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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본문 : 요일 3:1-9
RevSuh  2008-10-09 21:02:29, 조회 : 3,231, 추천 :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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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일 3:1-9)

  오늘 우리는 미국에서 사니까 다른 사람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영어 이름을 가지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니까 두개의 이름이 있는 셈이다. 우리 신자에게도 이름은 하나가 아니다. 우선 믿는 자, 신자란 뜻이 있고 좀더 분명하게는 그리스에게 속한 자라는 크리스천이란 이름이 있다. 그밖에 성도, 제자, 형제가 있다.

오늘 본문도 예수를 믿는 우리의 이름에 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름은 그리스도인의 이름 중에 가장 고귀하고 복된 이름이다. 이 이름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녔던 영적 이름과는 정반대이다. 그 이름이 무엇인가?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 이름은 무엇이었는가? 그 이름은 부르기도, 듣기도, 끔직하다. 그래서 이름은 이름이지만 누구도 부르지도, 불려지기도 원치 않는다. 그것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그 이름이 바로 마귀의 자녀라고 한다. 영적으로 우리는 예수를 믿기 전에 예외없이 마귀의 자녀였다. 그러면 마귀의 자녀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왜 마귀의 자녀였는가? 8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고 하였다. 마귀는 원래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선한 천사로 하나님의 수종자였다. 그러나 교만해져서 범죄하므로 하늘 하나님의 보좌에서 쫓겨난 자다. 마귀는 최초의 범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창세기 3장에서 그는 인류의 시조 하와를 속임수로 꼬여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여 타락하게 만들었다.

신약의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시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나가사 40일을 밤낮 금식하시어 주리셨을 때 마귀가 나타났다. 그리고 예수를 세 가지로 시험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내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을 다 주겠다. 마귀는 먹는 것으로, 인기로, 값싼 영광으로 예수를 시험했다. 예수님은 모두 말씀으로 그 시험을 물리치셨다.

마귀는 그의 이런 역할 때문에 이름이 다양하다. 데살로니가전서 3:5에 마귀는 시험자라 했고 요한계시록 12:10에서는 고소자하는 자라 하였다. 또 요한복음 8:44은 거짓의 아비라 하였다. 이렇게 마귀는 여러 가지 속성을 지닌 자로 우리를 유혹하여 범죄케 만들어 우리 영혼을 망하게 한다.

그런데 예수를 믿기 전에는 우리는 마귀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있었다. 마귀는 우리를 자기 뜻대로 구속하고 웬만한 일은 죄가 아닌 양 행하게 하였다. 그러다보니 죄가 습관이 되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죄를 짓고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죄의 종이 되게 한 것이다. 이것은 결코 적은 일이 아니다. 4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마귀는 불법자다. 따라서 지은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계속 짓는 자는 마귀의 자녀가 된다. 마귀를 따르기 때문이고 닮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귀의 자녀가 됐다는 것은 마귀에게 속하여 같은 운명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마태복음 25:41에서 마귀와 그 사자들의 운명은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 마귀의 자녀된 죄인들도 함께 영원한 불의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운명이 된다.

이 얼마나 무섭고 불행한 운명인가? 성경은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 사람들, 다시 말하면 부름을 거부하고 지은 죄의 용서를 받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요 마귀의 자녀요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다고 불신자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마귀의 자녀라고 불러선 안 된다. 그 이름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로 알고 믿는 신자만 알 수 있는 영적 이름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그 누구도 내가 마귀의 자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신자에게 당신은 마귀의 자녀요 했다가는 뺨을 얻어맞을 수도 잇다. 그래서만이 아니다. 저들 중에는 예수를 믿고 마귀의 자녀라는 불행한 이름을 벗을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들을 볼 때 다만 구원받지 못한 전도의 대상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예수를 믿기 전 내 상태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할 죄인이요 마귀의 자녀였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이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어떻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본문 1절이다. 보라,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가?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는 사랑하면 먼저 남녀간에 이성적인 사랑을 생각하기 쉽다. 가족간의 사랑을 생각하기 쉽다. 친구간의 사랑을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사랑은 그런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다. 아가페의 사랑이다. 인애의 사랑이다.

