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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세습의 교훈
  본문 : 삼상 8:1-7
RevSuh  2012-12-05 14:51:57, 조회 : 2,729, 추천 : 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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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의 교훈(삼상 8:1-7)(102002)

이스라엘은 왕들이 나기 전에 사사들이 나라를 다스렸다.
사사란 말은 통치, 공의재판, 그리고 보호란 뜻이다. 하지만 사사기 2:16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약탈하는 자들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 일으킨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그들의 책임은 재판만 한 것이 아니였다. 우상숭배에서 그 민족을 지켜주며 전쟁을 지휘했다. 따라서 사사는 종종 구원자로 불렀다. 그러니까 사사는 위기 때에 일어나서 민족을 구원한 자였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삼손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 여선지자 드보라가 있었다(사사의 마지막 혈통으로는 제사장이면서 선지자였던 사무엘이다. 그는 매년 중요한 장소를 방문하면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나이 많아 은퇴하고 두 아들을 사사로 세웠을 때 장로들이 그에게 나와 왕을 구하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은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로 있을 때 왕을 구하게 되었는가?
이스라엘 왕을 구한 이 사건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배우기를 기대하시는가?
1. 사무엘은 사사직을 은퇴했다.
본문에 사무엘이 늙으매 하였다. 그러면 그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 사사 사무엘은 세 번째로 레위 계통의 사사였다. 그 첫 번째가 모세였으며 그 다음이 엘리였다.
모세는 120세까지 살았고 그때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또 엘리 역시 죽을 때 사사가 된지 40년이었다고 했으니 그의 나이도 70세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사무엘의 나이가 많았다는 말씀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나이가 많았다는 말씀이 아니다. 아마도 사무엘은 이때 50세 정도였을 것이다. 레위 사람들의 시무 연한이 50세였으니 아마도 그 법을 따랐을 것이다. 유대 탈무드에서는 52세라 하였다.
사무엘은 신명기 16:18의 말씀에 따라 후계자를 지명했다. 거기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과 유사를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라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후계 사사를 세운 후 은퇴했다.
여기서 우리는 사무엘의 순수한 신앙과 인격을 엿볼 수 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는 일이요 인격이란 사사의 직위랄까 권세를 50세에 놓은 일이다.
오늘날로 하면 사무엘은 50세에 정계를 은퇴한 셈이다. 아니 대통령직을 그만 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통령이 물러나 보라! 거의 그 모습을 보기 힘들다. 한국의 경우 현직 대통령이 예우로 국정에 조언을 위해 가끔 청와대에 초청했을 경우나 신문에 한두번 얼굴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사무엘은 물러났다.
이스라엘의 사사들은 온전히 전국을 다스리지 못했다. 하지만 사무엘만은 이스라엘 온 지역을 다스렸다. 게다가 그는 제사장이요 선지자였다. 그런데 50세에 은퇴했다. 오늘로 말하면 조기은퇴다. 백성들이 싫어해서였나? 아니다. 늙어서 더 이상 그 백성을 다스릴 힘이 없어서였나?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섬기고 물러났다. 지혜가 부족해서였나? 아니다. 법을 세우고 지켰다.
사무엘의 조기은퇴는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귀감이 된다. 은퇴에서도 우리는 법을 따라야 한다. 거기에 이유가 있어서는 안 된다. 나만큼 나라 사랑하고 잘 봉사할 사람이 없으니까! 백성들이 더 오래 하기를 원하니까! 나는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했다며 3선 개헌으로 법을 바꾼 대통령이 있었다. 그 분의 나라 사랑이야 누가 부인할 수 있겠나? 그러나 그 분은 불행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정치에서든 직장에서든 사업에서든 교회 안에 직분에서든 법에 따라 물러날 날을 염두에 두고 때가 됐을 때 물러나야 한다. 내 형편에 상관없이 사무엘과 같은 용단을 해야 한다. 50세일지라도 건강할지라도 모두 더해 주기를 바랄지라도 물러나야 한다.
목회자도 마찬가지다. 어떤 목사님들 중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며 은퇴를 거부하는 분들도 있다고 듣는다. 그러나 죽도록 충성은 죽을 때까지 하나?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일할 때가 있고 물러날 때가 있다. 어느 목사님이 그래요. 목사가 목회를 하는 것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도 같다. 자전거는 탈 때와 내릴 때를 조심해야 한다. 그때 넘어지기 쉽다. 일하고 있는 누구나 유념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2. 사사 사무엘은 일에서 물러나면서 두 아들을 사사로 임명했다. 사무엘은 두 아들이 있었던 것 같다.
