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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하나님과 우상(바른신앙)
  본문 : 삼상 5:1-12
RevSuh  2012-09-21 22:03:59, 조회 : 2,689, 추천 :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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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우상(바른신앙)(삼상 5:1-12)(090802)

초대교회는 주후 50년 전부터 250년까지 로마의 박해를 받았다. 첫 기독교를 공인한 황제 콘스탄틴이 교회의 교리의 통일작업을 위해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소집했다. 그때 참석한 교회의 대표들은 지체가 온전한 이가 거의 없었다. 그만큼 박해는 혹독했다.
그런데 박해의 원인은 거의가 다 오해와 잘못된 소문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 크리스천은 무신론자들이란 죄목이 들어 있었다.
하나님은 믿는데 참되신 신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데 예수님을 믿는데 무신론자들이라 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크리스천들은 예배를 드리는데 그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기도하는데도 그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있다. 그러나 눈에 보디는 형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정죄했다. 눈에 보이는 신을 원했던 저들은 마침내 인간 황제를 신이라고 숭배하게 되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불레셋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들은 팔레스틴에 정착하게 되면서 고대 셈족들이 섬겨온 우상 다곤을 섬겼다. 다곤 신은 물고기나 곡물에서 유래했으리라고 본다. 왕관을 쓰고 턱수염을 기룬 사람 모양의 상체와 물고기 모양으로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모습의 하체를 가졌다. 그래서 생식력이 강한 물고기처럼 다곤을 믿으므로 많은 추수를 기대했다고 본다. 또 기상이나 군대의 신으로 보기도 한다. 그랬다면 싸움에서 이기기를 위해서 만들어 섬긴 신이었다.
앞장에서 이 불레셋과 싸웠던 이스라엘이 그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법궤를 에벤에셀의 진에 옮겨놓고 사기가 충천했는데 결과는 그 반대였다. 많은 병사가 죽었고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했고 법궤는 빼앗기고 말았다. 패전의 소식과 법궤를 빼앗긴 소식을 들은 대제사장 엘리는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실패, 실패, 또 실패였다.
왜 그랬는가? 하나님을 믿었는데 제사장이 있고 법궤가 있었는데! 우상숭배의 불레셋에게 어찌 전쟁은 지고 말았는가? 하나님이 우상보다 못하시단 말인가? 하나님은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는 분이 아니신가?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한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서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불레셋을 도구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 제사장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먼저 자기 멋대로 갖다 먹었다. 회막에서 여인들과 간음을 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저들을 꾸짖고 고치지 않았다. 백성의 지도자였던 장로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이용했다. 법궤를 전장으로 옮겨 그것으로 우리의 원수를 이기게 하자! 언약궤 자체에 무슨 힘이 있는 줄로 믿었다. 미신적인 신앙이요 법궤의 우상화였다. 저들은 정작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보이는 언약궤만 믿었다. 저들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대신 이용하려 했고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내 필요를 채우기 위해 계신 분이 아니다. 이용하고 부릴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것은 바른신앙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그 잘못된 신앙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 그 법궤를 빼앗은 불레셋은 그 궤를 다곤신의 중심지 아스돗으로 19마일이나 옮겨 갔다. 저들에게 법궤는 이스라엘의 야웨신이었다. 그런데 전쟁에서 우리의 신 다곤이 이겼다. 그래서 법궤를 다곤신전 다곤신의 곁에다 두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이 다곤에게 졌다는 표였다. 포로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소문대로라면 이스라엘의 신은 두렵고 떨리는 전능하신 신이었다. 