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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기복신앙
  본문 : 삼상 4:1-11
RevSuh  2012-08-15 18:32:30, 조회 : 2,612, 추천 : 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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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 신앙(삼상 4:1-11)

성경은 그 첫 페이지 창세기 1장에서 모든 생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어 생육하고 번성해서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다로 시작한다. 또 당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 그리고 역시 축복하셨다. 2:28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에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과연 찬송가 28장의 가사대로 우리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오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그 하나님을 믿는 것 자체가 복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복을 받기 원하는 사람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의 신앙이 지속적으로 복받기 위한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라 소위 기복신앙이다.
수년전에 한국의 어느 장로교단에서 그 교단 소속 부흥 강사 중에 기복적인 신앙을 강조하며 부흥집회를 헌금을 거두기 위한 수단으로 또 강사의 치부를 위한 방편으로 타락시키고 있다고 개탄한 적이 있었다.
소위 별미축복이란 것이 그것이었는데 이삭이 죽기 전에 큰아들 에서에게 축복하기 위해 사냥을 해 만들어 온 별미를 먹고 축복한데서 나온 말이었다.
신자들이 별미를 만들어 이삭으로 먹게 하고 복을 받은 야곱이 되기 위해 헌금을 했고 강사는 그 분들을 위해 특별 축복기도를 했다. 그리고 그 별미헌금은 모두 강사가 가지고 가 버렸다. 기복신앙이 빚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교인들이 특별축복을 받겠다고 헌금하고 복을 받으려고 기도했다. 그러나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지 부흥강사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사는 성도에게 축복하신다. 특별헌금을 해서 100불을 드리고 10,000불의 복을 받겠다고 욕심을 낸다고 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인색한 헌금이다. 바른 헌금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역시 기복신앙의 한 면을 본다. 그러면 기복신앙은 무엇인가? 그 신앙의 결국이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신앙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가?
1. 기복신앙이 무엇인가?
이 세상에 속한 육신적인 복을 구하는 신앙이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면서 복을 약속하셨다. 왤까요? 거기서 아브라함은 미신적인 신앙을 지니고 살았다. 그 곳은 달을 신으로 섬기고 있었다. 달이 복을 줄줄로 알고 믿은 것이다. 미신적인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가? 복을 받으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런 아브라함을 불러내실 때에 달신이 줄 수 없는 달을 믿었으나 얻을 수 있었던 축복을 약속하신 것은 당연했다. 복받기 위해 믿는 저급한 상태의 신앙을 지닌 아브라함을 이끌어 내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고 네 이름이 창대해 지겠고 복의 근원이 되겠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을 믿었고 아들도 낳고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아브라함이 받은 제일 큰 축복은 세상의 물질적인 축복으로 부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우상숭배자가 참되신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된 것이다. 물질적인 지나가는 축복보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우상숭배의 죄에서 구원이었다. 그래 성경은 창세기 15:6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 믿음으로 의롭게 됐다고 말씀한다.
아브라함이 초기의 믿음을 어느 정도 기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의 한 산에 가서 번제로 태워 바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test하신 것이다. 아직도 초기 단계에 있는가? 기복적인가? 그런데 아브라함의 반응은 분명했다. 그때에 무조건 예 했다. 더 이상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신앙이 아니었다. 하나 뿐인 아들,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100세에 난 축복 중에 축복 그 아들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믿음이요 그 아들을 희생시키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섬기는 신앙이었다.
참 믿음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는 점진적이다. 축복에 대한 말씀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누구나 쉽게 만지고 알 수 있는 세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장수하고 건강하고 부자가 되고 출세하는 것으로 많이 말씀하였다. 그러나 신약에 보면 축복이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이기 보다 영적이다. 그 대표적인 구절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으니 천국이 저희 것이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위로받는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온유한 자, 긍휼히 여기는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가 복되다 하셨다.
세상적인 축복, 육신적인 축복, 물질적인 것이 전혀 아니다. 모두 영적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는 자, 그래서 세상에서 희생하며 섬김으로 소금도 되고 빛이 되는 것이 참 복이다.
하나님 신앙 때문에 예수 믿음 때문에 말씀을 따라 살기 때문에 때론 무시되고 심지어 핍박당하고 바보가 되는 어리석게도 십자가를 지는 것이 복이 있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신자가 세상에서 갖추어야 할 복이다.
오늘 본문은 보라. 이스라엘이 불레셋과 싸우기 위해 에벤에셀 곁에 진을 쳤다. 이에 불레셋은 아벡이란 곳에 진을 쳤다. 불레셋은 이스라엘의 남서 해안으로 이주해 온 민족으로 주전 12세기 중반에 그 수가 적지 않게 많아지면서 사사 시대에 내내 이스라엘의 가장 심각한 위협이었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패해 군사 40,000명가량이 죽었다. 그때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신앙이 여기 기록되었다. 참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그 백성이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를 누가 넘보랴? 그 마음이 문제였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인데 하는 영적인 자만이 있었다. 실제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형식뿐이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무조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사업이 저절로 잘 되고 병에 걸리지 않고 직장에서 퇴출당하지 않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지 않고 자녀들이 모두 잘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만 믿는다면 잘못된 신앙이다. 그렇게 보면 복을 받지 못할 신자가 많다. 기복신앙은 우리 신자가 받아 누릴 축복이 세상의 물질적인 육신적인 것이라고 보고 바라고 구하는 신앙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더 크고 중요하고 참되며 영원한 영적인 축복을 경시하고 누리지 못한다.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타락한 신앙이 되고 만다.
