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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말세에 힘쓸 신앙
  본문 : 요일 2:18-29
RevSuh  2008-10-09 21:14:09, 조회 : 3,162, 추천 :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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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신앙(요일 2:18-29)

예일 대학의 John holt 교수는 전쟁, 핵무기개발, 생화학무기, 세균무기 인구의 팽창, 빈곤, 자원의 고갈, 환경의 오염,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비인간화같은 우리 시대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이는 거의 없다.

오늘은 누구도 사람이 살수 있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렇다! 지금도 중동에서는 전쟁이 이락에서는 폭탄테러가 이북에서는 미사일 발사를 세계도처에서는 홍수와 지진이 그리고 우리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들의 입에서 말세라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오늘 본문도 마지막대, 말세에 대한 말씀이다.  말세를 물질적인 현상에서가 아니라 영적인 특성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영적으로 말세란 무엇인가?
말세란 말은 물론 세상의 마지막 날이요 세상의 끝을 가리킨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세란 말은 예수님과 연관된 말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세상은 말세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면서 말세가 시작되었다. 이 말세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므로 세상은 끝나고 새하늘과 새땅의 새로운 세계가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말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시는 재림까지의 긴 기간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의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말세를 살았듯이 오늘 우리도 말세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오늘 우리는 그 말세의 끝 부분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말세가 예수님과 관계가 있다고 볼 때 지금은 야고보서 5:8대로 주님의 강림, 재림이 가까운 때다.

그러면 이 말세의 영적인 특성이 무엇인가?
18절에 보면 말씀에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말세에는 적그리스도가 일어난다고 한다. 적그리스도가 누구인가?
우선 적그리스도는 초대교회이래로 모든 시대에 예외없이 있었다.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는 사단의 능력을 받아 사단의 도구로 역사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복음을 대적한다. 그는 불법의 사람이다. 물론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에 그 대표적인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으로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복음을 반대하는 적그리스도는 하나가 아니라 그 수가 많다. 그는 누구인가? 네로와 같은 폭군으로의 박해자가 아니다. 적그리스도는 교회에 낮선 자가 아니다. 신자였다. 교회 공동체안에 있었다. 본문의 사도요한의 가르침을 받았고 다른 신자와 교제하던 자다. 그런데 그들의 잘못된 신앙이

그들의 가르침으로 들어났고 교회 지도자들에게 용납받지 못하니까 바른 신앙에서 떠났다. 그리고 교회를 떠난 자다.

한국의 대표적 이단인 통일교의 문선명씨도 전도관의 반태선씨도 모두 장로교인이었다. 모든 기독교의 이단은 교회 안에서 생겼고 교회를 떠나 파당과 분파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참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백성도 타락하는가? 교회 생활하던 신자도 적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가? 19절에 저들은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기에 나갔다고 말씀한다. 처음부터 참 신자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룟유다가 있었다. 예수님이 무어라고 말씀하나? 그는 처음부터 예수를 팔 자였다. 정말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자는 구원에서 안전하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면 이런 적그리스도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적그리스도는 신자들로 바른 신앙에서 떠나도록 의혹한다. 비진리를 진리인양 거짓으로 가르쳐 참 신앙에서 떠나게 만든다. 그들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한다.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이단의 대부분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이신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동정녀의 몸을 통해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부인했다. 예수님은 인간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 이단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고 어떤 이단은 신성을 부인한다. 그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습을 지닌 것은 사실이나 실제가 아니었다고 한다. 환상이라고 한다. 그저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다. 인성을 부인했다. 또 세린터스란 사람은 예수와 그리스도는 세례때 연합되었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그리스도는 예수를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 인간이다. 그러나 죽을 때 신성이 그리스도를 떠났다는 것이다. 죽은 것은(십자가에) 인간 예수뿐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크리스챤 싸이언스의 Mary Baker Caddy는 예수와 그리스도는 다른 존재요 그녀는 물질적인 몸, 육신은 한갓 허상이요 환상이지 실제가 아니라고 해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사람이 되신 신성과 인성을 지닌 분임을 부인해요.

