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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
  본문 : 요 11장 1-11
RevSuh  2016-05-20 01:17:22, 조회 : 2,567, 추천 :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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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요 11:1-11)(090201)

Edger Jackson은 어떻게 사람들의 필요성을 향하여 설교를 하는가 라는 책을 썼다. 거기서 조사를 통해 미국 중산층 신자를 대상으로 한 청중들의 필요성을 이렇게 분석했다.
500명의 교인 중에 적어도 100명은 최근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지 또는 친구가 사망하는 경험을 했다. 결혼한 사람의 ⅓은 결혼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500명 중에 절반은 학교나 직장, 가정 또는 공동체에서 잘 적응을 못해 만족감이 없다. 술이나 약물중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으며 100여 명은 죄의식으로 심리적 육체적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다. 또 소수는 동성연애 문제로 고민한다고 하였다.
이 분석은 미국의 중산층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만약 우리 이민자를 대상으로 했다면 훨씬 더 그 문제가 복잡하고 심각했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오늘 본문 말씀도 우리 누구에게나 부딪칠 수 있는 고통의 문제를 다룬다.
Ⅰ. 나사로가 병들었고 죽었다. 그러면 나사로는 누군가?
나사로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말이다. 그의 집은 예루살렘에서 5리 거리인 베다니였는데 감란산의 남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실 때에는 으레 이 나사로의 집에 자주 들려 대접을 받으시고 쉬셨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11절에서 우리의 친구라 하셨다. 나사로는 12제자와도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다. 또 그의 누이동생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특별히 존경하고 사랑해서 항상 대접하고 말씀을 경청해서 듣곤 했다.
따라서 3절에 나사로가 병들자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다고 하였다. 무엇을 말씀해 주나?
예수님의 친구도 사랑하시는 자도 병들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 뿐인 외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므로 우리를 죄와 그 무서운 심판에서 구원하셨다. 그 뿐인가?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친자녀처럼 천국을 상속하게 하셨다. 로마서 5장 8절대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나사로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요 예수님이 생명까지 버리시고 구원하신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다.
그렇다면 우리도 나사로처럼 질병으로 고통당할 수 있다.
오늘 우리에게 제일 크고 무서운 병이 무엇인가? 어떤 질병인가? 질병 중에서 암이다. 우리 성도 중에 그 암으로 고생하시며 투병하시며 그 암과 싸워 이기신 자랑스러운 성도님이 계신다. 지난 중에 암 때문에 위를 절단하시고 암과 싸우시는 성도도 계신다. 앞으로 수술을 대기하고 계신 성도도 있다.
암만 큰 병인가?
지난 화요일 나성성부 교회를 담임하시는 김승곤 목사님 사모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어머님 양력을 소개한 아드님이 어머님은 당뇨와 고혈압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연세가 높으신 분들은 대부분이 혈압이 높으시다. 또 적게나 크게 당뇨를 앓고 계신다. 그밖에도 간, 신장, 심장, 호흡기 같은 우리 몸에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우리를 괴롭힌다. 왜요? 구원을 받았지만 사랑하시지만 죄와 그 결과의 불행이 상존하는 세상에서 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천국에만 아픈 것이, 질병이 없다고 하셨다. 또 있다. 하나님께서 80-90년 살도록 우리 몸을 만드셨다. 그것이 우리의 수명이다. 그러니 병으로 우리의 몸이 그 수명에 마쳐져서 누구나 그 나이가 되면 죽는다. 그러니까 병드는 것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나만 당하는 고난이 아니다. 역시 죽는 것도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데, 주님이 사랑하시는데 사랑하시는 자녀, 사랑하시는 신자에게 병을 허락하시는가? 왜 건강이 아니고 병인가? 바울 사도를 보라. 그는 병을 고치는 능력을 은사로 받았다. 수많은 사람을 고쳤다. 사도행전 19장 12절에 보면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마귀도 나가더라. 그런데 바울 자신은 병으로 시달렸다. 그래서 의사 누가를 대동하고 다녔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는가? 남의 병은 고치는데 자신은 병으로 고생한다.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으셔선가? 아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하셨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아서인가? 아니다. 누구보다도 복음을 위해 생명을 걸고 일했다. 그런데 왠가?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서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를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다. 성도에게 질병의 가시를 허락하시는 것은 사랑하시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사랑하시기에 자고하지 않도록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겸손하게 하신다. 여러분에게도 그럴 것이다. 겸손하라고.... 그러니 낙심하지 말라. 또 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선 바울은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병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가 나약한 인간뿐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 능력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연약한 자신을 믿고 살지 말고 강하신 하나님만 믿게 하려하심이다. 이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고 세상의 즐거움도 적지 않으나 그럼에도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다. 참된 안식과 평안과 기쁨이 없다. 질병과 같은 고난을 통해 세상 대신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소망 중에 살게 하시기 위함이다. 또 있다. 질병의 고난을 경험하게 하심으로 고난당하는 이를 이해하고 용기를 주며 도울 수 있게 하신다.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다. 오늘 본문 4절이 바로 그 말씀이다. 나사로의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Ⅱ. 나사로가 병드니 어찌 했나? 그 누이들이 예수님께 알렸다.
