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설교 | 목회 칼럼 | 신학상식 |성경개론(O.T) | 성경개론(N.T) | 속독성경 | 자유게시판 | 영혼의 쉼터 | 매일아침큐티 | 교회와이단 | 관리자


교회와 이

 

 

 

 



  제목 : 에벤에셀의 하나님
  본문 : 삼상 7:3-15
RevSuh  2012-11-05 13:25:37, 조회 : 2,734, 추천 : 557
설교동영상보기 ☞   목록에서 icon을 직접 클릭하셔도 됩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삼상 7:3-14)

저의 집 정문에 자물쇠가 고장이 나서 새 것으로 갈았다. 그런데 문을 열고 닫는 손잡이와 잠금쇠가 말썽을 부린다. 밖에서 문을 열면 안에 있는 손잡이가 내려가야 하는데 반대로 올라간다. 그런데 전문가가 단 것인데 우리 집과 반대라고 하면서 바꿔오라고 한다. 그래서 홈디포에 가서 설명을 하고 새 것으로 바꿔 올때에 오른손잡이인 것을 분명히 확인하고 가져왔다. 그래 새 것을 다니까 밖에서 문을 열면 안에 있는 손잡이가 내려간다. 그래 다 잘 된줄 알았다. 그런데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손잡이를 내려야 하는데 내리니까 안 열린다. 거꾸로 올려야 열린다. 그래 다시 바꾸러 갔다. 세 번째 왔다면서 문제를 얘기했더니 홈디포 직원이 아마 너희가 잘못 달았을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쌤풀 진열대로 데리고 간다. 가서 해 보니 정말 거꾸로였다. 그분이 나는 잘 모르니 전문가를 데려 오겠다. 전문가가 와서 해 보니까 거꾸로 되니까 이것은 멕시코에서 만들었는데 회사로 전화해야 되겠다면서 캘리포니아에서 만든 것이 있으니까 사 가란다. 그래 할 수 없이 돈을 좀더 주고 캘리포니아에서 만든 것을 그것도 혹시 몰라서 왼손 오른손잡이 겸용 문에 다 쓸 수 있는 것을 사다 달았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장황하게 문손잡이와 잠금쇠 얘기를 하는지 아시겠지요.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도움을 받고 주면서 살아간다. 여기엔 가정, 공동체 교회의 구별이 없다. 그런데 살다보면 누구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생긴다. 교통사고가 그것이다. 사고를 당한 이는 의사나 병원의 도움이 늦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그러나 늦지 않고 병원에 옮겨져서 의사를 만나서도 30분을 못 넘기고 죽는 경우도 많고 정말 구사일생으로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또 문제는 있다.
어느 집사님이 너무 배가 아파서 병원 응급실로 갔다. 당장 조치를 해 줘야 하는데 피를 빼간다. X-Ray를 찍는다. 초음파를 하고 사진 찍어내고, 만져 보고 눌러보고 청진기를 대고 들여다보고, 아파 죽겠다는데 그래 뭔가 조치를 해 줘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아프지만 아직 병명을 확실히 모르니 조치를 할 수 없단다. 새벽까지 고생하다 통증이 조금 가시니 담석같으니 집으로 가서 쉬라. 집으로 나왔는데 여전히 아프다. 그래 또다시 의사를 찾아갔다. 다른 의사에게 갔다. 그뿐 아니다. 정확하게 검진했다. 병명도 알고 어느 정도까지 그 병이 진행된 것도 안다. 그러나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다. 이렇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사람이 도울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본문을 보자.
앞서 이스라엘은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법궤도 빼앗기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법궤를 빼앗아 간 불레셋 사람들을 독종으로 치시니 많은 사람이 죽었다. 두려워진 불레셋 사람들이 할 수 없이 궤를 되돌려 줬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그 궤를 받아서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하고 지켰다.
불레셋은 궤를 이스라엘로 되돌려 보낸 후 독종의 재앙이 그친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세월이 흘러 20년이 지났으니 하나님께서 다곤신을 치시고 독종으로 그들을 심판하신 사실을 잊은지 오래다. 따라서 이 본문 전에도 불레셋은 간간히 이스라엘을 공격해 온 것 같다.
