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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본문 : 요일 1:1-4
RevSuh  2008-10-09 21:48:50, 조회 : 3,129, 추천 : 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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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요일 1:1-4)

세계의 기독교가 5월 19일 개봉될 영화 다빈치코드 때문에 흥분하고 있다. 상영 반대, 상영 불가 소송, 상영시 진실이 아님을 밝히는 자막 넣기 등으로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에서도 다빈치코드의 진실을 알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결국 영화는 상영될 것이다.

그것을 관람한 사람들에게는 복음 전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말씀위에 굳게 서 있지 못한 신자들은 그 신앙에 손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바람직한 대처가 무엇이겠나?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심을 분명하게 정확히 아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직접 보고 그에게 듣고 그와 함께 한 증인들이 쓴 성경의 복음서와 서신을 보고 공부하고 들어야 한다.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 중에 하나다. 본문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제자 중 하나요 예수님이 사랑하신 제자 사도 요한이 쓴 편지다.
그러면 이 편지에서 사도 요한이 가르치고 전해 주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1.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1절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한다. 무슨 말씀인가?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다. 예수님은 태초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시간의 역사가 시작하기 전에도 계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계시지 않은 때가 없으시다. 여전하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란 말이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 1장 1절에 분명하게 말씀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아들 하나님으로, 말씀으로 계시었고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이시다.

그런데 그 말씀이 사도 요한과 다른 제자들이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게 되었다고 한다. 말씀으로 계셨던 아들 하나님께서 우리처럼 살과 뼈가 있어서 보고 만질 수 있는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시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 왜 그러셨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영원하신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의 세상에 들어오셨다. 그래서 사람과 함께 사시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보여 주셨다.

그래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9절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실 수 있으셨다. 왜 말씀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셨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때문에 사람이 되시었다. 왜 꼭 말씀이신 하나님! 아들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야 했는가?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려면 죄없는 사람이 죄값을 대신 치러야 하는데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대신 할 수는 없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 만일 자격이 있다고 해도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의 죄값을 치룰 자격이 없다. 그래서 죄 없으신 아들 하나님이 인간 아버지 대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나시므로 완전히 사람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시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나? 이것도 사도 요한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듣고 성령님의 영감을 받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통해서 안다. 영감을 받은 선지자들이 쓴 하나님의 말씀으로 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이다. 예수님은 그 진리의 말씀이 약속한대로 베들레헴에 처녀의 몸을 통해 사람이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말씀자체시다.

설교는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66권의 모든 성경은 책마다 그 중심이 말씀자체이신 성육하시어 우리의 구주가 되신 예수님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어떤 삶을 사셨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로 알려면 다빈치코드를 볼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인간 영웅으로 묘사한 예수전을 볼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보고 공부하고 들어야 한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해야 한다. 들려지는 말씀의 설교에서 인격적인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예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말씀이신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영광을 포기하시고 사람이 되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다.

여러분 이 진리에 확신이 없나?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사람이 되시어 신성과 인성을 지니고 나의 주님이란 진리가 이해 안 되나? 성령님께서 깨닫고 확신하여 믿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세요. 그리고 말씀을 보고 들으시기 바란다. 예수님은 온전하신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사람이시다. 그래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2.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이다.
2절에 나오는 말씀, 이 생명의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한다고 하였다.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이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 생명이 되시는 것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생령이 되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죄로 죽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대신 죄인이 되시고 우리 죄값의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장사되셨으나 다시 살아나시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의롭다하시었다. 따라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예수님을 믿으면 그 예수님이 내 구주가 되시면 내 죄가 사해지고 의로워진다. 정죄와 심판이 없다. 요한복음 3:16대로 죽음이 없고 영생한다. 예수님은 3년 공생애 사역중에도 당신이 참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셨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장사지냈다. 슬퍼하는 저들을 찾아가신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네, 내가 믿나이다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이나 된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셨다. 그리고 무덤을 막은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여있었다. 장사된 시신이 걸어 나온 것이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의 능력이었다.

3. 예수님은 교제케 하시는 말씀이시다.
3절,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함은 너희를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예수님이 생명의 말씀이시오 죽은 영혼에게 새 생명을 주신다면 예수님이 복음이요 기쁜 소식이다. 그래서 반드시 전파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듣고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말씀이셨던 예수님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셨고 이제 다시 오시지 않는가? 그렇다면 복음의 말씀을 전해야 하지 않겠나? 복음을 전하기는 쉽지가 않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은 영혼을 망하게 하려 한다. 복음을 전할 때 듣는 자의 귀를 막는다. 마음을 강퍅게 한다.

