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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내 아들아 그리하지 말라
  본문 : 삼상 2:12-26
RevSuh  2012-08-02 23:51:03, 조회 : 2,781, 추천 :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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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아 그리 말라(삼상 2:12-17, 22-26)(063002)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한다. 자녀들은 사랑과 훈계로 잘 양육을 받는다. 자녀들은 서로 사랑하며 부모를 공경한다. 그 이상의 축복이, 행복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이런 행복과 축복이 저절로 오지 않는다. 가정은 어떤 점에서 정원과도 같다. 잘 가꾸면 아름답지만 가꾸지 않으면 황량하고 메마른 광야처럼 되고 만다.
오늘 본문의 엘리 제사장 가정이 바로 그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엘리는 이스라엘을(사사와 같이) 재판하며 대제사장으로 섬겼다. 그는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낳았고 그 두 아들 역시 제사장이 되었다. 따라서 엘리 가정은 이스라엘의 어느 가정에 비교가 안 되는 큰 축복을 받았다. 왕이 다스리기 전에 이스라엘을 다스린 셈이고 또 백성의 신앙을 책임진 정치와 종교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런데 그 특권의 축복은 얼마 가지 못했다. 융성했던 축복의 가정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불행하게 되고 말았다. 왜 행복하고 왜 융성해야 할 가정이 몰락하고 말았나?
한마디로 말하면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때문이었다. 아들들이 다 제사장이었다. 영어의 제사장이란 말은 장로라는 헬라 말에서 왔다. 장로란 말은 충고하고 조언해 주는 제사장의 기능을 말해 준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제사장이란 헬라 말은 거룩하다는 뜻이다. 거룩한 일로 바쳐진 사람, 거룩한 일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형 아론을 세워 제사장으로 삼으셨고 그의 후손으로 제사장이 되어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제사하며 백성의 죄를 사하게 하셨다. 따라서 제사장의 일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백성의 죄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 사하는 일이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가는 자! 그 하나님께 백성의 죄를 사함받게 하는 자, 그렇다면 제사장의 자격이 무엇이겠나? 외적인 자격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아론의 후손이어야 한다. 그러나 제사장의 진정한 자격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성물을 다루는 자로서의 거룩이다. 다시 말하면 죄와 상관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 정반대였다.
제사를 책임진 제사장인데 17절을 보면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어떻게요?
제사를 드리고 그 제물의 고기를 삶을 때 사환을 시켜서 갈고리를 가지고가 냄비나 솥이나 가마에 찔러 넣어 걸려나오는 고기를 가져다 먹었다. 제사장이 제물의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부분의 고기만 먹어야 했다. 신명기 18장 3절에 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응식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우양을 물론하고 그 앞 넓적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그러나 고기 삶는 냄비나 솥이나 가마에 갈고리를 집어넣고 고기를 찔러서 걸려나오는 고기는 하나님이 지정하신 넓적다리나 위나 볼이 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부위와 상관이 없이 하나님께 속한 것을 가져다가 먹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또 있다. 15절,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사환을 보내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 놓으라 삶은 것이 아니라 날 것을 내 놓으라. 이 역시 하나님께서 명하신 지시를 어긴 것이다.
레위기 7장 31절에 그 기름은 다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 것이라 하셨다. 그러니까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바친 제물의 고기 그 중에서 하나님이 정해 주신 부위가 아닌 그들의 것이 아닌 것을 갈취한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그것도 억지로 빼앗아 먹었다.
17절이다.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 죄가 심히 컸다.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서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자기를 섬겼다. 자기를 살찌웠다. 신자는 마땅히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직분을 맡고 충성해야 한다. 그러나 내 기분대로 해서는 안 된다. 말씀에 따라서 해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내가 복을 받는다. 교회에 유익을 준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의 죄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또 더 큰 죄가 있다. 22절,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했다. 여기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은 누굴까? 민수기 6장 12절에 보면 자기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나실인의 서원을 한 여자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 여인들과 간음을 했다. 그런데 그냥 간음이 아니다. 의식적인 간음이었다. 무슨 말인가? 그들이 들어가 살았던 가나안 백성들! 그 이방인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길 때 유혹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들이 바알 신전에서 신전 창기와 간음했다. 그러니까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는 신전 창기와 간음을 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바로 그 죄를 저지른 것이다. 제사장이 앞서서 그것도 바알 신당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에서 성전 창기가 아닌 회막 봉사하는 여자들과 우상숭배자처럼 의식적인 간음을 한 것이다. 하나님을 우상처럼 모독하는 행위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을 타락시키는 무서운 죄였다. 죄를 사해야 할 제사장이 죄를 짓고, 짓게 만들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나? 왜 이렇게 되었나? 엘리 대제사장 그는 경건했다. 하나님을 경외했다. 백성들의 신앙의 지도자였다. 대제사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열왕기서를 보라.
