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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지혜로운 삶
  본문 : 삼상 25:1-13
RevSuh  2013-05-27 11:42:15, 조회 : 2,799, 추천 : 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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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삼상 25:1-13)(7/20/03)

예수님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전자는 어리석은 사람이고 후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셨다. 물론 이 말씀은 신앙의 삶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나 신앙이 곧 생활이고 보면 우리의 삶 전반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렇다. 삶의 공력을 무너뜨리는 삶이 있고 삶의 공력을 굳게 세우는 삶도 있다. 불행해지는 삶이 있고 행복해지는 삶이 있다.
오늘 본문은 갈멜에 그의 기업으로 큰 목축을 했던 마온에 살았던 부자 나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아내는 얼굴이 예뻤고 총명했다.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그러나 나발은 완고했고 그 행사가 악했다 그는 악하게 행했고 결국은 불행하게 죽고 말았다. 그의 공력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면 나발의 어리석음은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이 사건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우리가 힘써야 할 지혜로운 삶은 무엇인가?  지혜로운 삶은 내가 도움을 받은 자임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이다. 저는 어쩌다 저녁 늦은 시간에 "TV는 사랑을 싣고" 라는 프로를 시청하게 됐다. 왕년에 명영화 배우인 엄앵란씨가 출연했다. 누구를 찾을까? 과거 신출내기 배우 시절 첫 매니저였던 이광서씨를 찾고 있었다. 수소문 끝에 찾아냈다.  그러나 정말 그 무대에 나온 이는 이씨 대신 그의 둘째 아들이었다. 사연인즉 그 분은 3년 전에 별세했다는 것이다. 엄앵란씨는 내가 무심했다. 죄송하다. 이걸 어쩌나 하며 후회한다. 그런데 그 이광서씨를 찾는 이유가 있었다. 거기 나오는 장면으로 보면 엄앵란씨는 아마 홀어머니와 살았던 것 같다. 어머니는 막일을 하셨고 그러다 보니 아주 어렵게 살았던 것 같다. 학교는 갔는데 등록금이 없었다. 어느 분의 소개로 군인 아저씨를 찾아가서 만나 사정을 하며 등록금 6,000원만 해 달라고 졸랐다. 이씨는 내가 그런 돈이 어디 있냐고 거절한다. 그러나 끈질기게 달라붙어 사정하니 그 군인 아저씨는 베개 속에 감춰뒀던 금반지 세 개를 내 놓았다. 그것으로 등록금을 냈다. 그러나 학기가 바뀌어 다시 등록금을 내게 되자 고민 끝에 당돌하게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찾아가 일거리를 달라고 갔다가 일약 주연 배우가 되게 되었다. 엄앵란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배우가 되고 당시 미남 배우를 남편으로 맞게 된 것도 어찌보면 당시 군인이었던 이광서씨의 금반지 세 개를 준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은혜도 까맣게 잊고 살다가 나이 들어 옛날이 그립다보니 기억이 나서 그를 찾았으나 도움을 주신 분은 이미 고인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인생인 것 같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오늘의 내가 된 것을 잊고 산다.
오늘 본문의 나발을 보자! 그가 크게 부자가 된 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경영의 수완에 있지 않았다. 그의 인물의 됨됨이와는 다르게 그는 훌륭한 하인들을 두었다. 지혜로운 아내가 있었다. 그의 성공은 그의 하인들의 충성과 지혜로운 아내의 도움이 컸다. 그뿐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오늘처럼 곳곳에 경찰서가 서 있어서 치안을 담당하지 못했다. 게다가 직장도 드물었다. 그러다 보니 땀 흘려 모은 재산을 훔쳐서 먹고사는 도둑이 많았고 가축을 물어가는 사나운 짐승도 많았다. 그러니 많은 가축은 소수의 목자나 목동들이 지키고 먹이기는 쉽지 않았다. 목자도 양떼도 도적과 사나운 짐승으로 인해 위험했다. 나발의 종과 가축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다윗과 그와 함께 한 600명이 바로 나발의 갈멜 목장 곁에 있어서 그들을 지켜 주었다. 15절을 보자. 나발의 종들이 하는 말이다.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상하거나 잃은 것이 없었다”. 또 16절에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의 담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렇다. 다윗의 부하들이 저들의 방비벽이 되어 주었다. 나발의 종들이 도둑들의 공격을 받아 죽거나 상한 일이 없었다. 또 양 한 마리도 빼앗기거나 짐승에게 잡혀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양떼, 소떼가 늘어났다. 그걸 왜 나발인들 몰랐겠나? 종들이 적어도 농장의 사정을 보고하고 사업 현황을 알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발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경영을 잘하고 내가 능력이 있어서 양떼, 소떼가 늘어나고 있다. 부자가 된 것도 나의 공로다. 우리는 누구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물려받은 재산없이 제 힘으로 살림을 이룩한 사람이란 말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그 말은 맞지 않는다. 머슴을 살아 자립을 했던지, 장사를 해서 살림을 일으켰던지 주인의 도움 없이, 고객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실제로 생각해 보자!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로 빈손 들고 이 세상에 왔다. 