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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
  본문 : 벧전 4:7-11
RevSuh  2012-05-27 23:42:03, 조회 : 2,647, 추천 :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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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벧전 4:7-11)

오늘은 우리 교회가 직분자를 선출하는 주일이다. 이 복된 주일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서거한 교황 바오로 2세를 잇는 새 교황 선출과 때를 같이하게 되었다. 교황은 자기 스스로를 하나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낮췄다. 그러나 교황 계급 성직제의 최고위직이다. 그는 전 세계 11억을 거느린 캐토릭의 수장이면서 바티칸 공화국의 원수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그의 직위는 세계 캐토릭의 대사제이며 무엇보다도 지상에서 Jesus의 대리자이며 사도들의 우두머리였던 베드로의 후계자로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의 직분은 결코 이런 계급이 아니다. 상하의 직분은 없다. 다만 경중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서리집사 보다는 안수 집사가 안수집사보다는 장로가 그 직분이 더 중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더 무거운 짐을 졌다는 말이다. 그러니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정말 종의 종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진리를 알고 실천할 수 있는 분을 선출하는 것이 오늘 우리 교회 정회원이 할 수 있는 세례 교인의 의무요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을 직분자로 투표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때 가능하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람직한 신앙,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신앙, 신앙의 목적인 예수를 닮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 자격을 세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다.
첫째는 기도하는 사람이다.
신자는 누구나 기도한다. 그러나 올바로 기도해야 한다. 어떻게 바른 기도를 할 수 있나? 정신을 차리고 하였다. 오늘 우리는 너무 복잡하고 바쁜 세상을 살고 있다. 누구나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와 같은 삶을 산다. 그러니 피곤을 달고 산다. 일이 끝나면 졸리고 몽롱한 정신이다. 집중력이 없다. 흐트러진 마음이 된다. 기도하는데 분명하게 구할 것과 하지 말 것을 선별하지를 못한다. 그러나보니 무엇을 구하는지 모를 증언부언의 기도가 되기 쉽다. 그래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 맑은 정신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으셨을 때 정말 고민하시며 죽게 되시었다(피곤). 그러나 예수님은 맑은 정신으로 집중해서 하나님께 아뢸바를 아뢰셨다. 하나님! 할 수만 있으시면 십자가를 지나가게 하소서(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옵소서! 얼마나 명확한 기도인가? 또 얼마나 간절한 했던지 그 기도하실 때 땀방울에 피가 섞여 떨어졌다. 십자가와의 싸움이요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그 싸움에서 이기셨다. 그것이 예수님의 기도였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세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따로 불러 시험에 들지 않게 깨여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어찌되었나?  장담하며 신앙의 담력을 과시했던 그들이었지만 원수들이 예수를 잡으러 오자 모두 도망하고 말았다. 왜요? 졸렸다. 피곤했다. 정신을 못 차렸다. 중언부언하며 기도하며 졸며 잤다. 시험에 빠졌다.
베드로는 단도를 빼서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귀를 잘라 버렸다. 왜 하필 귀인가? 가까이서 칼을 휘둘렀다. 그런데 떨렸다. 목을 친다는 것이 그만 빗나가 귀가 짤렸다. 다 주님을 부인해도 저만은 장담했으나 허사였다. 왜요? 피곤하고 졸리고 기도못하고 시험에 들었다.
교회의 문제는 대부분 직분자에게서 발생한다. 중직자에게는 그만큼 시험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마귀와 사탄은 중직자를 시험한다. 그러므로 직분자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한다.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한다. 시험에 들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대신 넘어뜨리고 쓰러뜨리는데 앞장을 설수도 있다. 하나님의 일군 대신 사단의 일군이 될 수도 있다. 제자 중에 은에 정신을 빼앗긴 가룟 유다는 돈을 추구했을 때 정신을 못 차리게 됐고 기도도 못했고 사단이 그에게 들어가니 생명의 주님을 팔았다.  
따라서 중직자는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힘이 든다. 왜요? 그것은 우리 시대의 특징이 물질, 지위, 명예
의 성공추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경쟁자를 물리치고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남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뛰어야 하고 일해야 한다. 일에 중독된다. 기도할 시간은 없다. 그래 본문은 기도하기 위해서는 근신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무슨 말씀인가?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 어떻게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 이 종말과 재림의 안목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우리는 세상것! 물질. 성공 명예의 눈이 가리지 않게 된다. 빠지지 않게 된다. 거기서 깨여난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다. 그 앞에 서야할 자신을 잊지 않게 된다. 그리고 나면 내가 하는 그 많은 일 중에서 예수님이 오셔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로 줄일 수 있다. 그밖에 일에서 손을 뗀다. 그리고  하나님과 대면의 시간 기도시간을 낼수 있다.
