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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본문 : 삼상 9:1-10
RevSuh  2012-12-24 17:41:40, 조회 : 2,904, 추천 : 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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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삼상 9:1-10)(110302)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 나라를 다스리게 해 달라는 요구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다. 물론 하나님께서 인간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을 달가와 하시지 않으셨다. 심지어 이 백성이 나를 버렸다고까지 말씀하셨지만 저들의 요구들 들어 사무엘에게 사울을 기름부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게 하셨다.
사울 왕은 처음에는 정치를 잘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불레셋의 골리앗에게서 나라를 구하고 그의 사위가 된 다윗을 믿지 못했다. 충신이요 사위인 다윗을 그의 정권의 경쟁자로 보고 군사를 풀어 그를 잡기에 쉬지 않고 추적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불레셋의 위협 앞에서 취한 행동에서 그는 권세에 눈이 어두운 어리석은 독재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아들들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가 처음 하나님께 왕으로 세움을 받을 때는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지도자의 성품과 자세를 지니고 있었다.
오늘 이 시간은 바로 그때의 사울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일군된 우리가 지니고 섬겨야 할 바람직한 성품과 자세를 배우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한다.

1. 하나님께서 쓰실 때 사울은 부모에게 순종하여 공경했다.
이철환의 연탄길이라는 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신부전증의 어머니에게 신장을 떼어 준 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어머니는 의사에게 가족이 혹시라도 신장을 떼어 준다면 절대로 수술받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반쪽으로 살아가게 하는 건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죽음보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아내와 어머니를 아버지와 아들이 신장을 주기 위해 몰래 검사를 받는다. 아버지가 정밀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아내에게 신장을 줄 수 없었다. 아들이 검사하니 어머니에게 신장이식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그건 안 된다고 못 박는다. 그런 아버지를 간곡하게 설득한 아들이 신장을 떼어 어머니를 살린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이런 자녀들이 있기에 가정은 가정답고 부모와 자녀의 사랑의 관계가 지속되는지 모른다.
그런데 부모공경이 무엇일까? 그 기본이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보다도 더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를 통해 나에게 생명을 주신 나를 있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권위 그 권위에 대한 순복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께 좋은 차를 사 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 수술할 때에 피가 부족하다면 내 피를 빼어 드린다고 해도 순종이 없다면 참된 부모공경은 아닐 것이다.
순종이 무엇인가? 부모님의 말씀과 명령을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건이나 이유를 달지 않고 예 하는 것이요 쉬운 일만 예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일도 예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만 예하지 않고 하기 싫은 것도 예 하는 것이다.
이제 본문을 보자.
기스는 아들 사울에게 사환을 데리고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암나귀를 잃어버렸다. 나귀가 스스로 도망을 쳤는데 그렇지 않으면 도적이 훔쳐 갔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잃어버렸다. 아버지가 안 찾아 봤겠나? 찾아도 없으니 네가 찾아오란다. 쉽지 않다. 어디로 갔을지 예측이 어렵다. 그런데 사울은 이유를 달지 않는다. 아직도 집에 안 돌아오는 암나귀를 어디서 찾아요? 도적이 훔쳐갔다면 멀리 끌고가서 다른 사람에게 팔았겠지요. 내가 찾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니 그까짓 나귀 얼마나 한다구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조건 예 했다. 4절을 보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를 다 돌아다니며 찾았다.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녔다. 그래도 없다. 사알림 땅으로 가서 찾는다. 그래도 없었다. 그만 돌아가자고 하지 않았다. 또 베냐민 사람 땅으로 두루 다니며 찾는다. 그래도 없다. 그리고 마침내 숩 땅에 이르렀다. 대략 그 거리가 25-30 마일 정도다. 그러나 그 옛날 길이 제대로 나 있었겠나? 또 도망친 나귀가 어디로 갔겠나? 사람을 피해 도망을 갔으니 인정이 드문 곳, 살림속이 아니었겠나? 그러니 사울은 아마 산으로 나귀를 찾아 헤맸을 것이다. 짐승의 위협, 도적의 위협도 있었을 것이다. 또 얼마나 힘이 들었겠나?
그런데 부모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계속 찾아 다녔다. 그래도 나귀가 안 보인다. 아마 종일 찾아 다디다 저녁때가 가까웠을 것이다.
사울이 생각하니 아버지가 나귀보다 그와 종을 더 염려하실 것 같았다. 그래 사환에게 아버지가 우리를 걱정하실테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사울이 얼마나 그의 부모님을 많이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것이 무엇인가? 효도다.
