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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빛되게 살자
  본문 : 요일 1:5-10
RevSuh  2008-10-09 21:43:51, 조회 : 2,980, 추천 :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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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되게 살자(요일 1:5-10)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 빛을 사람 앞에서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본문도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너희도 빛 가운데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빛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왜  빛 가운데서 행해야 합니까?
빛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그가 창조하신 우주와 만물을 주권적으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와는 어떤 관계이신가요? 물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나 그 이상이십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의로워져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아닙니까?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자녀라면 마땅히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출애굽기 3장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 불꽃 가운데로 부르셨다. 거기서 모세는 불의 하나님을 경험한다. 역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광야에 다달았을 때, 하나님은 불기둥으로 저들을 인도하셨읍니다. 그때 그 불기둥은 하나님의 임재였고 불로 임하신 것입니다. 역시 성막을 세웠을 때 하나님의 임재는 금 촛대에 불로 알려지셨습니다.

불은 빛을 낸다. 그러므로 불이신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빛되신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또 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 받고 의로워져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를 위함입니다. 어떻게 빛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까?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 하나님은 빛가운데 서시므로 그렇게 찬란하게 눈이 부시므로 아무도 그에게 가까이 할 수 없다고 했읍니다. 그렇습니다. 죄인된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하려면 우리도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 빛이신 것처럼 빛이 되어야 한다면 그 빛은, 빛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이 빛이시란 말씀은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하시며 진리이시란 말씀입니다. 또 하나님이 빛이시라고 할 때 그 말은 하나님께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말씀입니다.  
어두움이 무엇입니까? 악이요, 죄요, 무지요, 오류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빛이라면 우리는 악을 행하거나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거룩해야 하고 경건해야 하며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빛된 삶,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읍니까?
법을 지킴으로 본이 되고, 빛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나 법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나은 길이 있을 것입니다. 양심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러나 양심도 죄로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양심이 빛되고 거룩한 삶을 사는 표준이 되지는 못합니다.

세상에는 법과 양심과 도덕적인 상식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둡고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선민된 그들의 행실도 악했으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빛되게 밝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면 한 길밖에는 없습니다. 참 빛되신 하나님,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어떻게 빛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까?

1.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빛되신 하나님 앞에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 아래서,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신자들이 빛되게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신자의 수는 많아지는데 세상은 더 어두워집니까? 왜 사랑, 사랑하는데 교회가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춰지고 있습니까? 왜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크게 어두운 범죄 사건이 터지면 신자들이 그 중심에 서 있습니까? 왜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교회를 아들들에게 물려주고 세습제처럼 교회가 운영되고 있습니까? 이것이 잘못임을 저는 한국에 가서 보고 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예요.

왜 교회들이 재산 싸움으로 세상 법정으로 가는 것입니까? 왜 교회가 밝지 못하고 어둡습니까? 왜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지 못하고 손가락질과 지탄을 받습니까? 하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일날만 살아 계시고, 주일날만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되십니다. 그러다보니 주일날은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룩하고 경건한데, 빛 가운데서 행하는데, 예배당을 떠나고 주일이 지나 월요일이 되면 하나님은 안 계십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체에서, 학교에서는 하나님이 안 계시듯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을 합니다. 물론 주일성수, 주일예배, 주일 성경공부, 교회 중심의 생활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선 안 됩니다. 불신자들은 우리가 주일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중에 우리의 삶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일 예배당에 안가고 예배드리지 않는 그들과 별다른 것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신앙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오늘 우리는 예배당 중심에서 삶의 현장 중심으로, 주일 중심에서 주중으로 하나님과 교제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경외하는 삶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창세기 28장에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에게서 장자의 기업을 샀고 늙은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대신 받고 이 사실을 안 형 에서가 죽이려 하자 하란의 외삼촌 라반에게로 도망칩니다.

하란으로 가던 야곱! 해가 져 루스란 곳에서 돌을 베개하고 야영하다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 땅을 네게 주면 네 후손이 많겠고 모든 족속이 너와 네 후손으로 복을 받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잠을 깬 야곱이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에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했다. 그러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나님의 집이라 했습니다. 그는 홀로 광야에 있지 않았고 그 곳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집을 짓고 사셨습니다. 여러분! 영이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항상 살아 계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 곳곳에서 하나님이 계심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때 빛된 삶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 형들에 의해 대상에게 팔려 애굽에서 다시 종으로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요셉, 거기에도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낙심하지 않고 성실히 일을 해 가정 총무가 되었으나 여주인의 유혹을 받고는 피하고 피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가정 일을 보기 위해 부인이 있는 집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주인은 옷을 잡고 그와 동침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요셉이 어찌했나요? 그는 옷을 벗어던지고 도망을 쳐 나갔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하나님 앞에서 범하리요! 어떻게 어두운 삶을 살 수 있으료!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빛된 삶을 살기 바라십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세요. 하나님 앞에서 사세요. 예배당에 계신 하나님, 내 가정에도 계시고 내 생업에도 계십니다. 사람의 눈을 피해 가고 있는 은밀한 구습이 있나요? 거기에도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심을 깨닫고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밝고 경건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신앙에서 벗어나세요.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세요. 유혹이 있고 시험이 있나요?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유혹을 즐기리요 하고 박차고 떨쳐 버리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빛 가운데서 행하는 길이 무엇인가?
신자가 되었다고 저절로 빛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빛된 삶은 빛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주신 삶의 원리를 따를 때 가능합니다. 그 원리는 성경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선한 일을 행하며 빛되게 사는 길은 성경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시편 119장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어두운 죄악 세상에서 밝고 경건하게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경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임을 잊지 말고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경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놓으면 어두운 세상의 상식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Anotoli 스칼렌스키는 소련인 유대인으로 아내가 이스라엘로 자유를 위해 소련을 떠날 때 이별 키스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곧 예루살렘에 가서 당신을 보리라. 그러나 아나톨리는 억류당했고 마침내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에서의 아내와의 재회는 무기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그 기간 그는 감옥에서 긴 세월을 보내며 날마다 고역에 시달렸습니다. 그에게 속한 모든 사물은 다 빼앗겼습니다. 그의 유일한 소유는 축소형의 시편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간수에게 그 시편을 내주지 않으므로 30일을 홀로 갇혀 있었습니다. 마침내 12년을 아내와 떨어져 지낸 후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1986년 2월 그는 세계가 주시하는 중에 감옥에서 나와 예루살렘으로 그를 데리러 온 사람에게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순간에 간수는 다시 한 번 그의 시편을 압수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아나톨리는 눈 속으로 그의 얼굴을 파묻으며 그 시편책이 없이는 감옥에서 못 나간다고 했습니다.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시편의 말씀들이 그의 빛이고 삶의 무기요 힘이었습니다. 말씀이 그의 신앙을 지켜 주었고 그는 말씀 없이는 감옥에서 자유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12년을 헤어져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그리운 아내와 함께 사는 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말씀 없이는 못 살았습니다. 빛되게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이 생명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씀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 진리로 세상의 거짓된 것을 분별케 하며 비진리에서 우리를 지켜 주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우리 기독교의 신앙에 근간을 흔드는 영화와 책이 나왔습니다. 영화화된 다빈치코드라는 소설과 유다 복음서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전자는 예수님이 죄 많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서 자녀를 낳았고 그의 딸의 후손들이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설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예수님과 전혀 다른 예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신앙에 혼란을 야기시킵니다.

