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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
  본문 : 요일 5:13-17
RevSuh  2008-10-09 19:39:59, 조회 : 4,650, 추천 :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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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요일 5:13-17)

  노만 빈센트 필 박사가 소년이었을 때 골목길에서 접은 씨거 담배 한대를 발견했다. 호기심에서 불을 붙여 피워보니 맛은 좋지 않았으나 나도 이제 성인이라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아버지가 걸어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그는 씨거 담배를 등 뒤로 돌리며 숨기려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그의 아버지의 눈길을 다른데로 돌리려고 했다. 빌보드판에 서커스 광고를 가리키면서 나 서커스 갈 수 있어요? 아빠! 우리 마을에 올 때 그때 가자꾸나 하면서 하신 아버지의 말씀은 노만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교훈을 가르쳤다. 조용히 그러나 확고하게, 아들아, 불이하는 담배를 감추려고 애쓰면서 불순종을 감추려 하면서 아빠에게 요청일랑 하지 말거라!

오늘 본문도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요청 기도에 대한 말씀이다. 신자는 누구나 기도가 무엇임을 안다. 신자는 누구나 기도한다. 그러나 신자된 우리의 기도가 모두 응답되지 않는다. 왤까? 응답받는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오늘 본문은 그 진리를 가르친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응답받는 기도는 신뢰와 확신으로 하는 기도다. 13절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다.

여기서 사도요한은 기도자가 누구임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자라고 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는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자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막았던 죄의 담이 헐렸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가 구할 수 있게 된 자다. 또 다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낳은 자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신다. 아버지는 누군가?

여러분들에게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물론 아버지라고 다 선한 분은 아니다. 자녀를 학대하고 아내에게 폭력을 쓰는 남편도 있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는 예외다. 대부분에 아버지는 적어도 이 두 가지 역할에만은 예외가 없다. 아버지는 가정을 지킨다. 아버지는 생계에 책임을 진다. 자녀를 사랑한다. 아버지는 자녀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자녀의 필요를 채워준다. 왜요? 자녀는 내가 낳은 자녀니까요. 동물도 새끼는 지키고 먹이지 않는가?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이겠나? 아내 사랑을 못 하는 이도 자녀는 사랑한다. 자녀의 필요를 채워준다. 필요한 것을 자녀가 구하면 기쁘게 준다. 심지어 이혼을 한 아버지도 자녀를 아내가 맡을 경우도 양육비를 준다. 그래서 아버지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1:11이하에서 아버지가 어떤 사람임을 말씀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그 대신 뱀을 주거나 알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이어서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그렇게 아버지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준다. 그렇다면 선하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셨다. 악한 아버지도 좋은 것을 준다. 그렇다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외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구하는 자녀된 신자의 소원을 외면하시겠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구한 것을 초월해서 주시는 분이시다. 그 이상을 주신다.

야고보서 5:15에 병든 자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일으켜 주시리라 낫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면 죄까지 사해 주시는 아버지시다.

요한복음 16:23에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하셨다.

따라서 응답받는 기도자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신뢰하고 나를 지키시며 내 필요를 채워 주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구하라 하시고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실 능력이 있으시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무슨 문제로나 하나님께 기쁘게 나갈 수 있고 구할 수 있다.

여러분,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고 내 필요를 능히 채워주신다는 확신의 믿음으로 간구하라. 그러면 응답의 복을 누리는 기쁨의 살을 살게 될 것이다.

응답받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다.
14절이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은 들으신다. 15절에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주님이 가르치신 대로 기도한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래라 없는 양식 구해서 보내 주시나? 아니다. 일용할 양식은 벌써 가지고 있다. 그처럼 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로 알라고 하신다.