2,000년 전 예기다. 나사로가 무슨 병에 들었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그런데 나사로는 결혼해서 아내나 자녀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젊었다. 그런데 결국 그 병으로 죽었다. 심상치 않은 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이들이 건강했으니 전염병은 아니었을 것이다. 요즈음 고치기 힘든 암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이에 죽는 암이 있겠나?  그러니 그때 그 병을 고친다는 의사나 약이 있었을 것이다. 없었다고 해도 있다고 선전하는 이들이 왜 없었겠나? 그런데 두 누이들이 부모도 없이 하나 뿐인 오라버니가 병들었으니 얼마나 애타했겠나? 그래 의사도 찾아가고 약을 구하노라 얼마나 동분서주했겠나?
게다가 예수님은 이미 유대지역을 떠나고 안 계셨다. 그런데 그럼에도 마르다와 마리아는 의사를 부르러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약을 사러 나서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병에 시달리는 오라버니를 바라만 보고 있지도 않았다.
3절, 나사로가 병들자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무슨 말인가?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습니다. 속히 오셔서 고쳐 주십시오.
그들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예수님은 유대 지방을 떠나 가셨지만 반드시 돌아오셔서 오라버니를 고쳐 주실 것이다. 사랑하시는 자가 아닌가? 예수님은 무슨 병이든지 고치실 수 있음을 능력을 믿었다. 거기 의심이 없었다. 그 믿음으로 사람을 보내 예수님께 오라버니가 병든 것을 알렸다.
신자도 병든다. 신자도 그 병으로 죽기도 한다. 신자가 병들어 의사에게 가고 병원에 가고 약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님께서 의사와 병원과 약을 통해서 우리의 병을 고치게도 하신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신자다. 수술하는 의사 중에는 기도하고 수술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여기 이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리가 무엇인가? 먼저 예수님께 알려라. 하나님께 알려라. 물론 하나님께서 모르시겠나? 물론 아신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병든 것, 그 병으로 죽을 것, 그러나 다시 살 것까지 다 아시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예수님께 알렸다. 고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이 필요했다. 이것이 믿음이고 불신자와 다름이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앙을 지녀야 한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이다. 우리는 질그릇이다. 쉽게 깨어지는 약한 존재이다. 따라서 능력의 심히 큰 것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니 병들었을 때 약할 때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의사는 어떤 병을 고친다. 그 어떤 병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김장로님 사위 되시는 강 장로님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옛날 같으면 어디 상상이나 하겠나? 최고의 의술을 자랑하는 미국 유명한 병원 중에서도 간 치료에 대해서는 권위인 UCLA 대학 병원에서다. 아내의 간을 잘라 이식했다. 며칠 경과가 좋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간을 구해야 한다. 수술한 병원, 의사가 책임감을 느껴 백방으로 맞는 간을 구해 재수술했다. 결과가 좋아 걷기까지 했다. 그러나 또 급작스럽게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의사들이 헤리곱터를 타고 절차도 다 따르지 않은 채 급히 간을 구해 밤새워 수술했다. 세 번째 수술이다. 의사가 병원이 사람이 현대 의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마지막이다. 기다리고 체크해 보는 것만 남았다. 무엇을 가리키나? 낫게 하시는 분은, 치료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복음을 전했을 때 불신자가 그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고 신자로 성장케 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바울은 이렇게 소개한다. 전도한 바울은 심었다고 하였다. 가르친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었다. 그렇다! 간을 구하고 수술을 하는 것은 의사다. 그러나 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어느 병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되더라도 우리 몸을 째고 수술하는 것은 의사지만 낫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왜요? 능력의 지극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다. 의사가 못 고치는 병으로 고생할지라도 그래서 답답할지라도 낙심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낫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은 의사보다 더 지혜로우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만드셨으니 의사보다 더 잘 아신다. 고장 난 우리 몸을 만드신 분이 못 고치시겠나?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엊그제 신문을 보니 이런 예기가 났다. 전라도 어디에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이가 약을 먹었다. 아버지가 알고 20만원을 구해 급히 병원으로 옮겼다. 큰 대학병원으로 가라. 큰 대학병원으로 갔는데 병원에서 치료받고 돈 안 내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 돈을 먼저 내야 치료해 준다. 그래서 없는 돈 50만원 구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겨우 구해오니 극약 먹은 환자 응급실에서 10시간 이상 방치됐고 결국은 죽고 말았다.
