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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본문 : 요일 2:12-17
RevSuh  2008-10-09 21:23:25, 조회 : 3,210, 추천 :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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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또 그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도 사랑이다. 따라서 사랑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옳고 복된 것은 아니다. 유익하기보다 해롭고 행복 대신 불행을 가져 올 수 있는 사랑도 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사랑을 경계한다. 예수를 믿고 죄사함받고 구원받은 신자,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이 있다. 그것을 사랑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다. 영적인 성장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수가 없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인가? 왜 우리는 그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가?

본문 15절은 그것이 바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이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라고 한다. 세상! 세상을 사랑하지 말래요.

이 말씀은 다른 성경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신약, 아니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구절은 요한복음 3:16이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지 않는가? 거기서 세상은 의미상으로 볼 때 아들 예수를 주심으로 그를 믿어 구원받게 될 세상 사람들을 가리켰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타락한 죄인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인들도 사랑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세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인가? 그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다. 그 세상은 우리가 돌아보고 지켜 보존시켜야 할 곳이다. 물론 오늘 세상은 사람들의 욕심과 파괴적인 전쟁, 공장폐수, 난개발등으로 오염되어 이상기온과 천재로 수난을 겪고 있지만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도 아니라면 우리더러 사랑하지 말라는 세상은 무엇인가?
죄의 세상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상이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러니까 구원받지 못한 세계다. 5:17에 의하면 사단이 통제하고 지배하는 어두운 세상이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세상이다(요 9:39). 그 세상을 너희는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누가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야 하는가?
12절과 13절에 자녀들이요 아비들이요 청년들이다. 누가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나? 14절에 보면 예수 믿고 죄사함받은 자요 태초부터 계신 예수님을 아는 자요 악한 자 사단을 이긴 자다. 그들이 누군가? 여기 자녀는 사도요한이 일반적으로 신자에 대한 애칭으로 썼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자녀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여기 자녀, 아비, 청년은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어떤 신자인가? 예수 믿어 죄사함 받은 신자! 그때 이래로 예수님을 알아 사랑하며 섬김으로 그가 예수님이심을 주님이심을 드러내는 신자! 그리고 첫 사랑, 처음 신앙의 열심히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는 신자다. 이런 신자가 아니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킬 수 없다. 그렇다면 신자는 왜 세상이나 세상 것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나?
  
신자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세상, 세상 것 사랑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 사랑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만다. 이는 마치도 두 사람의 아내를 둔 남편과도 같다. 그는 동시에 똑같이 두 아내를 사랑할 수 없지 않은가?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지 않았나?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 사랑은 뒤로 처지고 만다.

그 결과는 15절에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하였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17절이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그렇다. 세상 것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이 주는 유익, 기쁨,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보다 명예, 지위, 재산이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만족을 주지 못한다. 누가 제일 먼저 한 말인지 알 길은 없으나 그것은 바닷물을 마심같아서 갈증과 같기 때문이다.

여러분! 앉아 있어도 무더운 날씨에 운동을 해 보라, 얼마나 더운가? 목이 타나? 갈증해갈을 위해 시원한 콕을 마셔보라. 시원한가? 시원함은 잠시뿐 갈증은 더한다. 세상 것이 그렇다. 그것을 죽을 때까지 만족하며 누린다고 하자. 그러나 얼마나 누리고 사나? 인생은 짧다. 게다가 그것은 마침내 심판으로 끝난다. 다 지나갈 것이다. 다 사라지고 만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어리석은 삶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찌 살아야 하는가? 17절에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게 된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먼저 육신의 정욕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세상을 거스려 살아야 한다. 육신의 정욕,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 한국인에게는 특별히 술인 것 같다. 얼마나 술의 종류가 많은지, 선전을 많이 하는지, 그 맛을 알 길은 없으나 술을 좋아하면 어느새 쉽게 중독이 되는 것 같다. 그 관계가 사랑의 관계가 된다. 그리되면 술없인 못 산다. 술에 취하면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신자임을 기억하지 못한다. 성령의 지배 대신 술에 지배를 받게 된다. 세상을 밝게 살지 못하고 어둡게 살게 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술은 방탕과 붙어 있다. 술에 빠지면 술을 사랑하면 기쁨은 잠시다. 가장 중요한 건강을 잃는다. 술은 간을 망가뜨린다. 술에 취해 운전하면 사고를 낸다. 운전면허를 박탈당할 수 있다. 일도 못하게 된다. 가정이 파탄된다. 아니 내가 불구되거나 죽거나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감옥에서 생을 허비할 수 있다. 엊그제 신문에 21년 전에 사람을 치어 죽이고 뺑소니친 한인이 경찰에 잡혀 배심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기사가 났었다.

