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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성공과 실패
  본문 : 삼상 13:1-14
RevSuh  2013-01-21 11:27:46, 조회 : 2,769, 추천 :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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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실패(삼상 13:1-14)(122902)

사람은 누구나 잘 되기를 바라고 성공하기를 소원한다. 심지어 예수를 믿는 것도 복 받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많다. 그러나 바람이나 소원이 실제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잘 되고 성공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 그 증거다. 아니 내가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은 거예요.
그런데 또 문제가 있다. 잘 되고 성공한 사람이 그 성공을 지키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실패자가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우리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보라. 초대에서 지금까지 성공한 대통령이 있는가? 백성들에게 존경받아 대통령이 되었는데 물러날 때는 누구도 그 분을 존경하지 않는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된다.
사울 왕의 성공과 실패를 본다.
그러면 왕이 되는데 성공한 사울이 왜 그의 왕권을 지키지 못하는 실패자가 되고 말았는가? 무엇이 문제였나? 사울의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어떻게 우리는 성공적인 신앙의 삶을 살 수 있는가?

Ⅰ. 왕이 된 사울
  사울의 성공 그 원인이 무엇이었나?  사울은 어떻게 왕이 되었나?
  이번 한국 대선에 나오신 두 분 경쟁 후보는 모두 키가 작은 분들이었다. 그리고 작은 분 중에 한 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옛날에 왕은 좀 달랐다. 당시 왕들은 외적으로부터 지켜 주고 필요하다면 전쟁을 해서라도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장수여야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몸집이 크고 키가 큰 자가 유리했다. 이런 점에서 보통 사람보다 어깨 위가 더 있는 장대한 체격을 갖춘 사울은 타고난 체격이 왕이 될만했다. 그러나 그것을 빼고는 그에게 볼 것이 별로 없었다. 사무엘이 그를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따라 왕으로 세우려 할 때 그가 고백한 내용이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 또 저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가족 중에서도 가장 미약한 가정이라고 했다. 그러면 출신과 신분이 보잘 것 없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이스라엘 왕이 되어 보겠다는 꿈도 없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를 왕으로 세우기 위해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제비를 뽑아 하나님의 뜻을 확신했을 때에도 그는 행구(짐짝) 사이에 숨어 있었다.
무엇을 말해 주나? 그는 왕으로 성공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러면 어떻게 왕이 되었나? 그가 왕이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왕으로 세웠다. 그가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왕이 되자마자 암몬 사람들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공격해 와 저들을 위협하자 야베스 사람들은 화약을 청했으나 저들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고야 평화조약을 맺겠다고 위협했다. 다급해진 길르앗 장로들은 의논 끝에 도움을 구하려 사울을 찾아왔다. 그때 사울은 밭에서 소를 몰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농사꾼이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암몬 사람과 싸워 물리칠 무기도 군사도 없었다. 그는 전쟁을 치러 본 일도 없었고 또 지휘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 전쟁을 그에게 매우 중요했다.  왜요? 왕이 된 그에게 왕으로써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시험대였다.
그런데 그는 백성을 소집하여 삼대로 나누고 새벽에 암몬 진에 들어가 날이 저물때까지 암몬 사람을 쳐서 승리했다. 성공적인 왕임이 증명되었다.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어떻게요? 11장 6절에, 하나님의 신에 그가 크게 감동되어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에게 용기와 지혜와 힘을 주셨고 백성으로 그의 소집과 지시에 순종케 하였다. 그래서 왕이 되어 첫 번째로 전쟁에 승리하여 왕으로서 신뢰와 권위를 얻게 되었다. 그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다.
왕이 되고 전쟁에 승리하여 왕권을 확립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우리는 어떤가? 오늘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신자가 되고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가?
가만히 교회밖에 세상을 내다보라! 얼마나 가문이 좋은 사람, 얼마나 돈이 많은 사람, 얼마나 지위가 높은 사람, 얼마나 학벌이 좋은 사람, 얼마나 인기가 좋은 사람들이 많은가? 그러고 보면 사울의 고백이 생각나지 않는가? 나는 가문도, 학력도, 재력도, 지위도 보잘게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 조건이 좋은 많은 사람을 마다하시고 하나님께서 왜 나를 구원하시기를 작정하셨는지 선택하셨는지 부르시어 믿게 하셨는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하늘나라를 상속하게 하셨는지? 오늘도 믿음으로 살게 하시는지? 왜 나보다 나은 사람이 아니고 나인지 알 수 없다. 이유가 있다면 하나뿐이다.
