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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용서받는 길
  본문 : 요일 1:8-2:2
RevSuh  2008-10-09 21:38:15, 조회 : 3,725, 추천 : 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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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는 길

세상에서 누가 제일 불행한 사람일까? 병든 이, 가난한 이, 사업에 실패한 이, 불법체류자가 된 이, 직장이 없는 이... 한이 없으리라.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불행한 이는 용서받지 못한 죄인일 것이다. 왜요? 죄책감에 시달린다. 후회한다. 또 재판이나 감옥이나 형정이 기다리고 있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는 것이 불안하다. 평안이 없다. 고통이다.

세속적인 인본주의자요 소설가인 Marginalia Laski는 1988년 자녀가 죽기 얼마 전 TV에 나와 이렇게 정직하게 털어놨다. 내가 크리스챤들을 가장 시기하는 것은 용서이다. 나는 나를 용서할 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 용서없이 사는 것, 용서없이 죽는 이만큼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는가, 용서받는 길은 무엇인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 당신은 죄인이요 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내가 경찰에 잡히고 고소당하고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는 것이 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도덕이나 윤리적인 잘못은 죄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 신자는 어떤가? 죄인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내 죄는 예수를 믿음으로 용서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그 후에는 어떤가? 어떤 이들은 성경구절을 들어 죄를 짓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요한일서 3:8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함이니라. 9절에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그러니까 이제 내가 예수를 믿으니 나는 거듭났으니 마귀에게 속하지 않으며 나는 하나님께로 났고 나는 죄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르치는 스승들도 있다.

과거에 구원파에서도 그렇게 가르쳤다. 신자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완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씀은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거나 그렇게 완전하게 됐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예수를 믿기 전처럼 지속적으로 같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죄임을 알면서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다. 옛날처럼 죄에 매여 살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수를 믿어 죄사함 받았으나 우리의 죄성, 옛사람의 본성을 남아 있어서 유혹과 시험이 오면 넘어지기도 한다. 죄를 짓는다. 거듭난 사람도 죄를 짓는다. 최근에 중생한 신자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의 생활을 비교해 본 결과는 별반 큰 차이가 없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있다. 그러니 불신자들이 신자를 믿지 않는다. 교회를 비난한다. 죄가 무엇인가? 신앙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이 죄다. 하라는 것,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죄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죄다. 그렇다면 누가 온전하겠나? 누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겠나? 죄가 없겠나? 죄가 없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이렇게 말씀한다.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스스로 속이는 자라.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나는 죄가 없다고 하는 이는 자신의 신앙양심을 속이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죄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로마서 10장에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도 없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우리 구원받은 우리도 온전히 예외일수는 없다. 따라서 나는 죄가 없다면 죄인이라고 하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없는 자가 되고 만다.

죄가 없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나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 죄에서 구원이 필요없고 예수의 십자가 희생도 필요가 없다. 죄사함도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죄인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죄인이다. 바울사도는 죽음을 앞둔 경건의 정점에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했다. 하물며 우리이겠나! 그러므로 죄용서 받는 길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용서의 첫걸음이다.

여러분! 용서받기를 원하시나?
용서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 예배 때마다 기도할 때나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죄인으로 나오세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용서를 바라고 기대하세요. 용서받는 길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죄인으로 하나님께 오는 자만 의로움을 입고 돌아갈 수 있다. 죄인임을 고백하며 엎드리고 기도하는 자만 의로움으로 자리를 뜰수 있다. 우리는 모두 용서받은 또 용서가 필요한 죄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속죄의 주로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아들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 그러나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시어 낳으셨으므로 죄는 없으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당신의 죄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그 죄값의 심판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의 죄값을 담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것까지 모두 예수님이 피흘려 죽으신 십자가에서 값을 치렀다. 용서되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자는 더 이상 죄에 대한 책임을, 값을 묻지 아니하신다. 죄사함 받았고 죄에서 구원받았다.

2:2이 그것이다. 저는(예수)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나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물로 죽으시었다. 그러므로 우리 죄가 사해졌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원수된 것을 화목케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내 구속자로 믿는 자는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신다. 벌하지 아니하신다. 그 뿐이 아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지금도 하늘에서 속죄의 주로 우리를 위해 역사하신다. 예수님은 의인이시기에 의로우신 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서실 수 있으시다. 우리처럼 사람의 몸을 입으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연약을 아시며 동정하신다(히 2:17-18). 그래서 그를 믿는 자를 위해 변호하실 수 있으시다. 2절이 그것이다.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렇다. 용서받는 두 번째 길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어 우리 죄를 사하신 대속의 주 예수를 믿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연약을 아시어 동정하시며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예수님! 아버지여 저는 내가 십자가에서 죄값을 대신 치른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그렇게 대언자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다.  이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셨다. 또 사하신다. 죄사함받기 원하나?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와 의로우신 예수님이 나를 위한 대언자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나오시기 바란다. 십자가를 바라보시고 하늘 보좌에서 대언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란다. 이 용서의 근거가 되는 믿음을 지닌 자의 죄를 용서하신다.