그 사건 후 7년째 되던 해에 뺑소니 운전자는 예수를 믿게 됐단다. 필리핀에서 선교도 하고 돌아와 뉴욕의 어느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성경을 가르쳐 왔단다. 그런데 음주운전으로 수차례 체포되면서 지문채취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21년 전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던 뺑소니 운전자의 지문과 일치한 것이다. 신문은 의례 그런다. 40대 한인 00체포! 술사랑, 세상사랑의 결과다. 그는 15년-25년 징역형을 살아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육신의 정욕을 부추기는 술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따르지 말아야 하는 육신의 정욕은 무엇인가? 성적인 욕망이다. 얼굴이나 몸매를 가꾸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목적이 성적인 매력을 위한 어필하게 하기 위함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육신의 정욕으로 나가는 길이다. 오늘은 영화나 TV, 잡지나 소설이 모두 성을 미화시킨다. 성적인 욕망을 부추긴다. 불륜도 달콤한 사랑이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축복하신 성이 아니다. 그 같은 길을 따라감으로 하나님의 축복하신 가정 대신에, 배우자 대신에 하나님이 금하신 대상을 따라 감으로 간음으로 치닫게 만든다. 그 결과는 가정불화, 가정파괴로 부끄러움과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고린도전서 6:18에 음행을 피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한다. 음행은 다른 죄와 다르게 우리 몸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같은 우리 몸을 술취함으로 음란과 간음으로 부정하게 해선 안 된다. 하나님의 자녀는 로마서 13:13 말씀처럼 항상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해야 한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다.

안목의 정욕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눈이 있어 볼 수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우리는 눈으로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를 보고 사랑하는 가족을 보고 성경말씀을 보고 함께 형제 자매된 성도들을 보고 월드컵을 본다. 영화도 보고 비디오로 연속극도 본다. 어느 젊은 목사가 한국에 가서 더 공부하면서 어느 교회 영어부 예배를 인도할 때 어린아이들이 유치부에 다녔다. 그때가 한국에서 월드컵때였다. 예배가 끝나고 돌아온 아들에게 오늘 유치부에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대한민국 하더래요.  

그런데 볼 수 있는 것은 축복이지만 무엇이나 다 본다고 유익하고 좋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신앙을 떠나게 만들고 죄를 짓게 만드는 안목의 정욕이 되는 경우도 많다.

창세기 3:6에 우리 시조 이브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과를 보고 또 보았다. 보고 또 보면 싫은 사람도 좋아지지 않나? 그런데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 호기심에 더 보고 싶고 먹으면 죽는다는데 무섭게 보이는 대신에 볼수록 아름답고 볼수록 먹고 싶고, 그래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서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하여 함께 타락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말았다. 순간의 단맛이 자신과 남편과 온 인류에게 죄를 물려주고 말았다.

사무엘하 11:2에 보면 다윗 왕이 저녁때 침대에서 일어나 옥상 위를 거닐다가 전쟁에 나가 생명을 걸고 싸우고 있는 우리아(신하)의 아내가 목욕하고 있는 것을 보고....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그렇게 아름다웠을까? 안목의 정욕이 눈을 가리우니 아름답게 보였겠지. 왕이 아닌가? 누군지 알아보라고 했다. 신하가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아내라고 하니 사자들을 보내 데려오게 하고 동침했다.