애굽의 바로를 꺾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했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게 하고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며 이전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쳐서 이긴 힘이 있고 전쟁에 능한 무서운 신으로 생각했는데 우리의 신 다곤이 그를 이겼어! 그리고 그 신을 빼앗아 보니 겨우 나무로 만든 궤야! 저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얼마나 기고만장했겠나? 하나님을 얼마나 무시하고 조롱했겠나? 그런데 법궤를 옮겨간 불레셋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다곤 신전에 들어가 보니 다곤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아마 다곤신의 제사장이 더 많은 사람들이 보기 전에 신속하게 일으켜 세웠을 것이다. 다곤의 얼굴이 언약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을 땅에 댔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나? 경배의 자세가 아닌가? 굴복의 자세가 아닌가? 항복의 자세다. 다곤 신이 하나님께 굴복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러나 저들은 깨닫지 못했다. 다곤 신이 엎드러진 것은 우연이겠지! 밤사이 짐승들이 신전에 들어왔다가 부딪쳤겠지 했는데 그 이튿날 또 일찍이 일어나보니 다곤이 다시 여호와의 궤앞에 엎드러져 있을 뿐 아니라 그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몸뚱이만 남아 있었다. 머리가 잘리고 두 손이 끊어져 있었으니 어찌 우연이겠나? 다곤신의 머리와 두 손이 잘렸다. 여호와 신이 다곤을 굴복시키고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가 패전한 적들을 처형시키듯이 심판하신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 왜 다곤의 머리가 잘렸는가? 머리는 생각하고 계획하고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머리를 잘렸다. 우상은 지식도 지혜도 없다. 무지하다는 것이다. 머리가 없다는 것이다. 두 손이 끊어졌다! 손은 무엇을 하나? 행동하는 것이다. 우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것을 깨달으란 계시였다.
시편 115편은 이렇게 우상의 헛됨을 말씀한다.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라 하였다(시 115:4-8). 그렇다! 여기 본문에서 다곤의 머리와 손이 끊어져 문지방에 놓여 있었던 것은 그 다곤 우상을 섬기려 들어가고 나가는 자가 다 그렇게 헛되고 망할 것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상신을 심판하신 하나님께서 그 우상을 섬기는 불레셋 사람도 심판하셨다.
하나님께서 아스돗 사람들을 치사 독종이 나게 하여 망하게 하셨다. 영어성경에서는 tumors라고 번역하였다. 그렇다면 악성 종양은 암이 아닐까? 급성 암이 발생했으니 지금도 고치기 힘든 암을 어찌 손이나 써 보았겠나? 이름 모를 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마침내 불레셋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는 무능한 신이 아니라 강한 신이다. 우리를 치셨다. 우리가 이긴 것이 아니구나! 어찌할까? 아스돗 사람들이 불레셋 방백들을 모으고 머리를 짜낸 결과 아스돗에서 법궤를 가드로 옮겨 보냈다. 그랬더니 가드를 하나님께서 또 치사 독종이나 사람들이 죽으니 그들이 다시 언약궤를 에그론으로 보냈다. 언약궤가 에그론에 도착하자 에그론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궤를 가져다가 우리를 죽게 하려 한다며 소리 지르며 결사반대한다. 마침내 모든 불레셋 방백이 모여 의논해서 이스라엘로 보내기로 했다. 왜 저들은 하나님이 궤를 곧장 이스라엘로 돌려보내지 않고 장소를 옮겼는가? 우상숭배자들은 신이 많다고 믿는다. 강한 신, 약한 신이 있는데 지역마다 다른 신이 있다고 믿는다. 여하튼 여기 불레셋 사람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도 지역의 신일뿐이었다. 그래 아스돗을 치시니 가드로 보냈다. 가드에서 치시니 에그론으로 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은 신이시었다.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민족 신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땅에만 속한 지역의 신 우상이 아니시었다.
그러면 이 사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1. 하나님만 믿고 섬기는 신앙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면서 십계명을 주셨다.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지침이다. 거기서 이렇게 서두를 시작하신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 하셨다. 왤까요? 이솝의 우화에 이런 얘기가 있다.
숯 장사와 세탁부에 대한 얘기다. 숯을 구워 시장에 파는 숯장사는 집이 있었고 또 쓰지 않는 방이 있었다. 그런데 그와 절친한 세탁부는 남의 집에서 세를 살면서 세탁물을 받아 빨아 주며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친구를 생각한 숯장사가 친구 세탁부를 찾아가 자네 남에 집에서 세내고 힘들게 살 필요가 있나? 내 집에 방이 하나 비어 있지 않나? 내 집에 들어와 살게!