요한의 때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종교지도자들이 주후 50년 이후에는 로마의 황제들이 산발적으로 그리고 250년 이후에는 로마가 국가적으로 조직적으로 전도자와 교회를 박해하므로 복음을 전할 수 없게 하였다. 따라서 사도요한과 다른 제자들은 모두 복음전파에 생명을 걸어야 했다. 그것은 나만 구원받을 수가 없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그 사랑을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를 위해 사도요한도 잡히고 매맞고 옥에 갇히고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다. 모든 제자들은 이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 그러나 생명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스펄전은 복음전도가 힘들지만 마침내 승리할 것을 이렇게 예로 들었다. 사막에서 대상들이 물이 동이 나고 갈증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면 봉이 하나인 민첩한 낙타 한 마리를 내 보내고 그 낙타를 탄 사람은 달릴 수 있는 한 빨리 달린다. 그 낙타가 멀어지면 첫 번째 낙타를 볼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두 번째 세 번째 낙타를 계속하여 떠나게 한다. 낙타는 본능적으로 물을 찾아 갈수 있어서 속력을 내서 사막을 건넌다.

첫째 낙타를 탄 사람이 물에 도착하면 확인하고 낙타를 타고 오라고 소리친다. 오라, 오라! 오라 마침내 오라고 하는 소리가 전 사막에 울려 퍼지게 되고 대상들은 모두 물을 마시게 되어 산다는 것이다. 죄로 죽은 영혼에게 말씀 예수 그리스도는 생수이다. 생명의 주를 발견한 우리도 나가 외쳐야 한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힘들고 안 되어도 오늘도, 내일도 지속적으로 전하면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역사를 이룰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이렇게 영혼구원이요 구원의 축복을 함께 나누기 위함이다.

사도행전 2장이 바로 그것이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전했고 날마다 믿는 자가 더했다. 날마다 함께 모였다. 사도들에게서 말씀을 배웠다. 함께 먹었다. 있는 자는 없는 자와 함께 나눴다. 부족한 자가 없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성도의 교제요 구원받은 결과였다. 따라서 구원받은 신자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구원의 축복을 누려야 한다. 성도의 교제는 말씀의 증거로 된다. 말씀에 기초한다. 성도의 교제는 서로간에 연합이다. 이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되며 성령님의 역사다.

우리는 구원의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과 교제해야 하며 구원의 은혜와 능력을 늘 경험해야 한다. 역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요 형제이니 서로가 함께 나누는 교제를 해야 한다. 믿음도, 지식도, 경험도 은사도 서로 나눠야 한다. 나는 내 것을 얼마나 나누는가? 그래서 서로의 부족을 채워야 한다. 나와 성도의 교제는 참된가? 기쁨도, 슬픔도 문제도 함께 나눠야 한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기도해야 한다. 이 교제를 통해 불신앙과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며 세상을 이겨야 한다. 이 교제를 통해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용기와 힘을 얻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지난주 어느 구역 집사님댁에 갔더니 선인장 빈 화분을 사다가 작은 화분을 수십 개 만들어 구역예배 때마다 당신 집에서 구역식구들에게 나눠주신다.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다. 그 작은 선인장 화분이 구역원을 하나로 묶어 준다.

오늘 찬송가 대회도 구역성도의 교제다. 구역들이 얼마나 열심히 전도했는지 얼마나 성도의 교제로 자주 모였는지 성도의 교제를 어느 구역이 제일 잘 했는지를 하나님 앞과 모든 성도들 앞에서 증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교제를 충실히 한 구역이 하나님 앞에서 1등의 영광을 얻을 것이다. 여러분, 기쁠 때 함께 기뻐할 신자가 몇 사람인가? 슬플 때 위로해 줄 성도가 몇 명이나 되나?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줄 형제는 얼마인가? 여러분 교제의 폭을 넓혀 가세요. 예수님은 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를 지셨다. 나를 구원하셨다.

여러분!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이시다. 예수님은 교제케 하시는 말씀이시다. 말씀을 통해 구원의 생명을 누리시며 전하시며 함께 나누시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승리의 삶을 힘차게 살아가시기 바란다.  

말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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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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