3절이 그것이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 저들 불레셋은 이스라엘을 공격해 와 밭에 불을 지르거나 추수한 곡식을 빼앗아 갔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 백성이 하나님만 섬긴다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불레셋의 손에서 지켜주실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미스바로 모든 백성을 불러 모았다. 사무엘은 그 백성들로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도록 결단을 시킬 작정이었다. 그런데 불레셋 방백들은 그 모임을 그들과 전쟁을 위한 소집으로 오해했다. 비상이 걸렸다. 불레셋 방백들이 일어나 군대를 모아 이스라엘 백성을 치러 올라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두려웠다. 저들을 대항할 군대가 없다. 무기도 없다. 전술도 부족하다. 싸움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도저히 불레셋을 대항할 수 없었다. 빼앗겼던 법궤를 되돌려 받은 것은 기억에 없었다. 하나님은 안 보였고 불레셋 군대만 보고나니 두려움뿐이었다. 전쟁도 이미 진배나 다름이 없었다. 이스라엘의 위기였다. 온 백성이 거기다 모였으니 불레셋에 패한다면 나라는 망하고 그 백성은 불레셋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두려워진 그들, 크게 소리도 못지르고 저마다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늘에서 크고 두려원 천둥소리가 불레셋 진영을 강타했다. 구약성경에 보면 큰 천둥소리는 모두 하나님의 음성의 상징이었다. 하나님께서 큰 우렛소리를 발하신 것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큰 천둥소리가 불레셋 진영을 뒤흔드니 불레셋 군인들이 모두 정신을 못 차리고 갈팡질팡했다. 우왕좌왕하며 숨을 곳을 찾았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서 나가 칼로 불레셋 군인들을 쳤다. 도망하는 불레셋 군인들을 쳐서 벧갈 아래까지 따라가며 쳤다. 불레셋이 대패하고 이스라엘이 승리했다. 두려워 떨었던 이스라엘이 그들을 두렵고 떨리게 했던 강한 불레셋을 쳐서 이긴 것이다.
어떻게? 위기앞에서 어느 나라의 도움도 구할 수 없는 긴박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큰 소리로 불레셋 군인들을 쳐서 두렵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도우시니 패배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도우시니,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연약함이 능력으로, 침묵이 환호와 기쁨으로 변했다. 불레셋의 손에서 구원받았다. 과연 고린도전서 1장 27절대로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 미련한 자를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도우시면 이런 역사가 일어난다.
사무엘은 그 승리의 기쁨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 백성이 잊지않고 기억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웠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분이시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님의 크신 은혜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신앙이다.
그 결과를 보라. 강한 불레셋이 이스라엘에게 굴복했다. 다시는 불레셋이 이스라엘 경내를 침범해 오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불레셋에 빼앗겼던 땅을 다시 되찾았다.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도 전운이 걷히고 참 평화가 있게 되었다.
어느 주일학교 선생님이 에벤에셀의 하나님!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이란 말씀을 어떻게 쉽게 알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어떤 것일까 그림으로 그려보게 했다. 아이들이 이런저런 그림을 그렸는데 한 여자 아이의 그림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손 하나를 그렸는데 보통 손이 아니었다. 길고 긴 손이었다. 선생님이 그 여자 아이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긴 손이냐고. 그 아이는 그 비밀을 자기만 알고 있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하나님의 손은 너무 길어서 어느 곳에도 닿지 않는 곳이 없이 구석구석까지 다 미친답니다고 하였다.  적절한 그림이요 설명이었다.
살아가다보면 누구에게나 남의 도움이 필요한 때가 온다. 그래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것이 인생이다. 도움을 받고 사는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도움은 결코 긴 손이 못 된다. 사람은 내일 일을 모른다. 지혜가 부족하다.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이기적이다. 그래서 짧다. 사랑에서, 자원에서, 지혜에서, 능력에서 제한적이다. 모두 모자란다. 때로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면 무상이 아니다. 아니 엄청난 비용이 들기도 한다. 아파서 병원에 들어가 보라!  
