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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선한 목자 예수님
  본문 : 요 10:1-15
RevSuh  2016-03-22 23:41:22, 조회 : 2,044, 추천 :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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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 예수님(요 10:1-15)(081201)

시리아의 통치자 안디오커스 4세는 주전 167년 예루살렘을 침략한다. 성전을 더럽히고는 자기 방식대로 예배를 바꾸고 자기 생일에 맞춰 매달 25일은 성전에서 이방제사를 드리게 한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자기 종교를 택하든지 죽음을 택하든지 양자택일을 하게 하였다.
그런데 전쟁이 갑자기 발발하자 안디오커스 4세 황제가 없는 틈을 타서 마카비를 중심으로 헬라 정책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혁명을 일으켰다. 그 결과 평화 협정이 체결되고 성전을 청결케 하고 제단을 새로 쌓아 주전 164년에 성전을 재 봉헌하게 됐다. 유대인들은 이 절기를 하누카라고 하며 성경에서는 수전절로 소개한다.
이런 배경에서 여기 삯군 목자는 당시 헬라 세력과 야합한 제사장들과 정치 지도자들을 가리켰다. 반대로 선한 목자는 마카비 형제들과 힘을 합해서 싸우다 희생된 전상자들을 상기시킨다.
이런 배경의 수전절에 예수님께서 참 목자로 자신을 선포하셨다.
그러면 참 목자는 누구인가?
예수님은 먼저 참 목자와 대조되는 삯군 목자에 대해 말씀하신다. 삯군 목자와 반대가 선한 목자가 아니겠나? 삯군은 누군가? 절도요 강도다. 왜 그들이 절도요 강도인가?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강도, 절도처럼 담을 넘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서 양의 문은 무엇인가?
7절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그러니까 예수님은 선한 목자도 되시고 양의 우리의 문도 되신다. 그렇다면 양의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절도와 강도는 누군가?  
그러면 그들은 누군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목자는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이었다. 또 백성의 어른들인 장로였다. 그렇다면 예수님보다 먼저 온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모두 삯군이고 강도란 말인가? 그것은 아니다. 여기서 참과 거짓의 식별은 양의 문이다. 예수님과의 관계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보다 먼저 온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 아브라함, 모세,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과 모든 참 선지자들은 절도나 강도가 아니라 선한 목자였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실 것을 내다보았고 그가 오셔서 이루실 구원을 인해서 기뻐하였다. 요한복음 8장 56절에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했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여기서 삯군, 절도, 강도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자다. 예수님이 하신 일과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믿으려는 백성들까지 믿지 못하도록 출교시키고 핍박하고 위협했던 유대의 정치 종교지도자들이다. 또 거짓 선지자요 스승이다. 이렇게 절도요 강도같은 지도자 거짓 선지자, 거짓 메시아, 거짓 예수, 적그리스도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초대교회에는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있었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입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시나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았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했다. 요한일서 2장 22절,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슨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라고 말씀한다.
근래에 세계 가정 연합으로 이름을 바꾼 통일교 교주 문선명씨는 내가 재림주다! 예수님은 결혼을 하시지 않고 십자가에 죽었으므로 우리의 영혼만 구원했을 뿐 육은 구원하지 못하셨다. 그러니 자기를 믿어야 육신도 구원받는다. 예수님 대신 내가 구세주다. 나와 내 아내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한다. 적그리스도요 거짓 목자다.
전도관의 박태선씨는 지상천국을 이룬다고 해서 신앙촌을 만들었다. 어리석은 많은 사람들이 거기 들어가려고 집 팔고 밭 팔고 재산 바치고 신앙촌 공장에 들어갔다. 거기서 손발이 다 닳도록 일을 했다. 그 덕분에 그는 재벌이 됐었다. 모두 삯군이다. 거짓 선지자다. 예수 이름을 팔아 자기 배를 채우는 자는 거짓 선지자다.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삯군 목자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목자이신가?
고대 세계에서는 생업이 주로 농사가 아니면 목축이었다. 팔레스틴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어서 유목민이 살기에 적합했다. 따라서 양이나 염소를 많이 키웠다. 양을 키우다보니 자연히 양을 해치는 동물이나 훔쳐가는 도둑이 많았다. 따라서 양을 보호하기 위해 양우리를 만든다. 지금도 이스라엘에는 자연 동굴이 많다. 동굴 앞에 돌로 울타리를 쌓아 동굴까지 닿게 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양떼를 동굴 밖 육안에서, 폭풍우나 날씨가 차면 동굴 우리 안에서 지키고 보호했다.
동굴이 없으면 우리를 지었는데 돌을 쌓아 담을 만들고 비바람을 피하도록 지붕을 만들어 덮었고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고 바깥쪽에 넓은 울타리를 하나 더 세우고 벽쪽으로 강도나 다른 짐승이 들어오지 못하게 날카로운 가시덤불을 세웠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양떼를 우리에서 이끌어 낸다. 여러 목자의 양들이 한 우리 안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목자들이 와서 각각 자기 양떼를 불러냈다. 이것이 선한 목자가 하는 일이다. 양 우리에 양떼를 지켜 보호해 주며 아침에 풀을 뜯기기 위해 자기 양떼의 이름을 불러 이끌어낸다. 이렇게 하기 위해 목자는 양의 외모에 따라  이름을 붙인다. 당나귀 귀, 왕눈이, 뚱뚱이, 홀쭉이... 이렇게 선한 목자는 양을 안다. 자세히 안다. 세밀하게 안다. 특징 따라 이름을 지어 줄 정도다. 양이 지능이 있다면 얼마나 있겠나? 그러나 목자가 자기 이름 부르는 것을 그 음성을 알아듣는다. 목자와 양은 이렇게 가깝게 서로를 잘 안다.