예수님은 그런 병원이나 의사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하셨다. 그러니 인간 의사도 믿는데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믿는다면 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능력이 심히 크신 하나님! 모든 병을 고치시는 주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예수님께로 가는 길!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항상 열려 있다. 누구도 막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하나님께는 통화중이 없다. 언제나 예수님이 직접 받으신다. 들으신다. 응답하신다. 물론 응답의 방법이 한결같지는 않아서 오늘 본문의 나사로의 경우처럼 기다려라고도 하신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든 소식을 듣고 이틀을 더 유하신 후에야 유대로 베다니로 오셨다. 즉각적인 응답은 아니었다. 그러니 인내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가 바로 그것이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구하다가 그만 두면 안 된다. 찾으라 찾다가 그만 두지 말라.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큰 병에 걸렸다고 낙심하지 말라. 병원이 의사가 못 고친다고 실망하지 말라. 문제를 안고 고민하지 말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쉬게 하리라 약속하신 주님, 예수님께 나아가라. 기도하라. 문제를 알리고 맡기라.
Ⅲ.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나사로는 이미 앓다가 죽었다. 장사지냈다. 무덤에 장사됐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어서 나사로 죽은 것을 개의치 않으셨다. 21절, 마르다가 예수님께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2절, 마리아도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왜 이제 오셨습니까? 죽었으니 이젠 끝난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통분히 여기시며 나사로의 무덤을 찾아 가셨다. 그를 어디 두었느냐? 39절, 죽은 지가 나흘이 되셨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어라. 그리고 나사로의 무덤을 막은 돌을 옮겨 놓게 하시고는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나사로가 44절, 수족을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생명을 창조하신 주께서 나사로의 생명을 다시 돌아오게 하셨다. 지금 베다니에 가면 나사로가 다시 살지 못했다면 산 것을 기념할 교회당을 지었겠나? 나사로가 산 것은 사실이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마르다, 마리아, 조문 왔던 많은 유대인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을 보고 놀랐다. 충격을 받았다.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을 믿으니라. 나사로의 병이 죽음이 예수님의 역사로 살아나 하나님께 영광이 됐다. 많은 사람이 구원받게 됐다. 병든 나사로가 나았대도 기쁘지 않았겠나?  그런데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으니 얼마나 놀랐겠나? 얼마나 기뻤겠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어떤 때는 지체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생각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이루어 주신다.
38년 의사로 봉직한 분이 담낭염증으로 수술을 받고 합병증으로 한 주간 병원에서 입원해 있으면서 느낀 점을 썼다. 그 중에 하나다. 내게 가장 큰 위안과 힘이 된 것은 24년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입니다. 고통 중에 그 신앙이 나로 살든지 죽든지 주님 뜻대로 하소서 하게 했습니다. 생사나 사후 운명에 두려움이나 흔들림이 없습니다.
중병 중에 있는 성도님들이여! 이런 신앙을 가지시기 바란다. 설사 내가 이 병을 이기지 못한대도 우리에게는 천국이 있고 주님의 영접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수술을 받으시고 의사의 치료도 받으시라. 그러나 죽은 나사로를 자는 것처럼 보시고 죽은 자를 잠을 깨우듯 살리신 예수님, 능력이 심히 크신 하나님, 내 병을 고치시는 하나님을 더 바라고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세요. 그리하여 나사로의 기적을 경험하시기 바란다. 질병도 고난도 기도로서 영광을 받으시는 기회로 만드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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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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