여러분! 오늘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통역, ride, social worker, 새집 사고, 사업하기 위해 브로커의 도움이 필요한가? 그러나 직업상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도움을 줄수도 있다. 사기꾼도 있다. 조심해서 받으셔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때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참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두렵게 하는 불레셋이 있을 수도 있다. 가정을 위기로 몰아넣는 가정불화, 남편이 그 원인이 될수 있고 아내가 주원인이 될 수도 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문제다. 그런데 상대방 책임으로 몰아 남편만 아내만 변하기 바란다. 이때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보라. 이혼이다. 빗나간 자녀는 공부를 안하고 술담배에 마약까지 한다. 집을 나간다. 소식도 모른다. 불경기다. 안되는 내 사업일수 있다. 내 건강을 잠식하고 있는 질병일수 있다. 당뇨일수 있고 심장병일수 있고 간경화일수 있고 암일수 있다. 영적인 위기로 도덕적인 타락, 도박일수 있고 불륜일수 있다. 우범지역에서 사업을 하느라 강도나 도적이 내 불레셋일수 있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영주권없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구의 도움도 별로 도움이 안된다. 도움을 줄 사람도 없다. 그래 우울하게 내일에 대한 희망도 없이 불안한 삶을 살수도 있다. 기쁨이 없다.
정말 이스라엘에게 불레셋같은 무서운 대적일수도 있다. 어떻게 그런 어려움에서 위기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가? 삶에 대한 불안, 잃어버린 희망과 기쁨을 어떻게 되찾아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이스라엘을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 짧은 손, 사람의 도움이 아니다. 긴 손의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저명한 뉴스 평론가 폴 하비가 어느 날 아래와 같은 사건을 오도했다. 네브라스카 주, 비트리소 시티에 있는 웨스트사이드 침례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교회는 매주 수요일 7:30분에 성가대원들이 모여 주일에 부를 성가를 연습했다. 대원들 거의가 다 그 시간에 모였다. 그런데 어느 수요일은 결코 전에 없었던 일이 발생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대원 모두가 연습 시간에 늦겠다고 연락이 왔다. 반주자는 저녁을 먹고 피곤해서 잠간 쉬다가 그만 잠이 들었고 성가대원 어머니까지 함께 늦게 됐다.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한 대학생은 급한 숙제를 하느라 늦었다. 한 부부는 오면서 여러 대원들을 픽업해 오는데 차가 시동이 안 걸려 늦게 올수밖에 없었다.
교회 설립 이래로 그날 저녁은 사모님을 포함해서 18명 대원이 전부 늦었다. 연습시간 7:30분에는 아무도 거기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 7:30분경에 교회 지하실에 있는 가스 파이프가 새서 난방 장치가 된 방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마침내 큰 폭팔음을 내면서 폭팔하고 말아 그 방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성가대 연습실은 바로 그 방위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간섭하시지 않았더라면 도웁지 않으셨더라면 성가대원 모두가 가스폭발로 생명을 잃을뻔 했다. 에벤에셀의 도움으로 살았다.
최근에 워싱톤 주변 지역 주님을 공포로 몰아넣는 무차별 저격범 살인사건. 누가 그 희생자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한시간 앞일을 모른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이 가능하신 실패가 없으신 하나님! 무상으로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다. 언제나 우리를 도우실 수 있으시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불레셋의 위기, 문제는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어떤 형편, 어떤 위기가 우리에게 닥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셔야 나는 구원받았노라 간증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위기때 하나님은 우리의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실수 있는가?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되시는가?
II.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의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시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나? 그 조건이 무엇인가?
1.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만 섬긴다. 불교의 석가를 섬기지 않는다. 회교의 마호멧을 믿지도 않는다. 힌두교도처럼 많은 신들을 두고 있지도 않는다. 그러면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 본문 3절에서 사무엘은 하나님만 섬긴다고 생각했던 이스라엘을 향해서 너희에게서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제하라고 하였다.
저들은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땅에 들어가 살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섬기던 바알과 그 여신 아세라도 섬겼다. 물론 하나님이 우선이긴 했다. 바알은 EL이라는 다곤신의 아들로 천둥과 비의 신이다. 그 신이 하는 일은 땅을 옥토로 만들어 풍작을 가져오게 하는 일이다. 농사짓는 땅에 사람들이 복받기 위해 만들어낸 신이다.
또 여기 아스다롯은 사랑과 전쟁의 여신으로 바벨론의 이스탈, 헬라의 아프로디테와 같은 신이다. 이 신은 전쟁의 승리와 성적인 즐거움을 상징한다.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있었던 우상이었다. 물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제일이다. 그러나 거기에 더했다. 이방신 바알과 아스다롯을 더했다. 그 더한 것을 떼어버려라 포기하라 제해 버려라!
4절을 보면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우상을 두고 섬긴다. 하나님의 백성인데 그것이 하루이틀에 된 것이겠나? 거듭되는 행동을 통해 긴 시간동안에 생긴 습관적인 우상숭배, 그런데 그 우상을 버리라! 즉시 순종했다. 결단, 칼로 베듯이 확실하게 했다.
