중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반대하고 있다. 물론 이유는 있다. 그러나 왜 언론의 자유를 막나? 아무리 신변보장이 이유라지만 주거지를 엄격하게 제한시키고 감시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치적인 자유를 원해 남한으로 왔지만 남한에도 완전한 자유가 없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정든 한국을 떠나 이 땅에 이민 정착하고 있다. 그런데 이민자의 삶도 만만치가 않다.
우선 이민자는 한국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같은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기술을 배워야 한다. 기술이 있어야 한다. 기술을 배워 취직을 하려니 경력이 또 문제다. 게다가 또 하나 더 큰 짐은 영어를 해야 취직을 한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다 해도 그것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돈을 가지고 와서 장사를 한대도 그렇다. 만만한 사업이 없다. 있다고 해도 영어가 필요하다. 말을 배워야 한다.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고 학교에 다닐 입장도 못된다.
이민 정착자에게 가장 큰 장애는 말이다. 영어다. 영어가 원수라고 한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고민을 지니고 있다.
요즈음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 무엇인가? 지진이나 토네이도 같은 또는 홍수나 산불같은 천재일수도 있다. 범죄일수도 있다. 그러나 나이에 상관없이 지위나 빈부나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찾아오는 무서운 불청객은 질병이다. 지금은 의학의 발달로 또 수술 기술의 발전으로 또 새로운 약의 개발로 과거에 고칠 수 없었던 많은 병이 정복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병원이나 의사나 약이 해결 못하는 병들이 많다. 간경화나 질환으로 오랫동안 투병하고 계신 성도들이 계신다. 당뇨나 고혈압, 심장병 같은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는 성도님도 계신다. 그런데 그 병중에서 그래도 제일 무서운 것은 암이다.
약이 개발됐대도 특효약이 나왔다고 해도 여전히 조기발견을 못하면 위험하기 그지없다. 암으로 투명하시는 집사님! 정말 힘들다고 하신다. 이제는 항암치료를 마쳤다.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맞고 있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 집안에서 걸으시는 것도 힘이 드신다. 머리털이 다 빠지고 그래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사의 지시가 힘들어도 따르고 암과 싸우고 또 싸운다. 이제 의학적 치료를 다 했으니 하나님께서 낫게 하시는 치유의 역사만 남았다. 모든 성도들이 그 집사님을 위해 날마다 잊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 완쾌되실 것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암의 요인이 있다.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발병이 될지 모른다. 의사도 예외가 아니다. 누구나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산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경제 사정이 낫다는 미국이다. 그런데 제가 사업하시는 성도님들의 가게를 심방해 보면 작년만은 못하다고 한다. 이런 말 듣기를 벌써 수년째다.
며칠 전에 택시 기사로 일했던 김금식씨가 밤에 West LA에서 손님을 태웠다가 그 손님이 강도로 변해 온 몸에 칼에 찔려 결국은 죽고 말았다. 그 분은 이민 오셔서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자지 않고 일했다. 돈을 아끼고 알뜰히 살아 90년에 버논과 브로드웨이에 자동차 정비 공장을 차렸다. 그러나 92년 4.29 폭동때 공장이 폐허되고 공구를 다 약탈당했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융자와 사채를 얻어 토렌스 지역에 정비소를 차렸으나 영업부진으로 문을 닫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왼쪽 상반신 마비까지 왔다. 거동이 가능해지자 이번에는 주유소 종업원으로 생활했다. 그러나 왼쪽 몸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그만 두라는 박대를 받아 나선 것이 야간 택시 운전사였다. 그러다가 참변을 당했다. 고생고생 끝에 온 것은 죽음뿐이었다. 그를 죽인 강도 역시 그의 지갑을 빼앗아 갔으니 아마 먹고 살기가 힘들어 강도가 된 것 같다. 걱정 없이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경제적인 압박을 받고 산다. 범죄의 표적이 되면 어쩌나 걱정하며 불안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자. 왜 말을 모르게 됐나? 왜 이런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왜 우리는 한국어를, 영국인은 영어를 중국인은 한문을 쓰게 되었는가? 왜 의사소통이 안 되게 되었는가? 왜 말을 못해 사는 게 힘들고 그것 때문에 염려가 생기게 됐는가?