사울의 성공의 이유처럼 하나님의 은혜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사는 것 그것이 성공적인 신앙생활의 비결이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여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 그래서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로 승리의 삶을 사시기 바란다.
✪ 그 사울이 왕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성공한 사울이 실패한 사울이 된다. 왜 사울은 실패하게 되었는가?
   본문에 의하면 사울이 왕이 된지 2년째 불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었다. 사울로서는 왕이 된 후에 두 번째로 전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유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불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공격했다. 그 소식이 불레셋의 군사령부에 알려지니 불레셋 군인들이 총동원되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집결했다. 불레셋은 이스라엘 수비대를 공격한 것도 성이 났지만 최근에 왕을 세우고 군대를 조직하여 암몬을 물리치고 자기들까지 공격을 해 오는 것으로 알아 크게 위협을 느꼈다. 그래 이스라엘을 제일의 증오의 대적으로 보고 총공세를 펴게 됐다. 이스라엘을 치러 온 병력이 그 사실을 증거해 준다. 병거 3만에 마병 6,000명에 보병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저들을 본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떨며 굴과 수풀과 바위틈 등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었다. 또 어떤 이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피신하였다. 그나마 사울을 쫒은 백성은 두려워 떨었으며 흩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시고 도와주셨을때와는 달리 스스로 어떻게 시련과 시험의 전쟁을 대처하는지를 지켜보셨다. 그러나 여기 불레셋의 위협앞에서 사울의 취한 판단과 행동은 왕으로서 자격미달이었다. 그러면 위기때 사울이 취한 행동은 무엇인가?
  사울은 선지자 사무엘의 말을 순종하지 못했다.
10장 8절에 보면 사무엘은 사울에게 너는 나보다 먼저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7일을 기다리라.
사울은 물론 사무엘의 말씀을 기억했고 기다렸다. 그러나 온전히 하지 않았다. 완전히 순종하지 못했다. 왜요? 불레셋의 공격은 임박했고 백성들은 흩어졌다. 남은 백성은 두려워 떨고 있다. 그런데 기다리라던 그 7일째가 되었는데도 사무엘은 오지 않는다. 칠 일째인데 7일이 되었는데 그러나 사무엘은 오지 않을 것이다. 사무엘의 말을 믿지 못했다. 제사장 사무엘이 오지 않는다면 할 수 없지 나라도 제사를 드려야지!!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 왕인데..선지자 사무엘을 믿지 못하고 그의 말, 지시에 순종하지 못했다. 그것을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요 불순종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패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고민되시고 죽게 되셨다. 그때 겟세마네동산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시어 기도하셨다.  십자가의 죽음이 어디 예사인가? 땀을 흘려 간절한 기도를 하실 때 그 땀방울에 피가 섞여 흘러 내렸다. 그러나 제자들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졸며 잠에 빠졌다. 그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여 기도하라! 어찌했나? 베드로는 어떤 위기가 와도 저는 절대로 아닙니다. 다른 제자들 다 주님을 버려도 나만은 아니라고 장담했다. 모두 장담했던 터라 시험은 무슨 시험, 누군가 예수님을 잡으러 오기만 해라 아마 베드로는 칼을 칼집에서 뺐다 꽂았다 했을 것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진다는 말씀 안 믿었다. 시험 들면 예수님 버리고 도망치는 비겁한 실패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기도하기 위해 인내하지 못했다. 피곤을 참지 못하고 잠에 빠졌다. 예수님 말씀을 믿지 못했다.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찌 됐나?
베드로는 예수님 잡으러 온 무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겨우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 하나 자르고 도망쳤다. 실패였다. 왜요? 예수님 말씀 믿지 못했다. 인내하며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다.
