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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소경이 눈을 뜨고
  본문 : 요 9:1-12
RevSuh  2016-02-07 10:22:44, 조회 : 1,496, 추천 :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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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이 눈을 뜨고(요 9:1-12)(072901)

한국교회가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서울 등촌동에 세운 실로암 안과 병원이 있다. 이 안과병원은 다른 병원과 다른 점이 안과 진료만 한다. 또 선교차원에서 세워졌기 때문에 병원의 운영을 환자들의 진료비로가 아니라 선교헌금으로 한다. 더 있다. 이 병원 원목도 장님 목사님이시다. 초대 원장은 이화대학교 의과 대학에서 안과 과장으로 계셨던 장로님으로 은퇴하시고 무보수로 병원을 운영해 나가며 수술도 하셨다. 제가 그 원장님을 만나 뵈니 이런 말씀을 하신다. 목사님! 제가 어떻게 장님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습니까? 수술은 제가 해도 치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치료의 광선을 보내셔서 어두웠던 눈이 뜨게 되지요. 그 당시에 장님 수술비가 30만원이었다. 거기에 준해서 우리교회는 매년 3분이 수술 받을 선교비를 실로암 안과 병원에 보냈고 작년에도 $ 1,000을 보냈다. 모든 소경이 수술로 눈을 뜨는 것은 아니지만 수술로 눈을 뜰 수 있는데 돈이 없는 분들을 선교비로 수술해서 수백 명이 광명을 찾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로 실로암 안과 병원을 세우게 해 주시고 적은 힘이겠으나 우리교회가 그 좋은 뜻에 동참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오늘 본문도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가 예수님을 만나 어떻게 눈을 뜨고 변했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오늘 대부분의 소경들은 선천적이기 보다는 후천적이다. 어쩌면 초등 학교때, 중고등 학교때, 대학생 때 그렇지 않으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뤘을 때 소경이 된다. 어느 때 소경이 되던 모두 고통스럽고 힘들 것이다. 소경이 되어 소경들을 목회하시는 안요한 목사님이란 분이 계신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어학 실력을 인정받아 미8군에 가서 교수도 하시던 분이다.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이였다. 그런데 시력에 이상이 생겼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진찰받고 치료를 받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점차 나빠지던 눈, 어느 날 마침내 캄캄해지고 말았다. 얼마나 괴로웠겠나? 낙담됐겠나? 울고 울고 비관하고 견딜 수 없데 되어 몇 번이나 자살시도를 했다. 캄캄한 세상 살아서 뭘하나? 꿈은 사라지고 소망은 산산조각났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 나오는 소경! 그는 나면서부터 소경이었다. 그러니 어머니 배 안에서부터 지금 청년이 되기까지 아직 한 번도 광명을 보지 못했다. 캄캄한 세상을 20년 이상 살았다. 그런데 자라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자신을 알고 나서 그리고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을 깨닫게 되면서 얼마나 자신의 신세를 비관했겠나? 그 옛날 먹고 살기가 힘들 때다. 오늘처럼 소경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길거리에 나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 벌려 한 푼 주세요 구걸하는 게 전부였다. 이 소경도 다르지 않았다.
8절, 저는 걸인이다. 거지다.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다. 그러니 사람들의 놀림거리요 멸시거리였다. 여름에는 땡볕에서 시달리고 겨울에는 추위에 떨면서 잘 닦지도 못한 얼굴에 땀과 먼지로 뒤덤벅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를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한다. 논쟁거리로 삼는다. 네가 무슨 큰 죄를 지어서 이 모양이 되었나?
오늘 본문이 그것이다. 제자들 나면서 소경된 이 사람을 보면서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 입니까? 자기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이 말을 들은 소경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는가? 그거야 죄라면 부모의 죄겠지! 그러나 유대인들은 어머니 배 안에 있는 아이도 큰 죄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누구의 죄입니까는 저 소경이 큰 죄인아닙니까와 같았다.
그러나 이 소경은 신세타령만 하고 있지 않았다. 신세를 비관하고 자살하려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도 받아 넘겼다. 구걸한 동전으로 겨우 연명하며 살면서도 불평없이 잘 참고 살았다.
여러분! 우리가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어려운 고비가 있다. 건강이 약화되어 병원신세를 자주 진다. 어떤 경우는 병원의 의사가 고치지 못할 불치병에 시달릴 수도 있다. 사업이 안 되고 직장에서 해고되어 아파트 렌트를 못 내게 될 처지에 놓이게도 될 수 있다. 이민자의 꿈은 이미 사라진지가 오래고 고국 떠난 것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 아니 다시 역이민하려는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기대했던 자녀들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될 수도 있다. 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도적을 맞고 사고가 크게 날수도 있다.
