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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크리스챤의 자존심
  본문 : 요일 5:18-21
RevSuh  2008-10-09 19:29:03, 조회 : 3,904, 추천 : 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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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의 자존심(요일 5:18-21)

부모없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누구의 아들이며 딸이다.
옛날에는 오늘처럼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거나 생업을 위해서 이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때는 젊은이들을 보는 어른들은 항상 젊은이를 그들의 부모와 동일시했다. 저 아니는 누구의 아들이야! 따라서 젊은이들은 내 부모님을 잘 아시는 어른들의 눈길 때문에 말이나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 행동에 따라서 부모님의 평판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했다. 그만큼 책임있는 행동을 했었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 나는 누구의 아들이라는 자존심이기도 했다.

오늘 본문도 너희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하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자존심을 지키며 살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가 지킬 크리스챤의 자존심은 무엇인가?

크리스챤의 자존심은 세속적인 의미의 자존감이 아니다.
세상에서 자존이란 말은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뜻이요 내 힘으로 자기의 품위를 지킨다는 말이다. 또 자존심이란 말은 제 몸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이다. 그러니까 우리 기독교의 미덕과는 거리가 멀다. 어느 면에서 자존심은 교만이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에서 의인이 되고 심판과 죽음에서 용서와 구원을 받은 자다. 그러니 겸손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빌립보 2:6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이시지만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 됨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낮춰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고 말씀한다. 또 마태복음 11:29에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크리스챤의 자존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원천이 내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자존감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된 자존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의 자존심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그 신분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다. 내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며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을 지니고 말하고 행동하므로 내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높아지시게 하는 것이다.

이를 에베소서 1:3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신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그 영광, 그 축복을 찬양하는 것이다. 은혜받은 자에 걸맞게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보신다고 하셨다(사 49:5).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께 존귀한 자된 우리는 어떻게 그 자존감을 지키며 살수 있는가?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죄를 짓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왜 죄가 이렇게 중요한가? 우리는 죄의 중병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이는 마치도 암 환자가 항암치료를 받은 것과도 같다. 100% 건강해진 것이 아니다. 암의 요인은 남아 있다. 죄는 그 암을 키우는 영양소와도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다시 죄를 짓고 또 짓게 되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을 잃고 만다. 하나님 앞에서 고귀한 자임을 포기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범죄치 아니한다고 했다. 이 말은 계속하여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다. 죄를 짓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같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쉬운가? 여러분 회개한 죄는 다시 안 짓나?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다. 지속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를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악한 자가 만지지 못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를 악한 자 사단에게서 지켜주신다. 그래서 우리를 사망에 이르는 죄에 빠지지 않게 하신다.

또다시 같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처럼 나는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다름을 감사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의로운 말씀에 따라 살려고 애쓰지만 그럼에도 죄를 지을 때 세리처럼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하나님께 회개하고 의롭게 되는 것이다. 교만하지 않는 겸손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변명하고 남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지 않고 내 책임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 마음에 죄를 회개로 털어내고 씻어내고 닦아냄으로 죄를 짓지 않는 자처럼 되는 것이다.

크리스챤의 자존심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지만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을 알고 사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인간 왕이나 통치하는 사람들이 다스리고 있지만 죄가 만연해 있고 악이 판을 치는 이 세상은 영적으로 그 임금이 사단이다. 요한복음 12:31에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그 사단은 속임수로 세상을 통제한다.

누가복음 4:5-7에 보면 광야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다. 마귀가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예수님께 보여주면서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준다. 그러니 네가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고난없는 영광을 약속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절하셨다. 나를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다. 죄의 세상, 지나가는 일시적인 영광은 헛되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요 마귀와 사단에게 속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이니 no 해야 한다. 그것이 크리스챤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다.

세상의 부, 세상의 명예, 세상의 권세를 탐하여 누리고 즐기려는 욕망은 사단에게 절하고 그를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려는 것이다. 그것은 크리스챤 하나님의 자녀의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이다. 왜요? 우리는 빛되신 하나님께 속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처럼 우리도 세상의 빛이다. 따라서 죄의 어두운 세상의 영광이나 풍조를 따르지 말아야 한다. 죄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맛잃은 소금처럼 사람들에게 짓밟혀 아버지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부끄럽게 한다.

우리와는 연관이 없지만 장로교의 대표적인 미국교단 P.C. U.S.A는 동성애하는 목사들을 교회에서 허용해야 한다는 몇몇 목사들의 새로운 정책을 PC USA 총회가 채택하였다.