생명주신 하나님이 계신다. 가정에서 부모, 학교에서 선생님, 직장에서 고용주, 사업에서 고객, 그리고 결혼해서 남편, 아내 그리고 교회에서 교역자와 다른 성도들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오늘의 내가 되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다. 누가 지혜로운 자인가? 이 사실을 알 뿐 아니라 기억하고 사는 자다. 나는 하나님께와 많은 사람에게 빚진 자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많은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하나님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겸손한 사람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신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컸음을 알고 감사하며 사는 삶 이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지혜로운 삶은 도움을 받은 자로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보답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가 깨닫고 살아야 할 지혜로운 삶이 무엇인가? 다윗은 지금 사울왕의 추적을 피해 사는 도망자의 신세였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무리가 600여명이나 됐다. 600명이 먹고산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점심 식사하는데 떡으로 하면 1부 예배 성도들을 제외하고 어린 학생들은 한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200명 정도 식사한다고 할 수 있는데 거의 500불이 든다. 국과 김치 정도로 200불이 든다. 600명이면 한 끼에 600불, 하루면 1800불이다. 오늘 본문에 다윗이 그의 소년들을 나발에게 보내 양식을 구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윗은 그들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게 했고 평강을 빌게 했다. 그리고 그의 종들이 다윗의 부하들과 함께 지냈으나 해치 않고 지켜 주었으니 은혜를 베푸소서. 당신에게 있는 대로 우리를 도와 달라고 청하게 했다. 정중한 청탁이었다. 심지어 다윗의 부하들을 나발에게 네 종이라고 하고 다윗을 네 아들이라고 했다.  다윗은 도망자의 신세이긴 하나 나발보다 수에서나 힘에서 비교가 안됐다. 그런데 도움을 주고 머리 숙여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그때 나발의 반응이 무엇이었나?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래에 각기 주인에게서 떠나는 종들이 많다. 그 종과 같은 뜨내기 다윗에게 왜 내가 떡과 물과 고기를 주겠느냐? 안 된다. 나발은 은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감사가 없었다. 정중한 요청을 무정하고도 완악하게 거절해 버렸다. 나발이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면 다윗이 도움을 청하기 전에 한번쯤 찾아가서 감사를 전하고 형편을 살펴 그의 능력껏 도왔어야 한다. 그런데 도움을 준 이가 와서 머리 숙이며 도움을 구하는데 거절해 버렸다. 어리석은 자였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도움 받은 우리에게 그 도움을 보답하고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도 기회이기 때문에 쉬지나가 버린다. 놓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도움을 받았다면 즉시로 보답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비가 오는 추운 날이었다. 고급 리무진 자동차 한 대가 뉴저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타이어에 구멍이 났다. 운전자가 내려 스피어 타이어를 갈아 끼우려고 보니 스피어 타이어에 바람이 다 빠졌다. 전화를 걸어 수리 요청을 하려고 했는데 마침 작은 픽업 트럭 한 대가 뒤에 와서는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 트럭에는 공기 펌프가 있었다. 리므진 운전자와 픽업 트럭 주인이 스피어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나니 리무진의 유리창이 스르르 열렸다.  그때 트럭 주인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억만 장자 도날드 트럼프였다. 창문을 내린 트럼프는 트럭 주인에게 이렇게 일부러 멈춰서 도와 준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트럭 주인은 생각 끝에 내일이 발렌타인스데이인데 자기 아내에게 장미 12송이만 보내 준다면 도날드 트럼프씨가 보내 준 것에 크게 감격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씨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떠났다. 이튿날 사환이 아름다운 장미꽃 상자를 들고 트럭 주인의 집을 찾아왔다. 상자에는 장미꽃 24송이와 작은 편지 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다. 편지를 열어 보니 발렌타인스데이에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 당신 남편의 친구 도날드 트럼프로부터: 추신: 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은행에 빚지고 있는 집값은 내가 모두 지불했습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적은 도움을 받고 그 자리에서 감사하고 보답했다. 그것도 수천 배, 만 배로 갚았다. 하나님께서 그릇이 큰 사람에게 복을 부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업가에게 축복하셨다. 하나님의 뜻대로 지혜롭게 살면 모두 복을 받는다. 여러분! 도움의 빚진 자가 있나? 머뭇거리지 마세요. 지금 갚으세요. 없으면 부모님은 어떤가? 감사하라. 보답하라. 이것이 지혜로운 삶이요 복 받는 길이다.
지혜로운 삶은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은 자로 도움을 주며 사는 것이다.