하나님을 믿는데 왤까? 인생에 여정이라면, 신자의 삶이 천국을 향한 순례라면, 발을 헛디뎌 발목이 삘 수도 있고 햇볕이 따가워서 일사병으로 의식을 잃을 수도 있고 피로와 염려가 가중되어 중병에 걸릴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불평하고 원망하고 신세타령하고 후회하고 낙심할 것인가? 왜 내게 이런 일이 옵니까? 하나님을 원망할 것인가?
여기 본문에 날 때부터 소경이 된 자 고칠 가능성이 없다. 눈을 뜨게 할 수 없다. 사람이 어찌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그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소경된 것은 누구의 죄도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 일! 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 소경 얼마나 놀랐겠나? 용기가 됐겠나? 얼마나 큰 힘을 얻었겠나?
여러분, 우리에게도 그 하나님이 계신다. 그 하나님은 시편 121편 2절에서 천지를 지으신 분이시다. 그 분이 우리를 도우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린도후서 4장 7절처럼 질그릇같이 연약할지라도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우리에게 있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는 있으니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 답답한 일, 고난과 어려운 일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실 큰일의 기회다. 그러니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자.
어려운 일 당할 때 허둥대고 세상의 방법찾아 이리저리 방황하지 말고, 조용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엎드러져야 한다.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을 앙망하고 기다리자.
예수님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이루실 큰일을 기대한 소경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가? 그 소경을 눈뜨게 해 달라 요청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 오셔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셨다. 그리고 실로암 못가에 가서 씻으라 하셨다.
세상의 빛으로 보냄을 받으신 예수님 캄캄하게 살던 소경에게 오시어 눈에 진흙을 이겨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보내셨다. 예수님의 명령을 들은 소경 보세요.
예수님께서 실로암 못에 가서 네 눈을 씻으면 보게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저 가서 씻으라고만 하셨다. 또 실로암 못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앞이 안 보인다.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은 아마도 어떻게 되는지 보자 하고 지켜 보고만 있었을 것이다. 누구도 그를 도와서 실로암 못으로 데리고 간 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 했다. 순종했다. 실로암 못을 찾아 가느라 부딪치고 넘어지고 그를 보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소경주제에 비웃었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구걸이나 할 것이지 무슨 기적을 보겠다고 불쌍한 거지! 동전 한닙이 낫지.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이르시되 실로암 못가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갔다. 씻었다. 그리고 밝은 눈으로 왔다. 소경은 예수님의 말씀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정말 씻으면 낫겠습니까? 누가 나를 데려다 줄겁니까? 넘어져 다치면 어쩌지요? 이유가 없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에게 주신 명령이었고 그 명령에 순종했더니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보게 됐다. 나면서부터 소경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아예 새롭게 성한 눈을 창조해 주셨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셨다.
여러분, 여러분의 어려운 문제가 무엇인가? 나면서 소경된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인가? 설사 그렇더라도 그 문제로 고민하고 염려하며 낙심하고 실망하고 누구를 원망하거나 자포자기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께서 능치 못한 일이 있으시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어려움을 허용하신다. 능력이 심히 크신 하나님께서 그 어려움이 변해서 어려움이 없을 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일을 우리가 할 수 있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당한 어려움으로 인해서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지 주님의 뜻을 찾고 물어야 한다.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실로암 못가에 가서 씻으라 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말씀해 주실 것이다. 고난 중에 회개하라 하실지 모른다. 참고 인내하라 하실지 모른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고 하실지 모른다. 먼저 영혼을 생각해라. 더 성실하게 부지런하게 기쁨으로 일해라 하실지 모른다. 네 사업을 바꿔라, 네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해라. 자신을 바꿔보라 하실지 모른다. 그러면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하고 따지지 말고 예 하고 순종하세요. 그러면 소경일 눈을 뜨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어려움은 극복될 것이다. 승리도 하고 성공도 하게 될 것이다. 태어나 얼마되지 않아서 50도 정도로 허리가 휘어지는 척추만곡증에 걸린 아이가 있었다. 어려서 허리가 휘었기에 활동하는데 크게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또 몸이 아픈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10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다른 사람들은 허리가 반듯해 걸을 때도 똑바로 서서 걷는데 그는 허리가 휘어 구부리고 다니게 되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이 비참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왜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가? 어째서 누구의 잘못으로 나는 이렇게 곱추처럼 허리가 휘게 되었는가? 왜 나는 곧바로 서서 걷지 못해 나의 웃음거리가 되나? 왜 내가 남의 논쟁거리가 되고 다 나를 피하는 문둥병자 취급을 받아야 하나?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친구가 없는가?
