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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심은대로 거두는 인생
  본문 : 삼상 15:1-15
RevSuh  2013-02-03 10:41:27, 조회 : 2,581, 추천 : 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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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대로 거두는 인생(삼상 15:1-15)(1/12/03)

  세상의 표준이나 판단기준은 항상 변한다. 전에는 살이 찌고 몸이 부한 사람을 건강한 사람이라고 부러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몸이 좀 마르고 홀쭉한 사람을 건강하다며 부러워한다.
  그런데 부한 사람들의 변명은 이렇다. 나는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 바짝 말라 흉하게 보이는 사람도 나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찐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말을 믿을 수가 있을까? 살이 많이 찌는 분들의 특징은 그래도 많이 먹고 맛있게 먹는다. 무슨 말인가? 무슨 일에나 인과 관계가 있다.  
  오늘 본문도 그 일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쳐서 진멸하라고 하셨다. 왜요? 저들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 가나안을 향하여 가다가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그리로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했다. 그날에 전쟁이 극렬해서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는 산에 올라가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의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힘이 들어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마침내 모세를 돌에 앉히고 아론과 훌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모세의 팔을 하나씩 붙들고 들어 올려 전쟁에서 힘겹게 싸워 이겼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후에 육지 대신에 홍해바다를 택해 건너게 하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불레셋 땅으로 통과할 경우 그들과 싸워야 했고 그리되면 백성들이 전쟁으로 낙담될까 우려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아말렉이 나타나서 이스라엘의 길을 막고 싸운 것이다. 이 가나안에 정착해서 나라를 갖추고 왕이 다스리게 될 때 아말렉을 쳐서 멸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멸할 때 겐 사람들은 그 아말렉에게서 떠나게 하셨다. 그래서 아말렉의 파멸에서 그들을 구원케 하셨다. 왜요? 겐 사람이 누군가? 출애굽기 18장 9-10절에 보면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광야로 모세와 백성들을 찾아 왔을 때 모세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이끌어 내셨는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기적을 소상히 말하니 이드로가 여호와를 찬송했고 또 번제물과 희생을 가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함께 기뻐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고 모세에게 지혜롭게 백성을 재판할 방법을 가르쳤다. 그 이드로가 바로 겐 사람이었다(삿 1:16).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갚아 주셨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인데 전쟁에 이겼는데 불행하게 된 이유도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Ⅰ. 사울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다
사람은 누구나 건망증이 있다. 그리고 나이를 더해가면서 그 정도가 심해진다. 최근에 우리를 두렵게 하는 병이 있는데 알츠하이머병으로 이 병은 건망증의 단계를 넘어서 아예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된다. 그러니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알아보지 못한다. 따라서 그 병을 뒷바라지하며 보살펴야 하는 가족들은 의미도 없는 짐을 지고 씨름해야 한다. 그래서 괴롭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인 신앙도 그렇다. 신앙생활도 건망증으로 그 관계가 손상을 입을 수 있고 파괴되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건망증이었다. 저들은 종종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순종하였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에 나는 너희를 애굽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셨다. 왜요? 그 은혜를 잊지 말고 내 명령이 힘들어도 지켜, 그래야 복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저들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잊었다. 과연 받은 은혜는 물위에 쓰고 베풀 은혜는 돌 위에 쓴다는 말이 옳은 것 같다.  언제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되나?
신명기 8장 12절에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여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성하게 될 때에, 14절,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한다. 잘 먹어 배부르고, 좋은 집에서 가축과 소유가 많아지면 어려웠을 때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다가 자신을 바라보고 살게 된다. 은혜로 사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한다. 자기를 생각할 이상으로 자기를 과대평가한다. 교만해진다. 사울의 문제가 그랬다. 사울이 왕이 될 때 그는 자기 자신을 바로 알았다. 작은 지파, 보잘 것 없는 약한 가정 출신임을 기억하고 왕으로 세우려 할 때 자격이 없다고 숨었다.  그러나 지금 사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고 있었다. 아말렉을 쳐서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도우심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죄를 물으셨고 사울 왕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였을 뿐이다. 따라서 사울이 자신을 바로 안다면 그 전쟁에서 승리를 했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 12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일어났더니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길갈로 내려갔다고 했다. 기념비가 무슨 비겠나? 전쟁에 승리했다는 승전기념비다. 누가 승리했나? 하나님이신가? 아니다. 하나님은 안 보인다. 자기를 위한, 그러니까 자기가 승리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있으니 하나님은 안 보이고 자기가 나타난다. 자만과 교만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니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된 것도 아말렉을 처서 이긴 것도 다 내가 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 그리고 그를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고 근심하며 사무엘은 온 밤을 새워 기도했다. 사울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대신에 후회거리, 그를 기름부은 사무엘의 근심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떠나 버리고 말았다. 성공적인 왕이 될 수 없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가?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것,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것, 그리고 직분을 받아 섬기게 된 것이 내 신앙이 좋고 내가 자격과 능력이 있고 인기가 있어서인가? 전혀 그것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의 내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미국 이민 와서 정착하고 집 사고 사업 잘 되어 확장하고 자식들 좋은 대학 들어가 졸업하고 물론 애쓰고 힘쓴 결과다. 그러나 그 배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배경이었다. 처음 이민 와서 의지할 것 없고 배경도 없었을 때 어찌 살았나? 하나님 찾고 기도하고 매달렸다. 그래 우리 배경은 하나님이시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사업, 재산, 자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것이다. 나, 내가, 앞서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교만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는 떠난다. 참 신앙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제보다 오늘이 내일이 더욱 더 겸손해져야 한다.  바울이 그랬다. 처음에 그는 사도 중에 작은 자였다가 성도 중에 작은 자가 되었다. 마침내 죄인의 괴수라 하였다. 실제가 아니라 그렇게 겸손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끝까지 승리했다.