히스기야는 선한 왕인데 아들 므낫세는 악했다. 요아스 왕은 선했는데 아들 여호야김은 악했다. 엘리 대제사장의 아들도 제사장인데 악했다. 엘리 대제사장에게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가 가르쳐야 할 아들이었을 뿐 아니라 그가 감독하고 지도해야 하는 제사장들이었다.
그런데 아들로도 제사장들로도 바르게 가르치고 지도하지 않았다. 저들은 말씀과 신앙의 훈련을 받지 못했고 감독도 받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아들이 제사장 아들인데 12절을 보라! 불량자였다. 가치가 없는 자요 악했다. 도움이 안 되는 자요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을 모르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여러분!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가?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중한 직분을 맡았다고 내 자녀가 믿음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 신앙을 위해 내가 주일을 지키고 말씀을 듣고 보고 공부하고 실천하고 봉사하고 힘쓰듯이 내 자녀의 신앙을 위해서 그렇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내 아들, 내 딸이 하나님 앞에서 무가치한 자가 되고 불량자가 되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될 수도 있다. 신앙의 가문에서 몰락할 수도 있다.
여러분! 내 아들 딸은 오늘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에 나왔나? 예배를 드리고 있나? 집을 떠나 기숙사에 있다면 어찌하고 있는지 아는가? 성경을 보나, 공부하나, 봉사하나, 교회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교회도 안 나오고 있다면 그래도 내가 관심이 없다면 성전에 나와 제사 직분을 행했던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불량자였음을 기억하셔야 한다.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신앙을 진단하고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교회도 나오지 않고 있다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사람 구원한다, 전도한다 하기 전에 내 아들 내 딸을 구원해내야 한다. 내 자녀가 하나님을 모르면 그게 불행이요 그 영혼이 잘못되면 세상에서 잘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신앙이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진다.
교회는 나가는 것 같은데 잘 모르시나? 내 교회로 이끌어 오세요. 그리고 더 관심을 가지고 신앙을 살피세요. 내 신앙이 그저 그렇다면 내 자녀도 신앙을 소홀히 할 것이다. 신앙의 중요성을, 내가 섬기는 교회의 중요성을, 내가 하나님께 맡은 사명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을, 내 교회를 섬김으로 보여 주라. 그러면 내 자녀를 하나님 경외하는 자녀로 믿음의 복된 가문으로 이어갈 것이다.

2.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에 대한 엘리의 반응과 처방이 무엇인가?
22절이다. 엘리는 아들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의 고기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부분을 강압적으로 빼앗아 먹고 회막 여인들과 외식적인 간음까지 한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22절이다. 사람들을 통해 소문으로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몰랐다. 소문으로 겨우 알았다. 왜요? 대제사장으로 자기 일만 했지 가정에서 자녀를 가르치지 않았다. 대제사장으로 제사장들을 교도하지 않았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제사장이니 성전에서 사니 알아서 잘 하겠지 그래도 제사장인데! 그리고 아버지로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책임을 안했다.
23절, 그러면 아들들의 죄를 알고 나서는 어찌했나?
24절,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죄를 짓게 한다.
25절을 보세요.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제사장 아들들,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이교적인 의식적 간음을 한 아들들에게 경고, 경고가 전부였다. 그건 잘못이다. 죄다. 그러니 그리 말어라.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것이 잘못임을 그것이 죄임을 몰랐겠나? 백성들의 비난의 소리를 듣지 못했겠나?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알고 나서 그리 말어! 죄야! 하나님께 범죄하지 마라 나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가 없어! 그게 다였다. 네가 알아서 해. 그건 네 책임이야. 그것이 저들에게 무슨 도움이 됐겠나? 그것 가지고 되겠나? 악한 죄의 습관이 하루 이틀에 굳어졌겠나? 그리 말어. 죄야! 그것으로는 안 된다.
오늘 우리 젊은이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면 10명 중 5명이 신앙을 포기한다. 5명 중에 2명 정도만 본 교회에 남고 나머지 3명은 부모와 다른 교회에 간다. 왜요? 부모신앙에 실망한 자녀! 또 곁에서 보고 간섭하고 타이르는 게 싫어서 멀리 가서 부모의 감독없이 신앙생활 자유롭게 하겠다는 것이다.