그러면 무엇이나 구할 수 있는가? 무엇을 구하든 응답해 주시나?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시고 싶어 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는 것 모두가 우리에게 유익하고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이 좋고 유익한지를 다 모른다. 그래서 내 자녀에게 좋지 못한 것도 허락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된 우리에 대해 모르심이 없으시다. 자녀된 우리의 장래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해로운 것, 유익하지 못한 것을 정확히 아신다. 따라서 야고보서 1:17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녀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각종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성물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영적 건강에 좋고 온전한 선물만 우리에게 주신다.  그렇다면 좋지 못한 것, 온전치 않은 것이 우리의 요구일 때 영적인 건강에 해로운 것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no 하신다. 응답해 주지 아니하신다.

따라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녀된 우리가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시고 주신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기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는 무엇인가?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님의 기도가 나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다. 성경은 그때 예수님께서 고민하시어 죽게 되시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여!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거둬주옵소서.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이 두려우셨다. 그뿐이 아니었다. 우리의 죄짐을 대신 지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셔야 하는 십자가의 죄짐의 무게도 천근만근만큼이나 무거우셨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여 십자가를 옮겨 주시옵소서지지 않게 해 주소서 하셨다.

여러분, 예수님의 기도의 소원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달랐다. 그 예수님이 누구신가? 우리처럼 양자 신분의 아들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친 아들이시다. 아니 아버지가 누구이심을 보여 주시기 위해 오신 아들 하나님이시다. 아버지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고 그 뜻을 행하시는 것이 양식과 같으시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기도를 하실 수 있으시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될 것을 아셨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셔야 할 것도 아시었다. 자기 뜻과 싸웠다. 아버지의 뜻에 당신의 뜻을 맞추기 위해 애쓰고 또 애쓰시었다. 땀방울에 피가 섞여 떨어졌다. 그리고 나서 42절에 보면 아버지의 원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당신의 뜻으로 받아들이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기도하기는 쉽지 않다. 괴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십자가가 고통스럽고 그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았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시었다.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어 구원의 하나님으로 모든 믿는 자, 구원받은 자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신다. 그렇게 높아지시고 영광스럽게 되시었다.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요 고난이었다. 그러나 그 뜻을 구할 때 고난이 영광이 되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고난을 피하고 거둬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내 몫의 고난은 내가 지고 갈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일수도 있다. 그 하나님의 뜻은 그 고난 후에 영광이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데 응답이 아직 없는가? 내 기도의 소원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나? 내 영적인 건강에 축복이 되는 것인가? 유익한가? 확신이 있다면 그 기도 밀고 나가세요. 더 지속하세요. 인내하세요. 하나님의 시간에 반드시 응답될 것이다. 육신에는 좋을 것 같은데 신앙에는 어떤가? 확신이 없고 응답이 없나? 무응답이 응답이 될 수 있다. 그 기도는 중단하세요. 기도의 소원 간구의 내용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세요.

기도했는데 응답받았나?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였다. 그런 기도 또 하라. 응답을 인해 기뻐하세요. 그러나 감사를 잊지 마세요. 다른 성도와 기도응답의 축복을 함께 나누세요.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란다.

응답받는 기도는 범죄한 형제를 위한 기도다.
예수님과 3년을 함께 살면서 배운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면서 기도를 했던 제자들도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는 쉽지 않았다. 고민하던 저들이 어느 날 예수님께 여쭸다.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세요. 제자들의 요청을 받으신 예수님은 마태복음 6:9-13에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그 기도는 개인의 기도이기 보다는 공동체의 기도다. 모두 내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는 우리이다. 따라서 그 기도는 요청도 모두 우리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주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반드시 형제를 위한 기도가 있기를 기대하신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형제를 위한 기도를 하라고 한다. 어떤 형제인가?
16절이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이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는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다.

사망에 이르는 죄도 있는데 그 죄에 빠진 자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 무슨 말인가? 사망에 이르는 죄가 따로 있는가? 죄에 이런 구별을 지울 수 있는가?