후자는 유다가 예수를 판 것은 예수님이 시켜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우리 죄를 사하시게 하기 위해 배반자로 자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공로자요 영웅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거꾸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유다 복음서는 누가 썼는지 모릅니다. 다빈치코드는 소설입니다. 유다 복음서는 성경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영감서가 아닙니다. 참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 하나님 말씀만이 판단 기준입니다. 말씀을 신뢰하고 믿지 못하면 다빈치코드에 유다 복음서에 무게를 두게 됩니다. 어두운 사단의 역사에 우리 신앙이 흔들리게 되고 의심과 불신으로 믿음에서 떠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신자가 어떻게 어두운 세상에서 빛되게 살 수 있는지도 가르칩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한국의 천주교는 지난 10년 동안에 75%가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에  입교했습니다. 저들은 우리처럼 전도도 안하고 우리처럼 많이 설교도 안하는데 우리처럼 모든 악기를 동원해서 요란하게 찬송도 하지 않는데 우리처럼 선교, 선교, 세계적인 선교대회도 열지 않는데 우리는 14만 명 이상이 줄고 가톨릭은 수백만이 늘어났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들은 말없이 꾸준히 사회봉사를 해 왔고 사람들이 저들이 하는 선행, 착한 행실을 봤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고 부족했습니다. 우리는 착한 일, 선한 일을 위해 지음받았는데 지음받은 대로 살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고 사람들이 우리의 전도에 마음 문이 열려 기쁘게 듣고 예수를 영접하며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들에게 비칠 때 하나님의 자녀의 향기를 풍기지를 못했습니다. 우리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수요일마다 전도부원들이 전도하는데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쉬지 않고 5,6년 동안 매주 전도하는데 열매가 없다면, 희소하다면 그것도 내가 말씀대로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탓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줄 선한 일이 없었습니다. 내가 회개하면 내 삶이 말씀으로 변화되면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일제시대 평양신학교에 다니던 안진삼 전도사는 허가를 얻어 수천양육원을 설립하고 어린이와 노인들을 30여명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장로인 처남을 찾아가 수천양육원에 기부를 좀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처남은 기부하겠다고 대답은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습니다. 처남은 만석군에 소문난 부자로 기부할 선행할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하지, 나중에 하지 하고 미루다가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나니 모든 재산 다 공산당에게 빼앗기고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안진삼 목사가 서울에서 처남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처남은 그때 기부 좀 했으면 좋았을텐데 이제는 후회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모릅니다. 오늘 건강할 때 오늘 시간이 있을 때 오늘 여유가 있을 때 오늘 마음이 있을 때 지체하지 마시고 오늘 하세요. 오늘 세상에 빛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빛 가운데서 행하면 하나님 앞에서 살면 먼저 내가 복을 받습니다.  어두운 죄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데 죄를 질수 없습니다. 혹시 죄를 짓는대도 하나님과 교제하면 죄가 보입니다. 그래서 회개합니다. 그러니 사랑받습니다. 의로워지고 의인이 됩니다. 그 복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죄로 인해 세상이 홍수 심판을 받았을 때, 죄로 인해 소돔 고모라가 유황불로 심판을 받았을 때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의인 노아요, 의인 롯이었습니다. 빛되게 살면 구원의 복을 누립니다. 주님 오실 때 빛되게 산 성도는 구원받은 자로 들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잠언 3장 33절에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고,  4장 18절에 의인에 길은 돋는 해 같고, 10장 3절에는 그 영혼은 주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14장 32절에 의인은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서울대 종교학과 김종서 박사는 지난 10년 사이에 가톨릭 교회가 74%나 증가한 이유를 네 가지로 분석했습니다. 그 중에 가톨릭 교인들의 청렴성과 투명성과 복지와 사회 정의 구현 활동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두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멀리 단기선교를 가지 않고 대형집회를 안해도 말씀 따라 빛되게 살면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것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빛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므로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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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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