그 사랑이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 희귀한 사랑이다. 아들을 내어주신 사랑이다. 아들을 포기하셨다. 그것도 많은 아들 중에 한 아들이 아니다. 독생자요 하나 뿐인 외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하나님이신데 그 아들로 사람이 되게 하셨다. 창조주를 피조물이 되게 하셨다. 하늘 영광을 포기케 하시고 죄악 세상의 불행과 부끄러움을 짊어지게 하셨다. 그리고 죄없는 아들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우시어 의인이신데 죄인으로 정죄받게 하시고 그 죄값을 그에게 물으시어 십자가에 심판을 받게 하셨다. 심판자가 심판을 받으시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죄인 대신 심판하시고 죄인된 우리를 살리셨다.

우리의 머리로, 이성으로 도저히 깨달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사랑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누구든지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마귀의 자녀의 이름 대신에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의 새 이름을 주신다. 그리고 심판의 자리에서 구원하시어 영광스런 하나님의 아들의 복을 누릴 수 있게 하신다.

받을 자격이나 가치가 없는 죄인된 우리에게 이 얼마나 과분하고 큰 사랑인가?
하나님의 이 사랑으로 신분이 변했다. 운명이 바뀌었다. 이제 창조주 하나님이 온 우주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우리는 미국시민으로 정부의 보호와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불완전하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미국 정부 그러나 우리를 사고에서, 천재에서, 범죄에서, 질병에서, 테러에서 지켜주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산다는 것은 염려와 불안을 오가며 살지 않나? 성공해서 잘 사는 사람들을 보세요. 어찌 사나? 부자는 평범한 사람보다 걱정이 더 많고 내일이 더 불안하다. 대통령도 그래요.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은 모델도 그래요. 큰 기업인도 그래요. 세계적인 운동선수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 게임에서 이길 수 있을까 내일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며 불안을 안고 산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아버지시다. 네 모든 염려, 불안을 다 내게 맡겨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께,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든 다 아뢸 수 있다. 모든 염려, 내일이 불안한가? 아버지를 찾으세요.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는 문제가 안 된다.  하나님을 부르고 나면 하나님이 문제를 맡아 주신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망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절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하나님의 아들된 우리의 운명은 무슨 말인가? 영원한 하늘나라를 상속받는다. 그뿐이 아니다. 이제 주님이 영광중에 이 땅에 다시 오실 때는 우리의 모습이 변하여 주님처럼 될 것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어가면 빛나던 얼굴은 어두움이 드리워지기 시작해서 내가 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게 되고 만다. 게다가 이전처럼 질병으로 우리의 육신은 점점 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활동하기가 부자유스럽게 되고 만다. 그래도 미국에 사니까 마지막에는 양로병원도 있고 재활원의 혜택도 받지만 그것이 어디 원하는 삶인가?  엊그제 어느 집사님 아버님이 계신 양로병원에 들렸다. 그런데 간호원과 보조원들이 그 장로님의 몸을 깨끗하게 닦아 드리고 약을 발라 드리기 때문에 복도에서 2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복도에 서 있는데 어디선가 기계로 무엇인가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공사를 이렇게 쉬지 않고 하나? 내 귀에 거슬렸다. 노인 환자들이 얼마나 신경 쓰이시겠나 그렇게 생각하며 소리나는 곳으로 가보니 방안에 있는 어느 환자가 휠체어에 앉아서 쉴새없이 이를 가는 거였다. 계속 바각바각바각해요. 이가 남아 있겠나? 걱정이 됐다. 그분이 쉬지 않고 이를 갈고 싶어서 갈겠나? 우리도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엿보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이런 모습으로 끝나지도, 영원히 살게 되지도 않는다. 설사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대도 영원히 살기 위해 다시 부활할 때 우리의 모습은 주님의 모습처럼 될 것이다.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 15:42에 썩은 것으로 장사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산다. 약한 것으로 장사되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산다. 육의 몸으로 장사되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옷 입게 될 것이다.
저는 신자들이 죽으면 화장하겠다는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분은 관 뚜껑을 열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는 죽음 속에 모습을 볼 때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화장해서 묘지를 save하고 장례비용도 안 쓰고. 좋은 일에 써야지! 남은 가족의 수고를 덜겠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달라요.

