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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영적으로 성숙하려면
  본문 : 요일 2:3-11
RevSuh  2008-10-09 21:30:41, 조회 : 3,679, 추천 : 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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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성숙의 길(요일 2:3-11)

오늘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그 변화에 발을 맞추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그래 앞서 가기가 유행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요즈음 어린아이들은 낳았을 때 벌써 한달은 된 것 같고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모른다. 어린애기의 빠른 성장은 부모의 기쁨일 뿐 아니라 스피드시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에게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그렇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났다. 영적으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낳은 것이다. 그 상태는 어린아이다. 그러므로 자라나야 한다. 영적을 성숙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바람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사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가? 영적으로 성숙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린아이가 자란다. 그것은 몸만 자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면 제일 먼저 엄마를 알아본다. 아빠를 알아본다. 처음에는 누구에게나 잘 안긴다. 자기 임의는 아니지만 누구에게 가도 싫다고 안한다. 그러나 좀더 자라 부모를 알아보게 되면 항상 보아서 아는 이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가지 않으려고 한다. 또 그 어린아이들은 벌써 남자와 여자를 알아보고 여자만 좋아하는 아니도 있다. 제 손녀가 그렇다. 저를 파파라고 부른다. 저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래도 안아주려면 도망간다. 무엇인가 제게 가지고 와서 준다. 그래 안으려면 눈물이 글썽글썽한다. 시집 갈 것이 걱정된다. 그런데 그 반대로 남자만 좋아하고 남자에게만 가는 아이들도 있다.

제가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는지 아시겠지요? 아이들이 자라가면서 부모를 더 잘 알게 된다. 그들의 성장을 위해 곁에서 돌보아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영적인 성장도 다르지 않아요.

요한복음 17:3에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하였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예수를 어찌 믿겠나? 하나님이 누구이심을 알고 믿을 때 구원을 받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면 안 된다. 더 자라가야 한다. 초보의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골로새서 1:10에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가라고 말씀한다. 그렇다! 자녀가 자라면서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고 가르치시고 지금도 자나 깨나 내가 잘 되기를 바라시는 부모님! 그래서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고 순종하고 효도하게 되듯이 그것이 성숙한 자녀이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그렇게 자라가야 한다.

따라서 성장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아는 것이다.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 광대한 우주의 창조자신데 나같이 보잘 것 없는 피조물을 기억하시고 사랑하시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이 땅에 보내시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아는 것! 그 사랑의 은혜를 깨달아 감사와 찬양이 기쁨이 되는 것이 성장이다. 아들 하나님!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시고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나 대신 죄인이 되시고 내 죄값을 대신 지시고 부끄럽게 고통스럽고 저주스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그러나 다시 사시고 지금은 하늘에 계시며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아는 것, 그 예수님이 고맙고 그 예수님이 보고 싶고 그래 예수님을 사모하여 기다리는 것,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의 신앙으로 살게 되는 것이 성숙이다.

성령 하나님! 내게 오셔서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며 내 마음 문을 열어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영접케 하시어 나를 구원받게 하신 성령님! 지금도 내 안에 사시면서 영의 양식인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순종케 하시는 성령님! 말씀에 순종하여 선한 일을 하게 하시는 성령님을 순종하여 기쁘시게 하는 것, 이렇게 성령님을 알아가는 것이 영적성숙이다. 나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다른 성도! 그 성도들이 십자가 보혈로 내 형제요 자매가 된 사실을 감사하며 지체처럼 사랑하고 협력하게 되는 것이 성숙이다.

여러분! 그렇다면 나는 성숙한 신자인가? 하나님을 아나?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희생의 아들 하나님, 감동의 성령 하나님을 사랑하나? 그저 지식적으로가 아니라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관계로, 경험으로 아시나? 그래 하나님께 만 가지 은혜를 받은 자로 그 은혜에 감격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어서 예배가 기다려지고 기쁨이 되고 은혜가 되나? 예배때마다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하나님 위하여 늘 살겠네! 늘 새로운 믿음의 결단을 하게 되나?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섬기는 다른 성도가 내가 듣기 거북한 말과 행동을 해도 그의 입장이 될 수 있다. 이해한다. 그래도 형제다. 여러분 그렇게 다른 성도를 깊이 알게 되는 것이 여러분의 영적성숙의 정도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가까이 하세요. 다른 성도와 교제의 폭을 넓혀 가세요. 그리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시는 성숙한 성도가 되시기 바란다.