다윗이 누군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아니었나? 별명이 성군이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이 금하신 큰 죄를 범하고 말았다. 신하의 아내를 빼앗은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부도덕한 왕이 되고 말았다. 안목의 정욕은 믿음도, 인격도, 명예도, 지위도, 한순간에 땅에 떨어뜨리고 만다.
구약의 의인 욥은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리요 라고 하였다.

여러분! 예수님은 마태복음 18:9에서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 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셨다. 이렇게 눈의 정욕에 빠지지 않으려는 싸움이 승리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이생의 자랑이다.
이생의 자랑이 무엇인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소유의 자랑이요 내가 행한 것의 자랑이다. 자식자랑도 여기 속할 것이다. 저도 예외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이것은 죄는 아니다. 그러나 만일 다른 사람의 자녀와 비교하면서 훨씬 낫다고 자랑한다면 사람에게 원망들을 일을 하는 셈이다. 제가 뒤뜰에 심은 사과나무가 금년에 얼마나 많은 사과가 달렸는지 나무가 휘어졌다. 제가 심어서일까?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그래 전도하는 날, 또 금요일 늦게까지 기도하는 분들 드셔 보라고 따왔다. 그 사과를 드시는 분들이 그래도 서목사집 사과가 괜찮다고 할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한두 개 인사로 잡수신 분은 제외하고는 아무도 먹지 않아 그대로 남았단다. 뭐 이런 사과가 있어, 이것도 사과라고... 아무도 안 잡수시더래요.

어느 장로님께서 저의 집에 오셨길래 몇 개 따서 잡숴 보시라고 했더니 맛있다고 하셔요. 게다가 벌레까지 먹은 것이 있어요. 유기농이예요. 그러면 그렇지. 다시 한번 따가지고 가서 우리집 사과 명예를 회복하리라. 하나님께서 어찌 이런 마음을 아셨을까? 집밖을 Paint를 했는데 일하는 분들에게 따놓은 사과 가져가시라 했더니 맛보더니 괜찮다고 가져갔다. 그런데 다음날 한 일군이 그래요. 사과 좀 따가도 될까요? 교회 따 갈건데. 말도 못하고 어찌 노(no)하겠나? 힘없이 그러세요. 그랬더니 힘있게 다 따가 버렸다. 하나님께서 서목사 사과자랑일랑 그만해라 자랑할 수 있는 사과가 아니야!

우리는 내게 있는 것을 무엇이나 자랑하려고 한다. 돈이 있으면 돈 자랑, 지위가 있으면 지위자랑, 내 신분이 시민권자면 불체자에게 자랑한다. 내 피부색이 희면 검은 사람보다 낫다고 자랑, 내가 한 것 때문에 자랑한다. 내가 한국에서, 옛날에 개척교회 세웠고, 교회의 무엇, 무엇도 다 내가 해 놨다. 누구누구하면 알만한 사람 다 내가 가르쳤어! 신앙도 자랑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자랑하다보면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교만한 자가 되고 만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진다. 있는 것 거둬가신다.

내게 있는 것,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만 자랑해야 한다. 내게 많은 것을 나눠 함께 누리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빈자리 채워주신다. 함께 누리는 기쁨을, 보람을 주신다. 내가 한 것도 하나님이 해 주셔서 은혜로 한 것이니 자랑한다면 역시 하나님만 자랑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힘주셔서 더 큰일도 할 수 있게 된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세상에서 구원받았다. 천국의 백성이다. 오늘의 세속문화의 거센 물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배격해야 한다.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 사랑의 신앙으로 말씀과 성령님의 은혜로 싸워 이기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믿음을 지킨 승리의 성도로 다시 오시는 주님을 소망하며 사시기 바란다.    

말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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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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