시신을 불에 태운다. 지옥불도 아니지만 주님의 영광을 입은 몸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러분! 늙는 것, 죽는 것을 두려워 말자. 우리 앞에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오늘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을 불안해하지 말자. 내일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손에 있음을 기억하고 용기를 가지고 소망 중에 당당하게 살아가기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천국까지 상속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절을 보면,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죄의 부패에서 구별되고 자유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어떻게 가능한가? 6절이다. 그 안에 주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그 믿음은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이다. 예수님과 연합된 것이다. 이 상태는 예수님께서 포도나무 비유에서 가르치신 진리로 설명할 수 있다. 예수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와 같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산다. 열매를 맺는다. 나무로부터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다. 내 안에 예수를 모시고 살 때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시면 사단이 공격을 못한다. 죄는 멀리한다. 적어도 계속적으로 죄를 짓지 않게 된다. 9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있게 됨과도 같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씨가 무엇인가? 말씀과 성령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이 있을 때 성령께 순종할 때 우리는 범죄치 않게 되고 혹시 죄를 짓는대도 깨닫게 하신다. 회개케 하신다.

옛날 김익두 목사님이 부흥집회 중 어떤 학생이 이런 회개를 했단다. 내가 방학 때 시골 고향집에 갔는데 시골의 서모가 찬송가를 가르쳐 달라는 것을 거절했다. 왜냐하면 찬송가를 가르쳐 주면 서모가 예수를 잘 믿고 천당에 가서 나의 생모를 괴롭게 할까봐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마음에는 누구나 시기와 질투와 미움이 있다. 여러분, 용서자 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다. 회개하면 용서해 주신다. 정결케 해 주신다. 여러분! 내게 어떤 죄가 있는가? 회개를 미루어 온 죄가 있는가? 지금도 그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지금 바로 이 시간에 회개하세요. 용서받으세요. 하나님께서 힘 주셔서 그 죄에서 돌아서게 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정결케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신대도 우리는 연약하다.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다. 마음은 원이지만 우리의 육신은 항상 약하다. 따라서 정결하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며 겸손히 시험의 환경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구약의 성도 요셉은 꿈을 통해 자신의 앞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고 그 꿈을 형들에게 미움을 받을 때도 팔려 애굽으로 갔을 때도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고 가정 총무가 됐을 때도 죄없이 옥에 갇혔을 때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그 꿈을 주신 하나님이 그를 지키시고 이끄시고 축복해 주실 줄을 믿었다. 그 꿈이 그를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앞에서 살게 하였다. 그것이 무엇이었나? 그를 죄의 유혹과 시험에서 지켜 주었다. 어떻게요?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할 때 그 유혹자가 여주인임으로 거절하기 힘든 것을 안 그는 아예 그녀와 함께 있기를 피했다. 마침내 그녀가 기회를 타서 요셉의 옷을 잡고 늘어지자 옷을 벗어던진 채 도망쳐 그 자리를 피했다.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이 큰 악을 행할 수 있으리요 하나님의 순결을 지킬 수 있었다.

우리 장래의 축복은 예수의 재림으로 이루어진다. 그때 우리는 모두 그 앞에 서야 한다. 정결한 의의 옷을 입고서야 한다. 이 소망이 우리로 죄를 피하고 죄의 연결고리를 끊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험과 유혹은 피해야 한다. 환경이 죄를 짓게 한다면 바꾸세요. 사람이 죄를 짓게 한다면 교제를 중단하세요.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세요. 나보다 성숙한 경건한 성도의 삶을 사는 성도의 도움을 받으세요. 그리하여 죄의 유혹을 피함으로 범죄하지 않고 주님 오시어 그 앞에 설 때 의와 정결로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로 사시기 바란다.

여러분! 우리는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과거에는 마귀와 한 배를 타고 지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과 한 배를 타고 천국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는다. 내일은 천국의 소망을 약속받았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의 자존감을 지니고 오늘의 염려와 불안을 떨쳐버리고 죄의 환경과 사단의 유혹과 싸워 이기시므로 주님이 언제 오시든 의의 거룩한 옷을 입은 성도로 주님을 맞이하시기 바란다.

말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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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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