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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무엇이 먼저인가
  본문 : 요삼 1:1-4
RevSuh  2008-10-27 09:08:02, 조회 : 3,292, 추천 :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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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먼저인가?

엊그제 어느 일간 신문에(11/21/06) 남북한 남녀의 키를 비교하는 수치가 실렸다. 북한의 여성과 남성이 모두 남한에 비해 키가 월등히 작았다. 실제 일제하에서는 북한이 크고 남한이 작았다는데 그것이 뒤바뀐 것이다. 북한은 일제시대 수준인데 비해 남한은 서구형이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신생아는 2㎏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영양결핍으로 다리가 짧아지고 딱딱한 음식을 씹어 얼굴에 각이 생겨 통일이 되면 외모로 위하감이 생길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북한으로 보내는 구조식량의 80%가 애국미의 명목으로 회수되고 있다고 한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백성들이 굶어 죽고 먹고살기 위해 생명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북한이 왜 이리 비참하게 되고 말았는가? 조선건화, 군비중강에 미사일 핵무기 만드느라 배고픈 국민들을 돌볼 여유도 관심도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나? 무엇이 먼저인가를 몰랐다. 아니 무시했다. 우선순위가 뒤바뀐 결과이다.

오늘 본문도 사도요한이 전도자 가이오를 위해서 한 기도다. 요한은 가이오가 범사가 잘되기를 소원하고 있다. 이 기도의 소원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기도 속에는 신자된 우리가 유념하고 지켜야 할 삶의 순서가 있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도 잘하려면 먼저 할일이 있다. 그것을 지켜 살 때 복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이 먼저인가? 우리가 먼저 힘쓸 일이 무엇인가?
요즈음 젊은이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하나 아니면 둘밖에 낳지 않는다. 자녀낳고 기르고 가르치기가 전보다 더 힘드니까요. 집을 마련하기도 힘들지만 자녀교육비도 만만치 않다. 한국에 경우는 대학을 나와도 웬만한 대학을 나와서는 취직이 안 된다. 그래 자녀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젊은 부부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이민한다.  신자들 중에는 보다 넓고 자유로운 곳에서 신앙생활하며 세계선교에 꿈까지 펼쳐 보리라 생각하고 기대와 설레임으로 이민을 왔다. 미국만 가면 모든 일이 다 잘될 수 있으리라.

제가 군에 입대할 때 당시 저는 보충역으로 있었다가 갑자기 입대 통지서를 받았다. 그 다음해부터 ROTC처럼 신학교에 군목제도가 생겼다. 그래 사병으로 입대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논산 훈련소 교육만 받으면 기성부대는 가서 편안하게 사무를 보게 되겠지, 그런데 논산훈련소를 마치니 후반기 교육이 기다리고 있었다. 후반기 교육마치고 부대배치 받으니 신병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교육을 마치고 나니 교육사단이라 훈련소보다 더 강도 높은 훈련이 매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군에 입대할 때 기대, 그건 꿈이었다. 미국만 가면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여러분 살아 보니 어떤가?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한다. 부지런히 땀흘려도 혼자 벌어서는 살기 힘들다. 그래 부부가 함께 뛰다보니 아이들 얼굴 보기도 힘들게 되었다. 아이들 교육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취직을 한다해도 기술이 없으면 먹고살기에 급급하다. 그래 사업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민자들의 수가 증가되면서 이민자들이 할만한 소자본의 사업도 경쟁이 심화되었다. 그러다보니 주6일하는 사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 또 6일간 일해서는 넉넉한 생활이 힘들다. 그래 주7일하는 사업을 하게 된다. 주일날 예배시간은 지키기도 힘들게 된다. 주6일 사업을 택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그 사업도 주일까지 연다. 경쟁에 뒤진다. 어쩌겠나? 주일도 문을 연다. 주7일 사업이 되고 만다.  