하나님께서 아비에게 순종하는 사울을 들어 쓰셨다. 왤까요? 하나님이 쓰는 일군에게 그를 순종해서 부모 섬김이 왜 그리 중요한가? 왜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사울을 들어 쓰셨나? 왠가? 우리 신앙도 아버지 공경이다. 예수님을 믿어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나?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다. 그런데 육신의 아버지, 눈에 보이는 아버지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으시는 영적인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겠나? 부모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자는 그 권위로 주신 하나님께도 순종할 것이다. 그래 하나님께서 부모 순종을 중요하게 보시고 약속있는 첫 계명으로 주셨다. 네 부모를 공경하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겠다. 사울이 그 약속을 지켜 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들을 들어 쓰신다. 새해가 앞으로 다가왔다. 직분으로 임명되나?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예 하고 순종하라. 하나님이 쓰시는 일군이 될 수 있다. 이미 직분맡고 주님의 일을 해 왔나? 힘들고 지치고 그러나 사울처럼 하자. 어찌해야 할지 알수 없는 숙제를 안고도 쉬지 않고 충성했던 사울,
엊그제 어느 권사님 가게에 심방을 갔다. 남편 성도님이 양로병원에 계시기에 L.A 심방후 찾아 나섰다. 그런데 너무 공사가 많아 길을 바꾼 것이 그만 엉뚱한 길로 헤매게 만들었다. 40분 이상을 돌고 또 돌아도 안 된다. 지쳤다. 그만 둘까? 그런데 잃은 암나귀를 찾아 헤맸던 사울에 대한 설교를 한 내가 그만 두다니... 하나님 용서하세요! freeway를 다시 타고 방향을 잡고 양로병원에 전화를 걸어 장소를 확인한 후 찾아가 심방을 했다. 암나귀 찾아다닌 사울을 생각하고..! 내가 맡은 하나님의 일은 사울이 해야 했던 나귀 찾는 일과 비교할 수 없이 중하고 값진 일이 아닌가? 순종하다가 중단하지 말라 최선을 다해 끝까지 순종하시기 바란다.
11세기 Bavaria에 Henry Ⅲ는 궁중생활에 식상하고 군주의 strees를 견디기 힘들었다. 지방수도원에서 살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수도원장이 폐하! 당신께서는 이곳 수도원의 서약이 순종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당신은 왕이시기 때문에 그것이 힘든 일입니다. 그때 왕은 아니오 당신이 그리스도에게 인도받는 한 나는 순종할 것입니다. 그러자 수도원장이 제가 당신이 하실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궁궐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두신 자리에서 성실하게 섬기십시오! 왕이 죽자 비문에 이렇게 썼다. Henry Ⅲ 왕은 순종으로 통치를 배웠다. 여러분, 순종으로 직분이 힘이 들어도 충성하시고 하나님의 일군이 되시기를 바란다.

2. 사울은 함께 협력했고 하나님의 지혜로 일을 했다.
  여기 사울은 베냐민과 에브라임 지파 경계의 지역까지를 두루 다니며 잃은 나귀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아버지가 나귀보다 자기와 종을 염려하실 것 같으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맘을 먹었다.
그런데 그때 그 사환이 이런 조언을 한다.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습니다. 존경받는 훌륭한 분입니다.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응답됩니다. 그에게로 가십시다. 그가 우리의 길을 가르칠 것입니다. 그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때 사울은 종의 생각을 무시하지 않았다. 종의 앞에서 주인의 권위를 세우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 묻자고 하는데 동의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그릇에 식물이 다했으니 무엇을 드리겠느냐?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을 존경했다. 예의가 발랐다. 여기 그릇에 했는데 그 말은 그릇도 되고 전대나 주머니, 지갑도 된다. 그 당시에는 선지자에게 물으러 올 때에 선물을 드리는 것이 관례였다(암 7:12). 적은 선물을 드리기도 하고 큰 선물을 드리기도 했다. 물론 선지자가 그것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여하튼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종을 존경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울의 판단과 주장은 아버지가 걱정하실 것 같으니 집으로 돌아가자 였다. 그래서 그 생각을 종에게 알렸다. 그것이 끝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환이 종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내 생각, 내 판단, 내 주장이 제일이라며 내 주장만 펴나가는 사람이 아니다. 남의 생각, 남의 판단, 주장에도 귀를 기우릴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나 판단이 내 것보다 옳을 때 나을 때 들어주는 귀와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이를 위해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도 내 주장, 생각, 방법을 고집하다보면 부딪치고 다투고 싸워 난 함께는 못 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은 안 된다. 하나님의 일은 함께 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존중히 여기며 양보하면서 합력해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사울은 부모님이 그에게 맡긴 일을 종과 협력해서 하다가 문제가 생겼다. 벽에 부딪쳤다. 그러나 그때 자기 생각, 지혜, 주장을 고집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 하나님께 나아가 물었다. 왜요? 나는 못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내 지혜로 안 되나 하나님의 지혜로는 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사명을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직분맡고 일하다 벽에 부딪치나, 도움이 필요한가? 주의 종을 찾으세요. 신앙의 선배를 찾으세요. 조언을 들으세요. 기도를 함께 하세요. 하나님께서 지혜로 새 힘을 주셔요. 보세요. 사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니, 하나님께 문제를 가지고 갔더니 문제가 해결되었다. 20절을 보라. 사울에게 선지자 사무엘이 사흘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문제만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10:1절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상상도 못할 전혀 기대할 수도 없던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축복까지 받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이다. 적은 일에 충성, 주일지킴, 예배시간, 제직회, 선교회, 식사당번 한번 지키는 것이 충성이다. 이런 자를 들어 크게 쓰신다.