내 아들딸이 대학을 가도 고등학교를 가도 지금처럼 신앙을 지킬 것이다. 그렇게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알아서 잘 하겠지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은 사탄이 좋아하는 말이다.
교회를 떠나 마약을 하고 범죄하고 집을 나가고 윤락가에 빠지고 갱단에 가입하고 잡히고 감옥에 가는 중직의 자녀들도 꽤 많은 것이 현실이다.
피스모비치를 지나 30분정도 북상하면 파스로보스란 곳이 나온다. 거기서 목회하는 젊은 목사님! 그곳 교도소에 한국 청소년도 많습니다. LA에 어느 큰 교회 장로님은 매주 5시간 이상을 운전해 아들을 만나러 오신다. 목사님 내가 아들을 잘못 키웠습니다. 눈물로 후회하신다. 때는 이미 늦었다. 왜 이렇게 됐나?
내 자녀의 신앙에 관심이 없어요. 공부에만 관심이 있다. 교회를 안 나가도 그런가? 친구따라 어느 교회를 간다고 해도 그런가? 정말 가는지 담당 목사님, 전도사님, 선생님을 만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보지도 않는다. 그저 알아서 잘 하겠지? 언젠가는 되겠지.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자라고 있는 환경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공립학교의 교과서에 기독교 사상은 밀려나고 불교, 힌두교, 동양명상, 마술 인디언의 영성이 대신 들어서고 있다. 교육방법이 뉴에이지 방법이다. 신은 많다. 절대 신은 없다. 아니 너도 신이다. 신성을 깨우쳐서 네 자신을 창조해 가라 절대 진리는 없다. 부모에게도 적당히 반항하라. 모든 종교는 다 같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배운 것과 성경과는 정반대다. 엊그제 신문에 무신론자 부모가 자녀에게 국기의 맹세를 시켰다고 법에 고발했다. 그 내용 중에 One nation under God이 문제라는 것이다. 왜 특정 종교 기독교의 신아래 국가냐? 정치와 종교는 분리가 아니냐? 판사가 그렇다! 물론 여론이 들끓고 대통령과 국회가 반격으로 나오니 물러갔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다.
신앙과 진리의 혼란, 가치관의 혼란, 게다가 세속문화, 돈, 세상 향락, 폭력 범죄를 보고 만지며 살고 있다. 그런 자녀에게 네가 알아서 하라! 교회에 나가라 잘 믿어라 하면 되겠나? 그 부모의 말보다 수십 배 이상의 사탄의 속삭임을 듣고 사는데 되겠나?
어느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어미 기린이 새끼를 낳는다. 기린이 키가 얼마나 큰가? 새끼를 낳는데 10feet에서 등을 땅으로 하고 떨어진다. 그리고는 버둥댄다. 어미 기린이 목을 떨구고 새끼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새끼를 향해서 방향을 바꾼다. 1분쯤 지나서 이해 못할 행동을 한다. 긴 다리를 들어서 돌리면서 새끼 기린을 찬다. 새끼 기린은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며 나뒹군다. 새끼가 가만히 있으면 거듭해서 새끼를 발로 친다. 그러면 새끼 기린은 버둥대며 일어서려고 애쓴다. 마침내 그 연약한 다리로 간신히 일어선다. 야! 하며 박수를 쳐 주나? 아니다. 사정없이 그 약한 다리를 차서 넘어뜨린다. 어미 기린이 새끼를 사랑하지 않겠나? 본능적으로 사랑한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나? 새끼 기린은 사자, 하이나, 표범, 들개의 표적이 된다. 낳자마자 일어서고 걷는 훈련, 혹독한 훈련이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어미는 새끼를 사나운 육식동물에게서 보호하고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자녀들이 처한 환경은 과연 새끼 기린이 처한 환경보다 낫지 않다.
그러면 매일 동분서주하며 바쁜 것이 육신이 잘되기 위함인가? 영혼이 잘되기 위함인가?
내 자녀는 육신만 아니라 영혼이 있다. 아무리 크고 많은 사랑을 해도 그건 절반 사랑이다. 자녀를 사랑하나? 그 영혼을 사랑하기까지는 참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자녀를 사랑하자. 신앙생활하지 않거나 잘못해도 내버려 두는 것은 영혼사랑이 아니다. 내 자녀에게 엘리 대제사장처럼 해서는 안 된다. 새끼 기린을 살리기 위해 어미 기린이 하고 있는 혹독한 훈련같이 우리도 자녀의 영혼을 위해 해야 한다. 결혼하기 전이라면 내 자녀를 멀리 보내지 말라. 곁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써 살피고 가르치고 교도하시기 바란다. 그러면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 경외하는 참 신자로 살아 갈 것이다. 그 영혼이 잘 될 것이다.