무엇이 지혜로운 삶인가? 칼 구스타프융은 세상에서 가장 심하게 그리고 유일하게 망가져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란 말을 했다. 성경은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하였다. 다시 말하면 타락했다는 것이다. 결과가 무엇인가? 본래 하나님께서는 내게 주신 것을 나누며 서로 도우며 함께 사랑을 실천하고 살므로 행복하기를 의도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선하신 뜻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타락한 후에 정반대로 살게 되고 말았다. 나만 소유하고 나만 누리려고 한다. 도움 받고 은혜 받고 살았음에도 인정을 안 한다. 감사할 줄 모르고 보답할 줄 모른다. 움켜쥐고 산다.
오늘 본문에 나발은 바로 이렇게 타락한 사람의 본보기이다. 이기적이었다. 도움을 받았으나 인정하지 않았다. 감사하지 않았다. 심지어 도움을 준 자의 요청까지 거부하고 말았다. 많은 소유임에도 나누기 싫어하고 혼자 먹고 누리려 했다. 그러다 보니 선을 악으로 갚았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인가? 37절에 보면 다윗의 요청을 거부하고는 취하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한 나발! 아내 아비가일이 술에서 깨어난 나발에게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당신과 모든 남자를 죽이려고 온다고 하자 낙담하며 그 몸이 돌과 같이 되고 말았다. 38절에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하나님이 심판하시니 갑자기 죽음으로 끝나고 말았다.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공력이 무너지니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저는 종종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따라 다녔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실수해도 결국은 축복이다. 도대체 믿는 자를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까지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폭적인 순종, 믿음의 핵심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구나 깨닫는다. 그런데 그가 받은 축복, 그가 누린 행복은 어디서 왔는가?  창세기 18장에 아브라함에 대한 기가 막힌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오정 즈음에 장막 문에 앉아 있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니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었다. 아브라함이 달려 나가 몸을 땅에 굽혀 절하고 영접한다. 그리고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가시지 마십시오. 물을 가져 올테니 발을 씻으시고 나무 그늘 아래서 쉬십시오. 그리고 아브라함은 집안으로 달려 들어가 가루를 반죽해서 떡을 만들고 송아지를 잡고 버터와 우유를 가져와 대접했다. 남을 대접하는 것이 소원이요 그의 주된 일이었다. 그래, 그렇지,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구나! 그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베풀며 사니 하나님께서 축복하셨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니 하나님의 축복이 따라 다니지. 은혜를 받은 자로 베풀고 살려고 작정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다. 제 친구 목사님 중에 남서울은혜교회를 목회하는 홍정길 목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 교회 김영순 집사님의 따님이 서울교대 3학년 재학중 교생실습으로 동대문 장안동의 어느 초등학교에 나간지 5일째되던 때 성수대교가 무너졌고 숨진 자 32명중에 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 여집사님은 바로 1년 전에 남편이 47세로 사망했다. 육사 26기로 조수 25 전차장이었는데 그만 과로로 순직한 것이다. 1년안에 남편과 딸을 모두 잃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럼에도 아파트 8평짜리에 넉넉하지 못하게 살았다. 그런데 딸 이승영양은 예비 교사로 신앙심이 투철했고 남을 돕고자 하는 아름다운 삶을 계획하며 살았다. 그녀가 죽은 후에 어머니는 딸의 비망록에서 내가 일생동안 하고 싶은 일 12가지 소원이란 목록을 발견했다.
1. 장학제도를 만든다. 2. 이동도서관을 강원도에 설치한다. 3. 한 명 이상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운다 4. 맹인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한다  5. 재활시설과 복지마을을 만든다.
어머님이 딸의 비망록을 읽고 부조액 전액이 얼마인지 모른다. 봉투채 홍목사님께 가지고 왔다. 목사님 딸아이의 소원입니다. 좋은데 써 주세요. 그리고 얼마 후 국가에서 2억5천만 원 보상이 나오자 목사님! 장학재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 장학재단의 도움으로 벌써 38명의 목회자가 배출되었고 지금도 강원도에 이동 도서관이 준비되고 있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부모님으로부터 교회의 교역사역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입은 것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나의 생은 주님의 이름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돕고 살아야 하겠다. 보답의 삶 살겠다. 그 소원이 어머니를 감동시켰고 아름답게 결실하니 신문에서까지 그 아름다운 삶을 칭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여러분! 어찌보면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보다, 성수대교의 붕괴로 요절한 21세의 대학생보다 더 많은 도움, 더 큰 은혜를 받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진 빚 갚고 사나? 은혜보답하나? 내 도움이 필요한 자, 적극적으로 돕는가? 여러분! 참 행복은, 참된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 주님의 이름으로 주고 베풀고 도우며 사는데 있다. 지금까지 나발처럼 살았다면 회개하자. 우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며 헌신하자. 우선 내 부모님께부터 감사하며 보답하는 삶을 살자. 그리고 더,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있는 것 드려 돕고 적극적으로 받은 축복 나누며 살아가는 삶 이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행복해지는 삶이다. 여러분! 나만 아는 삶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같은 삶을 살아가시기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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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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