그런데 세탁부가 감사하는 대신에 한마디로 거부해 버렸다. 그러면서 내일이 엉망이 되고 말거야 한다. 무슨 말인가? 생각해 보게 빨래를 빨아 정성스럽게 마당에서 말리고 있는데 자네가 구워낸 숯가루가 묻어 버린다면 다시 빨아야 하지 않겠나? 나는 종일 빨래만 거듭해야 할 게 아닌가?
과연 맞는 말이었다. 흰색과 검은색을, 흰 빨래와 검은 숯가루는 함께 할 수가 없다.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는 사람이 필요에 의해 만든 헛된 우상 신과는 함께 하실 수가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우상과 함께 보거나 함께 섬김으로 우상 수준으로 끌어 내리는 것을 참지 못하신다. 따라서 그 우상도 우상 섬기는 자도 심판하신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 사실을 증명한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하나님을 온전히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과 겸하여 우상을 섬겼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바알과 아세라를 동시에 섬겼다. 그리고 그것이 앗수르, 바벨론, 애굽에 패하고 포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우상과 겸해서 당신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심판의 도구로 쓰셨다. 그리고 마침내 그 우상숭배자들도 심판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상과 겸하여 섬길 수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만 오직 하나님만 구주로서 오직 예수님만을 믿어야 한다. 성탄절은 교회로, 4월 초파일은 절간으로 가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만 믿고 살 수 있는가? 하나님만 믿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무엇을 먹고 마시고 무엇을 입고 어디서 살까가 우선이 되지 않게 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우선이 되면 그것은 불신자의 생활방식이니 불신자와 구별이 없는 삶을 살게 된다. 결국 돈이 재물이 우선이 되고 만다. 돈이 우선이 되면 돈을 사랑한다. 하나님은 항상 뒤로 밀리게 되고 만다. 천국은 안 보이고 세상만 보인다. 사업이 직장이 중요하다. 거기에 의식주의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만 믿는 신앙이 되려면 그것도 하나님 다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도 책임져 주신다. 돈, 재물이 많으면 세상에서 편안하게 잘 산다. 주일도 안 지키며 열심히 일만 하면 그 재물 쌓을 수는 있다. 그러니 재물 쌓고 누리면서 얼마나 오래 사나? 하나님 없이 살며 쌓은 재물이라면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나? 내 쌓은 재물은 안고지고 가나? 천국가는데 무거운 짐이 되기 쉽다.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돈 많은 부자가 하나님께 기도를 끈질기게 했단다. 기도의 내용은 자기의 재산을 천국으로 가지고 갈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트렁크 가방 한 개 안에 채워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트렁크 가방에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하다 돈보다 더 좋은 것이 황금이었다. 그래 황금덩이를 가득 채워 넣었다. 얼마 안 되어 부자가 죽었다. 부자는 황금이 가득 찬 가방을 끌고 땀 흘려 끙끙대며 천국 문에 다다랐다. 베드로가 문을 지키고 있다가 무엇을 그렇게 힘들게 들고 오느냐고 물었다. 부자는 자기 재산의 일부인데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베드로는 누구도 짐 싸들고 온 이가 없는데 이상하다며 좌우간 그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좀 열어 보라고 했다. 부자가 가방을 열자 금덩어리의 찬란한 빛에 눈이 부셨다. 그런데 베드로가 천국의 모든 길이 황금으로 포장되었는데 겨우 도로 포장 재료를 가지고 오려고 그렇게 고생을 했느냐며 혀를 찼다고 한다.
여러분! 오늘 나의 삶은 어떤가? 구원받은 자, 천국백성으로 이 세상을 소망하지는 않나? 물질의 부요함을 위해 영적으로 가난해지고 있지는 않는가? 먼저 그의 나라 하나님! 먼저 그 의의 예수님! 이를 위해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예배드리기, 기도하기, 말씀보기가 우리의 날마다의 삶을 시작하는 자리매김을 잘해야 한다. 의식주의 염려보다 앞서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만 믿고 섬기는 신앙이다.