영적 성숙의 길이 무엇인가?
5절에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줄을 알고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함이라 하였다. 예수를 믿는다. 이 말은 예수를 내 주로 영접했다는 말이다. 내 안에 예수를 모셨다는 말이다. 고린도후서 13:5에 너희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묻고 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말은 무엇인가? 갈라디아서 2:20에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참 신자,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다.

신자치고 예수님이 없는 사람이 있겠나? 예수님과 상관이 없으면 신자일수 없다. 그러나 정말 내가 사는 것이 예수님이 사시는 것인가? 내 삶 속에 예수님이 계시고 내 말속에 예수님이 살아 계신 증거가 있는가? 내 말과 행동 속에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저 내 안에 예수님을 모셨으면 저절로 그렇게 되나? 아니다. 5절, 그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6절, 저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 세상을 사랑하사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순종하셨다. 어떤 순종인가? 하늘 영광을 포기하시는 순종,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는, 창조가 피조물이 되신 순종, 의인이 죄인을 대신해 죄인이 되신 순종, 죄인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는 순종, 영광을 부끄러움으로 바꾸신 대속의 순종, 예수님은 이렇게 아버지의 말씀에 영광의 포기로 순종, 순종하시었다.

영적성숙이 무엇인가?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3절 말씀대로 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5절 말씀대로 하면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요 6절 말씀대로 하면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나도 사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인 성장을 원하려면 값을 치러야 한다. 순종을 위해 내게 유익한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내 영광을 포기해야 한다. 영광을 구하는 한 영적 성숙은 없다. 교만을 포기해야 한다. 교만이 있는 한 순종은 힘들고 섬김 받기는 쉽지만 섬기기는 힘들다. 함께 하나님을 섬기다가 교회 일을 하다가 어려움이 생겼을 때 내 의를 포기해야 한다. 다른 성도와 섬기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내 신앙의 성숙의 test요 성숙의 기회다. 내가 책임지는 내 탓이요 내가 옳을 수 있다. 그것을 구별짓고 상대방에게 부레임(책임전가)을 하는  대신 내 탓으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여러분! 성숙하려면 편안과 미움을 포기해야 한다. 십자가를 지는 희생이 우리를 성숙으로 나아가게 한다.
여러분! 이렇게 볼 때 나는 성숙한 신자인가? 감사하세요. 계속 순종의 삶을 살아가세요. 성숙하지 못했다면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그 순종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영광에 이르신 예수님! 그 예수님 앞에 서실 것을 바라보시며 기대하면서 포기와 순종의 신앙으로 살아가시기 바란다.

영적으로 성숙하는 길이 무엇인가?
9절이다. 빛 가운데 사는 것이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신앙생활은 경주에 비길 수 있다. 히브리서 12:1에 보면,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하였다.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경주자는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 가능한 한 옷도 가볍게 입어야 하며 짐을 지거나 들어선 안 된다.

믿음으로 성숙하려면 세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일이 많건 적건 거기에만 몰입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의 일에 지나치게 바쁘고 피곤해지면 신앙의 경주를 못한다. 무거운 짐을 진자처럼 경주에서 실패하고 만다. 직장 때문에 사업 때문에 예배가 희생되고 섬김이 불가능해지게 하면 안 된다. 그리되면 경주에서 영적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세상에 붙은 정과 욕심을 버려야 한다. 회개로 털어내야 한다.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목표를 분명히 보고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11절이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 가운데서 행하는 자요 그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므로 갈 곳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한다.

그러니까 형제를 미워하면 신앙의 경주에 실패한다. 소경 경주자가 되니, 방향을 모르니 성숙의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없다. 신앙의 성숙을 기대하지 못한다. 따라서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빛 가운데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사는 것이요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따라 산다는 것이다.