그러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나?  기도는 쉽게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잘 먹고 잘 살고 잘 되기 위한 기도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도가 그렇다. 그러나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면 종말이 오고 예수님이 오신다면 그 앞에 서야 한다면 그 기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직분자는 왕직에 오른 솔로몬 같아야 한다. 그는 왕자다. 부왕 다윗이 일찌감치 후계자로 지목했다. 왕자로 교육받고 훈련받았다. 왕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니 작은 아이입니다. 그는 겸손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왕직은 너무나 제게는 크고 중했다. 그는 감당할 힘도 지혜도 없었다. 그래 기도했다. 하나님, 제게 주신 직책 왕직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이 백성을 재판할 지혜를 주십시오, 제 소원은 오로지 하나님이 주신 직책을 잘 감당해서 나라를 굳건히 세우고 백성들이 안전하게 맘 놓고 잘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 소원입니다. 이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어찌 되었나? 열왕기상 4장에 보면 그가 사는 동안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각기 들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여러분! 오늘 더 중한 직분자로 선출되는 여러분들의 소원이 솔로몬의 소원이 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직분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내 직분 잘 감당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굳게 세우게 하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굳게 세우시고 하나님이 나라를 확장하시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란다.
둘째로, 사랑해야 한다.
이 말씀이 기록될 때 교회는 박해와 핍박 중에 있었다. 교회의 전통은 본문을 쓴 베드로가 로마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전한다. 교회는 첫 50년간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이단으로 핍박을 받았다. 그리고 50년 이후는 주로 로마에 의해 산발적으로 지역적으로 박해를 받았다. 그리고 250년 후 313년 콘스탄틴대제에 의해 공인된 신앙이 되기까지는 로마의 황제에 의해 조직적으로 전국적으로 핍박을 받았다.
따라서 신자가 된다는 것은 박해를 자초하는 일이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국법을 어기는 죄인이 된다는 뜻이었다. 신앙인이 되는 것이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 불안했다. 그래 쉽게 낙심되고 뒤로 물러갈 형편이었다.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신앙생활하는 다른 성도의 관심이요 위로요 격려요 용기와 소망을 주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신앙을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그래서 8절에 이렇게 말씀한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하라. 사랑이 필요했다. 왜요? 요한일서 4:18대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사랑,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내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 교회안에 새신자에게는 세상의 유혹과 시험 때문에 신앙을 위해 이적 격려와 위로 관심의 사랑으로 용기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아니라 다른 성도로부터 살의 용기와 사랑의 격려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생존경쟁의 힘겨운 삶을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려면 직분자가 중직자가 성숙한 신자가 앞서야 한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용기와 격려 이상으로 사랑이 필요함을 말씀한다.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이다. 이상하게 들린다. 왜요? 박해때는 사실 평안할때보다 죄를 덜 짓는다. 그것은 교회의 역사가 증명한다. 교회가 국교가 되고 권세를 얻고 평화로울 때 그 신앙은 해이해지고 타락하였다. 그러나 박해와 환란의 시기에 교회는 순결해지고 깨끗해졌다. 그러면 왜 죄를 덮는 사랑이 필요한가? 그 박해로 인해 내가 손해와 불이익과 이유없는 비난과 욕설을 듣게 될 때 다른 신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불평하며 다투기가 쉬웠다. 박해는 자연히 신자의 공동생활을 재촉했고 가까이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다른 형제의 잘못이나 실수나 약점이 쉽게 보였고 비판하고 탓하기가 쉬웠다. 그리되면 파멸할 수 있었다. 참고 견디고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또 다른 사랑이 필요하다.
알렉산더 대왕은 30대에 세계를 정복하였다. 그는 거대한 제국을 이룬 후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두기 위해 가장 훌륭한 화가를 불렀다. 그는 화가에게 자신의 얼굴 전체를 그리게 했다. 왕의 명령에 화가는 고민이 되었다. 왕의 얼굴 한 편이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으로 흉터가 생겼고 그 흉터가 왕의 얼굴을 무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왕을 사랑했던 화가는 고민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화가는 왕을 책상앞에 앉히고 그 책상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게 한 후 손으로 흉터난 쪽 얼굴을 자연스럽게 감추게 하였다. 그리하여 왕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볼 수 있게 그렸다.
무엇인가? 사랑이다. 오늘 우리 교회는 박해와 핍박으로 인한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다양한 특성의 신자들이 모였다. 게다가 누구나 완전하지 못하고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다. 단점도 허물도 많고 실수도 잘한다. 따라서 오해나 다툼이 일어나기 쉽다. 그래 텅빈 교회를 빼고는 조요한 교회가 드물다. 그러므로 덮는 사랑이 절대로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용서의 사랑이다. 다른 신자의 잘못을 덮어주고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께 내 죄를 용서받는 길이기 때문에 필연이기도 하지만 행함과 진실의 실천적인 사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참으로 섬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용서의 사랑으로 성도간에 실천해야 할 사랑이 무엇인가? 서로 대접하는 것이다. 형제로 알고 사랑하면 대접할 수 있다.
이 본문이 기록될 당시는 교회마다 목회자가 없었다. 많은 교회들이 순회전도자에게서 말씀을 들었다. 성도들이 나그네같은 순회전도자들을 위해 가정을 개방하고 대접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 박해 때 전도자들이 말씀을 전할 수 있었겠나? 말씀을 들을 수 없었다면 어찌 신앙을 지속했겠나?
