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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하나님의 사랑
  본문 : 요일 4:7-21
RevSuh  2008-10-09 19:57:42, 조회 : 3,221, 추천 :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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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요일 4:7-21)

어거스틴이 한창 저술에 열중하고 있을 때 하루는 꿈을 꾸었습니다. 한 아이가 바닷가에서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떠서 모래위에 붓고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이 궁금해서 그 아이에게 물으니 아이가 대답하기를 이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서 바다를 마르게 하려고 해요 라고 한다.

어거스틴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이의 어리석음을 꾸짖자 아이는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신이 조그만 지식을 믿고 하나님의 무궁한 신비를 캐려하니 그 어리석음이 나의 행위보다 더합니다“
피조물된 우리는 하나님을 다 알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만큼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알려주시는데 그것이 계시요 성경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마지막 계시로 누구나 보고 듣고 알려서 깨달을 수 있도록 당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아들 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하나님을 본 것이고 예수를 알면 하나님이 누구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아들 하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본문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 3:16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은 독생자 하나님인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요청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을 가치가 있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냥 거저 조건없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근원이며 역시 시발의 사랑이며 앞선 사랑입니다. 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먼저 하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맹목적인 사랑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분명하고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본문 9절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입니다. 우리를 살리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는 모두 나면서 조상 아담의 죄를 타고 났습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죄를 짓습니다. 사실입니다. 벌써 어린아이도 그래요. 손녀가 한 돌밖에 안되었는데 엄마가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하게 하면 엄마 맴매하고 언니도 꼬집고 물고하거든요.

죄값은 사망이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22에 아담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은 죄로 죽은 상태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란 말씀입니다.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십니까? 요한복음 3:16이 역시 그 대답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다.

어떻게 아들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까? 어떻게 아들이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십니까? 죽음에서 우리를 살리십니까?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값의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는 사람은 그 죄가 사해졌으므로 정죄가 없고 심판이 없고 죽음이 없으며 영생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구원받으셨습니까? 심판과 죽음에서 구원받아 영원히 사십니까? 확신하십니까? 확신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내 믿음입니까? 믿음이 좋아서입니까? 내 행위입니까? 봉사를 많이 해서, 내 인격입니까? 도덕적 품성이 훌륭해서입니까? 그것들은 다 좋은 것입니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하나님 앞에서 공로가 되지는 못합니다.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나같은 죄인이 산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내 죄값을 대신 치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내 구주임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내 믿음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게 하시고 2,000년 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내 죄값으로 죽으신 나의 구세주이심을 알고 믿게 하신 은혜입니다.

따라서 이 구원의 믿음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에베소서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는 은혜는 변치 않으십니다. 우리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안전합니다. 감사하세요. 하나님을 찬양하세요. 오늘의 내가 나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 사랑받은 자로 죄로 죽었다가 다시 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1절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성도간에 서로 사랑하라. 본문 20절에 보면 보는바 그 형제를 미워하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그러니 21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형제를 사랑하라 그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랑은 그 대상을 전제로 할 때 둘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그 대상이 자신인 자기사랑이 있습니다. 이 사랑은 필요해요. 그런데 이 사랑은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다 해요. 악인도 자기는 사랑합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추우면 옷을 껴입고 더우면 옷을 벗습니다. 아프면 약을 사서 먹거나 심하면 병원에 갑니다. 건강을 위해 음식조절도 하고 운동도 합니다.

영적으로도 자신을 사랑합니다. 나만 예배드리고 나만 성경공부하고 나만 세미나 참석도 하고 부흥집회도 참석합니다. 나만 새벽기도회에도 나갑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사랑을 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 대상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된 하나님의 가족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가족사랑은 쉬운가요?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 두 쌍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하는데... 이혼이란 말이 생소하기만 하십니까?
형제간에 재산 싸움이 나서 법정에 가는데... 부모님의 재산 욕심 접고 사십니까? 부모님께서 병드시면 짐 된다고 양로원으로 보내는데.... 여러분은 어찌하십니까?

어느 교회 나가시는 권사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집에서 멀리 있는 교회를 섬기시니 토요일 새벽예배만 본교회에 가시고 가까운 교회에 나가시는데 그 교회를 더 이상 못 나가시겠다는 거예요. 교회가 둘로 나뉘어져 예배도 따로 드리고 서로 재산싸움으로 법정에 고소한 상태인데 이제는 재판이 끝나 가는지 점점 더 재판광고가 많아지고 여러분 우리는 어찌 어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자주 듣게 되니 더 이상 이런 교회에는 새벽예배도 힘들겠구나, 기도가 안 된데요. 그러니 형제사랑이 쉽지 않아요. 그런데 제게는 사도요한이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이 놀라워요. 왜요?

초대교회는 형제사랑 하라고 할 필요가 없었어요. 초대교회는 형제사랑이 뜨거웠어요. 세상 사람들이 본 신자들은 얼마나 저들이 사랑하는 가였습니다. 박해의 환란 중에도 서로 위로 격려하며 사랑으로 하나가 되니 세상 환란이 저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라! 형제가 주안에서 형제자매된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을 알았어요. 성령께서 내다보게 하시고 쓰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의식적으로 힘써야 합니다. 왜 사랑이 안 됩니까? 왜 형제간에 싸웁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살지를 않아요.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어요. 그러나 서로 상대방이 사랑해 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가요?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왜 싸웁니까? 주는 대신 취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어주는 대신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심 때문입니다. 욕심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때 아끼지 않고 손을 펴서 줄때 형제사랑이 됩니다.