오늘 우리 한국 인구의 1/4이 신자다. 그런데 근래와서는 이상하게도 예수를 믿던 신자가 불교로 신앙을 바꾸는 이들이 꽤 있단다. 종교가 없는 신앙이 없는 이들 중에 앞으로 신앙을 가진다면 어떤 종교를 믿겠는가? 설문조사에서 1위가 불교, 2위가 캐토릭, 3위가 개신교였다. 이는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신앙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따르고 순종하는 순수한 확고한 신앙이 부족함을 보여준다. 이것이 후기 기독교시대 종교다원주의의 현상이다. 아니 하나님만 섬기는 우리에게도 이스라엘의 우상이 우리에게도 있기 쉽다. 하나님을 섬기나 겸하여 섬기는 우상들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농사를 지었다. 이스라엘에게 땅을 비옥하게 해서 소출을 풍성하게 하는 신, 그 신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다. 무엇인가? 우리의 산업이 아닌가? 투자가 아닌가? 더 많은 소득이요 수입이 아닌가? 생활에 대한 지나친 염려로 좀더 많은 돈 돈 하다가 주일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사명을 받았는데 실속은 없는 이름뿐이라면 우리에게도 바알 우상이 있다.
최근에 이민 온 가정들이 있다. 어떤 사업을 할까? 불경기에 그래도 버틸 사업은 음식점이다. 일식은 너무 많고 경쟁이 심하니 백인이 많은 지역에 가서 일식을 경영하리라.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주일날 문을 열어야 한다. 물론 그 날이 제일 손님이 많으니 성경을 쉬라는데 나는 제일 바쁘게 일해야 한다. 이런 경우 하나님만 섬기라. 그러면 내가 도우리라 하신다. 순종이 결단이 쉬운가? 그러나 결단할 때 하나님이 도우신다.
오늘 우리에게 아스다롯이 무엇인가? 전쟁과 사랑의 신이 무엇인가? 우리의 힘이 무엇인가? 건강인가? 돈인가? 지위인가? 명예인가? 취미인가? 운동인가? 우리의 쾌락이 무엇인가? 술인가? 도박인가? 빗나간 이성교제인가? 주일날 아침 일부예배 빨리 드리고 가서 종일 골프치는 것인가?
여러분! 이런 것들이 오늘 하나님을 믿는 신자인 우리에게 집요하게 따라붙는 우상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믿는데 겸해서 믿는 것, 의지하는 것들이 아닌가? 그것이 무엇이든지 포기하라, 떼어버려라. 오직 하나님만 있게 하라. 그러면 내가 도우리라! 축복하신다.
야곱이 형을 속여 장자의 기업을 빼앗고 형의 분노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한다. 거기서 두 아내를 얻고 첩을 얻고 많은 자녀와 재산을 얻어 성공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형 에서와의 문제도 잘 해결이 됐다. 모든 일이 잘 되자 야곱은 하나님과 한 약속을 잊었다. 그가 도망할 때 벧엘에서 한 서원, 하나님 성공해서 돌아오면 여기에 제단을 세우고 하나님을 예배하겠습니다. 그런데 세겜에 정착했다. 그런데 딸 디나가 그 성에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가 그 성의 족장 세겜에게 붙들려 강간을 당했다. 그리고 결혼을 할테니 딸을 달라고 한다. 야곱의 집안에 위기가 왔다. 아들들과 의논한 야곱이 꾀를 냈다. 딸을 줄텐데 조건이 하나 있다.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아야 한다. 세겜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고 고통할 즈음에 야곱의 아들들이 칼을 들고 급습해서 모든 남자를 다 죽이고 부녀와 어린아이는 사로잡았다. 또 양과 소와 곡식을 다 약탈했다. 그러나 다음이 문제였다. 이 소문이 주변 종족에게로 퍼져 나갔다면 야곱의 가족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지시하신다. 창세기 35장에 야곱아 벧엘로 올라가 내게 한 서원을 지키라. 좋으신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었다. 그때 야곱은 오늘 이 본문의 결단을 한다. 어떻게? 온 집안 식구와 종들에게 하란 땅에서 가져온 우상, 이방신상들을 버려라! 결단시킨다. 다 내어놓게 했다. 그것을 거둬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땅을 파고 묻어 버렸다. 우상을 장사지냈다. 그리고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드렸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의 온 가족과 종들과 소유를 지켜 주셨다.