셋째로, 용서받는 길이 무엇인가? 죄를 반드시 고백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죄값의 형벌을 당하시었다. 그를 믿는 자는 정죄가 없고 심판이 없다. 그럼에도 죄성이 남아 있어서 죄많은 세상, 유혹과 시험이 오면 연약해서 넘어지고 쓰러진다. 죄에 빠진다. 그러면 또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또 변호해 주신다. 그래서 모든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 정결케 될 수 있다. 모두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용서받은 죄인임을 인정하고 내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는 일이다. 9절 말씀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우리 죄를 사하실 하나님은 미쁘시다. 무슨 말인가? 진실하시다. 믿을 수 있는 분이시란 말씀이다. 그의 말씀은 진리다. 그 말씀의 약속이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우리 죄를 사하시고 가 아닌가? 의로우시다. 하나님은 역시 공정하시다. 그러니까 죄를 그냥 보실 수 없으시다. 벌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이 대신 심판을 받으셨기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심판치 않으신다. 나의 죄에 대해 두 번 심판하시지 않는다. 죄를 자백하면 용서받는다. 다른 말로 하면 회개하면 용서해 주신다. 회개가 무엇인가? 입술로 내 죄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죄인입니다. 제 죄를 사해주세요. 그런 자백이 아니다. 낱낱이 모든 죄를 구체적으로 무슨 죄를 용서받기 원하는지 자백해야 한다. 입술의 자백이 있어야 한다. 거기서 더 나가야 한다. 회개는 돌아서는 것이다.

그래 마태복음 5:23에서 예수님은 회개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로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앞에 두고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배 전에 철저하게 회개하라. 그래야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그 예배를 기쁘게 받으신다. 그게 회개니까요.

누구에게 잘못했다면 용서를 빌어야 한다. 손해를 끼쳤다면 배상을 해야 한다. 입술로는 회개하는데 행동은 아직도 그 죄에 머물러 있다면 참된 회개가 아니다. 돌아서야 한다. 더 이상 아니오의 행동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 그뿐이 아니다.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신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의 더러워진 얼룩까지도 다 깨끗하게 지워주신다. 이사야 1:18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하나님의 약속이다.

여러분! 죄는 전염병균과도 같다.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한다. 우리 양심을 어둡게 하고 마비시키고 파괴시킨다. 우리 신앙을 파선시킨다. 죄는 반드시 용서받아야 한다. 따라서 회개해야 용서받는다. 영혼이 살고 믿음이 산다.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새인은 자기는 의인이므로 저 죄인 세리(함께 올라간) 같지 않음을 감사했다. 보통 유대인은 일년에 하루를 금식하는데 그는 한주에 두 번이나 금식하며 소득의 11조를 드린다고 자랑했다. 그는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회개하지 않았다. 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세리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의인으로 하나님께 나온 바리새인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이 돌아갔다.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통회한 세리만 용서받아 의로워져 성전을 떠났다. 여러분! 죄인만 의로워진다. 회개하는 자만 용서받는다. 하나님 앞에 나올때마다 용서받은 죄인으로, 죄를 회개하므로 용서와 정결케 되는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란다.

죄인임을 인정하고 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용서받은 우리는 어찌 살아야 하나? 죄악 벗은 우리 영혼으로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양해야 한다. 섬겨야 한다.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용서받은 자의 책임은 무엇인가? 내가 용서받았으니 우리도 내게 죄를 지은 다른 이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이렇게 기도하며 살 것을 명하셨다.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기도가 진실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 기도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시나? 신자 중에는 부부가 예배당에 나오다가 다투고 싸우는 경우도 있다고 듣는다. 예수님이 명하신 말씀대로라면 그것도 회개하고 화목하고 예배드려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이것이 생명이다. 주님 앞에 나올때마다 용서와 회개의 은혜를 새롭게 경험해야 예배가 즐겁고 봉사가 보람된다. 온전한 구원을 바라보며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의 신앙인이 될 수 있다.

아리조나주는 백인들이 오기 전에 수천 년을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백인들이 들어오면서 인디언들이 쫓겨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인디언들은 망하고 말았다. 스미스란 경건하고 용감한 백인 전도자는 인디언들에게 속죄하고저 그들과 함께 살면서 전도하다가 마침내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의 손자는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했다. 그러나 예수의 사랑을 깨닫고 마음을 돌려 신학을 공부한 후 인디언 전도자로 나섰다. 30여 년간 전도한 끝에 그는 인디언의 믿음의 아버지가 되어 80여부족의 명예추장이 되었다. 그 분이 바로 엔치스미스 감독이다.

1889-1962년 그는 텍사스 출신 미국 감리교 감독으로 오크라호마, 미주리, 텍사스 지역을 순회하며 인디언 선교사로 섬겼다. 여러분! 나는 용서받은 성도인가? 원망들을 말이나 행동은 없었나? 누구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있다면 용서를 빌자. 그리고 용서하자. 하나님께서는 예배 때마다 화목한 자로 나오기를 기대하신다. 그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고 은혜를 주신다.

여러분! 우리의 죄는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해결되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다. 죄와 허물을 가지고 산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죄인임을 잊지 말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감사하며 의지하면서 구체적으로 입술과 행동으로 회개하자.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받은 자의 기쁨과 감격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죄많고 타락한 세상, 유혹과 시험이 많은 세상에서 항상 죄와 시험과 싸워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한다.

말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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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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