장자는 요엘이요 차자는 아비야였다. 그런데 그 두 아들에게 자기를 후계할 사사로 세웠다. 사무엘의 두 아들을 사사로 지명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백성들이 그의 임명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러나 사무엘은 여기서 신중하지 못했다. 사사들의 경우 세습된 경우가 네 번 있었다. 그러나 한번 야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격미달이요 실패였다. 더구나 사무엘은 제사장이요 사사였던 엘리 밑에서 자랐다. 엘리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제사장으로 세웠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드린 제물의 고기를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그것도 허용된 부위가 아닌 제 마음에 드는 부분을 빼앗아 먹었다. 또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했다. 제사를 더럽히고 성소를 더럽혔으니 어찌 제사장의 자격이 있었겠나? 그저 엘리의 아들이었기에 제사장이 됐었다. 그 결과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지고 법궤를 빼앗겼고 그 두 아들 제사장이 죽었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 역시 충격을 받고 의자에서 굴러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세습의 문제를 보고 경험했다. 그런데 제사장의 경우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나 사사는 그렇지가 않았다. 따라서 사사직분을 아들에게 그것도 두 아들에게 물려 준 것은 결코 잘 한 일이 아닐 것이다. 어찌 레위인 중에, 이스라엘 백성중에 사사할 만한 사람이 두 아들밖에 없었겠나? 사사직을 두 아들에게 물려 준 것은 옳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를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왕은 세습제였으니 어쩔 수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부전자전이 아니었다. 선한 왕에게서 종종 악한 아들이 나와 왕이 되면서 나라를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심판으로 몰아가곤 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한국의 대통령, 그 아들들을 보고 있지 않는가?
얼마나 그 아버지 대통령을 실패자로 만들어 버렸나?
최근에 한국 교회 장로교와 감리교회의 대표적인 교회의 존경받는 목사님들이 은퇴하신 후에 아들을 그 자리에 앉혔다. 교인들이 원하고 원치 않고는 문제가 아니다. 교역자 세습은 덕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공평한 일이 아니다. 그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다. 그 후임은 원하는 모든 목회자들에게 동등하게 기회를 주고 교인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후임 목회자를 선택하는 일에 모두 공정하지 못하다면 우리가 이 사회에서 어디서 공정을 기대할 수 있겠나. 따라서 교회를 은퇴하면서 아들을 그 자리에 밀어 넣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교회의 담임목사 세습은 잘못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지 우리 목사의 교회가 아니다.
엊그제 어느 기독신문에 서울 동광교회의 김인호 목사님 은퇴 후 훌훌 교회를 떠나 농촌교회 돕기의 전념 하신다는 기사가 났었다. 교인 600여 명, 20년 목회, 장로님들까지 모두 키운 분들,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 목사님을 형님, 아버지처럼 따랐다. 하지만 후임선정에서 김목사님은 손을 뗐다. 후임자 여러분이 모시고 주님께 일할 분이시니 여러분이 직접 선택해야 한다. 내게 묻지 말라. 김목사님의 아들이 목사다. 사위가 그 교회 부목사로 칭찬이 자자하다. 그 사위는 다른 교회에서 섬기도록 조처해 놨다. 조카사위도 목사다. 우리 교회도 어느 교회처럼 목사님 아들을 청빙하자... 그러나 세습제는 절대로 안 된다.
따라서 교회는 2년 전부터 김목사님의 생각을 존중해서 당회중심에 후임목사를 세우기 위해 월요일마다 특별기도회 모임을 40주간 가졌다. 그러나 후임자 물색이 김목사님 은퇴때까지 안되니 할 수 없이 목사님이 나섰다. 자신과 상관이 없는 기독교 방송에서 문화방송을 책임지고 있는 목사님을 추천해 만장일치로 후임자를 세웠다. 당신은 교회를 떠나 초청을 해도 안 가시고 시골교회에 다니시면서 자비량 부흥회로 섬기느라 바쁘게 사신다. 정말 아름다운 귀감이다. 교회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3. 세습으로 사사가 된 사무엘의 두 아들은 어찌 나라를 다스렸나?
3절이다.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사사가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재판을 곧게 해서 잘잘못의 시비를 가려주므로 가난한 이나 힘없는 백성들에게 억울함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공정해야 재판을 굽게 했다.