얼마 전에 샌디에고 동남쪽에 위치한 어느 작은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하고 왔다. 그 교회는 알만한 두 분 목사님들이 목회를 했었다. 실력도 있고 이름도  있고 그래 제가 그런 목사님들이 목회를 잘 하신 교회에 와서 말씀을 전하게 되어 기쁘다고 인사를 했더니 아멘 대신에 의아해 하는 모습들이다. 집회가 끝나고 담임 목사님과 대화를 하다보니 이해가 갔다. 실수를 한 것이다. 똑똑한데, 머리가 좋은데, 설교를 잘하는데, 교인들이 머리를 절래절래 흔든다. 왜요? 들어보니 너무나 인간적으로 했다. 함께 하지 않고 자기 혼자 했다. 하나님께 묻고 하지 않고 내 지혜따라 했다. 충성스럽게 하지 않고 꾀로 했다. 그러니 얼마 가지 못했다. 하나님의 일은 학력이나 지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류 대학 나온 것으로 박사학위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에 한국교회의 큰 교회 목사님들이 가짜 박사 학위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 신문에 나고 사회의 빈축을 샀다. 대만에 있는 어느 유령학교에서 준 학위였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래도 학위를 받았으니 나는 박사다. 어느 분은 근신하기도 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선교학 교수로 당시 한국 선교사로 오셔서 총신에서 가르치셨던 간하배 목사님이 경건회 시간에 이런 설교를 하셨다. 한국교회는 교회의 목사님들이 박사학위가 무슨 능력을 주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안타깝다고 하시며 회개해야 한다고 외치셨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요!
오늘도 그렇다. 박사학위가 목회의 능력이다. 그래서 교회 주보에 담임 목사의 학위명을 기록한다. 박사 가운을 입고 설교한다. 그것은 신앙적이지 못하다. 세상 지식, 재물, 지혜, 경력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없다. 협력해서 하되 하나님의 지혜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직분자는 일하면서 자주 조용히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내 지식, 지혜, 주장대로만 일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따라서 함께 일하는 다른 성도의 의견을 존중했는가? 협력해서 일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는가? 자주 자성하며 일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들어 쓰신다.

3. 사울은 하나님이 쓰실 때 겸손했다.
이스라엘의 최대의 지도자는 모세다. 모세만한 선지자가 없다. 모세는 그 백성을 애굽의 학정에서 구원했다. 홍해를 갈라 그 백성을 육지처럼 건너게 했다.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 광야의 환경에서 40년을 인도했다. 그는 하나님과 40주 40야를 대면한 자요 그 얼굴에서 하나님을 대면한 자의 영광의 광채가 흘러나와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백성을 만나기도 했다. 반석에서 물을 냈다. 백성을 재판할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었다. 구리 뱀을 만들어 뱀에게 물려 죽게 된 자로 보고 살게 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때 그 금송아지를 부수어 가루로 빻아 그 백성으로 마시게 했다. 그런 선지자는 없었다.
그런데 처음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들어서 쓰시기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애굽 궁궐에서 자라고 배우면서 애굽 사람, 애굽의 지도자가 되는 최고의 훈련을 받았다.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자신이 애굽인이 아니라 유대인인 사실을 깨달은 그는 그 백성이 당하는 고난에 의분을 터뜨렸다. 그래 유대인을 치는 애굽인을 보다 못해 때려 죽였다. 스스로 유대 민족의 구원자로 나섰다. 나는 대 애굽 공주의 아들이다. 최고 학문과 통치술을 배운 지도자다. 그러나 애굽인을 죽인 것이 탄로 날 위험에 처하자 도망치는 실패자가 된다.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그 곳에서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치며 40년을 대국의 공주의 아들에서 미천한 목동이 되고 만다. 그는 somebody 굉장한 인물에서 nobody 하찮은 자가 되고 말았다. 그때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겸손해졌다. 하나님께서 그를 세워 바로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라! 그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려 하시니 못합니다.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말도 못합니다. 무섭습니다. 자신의 연약성을 자신의 부족을 자신의 무능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서 기어코 그를 들어 쓰셨다.