세계선교의 꿈은 사라지고 신앙의 세계는 점점 작아진다. 주일 예배 한 시간 드리기도 너무 힘들다. 봉사는 아예 못한다. 한두 번 주일예배에 빠진다. 주일 안 지켜도 별로 괴롭지가 않게 된다. 점차 이름뿐인 신앙인이 된다. 절기때나 예배하는 신자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사업은 잘되나? 그것도 아니다. 몸도 영도 지치고 피곤하다. 육신도 심령도 곤고하고 가난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물론 미국을 잘 모른 것, 언어의 장벽, 지나친 경쟁, 4.29폭동, 안전하지 못한 사업의 환경 등등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말씀의 진리로 생각해 보자.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데 내가 내 삶의 주관자가 되지 않았는가? 직장이나 사업도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 환경과 처지만 보고 결정하지 않았나? 먼저 하나님! 먼저 신앙, 먼저 내 영혼의 강건 대신에 먼저 나, 먼저 경제, 먼저 육신의 성공이 우선이 되고 말지 않았나? 물론 육신의 삶, 내 몸의 건강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순서가 바뀌었다.

오늘 본문을 보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고 있다. 먼저 네 영혼이 잘 되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6장 31절 이하에서 먼저 할 일이 무엇임을 분명히 하셨다. 염려하여 먼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도 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신다고 하였다. 여러분, 나는 어떤가? 내 삶의 순서는 바른가? 먼저 해야 할 것을 뒤로 미루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내 육신의 삶을 복된가? 형통한가? 그렇지 못하다면 여러분, 용단하고 하나님 없는 이방인처럼 산 삶을 회개하자. 먼저 신앙, 먼저 하나님 말씀, 먼저 하나님 나라의 신앙으로 돌아가자. 먼저 나, 먼저 세상, 먼저 육신의 삶으로 만족하시나? 모든 일이 잘 풀리나? 형통한가?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진리이다. 영혼이 잘 되기 위한 신앙생활에도 먼저 힘쓸 일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면 자주 베다니의 마르다의 집에 들르곤 하셨다. 거기서 주무시고 아침에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시어 거기 모인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누가복음 10:38절 이하에 보면 그 어느 날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에 마르다의 집에 들르셨다. 주인된 마르다로서는 적지 않은 식객을 맞은 셈이다. 손님을 대접하려니 얼마나 마음이 급했겠나?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며 식사준비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찾다보니 동생은 예수님 앞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있는게 아닌가? 마르다는 부화가 났다. 마리아는 말할 것도 없고 예수까지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식사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아실텐데 마리아와 말씀만 하고 계시다니! 그래 마리아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을 하게 두는 것을 왜 생각지 못하십니까? 제 동생에게 제발 저 혼자 하고 있는 식사준비를 도와주라고 하세요! 동생에게는 아마 눈을 흘겼는지 모르겠다. 마리아가 예수님! 저 언니를 도와 식사준비 할께요 하고 예수님 앞에서 떠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언니가 호소하는데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있었겠나?  

여기서 예수님은 마르다의 일인 예수님과 제자들 손님들의 식사 대접하는 일이 필요없다고 하시지 않았다. 몇 가지나 한가지만으로도 족하다 하셨으니 그것도 필요하다고 하셨다. 신앙생활은 섬기는 생활이다. 그리고 식사대접, 손님대접은 특별히 말세를 사는 성도가 힘쓸 신앙의 미덕이다. 그것은 이웃사랑 하라는 계명의 실천이기도 하다. 그렇게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는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했다고 하셨다. 그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무엇이 먼저 하여야 함을 가르치신 것이다.

신자는 봉사해야 하며 교회는 섬겨야 한다. 교회에서 주일이나 특별한 날 식사하는 것은 사랑의 교제로 정말 중요하다. 식사를 위해 분주하게 땀흘려 일하는 것은 아름답다. 더구나 식사 후에 남성 성도님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예수님을 보는 것 같다. 정말 우리 교회 여성도님들은 좋은 남편을 두셨다는 생각이 둔다. 교회에서는 저렇게 당당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고 식사를 나르니 집에서는 아내가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아내의 일을 도울까? 그러나 그럼에도 예배없는 봉사는 예배에 앞서는 식사준비는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먼저 할 것, 예배, 말씀듣기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 영혼이 건강하니 봉사의 일도 힘있게 더 잘 할 수 있다.  