왜 형제인데 사랑이 잘 안됩니까? 형제지간에 문제가 생길 때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상대방은 틀렸다고 비판하게 됩니다. 이렇게 상대편의 잘못을 탓하고 내 의를 주장하면서 서로 갈라서게 됩니다. 사랑은 용서이고 서로 다툼에도 포용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다투고 싸우면 사탄이 역사합니다. 미워하게 됩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때 의로워서였습니까? 나대신 죄값을 치루신 십자가에 달리신 아들을 보시고 네 죄가 사해졌다, 의로워졌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형제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주님이 대신 지시고 형벌을 당하신 그리고 용서하신 형제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찌 예수를 내 구주로 믿는다고 하겠습니까? 참사랑은 내가 형제의 잘못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본보이신 사랑이 아닌가요?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3:16에서 그가(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도다, 형제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은 것이 사랑입니다.

정말 이 사랑이 실천된다면 교회는 천국이 되고 그 자체가 전도가 되어 교회는 세상에서 사랑에 주린 수많은 영혼들의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그 이상의 능력있는 전도가 따로 없을 것입니다.

어느 대학 물리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낮이 끝나고 밤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학생들은 소리를 죽이며 킥킥대고 웃었습니다. 초등학생도 아는 것을! 저들은 그 교수의 질문하는 의도를 모르고 장난삼아 대답했습니다. 낮과 밤의 구별은 멀리 떨어진 동물이 개인지 고양인지를 구별할 수 있을 때입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교수가 대머리 물리학 교수인지 아니면 대머리 화학 교수인지 분간할 수 있을 때입니다. 강의실이 한바탕 폭소로 뒤덮인 뒤에 물리학 교수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각자 자기의 짝의 얼굴을 바라보십시요. 옆 사람의 얼굴이 낮선 얼굴이 아니라 친밀한 나의 형제자매라고 생각할 때가 바로 낮입니다. 옆 사람의 얼굴을 나의 형제자매라고 볼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시간은 항상 밤인 셈입니다.

여러분! 옆에 앉으신 성도님의 얼굴을 보세요. 그 분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형제인가? 그렇게 친밀한가? 그렇게 사랑스러운가? 낮선 사람인가?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인가? 내게 하나님의 사랑이 없어요. 형제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안에서 온전케 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면, 형제가 내 사랑의 대상이 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어떤 축복입니까?
13절에 형제를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안다. 형제를 사랑하면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성령님은 위로자요 안위자이십니다.  따라서 형제를 사랑하면 그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세상을 담대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을 보고 들을 때 우리의 지성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케 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우리 삶에 적용하여 살게 하십니다. 말씀에 순종케 되니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사도행전 1:8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은 증거의 영이십니다. 전도자로 살게 하신다.

여러분! 내 신앙생활이 메마르십니까? 기쁨이 없습니까? 진전이 없습니까? 구원받은 자의 감격이 없습니까? 감사가 없습니까? 전도를 못하십니까? 성령님이 내 안에 충만히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성도를 사랑해 보세요. 더 사랑해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가 아닙니까? 성령충만케 되실 것입니다. 구원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여 감사와 기쁨과 능력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두려움이 없게 됩니다.
또 있어요. 18절에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쫒나니 사랑은 두려움을 없앤다.

여러분! 불레셋의 거장 골리앗이 온 이스라엘의 군대와 사울 왕까지도 두려워 떨게 만들었을 때 하나님을 사랑했던 소년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며 욕되게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다윗은 전혀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왜요? 하나님을 사랑했어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어요. 창조주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데 피조물 골리앗이 두려울 수가 없었습니다. 골리앗은 칼과 단창으로 그를 공격했으나 그는 물맷돌로 맞서 세기의 거장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승리했습니다. 그가 믿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온 세상의 지존자이심을 다스리시는 자이심을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불가능하지가 않습니다. 못한다고 사양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부족해요.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의 뜻을 이룹니다. 그 이상의 큰 축복이 있어요. 17절입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함이니...

여러분, 누구나 마지막으로 반드시 만나야 할 분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 분은 심판자시다. 그 심판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다. 그 분은 우리에 관해 모르심이 없으시다. 처음부터 다 아신다. 내 말과 행동만 아니라 내 인격까지 아신다. 누가 그 앞에서 담대할 수 있겠나? 그러나 그 앞에서 담대할 수 있는 자가 있다. 하나님 사랑으로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감사하여 그 사랑에 반응하여 하나님 사랑하고 형제사랑하는 성도는 주님의 심판대앞에 담대하게 기쁘게 설수 있다. 서로 싸우다가 주님앞에 설수 없다. 이런 성도는 그 하나님만 두려워한다. 말씀에 주의한다. 날 사랑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이를 위해 하나뿐인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 그렇다면 죄짓는 것만큼 두려운 것이 없다. 의로운 삶을 산다.

여러분! 형제사랑하십니까? 내 옆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의 사랑의 대상입니까? 감사하세요. 계속해서 사랑하세요.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보세요. 사랑의 대상을 만드세요. 사랑하세요. 성령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므로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믿음을 지킨 성도로 심판주되신 주님앞에 담대히 서시는 승리자가 되시기 바란다.

말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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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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