시편 100편 3절에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자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소유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친히 기르시는 양처럼 자녀처럼 돌보신다. 우리의 궁핍을 아신다. 구하기 전에 아시고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 구하기 전에 벌써 주신다. 날마다 식탁 앞에서 주님 양식 주세요 기도하나? 주셔서 감사히 먹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지 않는가?
다윗은 이 진리를 경험으로 깨닫고 나서 이렇게 고백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도다. 선한 목자 예수님은 양된 우리를 인도하신다.
예수님은 어떤 목자이신가?
이스라엘에 가 보면 이곳 LA의 날씨와 비슷해서 여름엔 거의 비가 안 온다. 메마르다. 갈릴리 호수에서 흘러내리는 요단강 물도 냇물 같다. 그런데 거기서 물을 끌어 올려서 농사도 짓고 과수도 재배한다. 그러니까 스프링클러 시스템이 LA 농장과 같다. 그러니까 지금은 목축보다 농사가 주업이 됐다. 지금은 가끔 베두인 목동들만이 양을 치는 것 같다. 따라서 그들은 10여 마리 정도의 양이나 염소를 데리고 풀이 있는 곳을 골라 이동한다.
그런데 양은 눈이 어둡다. 멀리 보지 못한다. 그러니 앞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모른다. 양은 뿔이 없다. 싸울 무기가 없다. 양은 뒷둥거리며 잘 달리지 못한다. 그러니 양은 목자없이 못 산다. 그래 선한 목자는 양우리에서 양을 불러 낸 후에 앞서 간다. 그러면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라간다.
선한 목자는 양을 인도한다. 어디로 인도하나? 풍성한 꼴로 맑은 물가로 인도한다. 목자였던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신다고 했다. 본문 9절이 그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양된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시고 들어오고 나가며 풍성한 꼴을 얻게 하신다. 그렇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우리들 모두 길 잃고 방황하는 양처럼 하나님을 멀리 떠나 궁핍한 내 자원, 세상의 자원으로 살려고 바둥댄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나 중심, 세상 중심, 육신 중심의 삶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로 살아갈 뿐이다.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다.
만물을 지으시고 만유의 주인이신 우리의 영과 육의 풍성한 삶의 모든 자원이 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시다. 또 그 하나님께로 가는 길도 되신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방편이 무엇인가? 말씀이다. 양된 우리는 말씀 속에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양의 우리와도 같은 교회를 들어오고 나가면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자처럼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그러면 목자이신 주님께로 인도된다.
시편 1편 3절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항상 그 행사가 형통하게 된다.
여러분, 아침마다 일어나시면 신문을 보기 전에 다른 일을 계획하기 전에 주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성경을 펴서 읽고 묵상해 보시라. 시편을 펴서 천천히 읽으세요. 그러면 말씀 속에서 좋으신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나를 기르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감사가 절로 생긴다. 하루가 축복스럽다. 시편 105편대로 말씀이 우리 발에 등이 되고 내 길에 빛이 되시니 실족하지 않는다. 주님이 내 삶을 인도해 주신다. 매일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따름으로 목자의 인도를 받으시는 형통의 삶을 사시기 바란다.
예수님은 어떤 목자이신가?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다. 어떻게요? 17절, 나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데 다시 얻기 위하여 버린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양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영원한 생명 죽어도 다시 사는 생명을 주시기 위해 다시 사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내 영혼의 목자로 모신 자, 믿는 자는 죄사함받고 구원받는다. 28절이 그것이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절,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양된 우리는 하나님 손에 보호받는다. 사단이 환난이 핍박이 칼이 우리의 구원, 영생을 빼앗지 못한다. 확실한 구원이다.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 우리 구원은 안전하다.  
그러면 이런 축복을 받은 우리는 어찌 살 것인가?
우리는 무엇보다도 에베소서 1장 6절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미하는데 바쳐야 한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타락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외아들을 대신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도록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 목자가 되시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지켜 보호하시고 필요를 채워 주시며 풍성한 삶, 새 생명으로 살게 하신 하나님, 그 주님께 경배요 찬양이요 예배다.  주님이 내 목자가 되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음을 경험한 성도는 내 집이 어디에 있건 주일 예배당을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이 가벼울 것이다. 그가 드리는 예배는 생명이 넘치고 은혜가 넘치며 감격과 감사와 찬양이 하늘 보좌를 움직이게 될 것이다.
여러분, 우리 모두 이런 목자를 만나는 양처럼 기쁨과 감격으로 하나님을 만나 주일마다 예배로 목자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양처럼 주님의 보호와 인도와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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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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