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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예수님의 십자가
  본문 : 요 3:16
RevSuh  2015-04-28 23:16:08, 조회 : 2,207, 추천 :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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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요 3:16-18, 갈 3:13, 빌 2:8)(040107)

  주리어스 씨저가 정적의 반대를 피해 한 섬으로 가다가 해적의 공격을 받고 포로가 됐었다고 한다. 해적들은 그를 40일간 억류하면서 몸값으로 12,000금화를 요구했다. 참모들이 그 돈을 지불해서 풀려나게 된 씨저는 함대로 모아 해적들을 공격해서 체포하고는 받은 수모에 대한 보복으로 그들을 십자가에 처형시켰다고 한다. 그 후로 로마는 극악한 죄인에게 사형의 형벌로 십자가 처형을 했다고 한다.
십자가 처형은 가장 잔인한 형벌이다. 십자형의 나무통에 죄수를 눕혀 억지로 손발에 쇠못을 박는다. 죄수는 기절할 때까지 소리를 지른다. 나무로 세운다. 나무에 매달린 채 피와 땀에 얼룩지고 더럽고 냄새나는 죄수의 몸에는 파리 떼가 떼지어 달라붙는다. 산 사람인데 손과 발이 썩은 고기처럼 부어오른다. 그 상태로 수일동안 죽지를 않는다. 우리 주님께서 이런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되는데 눈을 들어 우리 모두 그 십자가를 바라보자.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 예수님을 보고 우리 자신을 보자. 그리고 내가 받은 십자가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 바란다.

1.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이다.
십자가는 사형의 형틀이다. 그것은 가장 극악한 죄인에게 지워지는 형벌이다. 십자가는 로마의 시민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노예나 종 같은 비천하고 전쟁의 포로처럼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없었던 죄인이 받는 형벌이었다.
죄인 중에 죄인 중에 죄인, 천한 자 중에 천한 자가 지는 십자가이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예수님은 그렇게 천한 분인가?  요한복음 1장 1절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시다. 천한 분이 아니시다. 정말 귀한 분이요 낮은 분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다.
  마태복음 26장 63절에 예수님을 체포해서 심문한 대제사장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말했느니라 이어서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분이시오 심판주로 다시 오실 분이다. 그렇게 높으시고 영광스러우며 모든 죄인을 심판하실 재판장이시다.
그러면 십자가에 죽어야 할 극악한 죄인이신가? 요한일서 3장 5절이다.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극악한 죄인이 아니다. 예수님은 아예 죄가 없으시다. 예수님은 의인이시다.
예수님을 체포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 그래 재판하면서 죄인을 만들기 위해 거짓 증인들을 세웠으나 그들의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신성 모독 죄를 씌워 그를 죽이기 위해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고소했다. 예수님을 넘겨받은 총독 빌라도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시기로 그에게 고소한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가능한 한 그 사건을 맡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자리가 그 재판을 피할 수 없게 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했다. 빌라도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만 물었고 예수님은 네 말이 옳다고 대답하셨다. 유대인들은 말도 안 되는 이런저런 죄로 고소를 많이 했으나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빌라도는 명절을 당할 때는 죄수 한 사람을 유대인들의 소원대로 놓아주는 전례에 따라 예수를 방면시키려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의도와는 달리 예수님 대신에 바라바란 죄수를 놓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어떻게 하랴?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빌라도는 무리 앞에서 물로 손을 씻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거기 모인 무리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결국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내어주고 말았다.
예수님은 죄가 없었다. 심문을 해서도 죄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십자가에 죽으시었다. 왠가? 요한일서 3:5대로 그가 우리 죄를 없이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시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3장 13절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의 십자가를 지셨다.  죄도 없으시고 천한 분도 아니신데 왠가?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시려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죄 없으신 그에게 우리 죄를 대신 지시게 하시고 그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셨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예배로 날 구원하신 하나님을 영원히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헌신으로 하나님을 섬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예배가 내 삶에 가장 소중한 부분이 되고 우선순위가 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여러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다면 이 고난주일에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단하시기 바란다. 모든 예배에 기쁨으로 참예하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란다. 여기서 더 나가야 한다. 에베소서 5장 1절이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절,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가 사랑가운데 행하라. 그렇다.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긍휼과 희생이다.
이사벨이란 여인이 해산하다 갑자기 하반신마비의 불치병에 걸렸다. 수많은 재산을 들였으나 병세가 악화만 된다. 치료를 포기하고 치료비를 한국 동란으로 고생 중이던 전쟁 고아들에게 보냈다. 그 돈으로 부산에 고아원이 섰고 그 후에 학교가 섰다. 이사벨은 1년 후 사망했다. 장례식에 모인 가족 친지 아무도 모르게 그 부인이 자신의 치료비 보낸 것으로 학교가 세워진 것을 알고 놀랬다. 설립 2주년째 남편 데이비스씨를 초청 아내의 치료비로 세운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감격! 학교 건축 중 어려움을 보고 돌아와 집과 재산을 저당 잡혀서 6만 불을 보냈다. 4,500명이 공부하는 이사벨 여중고가 됐다. 이것이 무엇인가? 저와 여러분이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사랑이다.