오직 하나님만 오직 예수님만 있게 했다.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는가? 이스라엘을 보라! 저들은 사무엘의 지시로 미스바에 모였다. 사울이 왕이 된 곳이요 바벨론에게 예루살렘이 망한 후에 유다의 수도가 된 곳이다. 거기서 물을 퍼서 하나님앞에 쏟아 부었다. 무엇을 의미하나? 회개의 상징이다.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그것이다. 그 날에 금식하고 하나님께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 죄를 슬퍼하고 금식하며 울며 회개했다. 회개의 눈물! 금식으로 우상의 제물 먹은 더러운 것을 토해냈다. 눈물로 더러워진 우상의 때를 씻어냈다. 그리고나니 하나님이 보였다. 겸해서 섬기던 우상들이 보였다. 우상으로 향했던 마음과 생각 그리고 발길을 끊었다. 하나님만의 신앙으로 회복되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오늘 우리가 더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좋아하던 것들 그것이 무엇이든지 포기하고 돌아서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게을렀던 예배, 기도, 봉사, 전도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제자리로 되돌려야 한다.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되실 줄 확신한다.
2. 내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도와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에스겔 36장에 보면 36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스라엘이 죄된 행위를 정결케 하는 날 내가 축복하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37절에 가서 보면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시기를 구하여야 할지니라 말씀대로 된다. 그래도 기도하여야 그대로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가 구하기전에 다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오늘만 아니라 내일까지도 다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아버지(우리)시다. 따라서 우리의 빈자리를 채워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그래도 채워달라고 구해야 한다. 우리가 당하는 환란을 다 아신다.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그 환란에서 구원받을 수 없음도 아신다. 그러니 그 환란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해 도우실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그러나 그럼에도 구해야 기도해야 채워주시고 도와주시고 구해주신다.
본문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 불레셋이 공격해 와 두렵고 떨렸다.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그때 지금껏 의지하고 섬겼던 이방신들에게서 돌아섯다. 정결케 했다. 하나님만 섬기기로 결단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요구한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불레셋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소서!
저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기까지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레셋의 손에서 구원하시지 않으실 것을 알았다. 저들의 요청대로 사무엘이 하나님께 어린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만 섬기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신지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응답받고 구원받았다. 이사야서 38장에 히스기야왕이 병들어 죽게 됐다. 하나님께서 너는 죽는다고 하셨다. 집을 정리하라고 했다. 그때 히스기왕 왕인데 죽는다는데 의사를 부르지 않았다. 신하들의 도움받지 않았다. 낯을 벽으로 향하여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때 우상이 될만한 신하 도움, 의사, 약 포기하고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께만 매달렸다. 하나님께서 네 눈물을 보시고 15년을 더 살게 하셨다.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받았다. 없던 아들도 낳았다. 기도하지 않은 것. 그러나 필요한 것도 채워주셨다. 야고보서에 병낫기를 위해 기도하라 그러면 지은 죄까지 사해 주신다. 병들면 죄 잘 보인다. 회개하니 병도 낫고 죄도 사함받는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당면한 문제가 혹시 요나같은 형편은 아닌가? 불레셋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같지는 않은가? 내 지혜,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물고기 뱃속에 갇힌 요나처럼 답답하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것같지 않은가? 불을 지르고 발로 차면서 나오려고 헛되게 힘쓰지 마세요. 하나님만 믿으세요. 형제들에게 알리세요. 함께 기도하세요. 목사에게 알려서 기도부탁하세요.
히브리서 13장 5절에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하나님은 8절에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구하는 자에게 응답해 주신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말자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할지라도 싸이지 않는다. 왜요?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문은 누구도 닫지 못한다. 열려 있다. 기도는 향이다. 하면 향연이 올라가듯이 하나님께 상달한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회개와 기도로 물고기뱃속에서 구원받은 요나처럼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는 형편속에서 하나님앞에 회개하고 간구해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처럼 오늘 우리가 산 삶을 되새겨보고 어려움을 당할 때 회개하고 하나님만 내 하나님으로 모시고 기도하면 우리의 문제도 해결될 줄 믿는다. 여러분! 세상에는 근심된 일도 많고 죽을 일도 쌓여 있다. 하나님만 믿는 신앙, 기도하는 신앙으로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승리롭게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한다.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Amen

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Best view at 1280x1024 ◇ 2008ⓒ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