벌써 10여년이나 지나 버렸으나 한국에서 88년 10월 20일 예수님 오신다. 휴거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신앙이 흔들렸나? 예수님의 재림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인자도 모르시고 아버지만 아신다. 그런데 그 말씀을 안 믿었다. 예수님 오신다는 징조가 여기저기 나타나니까 기다리지 못했고 날짜를 정했다. 그리고 사업팔고 직장 그만두고 학교 안 가고 모여서 그날까지 준비하느라 밤새우며 어느 정적에 주님오실까 기도하며 기다렸다. 하나님보다 앞섰다. 말씀을 안 믿었다. 그리고 어찌 됐나? 예수님 안 오셨다. 허탈감에 빠졌다. 신앙떠났다. 이혼하는 사람, 학교에서 퇴학당한 학생들, 사업 망한 사업가,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우리의 신앙을 오도시켰다. 전도의 길 막았다.
그렇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믿는 것이다. 그리고 힘들어도 인내하며 지켜 순종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내 형편, 내 사정 앞세우면 우리도 사울처럼 되기 쉽다.
하나님 아시겠지 불경기인데, 몸이 건강하지 못한데, 너무 바쁜데, 할일이 많은데, 손님이 그치지 않는데 연말인데, 어떻게 말씀대로 순종해, 적당히 하면 되지. 그리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을 기쁘게 듣고 기억하고 순종하되 끝까지 온전히 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충분하게 된다.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

Ⅱ. 사울의 두 번째 실패의 원인은 교만하게 월권을 행사해서 제사드렸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 범죄하였다.
9절을 보면 사울이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물론 사울은 12절에 그리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들고 있다. 내가 불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거늘 당신은 오시지 않고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했다고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그러나 그 말은 참 말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무엘은 약속한 날짜가 번제를 드리고나자 그 자리에 왔으니까 기다리지 못했다. 순종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사울의 잘못된 신앙을 엿볼 수 있다. 불레셋 사람과 싸움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고 당신은 정한 시간에 안 오시니 부득이 제사장이 아니나 번제를 드렸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가 번제를 드렸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예배에 대한 잘못된 신앙이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가 아닌 내 방법대로 제사했다. 예배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요 내 소원유지요 전쟁에서 이겨보겠다는 이기적인 욕심이었다.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예배를 드려도 제물을 바쳐도 받으실 것이고 흠향할 것이고 그리고 축복해 주셔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신적인 신앙이다. 참 신앙은 말씀에 근거한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지시하신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은 제물에 배고프신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다. 아들 에서에게 사냥해서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라! 내가 네게 축복하겠다며 아들을 들로 사냥하러 내보낸 인간 이삭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참 예배자를 찾으신다. 예배를 기뻐받으신다. 그러나 그 예배가 제사를 방편으로 축복이나 얻어내려는 이기적인 욕심을 품은 자의 예배는 받지 아니하신다.
또 있다. 여기서 사울은 12절에 그가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 것은 부득이하여 드렸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가능한 한 안 드리려고 했는데 할 수 없어서 드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할 수 없이 드리는 예배는 받지 아니하신다. 예배는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한다. 잘못을 범했다면 회개해야지 그 잘못을 합리화시켜서는 안 된다. 사울은 잘못을 회개하는 대신 핑계대며 사무엘에게 그 원인이 있다며 잘못을 전가시켰다. 신앙생활은 excuse로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그런 신앙이나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우리는 사도행전 5장에서 은혜로운 초대교회에 찬물을 끼얹는 불행한 사건을 본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이다. 그들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를 사도들에게 가지고 와 가난한 자를 도우라 했다. 내 소유 팔아 가난한 자 구제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선행인가? 하나님께 드린다. 봉헌의 행위다. 예배와도 같았다. 아나니아는 소유 판 돈 전부를 다 가지고 와서 바치듯이 교만해 했을 것이다. 그러니 베드로가 물었다. 이 돈이 네 소유 판 돈 전부냐? 그렇고 말고요! 베드로를 속였다. 그것은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었다. 소유팔아 다 하나님께 바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께서 다 바치라고 하시지 않는다. 또 기대하시지도 않으실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것을 바치고 죽었다. 왜 속였나? 그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께 영광 대신에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다 안 바치고 다 바쳤다고 속였다. 왜요? 그래야 사람들이 보고 듣고 알아주고 박수쳐 주고 칭찬을 할테니까요. 내 영광을 구한 것이다.