2. 십자가는 순종이다.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 계획은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어 질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예수님께는 십자가의 고통이요 십자가는 죽음이요 십자가는 심판이요 십자가는 저주요 십자가는 부끄러움이었다.
성경은 마태복음 26장 38절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신 괴로운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신 예수님은 괴로운 심정으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다. 거기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시고 당신은 따로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시고 간절히 기도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잔이 무엇인가? 죽음이다. 십자가다. 저주이다. 예수님의 기도는 피와 땀이 범벅이 되시어 내 뜻과 아버지의 뜻과의 투쟁이었다. 마침내 예수님은 기도로 힘을 얻으시고 당신의 뜻을 접으셨다.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십자가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었다. 순종의 십자가, 십자가의 순종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우리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를 짓고 그 죄값으로 죽음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으로 죄와 사망이 왔기에 용서와 영생도 한 사람으로 온다고 말씀한다.
18절이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르는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이어서 죄인을 살리는 의의 한 행동이 무엇임을 말씀한다. 19절, 한 사람이 순종치 아니하므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는 순종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죄인이 되고 그 형벌로 죽음을 면할 수 없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므로, 순종으로 의인이 되고 생명, 새 생명 영생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인되고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다면 구원받은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순종에 큰 빚을 졌다. 순종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신다.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순종은 우리가 해야 할 순종은 좋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하나님의 뜻이기에 어렵다. 힘들다. 그러나 순종은 축복이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셨다면, 순종치 않으셨다면 어찌 되었겠나?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의 구원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요 정죄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예수님은 순종으로 구원받고 의인되고 심판이 없게 되었다. 순종하신 예수님께는 어떤가? 순종은 예수님께 십자가, 고통이요 고민이요 슬픔이요 아니 죽음이지만 순종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었다. 구원계획을 이루셨다. 영광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무덤에서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었다. 부활하셨다. 하늘에 올라가시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었다. 이제 온 세상의 심판주로 다시 오신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분이 되시었다.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
순종은 힘들다. 그러나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우리에게 축복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잘 지내던 부부가 마찰이 잦다. 흔히 하는 말은 성격이 다르단다. 그리고 성격차이라며 못 살겠단다. 갈라선다. 이혼을 생각한다. 그런 가정들도 있어요. 권면이 필요해요. 권면이 무엇이겠나? 당연한 사랑과 존경이 하나님의 뜻이예요. 순종하기 어렵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만큼이야 어렵겠나? 서로 양보하고 변하자. 믿음이 있는 내가 먼저, 남편이 먼저 용서하자. 사랑과 존경은 부부의 뜻이었다. 그런데 사단이 역사한다. 서로 미워한다. 무시하게 만든다. 그것이 부부의 뜻이 되고 만다. 사랑과 존경이 하나님의 뜻이 되니 순종을 못한다. 순종의 십자가 바라보며 기도해야 한다. 힘을 얻어 순종해야 한다. 그때 내가 살고 자녀가 산다. 가정이 회복된다. 내 신앙이 산다. 가정, 부부 문제가 있다면 고난주간에 회복하자. 교회 안에서 적은 문제나 큰 문제가 나면 시험이 된다. 교회 나가지 않겠다는 내 뜻이 생긴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에 나오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뜻, 순종이 힘들어진다. 어찌 신자에게 교회에 나오는 것이 내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만이 될 수 있겠나? 그러나 시험이 들면 그렇게 된다. 교회에 나오지 않을 많은 이유가 생긴다. 권면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기도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마땅히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어야 한다. 순종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내 영이 산다. 이 고난주간에 믿음에 문제가 있다면 회복의 기회로 만들자.

3. 십자가는 화목이다.
구약시대에는 특별한 직분으로 제사장이 있었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가 백성의 죄를 사하고 하나님께 제사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제사를 드릴 때마다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흘리고 제단에 뿌려야 했다. 그렇게 피를 흘림으로서만 자신과 백성의 죄를 사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매일 제사에서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므로 죄 용서를 받고야 하나님께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죄는 짐승이 대신 죽음으로 피흘리므로 사해질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사람으로 낳게 하셨다. 죄 없는 예수님에게 우리 죄를 대신 지게 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므로 우리 죄가 사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흘리는 제사는 필요없게 되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7장 27절에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이는 주님이 단번에 자리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고 하였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가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 죄를 고백하여 용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 소원을 아뢰어 응답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사이에 불화가 해소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로 죽으셨으므로 불화가 변하여 화목이 되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십자가의 화목의 빚을 졌다. 하나님께서 화목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우리이지만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화목은 지속될 수 없다. 범죄하지 말아야 한다. 죄를 지었다면 품은 채 살지 말아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십자가로 하나님과 화목케 된 우리는 히브리서 12장 14절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누구와 불화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그 죄는 우리의 기도 응답도 막는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22절이다. 형제에게 노하지 말라 조롱하지 말라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하지 말라 그래서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24절에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예배를 드리라고 하였다.
여러분! 누구와 불화한 이가 있나? 자녀인가? 남편인가? 아내인가? 한 교회를 섬기는 형제 같은 신자인가? 사업경쟁자인가? 부모인가? 이 고난주간에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자. 화목하기는 내가 억울하다. 내가 옳다. 내가 손해다. 불화의 원인은 저쪽에 있다. 이유가 있어요. 그러나 접으세요. 불화에는 두 사람이, 두 편이 모두 문제가 있다. 내 잘못도 있다. 깨닫고 회개하자. 그리고 화목을 청하라. 화목의 빚을 졌으니 이번 기회에 갚으세요.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세요. 나를 죽이세요.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높여 드리세요. 그러면 예배가 기도 응답이 새로워질 것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축복하실 것이다.
레오날드 다빈치가 명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였다. 가룟 유다는 자기가 제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그렸다. 그러나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려니 대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예수님 없는 최후의 만찬이 있겠나? 고민하던 그는 가룟 유다로 그린 이를 찾아갔다. 자기가 그를 미워하고 싫어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화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명화 최후의 만찬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화목은 십자가를 지는 일이지만 축복이 된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순종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화목이다. 우리는 사랑에 빚진 자, 순종에 빚진 자, 화목에 빚진 자다. 이 고난주간에 갚으세요.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내가 십자가를 지세요. 그리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르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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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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