그런데 하루는 그의 집에 목사님이 심방을 오셨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제가 죄가 많아서 자식이 저 모양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아닙니다. 아드님이 허리가 굽게 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입니다. 그 아들이 방에서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방망이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일이 있다고! 하나님의 일을 위한 기회가 된다고... 그는 목사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으로 받아졌다. 허리가 휘어 꼽추처럼 생긴 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일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내가 할 하나님의 일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던 중 그의 할 일을 하나님의 일을 발견했다. 나처럼 지체장애자가 되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들을 조롱거리, 논쟁거리로 만드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에게 예수를 전했다. 그들에게 당신의 고난에 큰 뜻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건강한 사람이 할 수 없는 큰 일을 우리로 하게 하신다며 용기를 줬다. 불구자는 없습니다. 다만 내가 불구자라는 생각이 있을 뿐이다. 우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건강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까지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는 크고 보람된 일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도 오늘 내 고난과 문제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일을 위한 계기와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한다.
소경이었던 사람이 실로암 못가에 가서 눈을 씻고 와 눈을 뜨자 그를 알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의견이 갈렸다. 그 사람이다. 아니야. 소경이 어떻게 눈을 떠! 바리새인들은 소경이 눈을 떴는데 예수가 했다. 그런데 일할 수 없는 안식일에 소경의 눈을 뜨게 했다. 안되지 두고보자. 그 부모들! 눈을 뜬소경이 그들의 아들임을 인정했다. 전에 소경이었고 이제는 눈을 떴다. 그러나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알면서도 모른다고 했다.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면 출교시키기로 했기 때문에 두려웠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듣고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예수님은 하나님만 하실 일 하신다.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요 오실 메시아이시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같은 종교지도자들이 두려워 모두 쉬쉬했다.
그러면 눈을 뜨게 된 소경은 어찌했나? 누가 네 눈을 뜨게 했느냐 물으니 11절, 예수라는 이가 눈에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가에 가 씻으라 하시기에 씻었더니 보게 됐소! 예수님이 고쳤소. 그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했고! 예수님을 증거했다. 24절을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다시 소경되었던 자에게 묻는다. 예수는 죄인이야 누가 널 고쳤느냐? 그가 죄인인지는 모르나 하나님께서 죄인의 요구를 듣지 않으시고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 압니다. 예수님은 의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다. 예수님이 다시 그 소경되었던 자 찾아 가시었다. 그리고 네가 인자를 믿느냐?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예수는 당신 자신에게 인자란 말을 쓰실 때는 주로 십자가에 돌아가실 것을 염두에 두신 때였다. 그러니까 네가 인자를 믿느냐? 십자가에 죽음으로 네 죄를 사하실 분임을 믿느냐? 그 인자는 바로 나니라! 소경되었던 자 내가 그 인자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소경은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육신의 눈이 떴다. 또 영적인 눈도 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메시아 구주 예수님을 보게 됐고 믿고 구원받게 됐다. 고난도 유익이었다.
여러분! 로마서 8장 17절대로 우리가 자녀이면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다. 그러나 8장 28절대로 그 고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성도의 고난은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 고난도 유익이다.
하나님을 경외한 성도 욥을 보세요. 10자녀가 한꺼번에 다 죽었다. 모든 재산 다 잃었다. 아내까지 그를 버리고 떠났다. 그의 몸은 성한 데가 없이 악창으로 시달려 재 가운데서 기왓장으로 굵고 있다. 조롱거리가 됐다. 친구들은 위로한답시고 와서 그의 불행을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모든 고난의 결국이 무엇인가? 욥기 42장 5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한 욥에게 고난을 귀로 만들었던 하나님! 눈으로 보게 됐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축복하셨다. 그리고 전보다 자녀도 재산도 종도 영예도 더해 주셨다.
여러분! 우리가 천국순례자라고 하면 고난은 천국 길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천국의 영광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니 어떤 고난이 내게 있든지 낙심하거나 불평하거나 실망하지 말자. 내 고난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세요. 그러면 본문의 소경처럼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고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찾아 순종하심으로 본문의 소경처럼 하시어 하나님의 역사도 축복이 되고 그 축복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선하심을 많은 사람들에게 간증하실 수 있는 아름다운 기회가 되시기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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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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