   어느 집 놀이방 벽에 키를 재는 차트가 붙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 차트를 붙였던 테이프가 마르고 바삭바삭해지니 탄력이 떨어져서 차트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데 다섯 살 난 조단이 그것을 잡아 바로 세우고는 여동생을 벽에 세우고 키를 쟀다. 그리고는 마미! 애니 키가 40"나 자랐어요. 어머니 말씀이 그건 불가능해! 네 동생은 겨우 3살이야! 함께 가서 보자, 같이 방으로 갔다. 가보니 키를 재는 차트를 세웠으나 똑바르게 서있지 않았다. 그러니 키를 정확하게 재지 못했다. 실제는 몇 인치나 낮았다. 우리는 이 조단이란 아이처럼 우리 자신을 평가하기 쉽다. 우리의 영적인 키는 오늘의 나 됨의 축복의 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차트로 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보아야 한다. 그래야 바로 본다. 겸손한다. 그리고 겸손할 때 더 큰 은혜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더욱 부요하게 아름답게 해 준다.  

Ⅱ.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말씀하셨다. 3절에 지금 아말렉을 처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이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사울은 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다. 백성들을 불러 군대를 소집했다. 보병이 200,000명 모여 들었다. 유다에서는 만 명이 소집되었다. 사울도 그 21만 명의 군인들을 이끌고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했다. 그리고 겐 사람들을 구별하여 아말렉에게서 떠나게 했다. 그리고 아말렉을 처서 모든 백성을 칼로 쳐죽였다. 왕 아각은 사로잡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말렉 왕 아각을 살리고, 소와 양떼 중에서 좋은 것은 남기고 가치가 없는 것은 쳐 죽였다.
  여기서 사울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다. 그러나 다 순종하지 않았다. 일부는 순종하지 않았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이나 명령보다 자기의 판단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전쟁에 승리하니 이기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다. 온전히 순종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죄다. 이제 보세요. 어머니가 어린 딸에게 학교 갔다 와서 피아노 연습을 해라, 피아노를 1시간은 쳐야 한다. 그런데 40분만 치고 날씨도 더운데 더 친다고 실력이 느나, 자기 판단으로 20분을 치지 않았다. 20분은 순종하지 안 한 것이다. 그게 뭔가? 모자람이요 미달이다. 그것이 죄다. 성경에서 죄는 미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울은 완전하게 순종하지 않았고 미달했다. 죄를 지었고 불행을 자초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나? 좋은 것을 멸하기는 아까웠다. 그것은 남겨 소유하고 싶었다. 왜요?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욕심을 정당화했다. 전쟁을 하면 전리품이 있어야지, 어찌 무익한 전쟁을 하겠나? 생명을 걸고 싸웠으니 탈취물이 있어야지. 그리고 소떼와 양떼를 보니 이것이다. 욕심이 생겼다. 온전히 순종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종종 우리에게도 순종을 요구하신다. 직분에 충성하라. 일을 맡기신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네 시간을 달라고 하신다. 네 기술을 달라고 하신다. 네 물질, 소유를 내어놓으라고 하신다. 네 건강을 달라 하신다. 우리는 어찌하나? 예하고 드리나? 그건 못합니다 하고 물러서나? 한다면 어느 정도 하고 있나? 끝까지 주님이 요구하신 만큼 하고 있나? 못한다면 왠가?  마태복음 19장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물은 청년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계명 중에 앞선 계명들은 다 하지 말라는 것이다. 부정적인 계명은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은 해야 한다. 어떻게요? 내 것 들여서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청년 그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사울과 같았다.  13절, 사울이 사무엘에게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런데 보세요.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무어라 하셨나? 다 지켰습니다. 부족한 게 있나요? 묻는 그에게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너는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나를 좆으라. 그런데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님께서 많은 재물을 가진 청년에게 그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시지 않았다. 그러나 재물이 많음에도 일부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사랑으로 나누지 못했다 손해를 싫어했다. 욕심이 컸다. 하늘의 보화보다 세상의 보화를 더 중시했다. 그리고 순종하지 못했다. 주님 말씀보다 재물을 더 사랑했고 계명을 지킨 것이 아니었다.  청년에게는 욕심이 문제였다. 야고보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고 하였다. 욕심은 죄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게 만드는 죄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였다. 돈을 사랑하는 악이 우리 마음에 보화를 버리고 지배하게 되면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다. 순종하는 능력을 잃는다. 돈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손해를 감수하고 이기심을 버려야 내게 있는 것 드려 섬김으로 주님께 순종할 수 있다.