물론 교회는 구원받은 신자나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역행하는 동성애자들까지 전도의 대상이니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데 성경이 죄라고 가르치는 동성애를 지속한다면 회개케 해야 한다. 그런데 교회를 이끌 목사가 동성애자인데 그를 목사로 인정한다. 그리고 그에게 교회를 맡긴다. 그것은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요 어두운 세상에 속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으로서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얼마 전 오크라호마 털사주에 소재한 커크오브더한스 장로교회는 PC USA 교단을 탈퇴했다. 967-36으로, 2천7백 명의 큰 교회가 교단을 나와 작은 복음주의 장로교단으로 갔다. 2007년 연합장로교회는 6만6천명, 2008년에는 8만 5천명의 교인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교회의 부흥은 해마다 늘어나도 인구 증가율을 따를 수 없는데 해마다 6만, 8만 명 이상 줄어든다니 어찌해야 하겠나?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존재라면 가슴을 치며 통곡할 일이다. 그런데 동성애 목사에게 교회를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께로 난 자,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의 자존심을 포기하면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사단에게 질 수밖에 없다.

커크오브더한스 교회의 목사 게리는 그와 같은 입장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많은 교회들이 이를 준비하고 있다. 교단이 진리에서 떠난 것을 알고 있다. 왜 교단을 못 떠나나? 떠나면 재산 싸움으로 법정에 가 많은 시간과 돈이 들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용기를 내라고 한다. 교회가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를 포기한다면 빛이기를 포기하고 어두운 세상에 타협하면 진리의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것이다. 떠나야 한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베드로후서 3:10에 사도 베드로의 권면처럼 이 세상에 살면서도 새하늘과 새땅을 소망하며 살아가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자.

여러분이 익히 잘 아시는 정상우 목사님이 은퇴 후 병든 성도 심방, 부흥강사를 초청할 수 없는 교회를 돌며 말씀을 증거하셨다. 그 목사님이 마지막 수술하러 들어가시기 전 아들에게 마지막 한말 아들아 신앙생활 잘해라. 천국에서 만나자 하시고 수술실로 가셔서 수술도 못하시고 30분후에 소천하셨다. 그분이 좋아하시는 말씀은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다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였다. 하나님의 자녀된 주의 종된 자존심을 지켜 사시다가 소망두고 사시다 소망하던 하늘나라에 가셨다. 천국에서 만나자! 여러분도 이렇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가?

소돔성이 유황불에 망할 때 하나님의 자녀의 자존심을 포기하고 죄악의 소돔성과 타협하고 짝하며 살았던 롯과 그의 아내처럼 주님이 부르실 때, 주님이 오실 때, 지체하며 뒤돌아보는 세상의 즐거움, 세상의 부, 세상의 명예를 아쉬워하다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사는 소망의 삶은 아닌가? 돌아보자. 주님이 부르실 때 천국에서 만납시다 하고 떠날 수 있는 삶을 사나?

크리스챤의 자존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20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맹목적이 아니다. 무지한 신앙이 아니다. 우리는 참된 것, 진리를 믿는다. 요한복음 14:6에 진리는 그리스도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 분을 믿음으로 내 죄가 사해졌고 의로워졌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상속받아 영원히 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3:1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니 땅에 것을 상각하는 대신 위에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를 찾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예수를 믿을 때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예수께 속한 자가 되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행동이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감으로 작은 예수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골든 맥도날드 목사가 싱가폴 공항에서 비행기 좌석을 구하지 못해 홍콩에서 발이 묶인 적이 있었단다. 항공사 직원이 이틀 내에는 빈 좌석이 없다고 해서 호텔로 돌아가 하루를 묵고 다음날 혹시나 취소한 여행자가 있을까 하고 공항으로 나가 기다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옆에 앉아 기다리던 여행객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항공사 직원에게 가서 왜 좌석을 안 구해 주느냐며 고성이 오가며 싸우더니 탑승권을 받아 가지고 오더니 선생님도 나처럼 해 보세요. 내가 알고 있는 욕은 다 했습니다. 맥도날 목사가 직원에 갔다. 여기서 치사하고 야비하게 굴면 탑승권을 얻을 수 있다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말 집에 가고 싶은데 탑승권을 구해 주시겠습니까? 그랬더니 직원이 기다려 보시지요. 그리고는 감감소식이었다. 그는 홍콩에서 한주 반을 더 기다려야 했다.

크리스챤된 자존심을 포기하고 정직하지 않게 거짓말하고 욕설을 퍼붓고 싸우면 얻을 수 있는 탑승권도 포기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다. 일상의 삶을 진실되게 사는 것이다.

크리스챤의 자존심은 내 차에 Jesus라는 스티커를 달고 곡예하듯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표식을 하지 않았더라도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이다. 레인체인지를 해도 뒷사람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게 하고 카메라가 없는 곳이라도 노란불에 쏜살같이 달리지 않는 것이다. 외식이나 이름의 인격의 탈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질실된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다. 거짓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다. 천국시민이다. 하나님께서까지 고귀하게 보신다. 그렇다면 겸손한 회개로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타협하지 말고 나 자신을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인격의 진실성을 본받아 크리스챤답게 하나님의 자녀된 자존심을 지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란다.

말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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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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