기복신앙? 하나님을 희생하며 섬기는 신앙이 아니라 이용하는 이기적인 신앙이다.
이스라엘이 불레셋과의 싸움에서 4,000명의 군인이 죽고 패하자 3절, 백성들이 지도자 장로들이 한 말이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오늘 우리로 불레셋 사람 앞에서 패배하게 하셨는고? 전쟁에 패하고 나서 패배의 원인을 찾았다. 그러나 패배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고 보았다. 그 원인을 하나님에게서 찾았다. 그리고 나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나?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기복신앙은 실패할 때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회개하는 대신 하나님을 부레임한다. 왜요? 세상에서 잘 되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데 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인데 전쟁에서 졌으니 하나님은 축복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이 잘못하셨다. 그러니 문제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할 때 선왕은 사라졌고 악한 왕만 나왔다. 나라가 위태해질 때 저들은 하나님 대신에 애굽을 의지하고 앗수르를 의지했다. 저들의 우상을 하나님보다 더 믿고 숭배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실 걸,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데, 법궤가 거기 있는데 누가 이 거룩한 성을 넘봐! 그러다가 예루살렘은 초토화되고 성전도 파괴되고 성전의 기명은 다 빼앗기고 왕은 사로잡혀 두 눈이 뽑혀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만 듣고 또 들으면서도 순종하지는 않았다. 이방나라를 의지하다 망했다.
실로에 있는 언약궤를 전장터로 옮겨다 놓았다. 하나님! 왜 전쟁 때 멀리 실로에만 계십니까?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해 싸워 주셔야지요! 하나님은 그들의 필요를 위해 계신 분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이용했다. 실로에서 언약궤를 격전지(에벤에셀로 20마일이나)로 옮겨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 곁에 두었다.
5절에 언약궤가 진에 들어 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를 외치매 땅이 울렸다. 2마일이 떨어진 곳에 진을 쳤던 불레셋 사람에게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애굽의 바로를 꺾으신 하나님!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신 하나님! 가나안에 일곱 족속을 멸하게 하신 하나님!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너게 한 언약궤가 아닌가? 그래서 소리를 쳤고 용기백배했다. 곧 그 전쟁을 이길 것 같았다. 그러나 오히려 불레셋이 서로 격려하며 장부처럼 되어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백성 30,000명이 죽었다. 대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제사장이 죽었다. 불레셋을 쳐서 이기게 할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법궤는 그만 불레셋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법궤도 소용이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나? 잘못된 신앙이다. 법궤만 곁에 있으면 이길 수 있다. 법궤자체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는 줄로 믿은 것이다. 그것을 이용하자! 그러나 하나님이 떠나셨는데 법궤가 무슨 능력이 있겠나?
이스라엘 백성이 에돔 땅을 둘러 행하다가 모세를 원망한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고 우리는 이 구질구질한 양식을 먹기 싫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불뱀을 보내니 뱀들이 이 사람들을 문다. 불뱀에게 물리면 죽는다. 백성들이 놀라 모세에게 우리가 잘못했소. 하나님께 잘못했으니 당신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이 뱀들이 우리를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구리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 뱀에 물린 자가 그것을 보면 살게 하셨다. 구리 뱀을 보고 불뱀에 물린 자가 나았다.
그런데 그 불뱀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찌 했나? 하나님 대신 불뱀을 신으로 섬겨 그 불뱀을 향해 분향을 했다. 기복신앙이다.
그래 히스기야 왕이 그것을 부셔 버린다. 왜요? 그 구리로 만든 뱀을 보고 뱀에 물린 자가 산 것은 그 불뱀 자체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불뱀에게 물린 자가 산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니라 불뱀을 섬겼다. 눈에 보이는 복을 원했기 때문이다.
오늘 신자들 중에도 십자가를 가슴에 달고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는 그것이 나를 지켜 주는 능력이 있을 것으로 믿는 이들이 더러 있다. 마치도 불신자들이 부적을 써서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신자 중에 교회도 잘 다니지 않고 성경을 거의 보지도 않은 사람이 장례식때 관에 성경책을 넣어 준다. 부질없는 일이다. 성경을 보라고 주신 것이지 무덤에 가지고 가라고 주시지 않았다. 십자가에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사형의 형틀일 뿐이다. 예수님이 거기 달려 죽으셨기 때문에 복음이요 복음의 능력이 된다. 예수없는 십자가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액세서리일 뿐이다. 내가 쓰던 성경책에 무슨 구원의 효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관에 넣는다고 천국을 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 지녔으니 교통사고 안 난다. 관에 성경을 넣었으니 구원에 안전하리라는 것은 다 미신적인 신앙이요 기복신앙의 단면이다.