저들은 이를 따라서 재판했다. 이라는 말은 한마디로 말하면 불의한 소득을 말한다. 저들은 이렇게 재판 전에 부당한 이득, 소득을 구했다. 그러니 자연히 재판에 불리한 사람이 그 불의한 소득을 재판을 이롭게 하기 위한 미끼로 제공했다.
그러니 재판관이 달라는데 안 주겠나? 주면 재판에 이기는데 안 주겠나? 재판에 지면 만불이 손해이고 이기면 2만불이 이익인데 만불을 뇌물로 재판관에게 주지 않겠나?
백성들은 사무엘이 두 아들을 사사로 임명할 때 그래도 기대가 컷을 것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겠지. 사무엘은 정말 정직하고 탐욕에서 멀었다.  12:3에 보면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압제했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했느냐? 그리했으면 내가 너희에게 갚으리라 백성들이 결코 그런 없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들들은 아니었다. 물질에만 눈이 어두워 재물에만 관심이 있었지 옳고 그름에는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벌을 피할 목적으로 주는 뇌물을 주기가 바쁘게 받아 챙겼다. 그러니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서 바르게 판단하고 재판할 수가 없었다. 재판할 때 법을 보지 않고 얼굴을 봤다. 가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뇌물을 보고 그들에게 유리하게 재판했다. 법을 따르지 않으니 법질서가 깨졌고 혼란스런 사회가 되고 말았다. 벌 받을 사람이 돈 주고 벌을 피하니 법이 말하는 사회가 공의가 말하는 사회 대신 돈이 말하는 사회, 불의가 판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가난한 백성은 억울한 일이 많았다. 정직하게 법대로 사는 백성들, 불이익을 당하니 허탈감에 빠졌다. 나라가 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나라든 기업이든 교회에서 지도자는 물질에 대해서는 깨끗해야 하고 청렴해야 한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어느 결혼예행 연습장에서 예비 신랑이 주례 목사에게 다가가서 100불 지폐를 손에 쥐어 주면서 목사님! 서약때 제게 아내를 늘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고 도와주고 하는 부분은 빼고 물어 주십시오! 주례 목사는 그 예배 신랑에게서 받은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 예비 신랑은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정작 결혼식 날 서약을 묻는 주례 목사의 질문은 영 달랐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모든 경우에 아내를 사랑하겠는가? 도와주겠는가? 매일 아침마다 식사를 준비해서 신부에게 갖다 주며 이틀마다 한 번씩 설것이를 하며 한주에 한 번씩 빨래를 하기로 서약하느뇨? 신랑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적은 소리로 예 했다. 그리고 나서 신랑은 주례 목사에게 적은 목소리로 흥정과 다르지 않습니까? 어찌 된 일이냐고 불평을 하니 목사님이 돈 100불을 되돌려 주며 신부측에서 더 좋은 흥정이 들어와서 그 쪽을 받아주기로 했네 라고 했다. 우스운 이야기다. 그러나 뇌물, 뒷거래 흥정은(손해) 받지도 말고 뇌물을 주면 손해가 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지도자는 마땅히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재판을 뇌물을 받고 굽게 한 세습된 사무엘의 두 아들들은 어찌 되었나? 나라를 사랑하는 장로들은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뇌물, 부정이 판치는 나라는 망하고 말 것이다. 함께 모여 의논한 후 사무엘을 찾아갔다. 그리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않습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능력도 없고 지혜도 없고 믿음도 없습니다. 저들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하소서!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하소서!
사무엘의 두 아들들! 겸손하지 못했다. 사사가 된 것은 그들의 신앙과 인격 또는 검증된 능력에 있지도 않았다. 쉽게 말하자면 은혜였다. 그러니 겸손해야 했다. 아버지가 임명했으나 하나님이 인정하셨고 백성들이 받아들였다면 하나님께 책임이 있고 백성에게 책임이 있다. 하나님 뜻대로 공정하게 재판하고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 섬겨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안중에 없었다. 사사를 특권으로 착각하고 섬기기보다 권세를 이용해서 백성들을 착취 치부하기에 바빴다. 세우시고 살피시고 평가하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보시니 자격미달이요 신앙미달이요 능력미달이요 그래 하나님이 버리셨다. 사사직을 잃었다. 빼앗겼다.
오늘 우리 교회의 직분도 그렇다. 직분은 하나님이 세우신 성직이다. 누구도 자격이 온전한 이가 없다. 겸손해야 한다. 성실하게 하나님 뜻에 따라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살펴보고 계신다.