창세기 11장에 보면 처음에는 온 땅의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였다. 우리의 조상들은 말이 언어가 하나였다. 누구나 한 가지 말을 쓰고 살았다. 그러면 왜 각각 언어가 달라져서 오늘은 6천여 종에까지 이르게 되었나?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름답게 지으시고 모든 곳에 흩어져 풍성한 삶을 살게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반대로 흩어져 사는 대신 모여 살기를 원했다. 그래 성과 대를 높이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며 하나님을 대적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 성을 쌓을 수 없도록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집단을 만들고 흩어져 살게 됐다. 그러니까 죄 때문에 의사소통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게 됐다.
왜 우리는 비싼 의료보험료를 내야 하는가? 또 한 해에도 눈에 띠게 올라간다. 왜 건강을 염려하며 살아야 하는가? 왜 암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창세기 2장 17절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를 그 곳에서 살게 하셨는데 그 동산에 모든 실과를 마음대로 먹게 하셨다. 다만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두시고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사탄의 말을 믿고 선악과를 따 먹었다. 내가 하나님이 되겠다. 하나님을 떠나서도 얼마든지 내 지혜로 내 노력으로 내 자원을 가지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창세기 3장 19절, 땀을 흘려야 노동의 괴로움을 통해야 먹을 수 있게 됐고 영원히 살지 못하고 죽어 흙으로 돌아가게 됐다.
어떻게 사람이 세상에 나서 죽는가? 늙고 병들어 죽는다. 왜요? 하나님 말씀 어기고 범죄하므로 병들어 죽게 되었다. 죄 때문이다.
아프리카와 몇몇 가난한 나라들만의 형편이었던 가난과 배고픔이 이제는 북한에까지 확산되었다. 점점 더 가난한 나라 부자 나라의 골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다. 가난한 자는 많아지고 소수의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힘들다. 하나님을 떠나니 하나님의 풍성한 자원과 단절됐다. 나 자신의 자원가지고 산다. 그러나 부족하다. 그러니 남의 것까지 뺏게 되었다.
사업도 작은 사업은 죽고 큰 사업만 살아남는다. 왜요? 함께 나누지 않는다. 가난한 자를 돕지 않는다. 이웃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이기적이다. 잘 살면 된다. 그래 가난난 이 못 먹는 이 하루에도 수천 명에서 만 명 이상이 먹지 못해 굶어 죽는다. 왜요? 죄 때문이다.
이제 본문을 보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자유를 말씀하신다. 진리를 알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다. 자유케 된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유는 어떤 자유인가? 예수님은 여기서 육신적인 자유가 아니라 영적인 자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죄에서의 자유를 말씀하셨다. 위에서 보았듯이 모든 오늘의 불행이 죄의 결과가 아닌가? 그러니까 죄에서 자유해야 참 자유다. 그런데 죄에서 자유는 결코 저절로 되지 않는다.
3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니라.
죄의 종, 죄는 사람을 종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는 말씀이다.
수년전에 TV 설교자요 전도자로 이름을 날린 분이 있었다. 그 분은 음악을 하던 분이다. 감정이 풍부했다. 얼굴도 외모도 미남이었다. 설교도 설득력이 있고 감정을 잘 굵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의 설교를 가끔 들어보면 미국의 세속화, 미국의 죄, 마약, 술, 도박, 동성연애, 성적인 죄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회개하라 미국이여! 강조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분이 창녀촌을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그 후에 회개한다며 TV에서 눈물까지 흘렸으나 더 이상 그의 메시지를 진실되게 믿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데 그 하나님의 종인데 그 말씀을 설교했는데 미국의 성적인 죄를 목청 높여 정죄했는데 회개를 촉구했는데 자신이 바로 그 성적인 죄의 종이요 노예였다. 이 죄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 안 끊으면 큰일난다. 전도자로의 생명은 끝장이다. 그러나 그래도 안됐다. 왜요? 그게 죄의 힘이다. 죄는 사람을 사로잡고 지배하며 종으로 만들어 조종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벗어나려고 해도 할 수 없었다. 우리 옛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이 있다. 누가 처음부터 소를 훔치겠나? 누가 처음부터 은행을 털겠나? 누가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겠나? 그러나 죄에 한번 끌려 들어가면 미끄러져서 갈데까지 가고만다. 그 결국이 무엇인가?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죽음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나?