우리 교회에서 구역은 작은 교회의 역할을 한다. 구역예배는 물론 주일예배와는 다르다. 구역예배는 친교가 중심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분들을 초대해서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쉽게 어울리며 신앙을 갖게 하는 전도를 위해서다. 또 새로 우리 교회를 찾아오신 새교우들과 신속하게 서로를 친밀하게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런데 구역예배의 중심이 언제부터인가 너무 식사에 중심이 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먹는데 지나치게 비중을 두면 구역예배가 부담스러워진다. 모든 가정이 구역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구역예배시간에도 예배 대신 식사준비만 한다. 더 심할 경우는 주일 오후에 구역예배가 있는 경우에 아예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구역예배 식사를 준비하기까지 한다. 구역예배가 중요하고 구역예배때 성도의 교제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구역예배도 예배이기에 예배보다 식사가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한 가지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서너 가지면 족할 것이다. 신앙생활에 최우선은 하나님께 예배다. 예배때 최선을 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참여할 때 식사의 교제도 적절하게 제자리를 찾게 될 때 영혼이 잘되는 은혜가 있을 것이다.

우선순위를 지켜 먼저 할 일을 먼저하면 어찌 되는가?
2절, 사도요한은 본문에서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케 된다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우리 신자가 누릴 축복된 삶이 무엇임을 잘 가르친 진리이다.

1902년에 그리스도 신문에 게제된 내용으로 먼저 살필 것이란 글이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도적을 만나 상처받은 사람이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옷이 찢어졌는가가 아니라 몸이 상했나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에게는 옷보다 몸이 더 귀하기 때문이다. 육신은 영혼의 옷과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혼보다 육신을 먼저 생각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썩어 없어질 육신은 잘 가꾸나 영원히 살 영혼에 대해서는 도무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누구든지 지혜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영혼을 경히 여기지 못할 것이다. 내 몸은 상관할 것이 없으나 영혼도 상하지 않도록 반드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신자는 누구나 이 글의 내용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내용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영원히 사는 것은 영혼만이 아니라 몸과 함께다. 부활한 몸이다. 영혼은 선하다거나 육신은 악하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영은 귀하고 몸은 하찮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참된 축복은 영혼이 잘됨같이 육신도 잘되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영혼만 아니라 육신과 영혼으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영혼만을 중시한다면 육신이 병이 든 성도는 굳이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필요치 않을지 모른다. 그 병을 인해서 하나님을 더 찾고 죄를 그치며 천국을 소망하게 되니 질병이 영혼에 유익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그 육신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시기를 위해 기도한다. 왜요? 예수 믿고 구원받아 영혼이 잘된 신자가 가난하게 살거나 병약하게 살면서는 주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킴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내 몸이 아프고 병약하면 섬기고 싶어도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게 되고 위로하기보다 위로받는 삶을 살게 된다. 다른 성도를 위해 기도해 주기보다 기도를 받게 되지 않는가? 그러므로 영혼이 잘되어야 하지만 육신도 건강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을 사모하므로 영혼이 부요해야 한다. 열심히 일해서 물질의 축복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주님의 사업에 쓰임받게 되고 가난한 이를 도우며 세계 선교도 힘있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축복된 삶은 먼저 하나님 신앙이 될 때 찾아오는 결과라고 가르친다. 고린도전서 10:31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가 생의 목적이란 말씀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려면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거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위함이어야 한다. 따라서 담배나 술을 피하고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적절하게 건강을 유지하므로 예배와 봉사와 전도에만 아니라 직장과 사업과 생업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영혼이 먼저 잘될 때 범사가 잘되는 진리는 우리의 생업에도 예외가 아니다. 욥기 8:5-7에 이렇게 말씀한다. 먼저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고 그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리고 생업에서 정직하고 청결하라. 믿음으로 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정녕 너를 돌아보아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신다. 가정이 복되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가 가정도 생업도 모두 잘되고 창대케 되기를 바라신다. 나는 이런 복을 누리고 살아야 한다.

전 달라스 카우보이의 감독 탐 Landry는 예수를 아는 것이 그에게 일어났던 가장 큰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모든 특별한 자리에 두셨으며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 자리를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의 영광을 위해 쓰시기를 기대하신다. 따라서 나는 축구 코치를 하든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할때든 항상 크리스쳔으로 했다. 그리스도가 나의 첫째요 가정이 두 번째이며 축구는 세 번째다. 그는 우선순위를 따라 말하고 행동했다. 영혼이 잘되고 축구 코치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므로 범사가 잘되고 형통하는 복을 받았다.

여러분! 우리도 먼저 하나님, 가정 그리고 사업의 순서를 지켜 살자.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참으로 복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란다.  

말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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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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