이민교회의 특수 상황에서 언제부터인가 안수집사, 서리집사의 자격이 사라져 버렸다. 한번 서리 집사가 되면 평생 집사로 생각한다. 주일을 지키던 말든 제직회에 참석을 하든 말든...  그러나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감찰하신다. 평가하신다. 미달인가? 버리신다. 사무엘의 두 아들이 사사직을 잃었듯이 주일도 안 지키는 집사라면 이미 집사직을 포기한 셈이다. 하나님은 집사로 보지 않으신다. 왜요? 하나님께서는 일하라고 직분자를 세우셨다. 따라서 우리 교회도 서리 집사님이 이유없이 3개월 동안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집사직을 상실하게 되어 있다. 마땅히 그리되어야 한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하나님의 일군이다. 직분은 명예도 계급도 아니다. 맡은 일만 하면 하나님은 일군으로 인정하신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교회들이(어떤) 세우는 명예 권사직을 적극 반대한다. 명예가 무엇인가? 교회안에 명예직은 없다. 그것은 어쩌면 공로를 인정한다는 뜻인데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 앞에서 공로가 될 수는 없다. 사람에게는 공로가 되어도 하나님께는 아니다. 교회가 아닌가? 봉사하고 섬기고 물러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주님이 오실 때 칭찬과 축복을 해 주실 것이다. 그렇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사무엘의 두 아들, 세습된 사사들은 직위를 부정축재와 수단으로 삼았다. 그 결과 사사직을 잃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불행해졌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도자였기에 이스라엘 나라에 역시 불행을 안겨 주게 되었다.
그 백성으로 인간 왕의 다스림을 원하게 하였다. 이방나라처럼 왕을 세워 다스리게 하소서! 왕을 요구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 왕이 군사적인 지도력으로 나라를 지키고 다른 나라와 싸우게 해 달라. 특별히 부자가 된 이들은 수시로 이방나라의 공격을 받고 재산 탈취를 당하는 것이 두려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와 달랐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이시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니 인간 왕을 달라는 요구는 사무엘을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버림이었다. 불신앙이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겠다 믿겠다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보다 이방나라의 제도가 더 좋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수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강해서도 아니었다. 훌륭한 지도자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도덕적으로 훌륭해서도 아니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애굽에서 벽돌을 만들고 강제노역에 시달릴 때 구원받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 해방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을 배반하며 원망 불평하는 그 백성들, 양식도 물도 없는 광야에서 40년을 입히시고 먹이신 분이 하나님이시었다. 가나안 땅을 주시기를 약속하시고 거기 사는 강한 일곱 족속을 파하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시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그러나 세습된 사사의 실패는 그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나라의 방식대로 인간 왕이 다스리게 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셨다. 세습된 사사들이 실패했으니 어찌하시겠나?
  그러나 불신앙에서 출발한 인간 왕은 첫 왕 사울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3대를 겨우 이어가다 남북조로 갈라졌고 마침내 북조는 앗수르에 남왕조 유다는 바벨론에 망하고 말았다. 이스라엘도 잘못된 세습의 결과였다.
어느 일간 신문에(중앙일보) 치과의사가 이런 글을 썼다. 내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그 돈을 가지고 어려운 이들을 모두 무료로 치료해 주는 일이다. 그러나 언제 그 일이 이루어질지 내게는 멀기만 하다. 돈이 먼저 올지 아니면 내가 먼저 가게 될지.. 나는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우선은 시간을 들여 돕기로 했다.
내가 가진 것도 본래 내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내 것이 아니다. 잠시 맡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 하셨다고 썼다. 그렇다!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 우리는 모두 청지기일 뿐이다. 교회도 하나님의 교회다. 담임 목사는 청지기일 뿐이다. 그의 후임자는 그의 소관이 아니다.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정하실 일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세습된 사사의 교훈이 보여주듯이 교회의 세습도 잘못이다.  땀 흘려 모은 재산이 내 것이니 내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다. 선한 일에 희사하는 것이 옳다. 그것은 공평의 원칙에 어긋난다. 세습으로 자리에 오르는 자는 검증된 자격자들이 아니라 신앙도 인격도 능력도 미달이기 쉽다. 무엇보다도 그를 세운 아버지만 보아야지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잊고 교만하기 쉽다. 자기의 이익의 방편으로 삼아 타락하기 쉽다. 그 결과 그가 하나님께 버림받으면 모두가 불행하게 되고 만다. 따라서 교회가 은퇴와 후임을 세우는 세대교체에서 공평함으로 세상에 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자다운 신자가 되고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길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은퇴자도 후임자도 교회도 복되게 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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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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