2. 하나님만 섬기려면 종교다원주의사상을 배격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 세계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사업체도 커야 살아남는다. 그래서 회사들도 은행도 하나로 통폐합한다. 근래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New Age 운동은 이런 시류를 따라 인류의 통합, 공존, 화해, 종교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다.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 그러면 배타적이라고 한다. 독선이라고 한다. 속이 좁다고 한다. 아니 무식하다고 한다. 상대 못할 사람이라고 한다. 소외되고 왕따될 수도 있다. 모든 종교는 다 같은 것이다. 예수를 믿든 마호멧을 믿든 다 천국에 간다고 한다. 그러니 유별나게 굴지 말라고 한다. 서로가 대등한 입장에서 이해하며 사랑하며 관용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럴듯해요.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다. 이사야 43:11절에 나 곧 나는 여호와다. 나외에 구원자가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만 믿기 위해 초대교회 사도들의 확고한 신앙과 전도의 열정을 지녀야 한다.
사도들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고 그가 구세주라고 메시아라고 외쳤다. 자기들이 죽인 예수가 살아나셨으며 그가 메시아라고 하니 저들은 귀를 막았다. 그러나 그치지 않고 외쳤다.
종교지도자들이 그들을 체포하여 경고하며 도무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고 한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필요하다. 사람을 의식하고 시대 조류에 따라가고 넓은 마음, 관용의 정신, 지식인으로 인정받고 그리되어 하나님과 우상이 같다! 예수나 마호멧이나 같다. 누구를 믿은들 어떤가? 이렇게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신다. 나 밖에 다른 신이 없다. 나는 하나님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얻을만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이 신앙에 확고히 서야 한다. 열심히 이 신앙을 증거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만 섬길 수 있다.

3.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요한 칼빈은 사람의 마음은 우상과 미신의 창고라 했고 마틴 루터는 사람이 사랑하는 무엇이나 그의 신이라 하였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사랑하는 것을 품고 있고 밤낮을 그것과 함께 다니며 그것과 함께 자고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우상은 부요, 자기 자신이요 쾌락이요 명예라고 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더 소중한 것, 더 우선인 것은 우상이다. Spots 우상, 학문의 우상, 손님우상, 자녀우상, 그것이 아니여도 우상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독자 이삭을 모리아의 한 산에서 내게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100세에 주신 아들을 빼앗아 가시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만 섬기는데 그 아들이 깊이 끼어 들어오고 있는 것을 예감하셨다. 아들이 우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어려운 명령을 하셨다. 네 아들을 없애! 우상이야! 네 아들을 너무 사랑하고 있어 나보다 우선이 되고 있어! 아브라함은 예라고 했다. 그래 다음날 아침 일찍이 그 아들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 땅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웠겠나? 아마도 아브라함은 뜬눈으로 그 밤을 새웠을 것이다. 아내 사라와는 의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했다면 될 일이 아니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나? 괴로웠겠나?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랑을 위해 아들을 포기했다.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나님이 우선인 신앙! 우상없이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을 회복했다. 하나님께서 아들도 살려 주셨다.
하나님만 믿고 섬기기 위해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힘들다. 그것이 하나님 다음이 되면 우상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더 복되게 하셨듯이 아브라함의 삶을 더 축복하셨듯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요한일서 2: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다.
이 신앙으로 오늘 여러분에게 있는 우상도 과감하게 포기하시는 결단이 있으시기 바란다.
여호수아 24장 15절에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오자 그 백성들에게 이렇게 도전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늘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가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러분도 이 여호수아의 신앙! 사도들의 신앙으로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인이 되시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손 천대까지 내가 은혜를 베풀겠다고 하신 약속의 축복을 여러분의 삶 속에서 다 이루어 가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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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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