그것을 10절은 이렇게 요약하였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다. 그것이 빛가운데 있어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게 하는 것이다. 거리낌이란 말은 걸림돌을 가리킨다. 장애물이다. 장애물을 없게 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형제사랑은 중요하다. 형제를 미워하면 장애물을 만들어 놓고 소경으로 경주하는 셈이다. 함께 믿음으로 형제자매된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이 막힌다.

우리 교회주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유치부에서 예배드릴 때 헌금시간에 아이들이 순번을 정해 헌금위원을 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가지고 온 헌금을 안 드린다. 왜요? 내가 싫어하는 애가 헌금위원이니까 헌금을 못 낸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해하고 난 후에 예물을 드리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영적 성장에 형제사랑은 그렇게 중요하다.

사실 영적성장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우리의 책임을 다해 성장을 추구해도 성장케 하시는 분은,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형제사랑으로 하나님과 막힌 장벽이 없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자라게 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형제사랑 그리 쉽지 않다.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면 형제간에도 다투고 싸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우리 기독교 역사상 최선의 신자들이 아닌가? 그래도 서로 내가 높다고 다투고 싸웠다. 그것을 예수님이 너무 잘 아셨다. 그래 최후만찬석에서 그 엄숙한 순간에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용서의 사랑을 가르치시기 위해 이렇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8장이다. 임금에게 1만달란트 빚진 종을 데려왔다. 갚을 것이 없다. 임금이 네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팔아 갚으라고 한다. 그래 종이 주인에게 참으소서 다 갚겠읍니다. 기다려 주십시요. 그래 임금이 불쌍히 여겨 다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탕감받은 종이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멱살을 잡고 당장 빚을 갚으라고 한다. 빚진 자가 참으소서 다 갚겠나이다 하나 그 말을 무시하고 빚갚기까지 옥에 잡아넣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임금이 빚 탕감을 취소하고 그 종을 옥에 가두게 했다. 1만 달란트 빚진 종이 용서를 받았다. 그것은 그가 죽을 때까지 일해도 갚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미화 천만불이다. 그것을 탕감받았다. 그런데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자가 안 갚는다고 옥에 넣었다. 미화로 하면 단돈 $20이다. 하나님께 받은 용서가 천만불인데 형제의 잘못 $20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찌 신자라 할 수 있겠나? 큰 용서의 은혜를 받은 자인 것을 잊지 않으면 이해도, 용서도, 사랑도 할 수 있다. 이 은혜로 사랑할 수 있다. 십자가 사랑,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신자는 베드로처럼 일곱 번만 용서하지 않는다. 20불짜리 용서를 1,000만 불까지 하려면 죽을 때까지 용서해도 다 못한다.

어느 권사님댁에 심방을 가니 텃밭에 가셔서 아직 안 들어오셨다. 조금 기다리니 비닐봉지에 고추, 도마도와 호박을 따 들고 오셨다. 웬일이십니까 했더니 목사님이 심방오실 것 같아 드리려고 밭에 가 따왔습니다. 올해는 얼마나 농사가 잘 되는지 호박도 20개가 넘게, 깻잎과 도마도, 고추를 따서 이웃과 그리고 성도들에게 나눠주셨단다. 70이 넘으셨으니 농사하는 일이 어렵다. 사서 먹는 것보다 돈이 더 든다. 그런데 기쁘게 하신다. 나눠 드리는 게 그렇게 보람되고 좋다고 하신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다. 이것이 무엇인가?

사랑이다. 사랑을 실천하면 예수님이 보이고 천국이 보이고 주님이 주실 상급이 보인다. 그 길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신앙이 진보한다. 영적으로 성숙해진다. 하나님의 자녀,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아 갈수 있다.

여러분! 하나님 사랑, 성도사랑, 이웃사랑으로 하나님을 아는데서, 예수님을 닮는데서 날마다 빛된 삶을 사는데서 자라가시는 성숙한 신자가 되시기를 바란다.  

말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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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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