이 말씀은 형제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어떤 형제인가? 나하고 친한 형제, 내 구역 식구, 몸이 아픈 형제자매, 어려움을 당한 형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런 기도는 누구나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범죄한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사망에 이르지 않은 죄를 지은 형제를 위해 기도하라. 그러면 우리가 기도해야 할 형제는 어떤 죄를 지은 자인가? 구약시대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따로 있었다. 의도적이 아니게 부지중에 죄를 지으려는 마음은 없었는데 죄를 지은 자의 죄는 제사장에게 죄를 고백하면 제사장이 속죄했다. 죄가 사해졌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의도적으로 범하는 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며 계명을 깨뜨린 자는 사함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끊겨지고 말았다.

오늘날도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는가?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① 요한일서에서 그는 아버지와 아들과 교제하지 않는다(1:3).  ② 영생에서 제외되었다(4:12).  ③ 교회를 떠난 자다.  ④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자라고 한다(2:19). 그가 누군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는 자, 교회를 비방하고 미워하는 자, 교회를 떠나는 자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자다.

다시 말하면 저들은 우리의 형제가 아니다. 그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 같은 맥락의 말씀이 또 있다. 히브리서 6:4절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이런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은 자를 위해서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

이 진리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로 본을 보여 주셨다. 요한복음 17:9에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그런데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았다. 영생이 있다. 하나님이 아버지시다. 물론 그럼에도 죄를 짓는다. 그러나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죽음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짓는 죄가 무엇이든지 그 죄를 소원해진 하나님과 성도와의 교제를 회복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 범죄한 형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의 죄가 사해지고 성도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바램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다. 응답받는 기도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쉬운 것이 아니다. 왠가? 우리는 형제가 범죄하면 비난한다. 정죄한다. 실망한다. 교제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의를 주장한다. 범죄한 형제에 대한 관점과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범죄한 성도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가? 내가 말씀을 따라 의로운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 범죄하지 말아야 한다. 범죄한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정죄하지 말고 용서해야 한다. 내치려하지 말고 품으려고 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그 기도가 이루어 진 것을 믿고 사랑의 교제를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형제의 범죄가 무엇일까? 제가 감히 이렇게 생각한다. 예수를 모르고 구원받지 못한 가족 형제자매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 영혼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구원받기를 기대하신다.

이 말씀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신학교에 다닐 때 Josh McDowell 목사가 아버지는 천국가셨다. 어머니는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셨는데 어머니가 구원받으셨는지에는 확신이 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구원받지 못하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고민이 되었다. 어머니는 크리스챤이셨을가 아니었을까?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주님께 말했다. 하나님! 제게 어머니가 구원받으셨는지 가르쳐 주셔서 정상의 삶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그 기도 요청은 응답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틀 후에 그는 바닷가로 차를 몰고 나갔다. 피어 끝까지 홀로 걸었다. 거기에 의자에 앉아 낚시하고 있는 한 할머니가 있었다. 그 할머니가 그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가 미시간 대학 도사라고 했다. 사람들은 베틀크릭교외라고 합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끼어들면서 거기서 온 조카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젊은이 McDowell 가족에 대해 아느냐고 했다. 너무 놀랐다. 알고말고요. 내가 Josh McDowell이예요. 정말 믿을 수가 없군. 내가 네 어머니의 사촌이야.  내 어머니의 영적인 생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냐고 물었다. 알고말고, 네 어머니와 내가 소녀때 마을에 부흥회에 참석했었지. 네 번째 날이었어. 우리 둘이 앞으로 나가 그리스도를 영접했지.

조시는 Praise God! 주변에 낚시꾼들이 놀랄만큼 크게 소리쳤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 모두가 구원받지 못한 영혼! 예수를 믿지만 범죄하는 영혼을 사랑하기를 바라신다. 그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이니 범죄한 형제는 사함받고 구원받지 못한 형제는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될 줄 믿는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다. 우리를 지켜주신다.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아버지로 신뢰하고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선하고 아름답고 온전한 것을 구하자. 그리하여 응답의 기쁨을 누리며, 나누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 드리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란다.

말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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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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