통일교에서도 그래요. 조금 접근방법은 달라요. 그러나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는 그리스도 참 메시아 완전한 구원자가 아니라고 해요. 인류의 죄를 사하시는 구원사역을 하시다가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완성을 못하셨다는 거예요. 십자가는 실패라는 거예요. 물론 완전한 실패는 아니어서 영적구원을 이뤘을 뿐, 내적구원은 이루지 못했다는 거예요. 따라서 그가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온 재림주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다시 이 세상에 오시지 않는다. 재림의 주님으로 이 땅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것을 해야 되는데 자기가 그 대신 왔다는 것예요. 따라서 예수가 아니라 자기를 믿어야 완전구원에 이룬다는 주장이다.

적그리스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오 사람되신 것을 부인한다. 적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부인한다. 적그리스도는 자기가 그리스도요 재림주라고 한다. 신앙의 핵심복음인 십자가의 구원을 부인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23절이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있느니라.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안 믿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도 안 믿는 것이다. 예수와 그리스도가 하나이듯이 아들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도 하나이시다. 따로 분리시켜 생각할 수가 없다. 아버지를 아는 길은 아들을 통해서다. 아들 예수님은 사람이 되시기 전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인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고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하셨다. 요한복음에서 세 번이나 나는 홀로가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고 하였다(8:16, 29; 16:32). 또 세 번이나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도 하셨다(10:30, 38; 17:21).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다. 그의 목적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함이요 우리 믿는 신자로 하여금 아버지를 경험적 지식으로 알게 하려하셨다. 그렇다. 아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 하나님을 몰라요. 교제를 못해요. 그뿐이 아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따라서 빌립이 요한복음 14:8에 예수님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족하겠읍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와함께 이렇게 오래 있고도 나를 모르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나는 아버지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요 14:9-11).

예수와 그리스도는 나눌 수 없어요. 예수와 그리스도는 한 분이다. 한 분에 두개의 이름일 뿐이다. 역시 아들과 아버지는 분리할 수가 없다. 한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만 믿을 수는 없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믿는 것은 예수가 하나님과 한 분이심을 아들과 아버지로 구분되시나 한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나서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며 완전한 구원을 위해서는 나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적그리스도가 미혹하는 때에 우리는 어떤 신앙을 지니고 살아야 하나? 말세에 지닐 신앙은?

처음부터 듣고 배운 복음의 신앙에 굳게 서야 한다. 여기 독자들은 사도요한에게 듣고 배웠다. 그들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들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다시 사시어 그들에게 새 생명을 주셨다. 그리고 이제 다시 오셔서 천국을 세우시고 거기서 그들과 함께 영원히 사실 것이다. 그렇게 배웠고 믿었고 구원받았다. 우리도 이 기본신앙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거듭 듣고 배워서 확신한데 거해야 한다. 나아가서 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한다. 그러나 그 자람의 근거는 이 복음의 진리위에서여야 한다. 왠가? 오늘 우리시대의 특성은 지성보다 감성이요 지식보다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경험에 치중하다보면 모든 종교가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어느 신학자 모임에 신학대학교수가 불교의 스님이 자기와 똑같은 중생의 경험과 구원의 확신이 있다며 불교나 기독교나 다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주장은 예수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종교다원주의의 신념인데 사실은 적그리스도의 무기로 쓰인다. 신앙에 경험 중요하다. 그러나 말씀의 진리에 근거하지 않은 경험은 바른신앙이 아니다.