가난한 자 구제가 아니라 자기 이름 내기 위함이었다. 또 있다. 그들도 사울처럼 부득이했다. 부자들은 제산 소유팔아 가난한 자 돕는데 자기들도 안 할 수가 없었을 테니까요. 남이 하니까 안 할 수가 없으니까 했다. 하나님께서 그런 예배 받으시겠나? 감사한 마음이 없었다. 남이 다 하니까 나도 한다. 그런 헌금 받지 아니하신다.  
또 있다. 사울은 제사장이 아닌데 제사를 드렸다. 월권을 행했다. 어떻게요? 왕이였기에 제사장이 하는 제사 드릴 수 있지! 무엇인가? 교만이다. 하나님께서 결코 교만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 예배란 말 자체가 꿇어 절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머리 숙이고 허리 굽히는 겸손이 필수다. 교만한 예배자는 은혜받지 못하니 믿음에 실패자가 된다.
사울은 번제를 드리고 버림받았다. 두려운 말씀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
하나님은 예배를 원하신다. 우리 구원하신 목적이다. 그러니 하나님 우리 예배 기뻐 받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예배여야 한다. 구약시대는 아론의 후손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을 통해서 제사를 드리게 하셨다. 오늘도 그렇다. 예배자의 자격이 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죄사함 받아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후에 제사장같은 예배자의 자격이다. 오늘 구도자 예배라 하여 불신자를 위하여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참예배일수 없다. 하나님만 믿고 예수를 안 믿는 자의 예배가 참예배일수는 없다.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겠나?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한다. 예배자는 구원받은 자여야 한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성령과 말씀을 따라 드려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죄를 회개하고 겸손히 감사함으로 기쁘게 드려야 한다. 부득이하거나 억지로 드려지는 예배, 형식적이거나 마지못해 드리는 예배는 결코 축복이 되지 못한다. 예배를 바로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는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신앙도 삶도 실패자가 되고 만다. 여러분은 모두 바른 예배자가 되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예배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충만하시기를 바란다.

Ⅲ. 사울의 불순종과 교만의 결과가 무엇인가?(실패)
사울 왕이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순종하고 제사장만 할 수 있는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어찌 하셨나?
13절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다. 하나님께서 사울로 이스라엘 위에 왕 그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려 하셨으나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하리라 하셨다. 성공이 끝나고 만 것이다.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사울 대신에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리라 하셨다. 아니 벌써 삼으셨다고 했다.
그렇다. 인간 왕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명령에 일치하여 행할때만 정당하게 왕일수 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떠났고 물론 지금 왕으로 있으나 이미 그 왕위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에게로 넘어가 버렸다. 마침내 사울은 그의 왕위를 아들 요나단에게로 물리지 못하고 그의 대에서 끊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불레셋! 오늘 그들을 물리칠 요량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던 바로 그 불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자 그의 병기 둔 소년에게 자신을 찔러 죽이게 하였다. 왕위를 계승시키려 했던 요나단도 그 전투에서 죽고 말았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데 그렇게 부끄럽게 끝나고 말았다.

신자의 참다운 성공이 어디서 오는가?
  창세기를 읽어보면 성공적인 신자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아니 요셉 모두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성공했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가정 총무가 됐다. 보디발의 아내의 간교로 감옥에 갇혔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전옥의 은혜를 입어 감옥의 일을 도맡아 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왕의 꿈 해몽하고 죄수였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됐다. 하나님께서 총리된 요셉과 함께 하시니 왕과 백성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는 성공적인 정치가가 되었다. 어떻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케 하시나?
침례교의 순교자 전치규 목사는 원산에서 선교하던 펜윅이란 선교사에게 학문도 배우고 성경도 배웠다. 하루는 펜윅 선교사가 가르쳤던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런 시험을 했다. 이제 여러분들은 무한개씩을  가지고 나가 밭에다 거꾸로 심고 오세요. 그의 말은 이치에 맞지가 않았다. 그래 다른 제자들은 모든 무를 바르게 심고 돌아왔다. 그러나 전치규만은 스승의 말을 순종하여 무를 거꾸로 심었다. 펜윅 선교사는 전치규의 순종에 탄복하여 일생동안 동역자로 함께 일했다. 속칭 원산 번역이라 불리는 신약성경을 같이 번역했다. 성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 성공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된다.
2003년 이 진리를 따라 사시어 성공적인 신자의 삶을 사시면서 승리케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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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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