정치적 자유를 위해 독재와 싸운다. 민중데모가 그치지 않는다. 가난 퇴치하기 위해 나라마다 경제경제한다. 질병에서 자유키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며 연구와 신약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범죄퇴치를 위해 경찰증원을 시키고 있다. 그러나 해결됐는가? 산 넘어 산이다.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인다. 왜요? 내 몸에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다. 그 증상으로 배가 아픈데 소화제로 치료하려고 한다. 미열이 나는데 아스피린으로 치료한다. 기침하는데 감기약으로 치료한다. 그러니 치료가 되겠나? 예수님의 처방이다.
암 덩어리와도 같은 죄에서 자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가능한가?
31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말씀과 진리, 진리가 무엇인가? 요한복음 14절 6절,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그래서 36절에 아들이(예수님)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다시 말하면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과 생명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는 이미 그 십자가에서 죽었고 새 생명으로 죄와 상관없는 의의 삶을 살게 됐다.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주의하고 순종해야 한다. 이렇게 붙잡고 순종하고 따를 때 그 말씀이 참으로 죄의 세력과 능력을 파쇠하는 능력의 말씀이 된다. 예레미야 23장 29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의 말씀은 불과 같아서 죄의 세력의 고리를 녹여 끊는다. 그 말씀은 방망이 같아서 죄의 세력을 깨뜨려 정복한다. 우리를 죄의 세력에서 구원한다. 어두운 생활에서 밝고 깨끗한 삶을 살게 한다. 과거 죄된 생활의 고리를 끊고 참 자유를 누리게 한다.
죄가 무엇인가? 창조주 생명의 주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복되게 넘치게 아름답게 하는 모든 자원을 임의로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꼬임으로 하나님 없이 내가 하나님인양 내 자율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생명의 원천 풍성한 하나님의 자원의 원천에서 떨어져 나갔으니 뿌리 뽑힌 풀과도 같은 존재다. 벌써 시들고 말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는다. 하나님을 떠나 내 자율로 살면 부족한 내 자원에 나를 가두고 살게 된다.
어느 목사님이 다이빙을 해서 수족관에서 기를 고기를 잡는 청년을 만났다. 그 청년이 하는 말이다. 수족관 어항에 기르는 고기 중에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상어다. 상어 새끼를 잡아 작은 수족관에 가둬 기르면 제일 크게 다 자라야 6inch밖에 못 큰다. 그러나 바다에 풀어 놓으면 8 feet까지 크게 자란다. 사람까지 공격할 수 있는 큰 상어가 된다.
사탄이 우리를 죄로 유혹해서 하나님 없이 살라, 말씀 없이 살라, 너 스스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부족한 내 자원으로 살게 한다. 그것은 죄의 수족관에 우리를 가두는 것이다.
여러분, 남모르는 죄의 수족관에 빠져 있나? 죄의 수족관이다. 빠져 나와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신앙으로 죄의 고리를 끊고 자유하라. 사탄의 소리에 귀를 막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붙잡고 살라.
모든 자원의 원천이신 하나님, 우리에게 모든 것을(좋은 것) 후히 주시는 하나님, 구하면 주시고 무거운 짐을 다 내게 내려놓으라 하신 예수님, 우리 아버지, 우리 하나님이 아니신가? 답답한 일이 있나? 염려와 근심이 억누르고 있나? 궁핍한 것이 많은가? 지혜가 부족한가? 병들었나? 제한되고 부족한 내 것으로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께 아뢰라. 구하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원의 풍성함을 누리시며 사세요. 죄를 떠나 나를 떠나 하나님 안에서 살아갈 때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하고 사시기를 바란다.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Amen

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Best view at 1280x1024 ◇ 2008ⓒ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