이단파인 적그리스도는 오늘 경험을 한껏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의 신앙을 위해 27절대로 주께 받은 기름부음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주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심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성령께서 우리 믿는 모든 신자에게 임하여 계신 것이다. 그 성령님께서 사단의 거짓 가르침을 물리칠 수 있도록 우리로 분별력을 주시며 지혜를 주시며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확신케 해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내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말세에 지닐 신앙은 내 경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예수의 영이시오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구원의 신앙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말세에 지닐 신앙이 무엇인가?
이제 그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그 앞에 담대히 설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가능한가? 28절이다. 주안에 거하며 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것은 죄인이요 불의했던 우리로 예수를 믿고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어 의롭게 하시므로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가 되게 하셨고 교제하는 복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이요 하나님의 은혜다. 이제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 의로워진 자에 합당한 삶,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 말씀과 계명에 따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다. 왜요? 이것은 말세의 특성을 거스려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시대 문화는 말세의 특징이 무엇인가? 디모데후서 3:2에 말세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고 원통함을 풀지 않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 자기사랑, 돈사랑,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시대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찬송가 364장에 가사가 그 고민을 이렇게 말한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라. 십자가와 고생을 져야 한다.  

주일날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린다. 주일날 쉴 수 있는 사업을 찾기가 힘들어요. 그 사업을 찾았더라도 사업이 힘들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육신의 생업에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다.

오늘 모두 바쁘고 힘들게 산다. 쉬고 편안하고 싶다. 하나님을 사랑해 예배드리려면 쉼도 포기하고 편안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 D.M. 공부할 때 한국서 온 큰교회 목사님이 부흥의 비결을 말씀하시는데 당신은 교인들에게 놀아도 교회에 나와 놀고 졸아도 예배드리며 조세요 했더니 신앙이 성장하고 교회도 부흥됐단다.

교회만 들어오면 10분안에 잠에 빠지는 여집사가 있었단다. 졸음이 심할 때는 기우뚱하면 한쪽을 넘어지려고 한다. 목사님! 졸면서도 예배드리는데 대견하게 생각하시고 여러분!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십니다. 그랬더니 자다가 벌떡 일어난 여집사가 아멘! 하면서 그것 보세요.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시기하지들 마세요. 그러면서 너무 교만했다. 그래 목사님께서 다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세요. 그랬더니 그 여집사의 말이 목사님은 왜 이랬다 저랬다 하시나? 목사도 그런데 하나님께서 졸리면서도 예배드리는 성도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겠나? 졸면서 말씀 듣고 졸다가도 깨닫는다. 하나님 사랑, 예배위해 십자가 져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다.

이웃과의 바른 관계는 어찌 되나?
오래 전 남산에 올라가는 길옆에 큰 쓰레기통이 있어서 장안의 쓰레기를 모아 두었다. 그곳에 갈 곳 없는 거지들이 모여 들어 잠을 잤다. 어느 교회 장로님이 그곳을 지나가다 넝마주이가 거지 아이들을 다 몰아내고 걸레와 쓰레기를 주워간다. 그것을 보고 쓰레기는 소중히 여기는데 거지 아이들! 부모가 없어서 그렇지 얼마나 귀한 인간인가?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쓰레기통 가까운 곳에 집을 한 채 사서 잘 수리하고는 불을 지펴 따뜻하게 하여 거지들의 잠자리를 마련했다. 이 소문이 나니까 아이들이 모여들어 고아원이 됐다. 후에 독립문 근처 영천으로 옮겼다. 이것이 한국인이 시작한 최초의 경성고아원이 됐다.

여러분! 이웃을 볼 때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신앙으로 보자. 좋은 사업, 좋은 직장, 많은 돈, 편안하고 안락한 삶, 그것이 내게만 속했을 때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겠나? 주님께 칭찬을 받겠나? 내게 있을 때 건강, 돈, 성령님이 감동하실 때 손을 펴 순종하자.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구속이 가까운 때 재림이 가까운 때를 살고 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복음의 신앙에 굳게 서자. 예수님 사랑, 이웃 사랑하라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의를 행하다가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시는 주님을 모두 기쁘게 맞이하시기 바란다.    

말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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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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