이런 기복적인 신앙의 문제는 과도하게 기적과 신비적인 현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따라간다. 물론 우리는 기적을 믿는다. 예수님도 많은 병을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셨다. 그러나 기적 기적하다 보면 기복신앙에 빠지고 잘못되기도 쉽다.
왜 이 신앙이 잘못인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제 필요에 일하시게 하려는 잘못에 빠지기 쉽다. 이런 신앙에 목사도 쉽게 빠질 수 있다. 신자들이 기대한다. 그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는다.
어느 신학교 총장으로 계신 목사님이 목회중에 어느 권사님이 암으로 고생하시다 거의 돌아가시게 됐다. 가족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서 기도하셨다. 기적적으로 치유해 주셔서 건강을 되찾아 주님을 더 힘있게 섬기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나왔는데 그 권사님의 사위가 목사님! 목사님은 저의 장모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 같습니까? 정말 그렇게 믿고 하신 기도입니까? 정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목사님이 그렇게 기도하시고 돌아가시면 헛된 소망을 가지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죽음을 준비 안하시고요. 목사님 그렇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들어가 주님 뜻대로 되게 하옵소서 불러 가신다면 기쁨으로 주앞에 설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옵소서라고 다시 기도하셨다.
기복신앙의 결과가 무엇인가?
이제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대제사장 엘리는 법궤를 그가 있는 실로에서 옮겨 간 것도 알고 있다. 따라서 불레셋과의 전쟁의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많아 눈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베냐민 사람이 진에서 나왔는데 그 옷을 찢었고 그 머리에는 티끌을 무릅쓰고 실로에 이르렀다.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자세히 물어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볼 수가 없었다. 엘리는 진중에서 도망쳐 나온 자에게 그 전쟁에 대해서 물었다. 그의 관심은 백성이 얼마나 죽었는가? 누가 죽었는가? 법궤는 어찌 되었는가였다. 그러나 그 중에서 법궤에 대한 염려가 제일 컸다. 왜냐하면 제사장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소식을 전하는 자가 많은 백성이 죽었습니다.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습니다. 법궤는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 엘 리가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의 아들 비느하스의 아내, 그의 며느리가 남편이 죽고 법궤가 빼앗겼고 시아버지가 죽은 것을 알고 조산을 하고 죽고 말았다. 그래 낳은 아이를 이가봇이라 했다. 이스라엘의 영광이 떠났다고 하였다.
기복신앙의 결과는 하나님은 떠나셨고 이스라엘의 영광은 사라지고 부끄러움만 남았다.
그러면 우리가 지니고 살아야 할 참 신앙은 무엇인가?  참 신앙은 복의 신앙이다. 그 복은 아래서 얻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주시는 것이다. 육신적이기보다 영적이다. 세상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이다. 참된 축복은 죄와 심판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을 상속하는 신령한 축복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보혈로 내 죄가 사함받고 의로워진 그래서 더 이상 심판과 죽음이 나를 해할수 없게 된 축복. 이 축복이 참 복이다. 영원한 축복이다. 영생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때 이미 이 축복을 받고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참된 영적인 축복을 경시하고 잃지 않도록 일시적이고 지나가 버리는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복이 우리의 영안을 흐리게 하고 우리의 마음과 신앙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왜요? 우리의 영. 몸으로 육으로 구성/ 영이 떠나면 육은 죽은 것이다. 신앙에서도 세상축복 물질에 치우치면 영은 죽는다.
이 바른 신앙을 위해 예수님이 주신 말씀이다. 신앙과 축복의 지침이 있다. 마태복음 6:31이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남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비싼 집에서 살까? 그것을 소원하고 바라서 하나님께 그런 축복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축복이다. 너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참 믿음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구할 축복이 무엇인가? 이미 예수님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에 들어가고 그 나라에 복종하고 그 나라 건설에 동참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구원의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다스리시는 지식을 넓혀 가는 일이다. 또 세상 나라에 대신에 하나님의 나라의 보물을 쌓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부요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른신앙이다. 이것이 구원의 축복을 받은 자답게 살고 누리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 받았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워졌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므로 삶 속에서 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정직하게 의롭게 깨끗하게 사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려면 박해도 있고 불이익도 있다. 희생도 필요하며 십자가도 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른 신앙이다. 이렇게 신앙이 바로 서는 것이 축복이다. 왜요? 그리하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먹고 입고 살까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아브라함처럼 되세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세요. 그리하여 세상적인 축복은 따라오게 한다.
여러분! 기복신앙은 기초신앙이요 어린아이의 신앙이요 저급한 신앙이다. 먼저 하나님, 영적인 축복이 우선이고 사시는 성숙한 신앙으로 세상에서 빛되고 소금되게 사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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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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