이제 본문을 보자. 2절, 사울은 준수한 소년이었다. 그보다 이스라엘에 더 준수한 자가 없었다. 그보다 나은 자가 없었다. 역시 그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 중에 키가 큰 사람보다 머리가 더 있을 정도로 체격도 우람했다.
그런데 사무엘이 그에게 네가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라 할 때 이렇게 반응한다. 21절, 나는 이스라엘 지파중에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하고 겸손해 했다.
10:2에 가면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모아 놓고 왕이 될 자를 뽑을 때 베냐민 지파가 뽑혔다. 베냐민 가족 중 마드리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다.
그때에 사울은 이미 선지자 사무엘에게서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러나 온 백성이 제비뽑아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그를 왕으로 세우려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찾아도 없었다. 하나님께 물었더니 하나님께서 그가 행구사이에 숨어 있다. 숨어있는 사울을 찾아 억지로 왕으로 세웠다.
왕이 되라는데 하나님께서 택하셨는데 기름까지 부었는데 저는 아닙니다. 못합니다 그는 그가 맡은 직분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래 저는 적임자가 못됩니다. 모세같이 겸손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쓰셨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 자기를 바로 아는 자를 들어 당신의 일군으로 크게 쓰신다.
부족한데 어떻게 쓰시나? 자격이 없는데 어떻게 쓰시나? 할 수 없습니다 라는 사람을 하나님은 어떻게 쓰시나? 그렇게 부족한 사람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케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부족한대로 내 버려두시지 않으신다. 겸손한 자를 쓰실 때 자격을 지혜를 능력을 갖추게 하신다.
10장 6절을 보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네게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선지자들과 함께 있어 예언할 것이요 변하여 새사람이 되리라. 새 사람되게 하시어 쓰신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부으셔서 자격을 갖추게 하신다. 성령님을 충만히 임하게 하신다. 성령충만케 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다. 또 부족한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구한 결과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깨끗한 사람, 마음이 청결한 자를 쓰신다. 성령님께서는 정결의 영이시다. 죄는 회개케 하신다. 마음에 거룩을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것이 없게 되니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진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분별해 알고 따라서 일하는 사람을 쓰신다. 성령님은 깨닫게 하시는 영이시다. 말씀을 기억하고 이해하고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알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열정을 지닌 자를 들어 쓰신다. 성령님은 심령을 뜨거운 열정으로 채우신다. 능력이 영이시오 은사의 영이시다. 많은 일을 하기에 필요한 힘과(재능과) 은사와 열정을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 부족한 것을 아는 자를 들어 성령님으로 자격을 갖추게 하시어 쓰신다. 직분으로 임명될 때 부족함을 안다면 그것이 곧 자격임을 기억하시고 예 하시라. 온전한 자격자는 없다.
여러분! 직분이 내게 너무 중하고 힘드나? 직분은 맡았는데 열심이 없나? 맡은 일을 하는데 은사가 부족한가? 지혜가 부족한가? 염려마세요. 하나님께서 세우셨으니 성령님! 사울에게처럼 우리에게도 부어 주실 것이다. 그러니 믿고 구하여 성령충만하여 능히 맡은 일, 하나님의 일을 힘있게 지혜롭게 잘 할 수 있다. 사울처럼 오늘 맡은 직분 충성하여 큰일 맡은 충성된 일군이 되시기 바란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일군이다.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 인생이 무엇인가? 세상에서 성공이 돈이 지위가 명예가 건강이 지식이 무엇인가? 얼마나 빨리 지나가고 쇠잔되나? 우리 모두 기대하지 않은 때에 어느 날 갑자기 주님을 대면하게 된다. 그때 무엇이 가치가 있고 무엇이 의미가 있겠나? 헛되지 않은 일은 주의 일, 우리가  맡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세상일에 몰두하지 말고 직분 맡은 일을 고귀하게 생각하라. 그 하나님의 일 순종으로 함께 도우면서 일하세요. 하나님께 구해 성령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지혜로 일하세요. 그리고 후회없이 주님 앞에 서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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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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