3. 하나님의 반응은 무엇이었나?
하나님께서 엘리의 아들들의 죄를 보시고, 엘리의 한 일을 보시고 하신 것이 무엇인가?
25절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시기로 뜻하셨다. 아니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죽이시다니요? 죽이시기로 뜻하시다니요? 그럴 리가 없어요. 하나님은 사랑이신데요? 그런가?
30절을 보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여기 구별이 없어요. 하나님은 공정하시다. 공의로운 재판장이시다.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신다. 신분을 보시지 않으신다. 공정하게 판단하신다. 아니 제사장은 그가 받은 직분과 축복 때문에 오히려 더 엄한 기준의 판단을 하신다. 그것이 공평이 아닌가? 물론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시다. 복주시기 원하신다. 그러나 복을 받게 살 때 축복하신다. 신명기 28장 2-6절까지 복을 많이 말씀한다. 가정에 대한 복이 7번이나 나온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1,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면 말씀을 순종하면 그냥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의 백성이 됐다고 주시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복 받을 명령을 주셨으므로 그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죄가 될 뿐이니 축복을 기대할 수 없다.
C. S. Lewis라는 Oxford의 작가가 오래전에 고통의 문제란 책을 썼었다. 그 책에서 루이스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께서 죄는 사랑하실 수 없으므로 징계가 수반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고통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깊은 통찰이다. 사랑의 하나님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이시니 죄인을 사랑하시려면 징계의 고통을 통해 겸손해지고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할 때에 죄가 사해지고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성별하여 세우셔서 백성의 지도자로 하나님께 제사하고 섬길 특권을 주셨는데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과 제사를 짓밟았다. 제사를 멸시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아버지가, 대제사장이 징계하지 않고 교도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하셨나? 29절에 엘리에게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겼다. 더 어려워했다. 더 사랑했다. 나보다 우선했다. 내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나는데 신앙생활을 바로 안하는데 매를 들어 처서라도 바로 잡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너는 나보다 네 자식을 더 중히 여긴다고 하신다. 참 사랑은 고통이 따르는데 그것을 원치 않는다. 죄를 회개시켜야 하는데 더 굳어지게만 했다. 그러니 거기 합당한 벌을 내리실 수밖에 없었다. 31절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팔과 조상의 팔을 끊겠다. 팔은 강함을 나타낸다. 그 가정의 힘을 끊어 버리겠다. 네 집에는 노인이 하나도 없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엘리의 집에서는 엘리가 마지막 노인일 것이다. 그대로 된다. 11절을 보라. 불레셋과 이스라엘이 싸움이 벌어졌는데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임을 당했다. 한날에 죽었다. 하나님의 예배처소에는 법궤를 빼앗겼다. 그 실로가 멸망했다. 18절을 보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보고를 받은 엘리가 자기의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고 만다. 또 있다. 엘리의 아들들 대신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충성된 다른 제사장을 일으키셨다. 제사장의 복된 직분을 상실하고 말았다.
번성하던 가정, 행복했던 가정, 영화스러웠던 지도자의 가정이 삽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다 잃었다. 왜요? 자식의 불신앙의 죄 때문에 아버지의 무관심 때문에 죄를 보고 채찍을 드는 참 사랑의 고통을 원치 않으므로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다 잃고 말았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의 공로로 자신과 가정이 제사장이요 제사장 가족이 됐다. 아버지는 제사장이 아닌가? 얼마나 복된 가문인가? 큰 특권인가? 그러나 엘리의 가문처럼 무너질 수 있는 위험도 있다. 신앙인 부모의 책임을 못해 내 자녀의 신앙이 무너지면 신자의 가문도 무너지고 만다. 하나님의 축복도 상실한다. 나는 내 가정의 제사장인가? 내 자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 곁에 있어서 저들의 신앙을 살펴보는가? 나보다 신앙이 낫다면 감사하세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해도 된다. 그러나 잘못되고 있는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는가? 엘리의 아들들처럼 되기 전에 관심을 쏟고 기도하세요.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 신앙의 본을 보이세요. 교역자의 도움을 받으세요. 참 사랑은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내 자녀들이 육신보다도 영혼이 잘 되기를 정말 바라는 부모가 될 때, 그리하여 내 자녀의 신앙이 내 신앙보다 더 나을 때 신앙인 부모로써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 자녀를, 우리 가정을 축복하시고 누리게 하실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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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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