옛날 그리 먼 옛날은 아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지니고 있던 사랑의 전통이 있다. 교회가 부흥회를 할 때면 강사를 여관에 모시지 않았다. 으레 장로님 가정이나 교회 직분자들이 숙식을 제공하며 대접했다. 정말 성경적인 아름다운 관습이었다.
예수님께서도 12사도들을 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어느 집에서 대접을 받든지 그 집에서 머물며 전도하라고 하셨다(마 10:11-13). 그때에도 신자중에 대접의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었다. 직분자는 가정을 공개해서 사람들을 초대하고 대접하는 사랑의 실천에 모범자여야 한다.
우리 교회는 매달 1회씩 구역예배를 드린다. 예배하는 가정에서 구역원들을 대접한다. 이 일에 직분자는 솔선해야 하며 다른 신자들보다 더 많이 대접을 해야 하지만 원망없이 해야 한다. 다른 성도와 구역예배를 드릴 형편이 못되는 신자나 성도들과 비교하며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직분자는 왜 이렇게 자주 나만 해야 하나 하는 원망 대신에 더 많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것은 마태복음 10:42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직분자, 중직자에게는 더 많은 상을 받을 기회를 허락하신다. 오늘 직분자로 선출되시는 성도님들은 대접의 기회때마다 불평하거나 회피자가 아니라 감사하며 기쁘게 앞장서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실천적 사랑의 본이 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경험하시는 은혜가 있으시기 바란다.
셋째로, 은사로 써서 섬겨야 한다.
교회가 직분자를 세우는 것은 명예나 계급을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에베소서 4:12말씀대로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므로 그리스도의 몸된 내가 몸담은 지역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그래서 교회가 그 섬김의 사명을 다하기 위함이다.
우리 교회의 사역의 사명이 무엇인가? 하나님께는 예배다. 교회에는 양육이다. 세상을 향해서는 복음증거다. 이런 섬김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은사를 주셨다. 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이 그 대표적인 구절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주님의 몸된 교회와 세상을 위해 선한 일을 하라고 은사들을 주셨다. 따라서 신자는 누구나 적어도 하나 이상의 은사를 받았다. 직분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가 무엇임을 알아야 한다. 모른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라도 알아야 한다.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어떤 경우는 성령의 은사와 같은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직분자는 봉사자여야 한다. 우선 내 은사가 무엇임을 알기 위해 섬겨야 하고 그 후에는 내 은사를 갈고 닦아 더 잘 섬길 수 있기 위해 섬겨야 한다.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10절,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 주인의 재물을 받은 자다. 내게 있는 것이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을 주신 분이 계시다. 하나님이시다.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에 따라 청지기처럼 교회를 섬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인색하지 말라 후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내가 내 것을 가지고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내 이름을 드러내고 주장하는 자세로 하기 쉽다. 따라서 11절이다.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하는 것같이 하고 봉사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해야 한다. 내 것이 아니다. 그러니 내 섬김에 봉사에 나는 감춰지고 하나님이 드러나셔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직분자는 사람대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섬겨야 한다. 세상에서 중직, 고위직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섬김을 받는가로 판단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큰 자, 중직자는 섬김으로 판단하신다. 내가 섬기는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하나님께서 보실 때 큰 사람이다.
요한 웨슬레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의 좌우명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하자. 모든 수단,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어떤 장소에서든지 어느 시간이든지 상대가 누구이든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일을 하자 였다. 그렇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직분자, 성도는 사명을 다하기까지 쉬지않고 섬기는 자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4:2에서 직분을 받은 자가 구할 것은 오직 충성이라 했다. 충성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2:10에서 죽도록 충성하는 신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다. 충성은 변치않고 끝까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분자는 중직을 맡고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충성과 거리가 멀다. 중직자는 주님이 오실 때 상급의 심판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여인이 하늘나라의 꿈을 꿨다고 한다. 천사가 그녀를 데리고 커다란 궁전으로 가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큰 집은 당신의 마부의 것이요. 무엇이라고요? 내 마부의 집이라고요?
잠시 후 그들은 아주 작은 집으로 왔다. 천국에도 이런 집이 다 있는가? 의아해했다. 그런데 천사는 그 여인에게 말했다. 이 작은 집이 바로 당신이 영원히 살 집이요. 뭐라고요? 이런 작은 집이? 가당치도 않습니다. 그 여인은 화가 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천사는 조용하게 말했다. 당신의 마부는 큰 집을 지을 재료를 충분히 보내왔소! 그러나 당신이 보낸 재료로는 이 작은 집을 짓는데도 벅차고 힘들었소! 이 작은 집이 바로 당신의 영원한 집이요.  
여러분! 특별히 오늘 직분자로 선출되시는 중직을 지시는 여러분! 모두 기도와 사랑과 섬김으로 천국에 큰 집을 지을 자료를 많이 하늘에 쌓으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성도를 섬기며 봉사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굳게 세우시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며 주님앞에 서실 때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시는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가 되시기 바란다. 그리고 주님 앞에서 칭찬, 영광, 존귀의 복을 누리시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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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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