  어느 목사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있을 때 흑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해도 영 변화가 없다. 그래 따로 성경공부를 시켰다. 누가복음을 하루에 10절씩 번역해서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복음 6장 30절에서 번역을 멈추고 말았다.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흑인들이 아직 믿음이 성장하지 못했는데 아마 내가 이 말씀을 번역해 가르치면 분명 내 재산을 달라고 할 뿐 아니라 다 가져가고 말지 않겠나?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양심이 괴로워진 선교사는 며칠 지나 그 구절을 번역해서 가르쳤다. 그랬더니 예상대로 도대체 있는 것 다 달란다. 그리고 집에 있는 것 다 집어간다. 다 주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자기 소유를 아낌없이 전부 다 내어놓은 그의 모습을 본 흑인들은 감동을 받고 분명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라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며 진정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간도, 건강도, 물질도, 복음을 위해 선한 일을 위해 요구하신다.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여러분! 온전히 순종해 보자. 미달하는 순종 내게 무엇이 문제인가?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드리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믿음으로 그것도 드려 온전히 순종해 보자. 그것도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내게 주신 은사다. 그것을 드려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더 좋은 것, 많은 것으로 채워 주실 수 있으시다. 더 큰일 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실 것이다.

Ⅲ. 사울은 죄를 회개하는 대신 거짓말을 했다.
사무엘을 만난 사울은 첫마디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순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따라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라고 한 자랑은 즉시 거짓말임이 판명되고 말았다 죽었어야 할 양, 그 양이 우는 소리가 사무엘의 귓전을 울렸다. 죽은 양이 어찌 소리를 내겠나? 이 소리와 이 양떼는 무엇입니까? 사울이 무어라 대답했나? 사울의 대답이 그것은 우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그것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 했나? 아니다. 아까웠다. 그 전쟁에서 이긴 것 내가 잘 싸워서였다. 그래 이 승전비까지 세웠는데 하나님께 감사가 없었다. 다만 멸하기가 아까웠다. 전쟁에 승리했는데 전리품쯤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게 내가 싸워 얻은 전쟁에서 내 전리품이다. 저는 그리 생각하고 남겼습니다라고 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거짓말을 한다. 아니 그리 안하고 실제로 하나님께 제물를 바치려 했대도 그것은 잘못이요 죄였다. 왜요? 제물을 내 것으로 드리려 하지 않았다. 내 것은 아까웠다. 남의 것으로 드려 복 받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잘못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선지자가 양심을 깨웠다. 죄를 깨닫게 했다. 최선의 기회였다. 이제 생각하니 그게 잘못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라고 회개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 안했다. 차라리 합리화시켰다. 순종 안한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나 백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이라고 했다. 어찌 그 말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나올 수가 있었는가? 선지자 사무엘은 지혜롭게 처신했다. 백성들 앞이다. 하나님의 지시따라 자기가 세운 왕이 아닌가? 사울은 아직은 왕이었다. 그래 최대한 왕의 체면을 세워줬다. 왕이요! 어디서 거짓말이요. 회개하시오. 그리 안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이 그렇듯이 설교하는 목사도 사무엘처럼 한다. 둘려서 깨닫게 할 수밖에 없다. 왜요? 누가 온전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겠나? 누가 완전하겠나? 누구나 실수한다. 잘못한다. 죄를 짓는다. 그러나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할 일은 회개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케 한다. 베드로는 가룟유다 못지않은 죄를 지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다. 아니 저주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했다. 통곡하며 회개했다. 그리고 실수 전보다 더 크게 쓰임 받았다. 다윗 왕도 큰 죄를 여러 번 지었다. 특별히 그는 충신 우리아의 아내를 범했다. 은폐키 위해 전선에 나가 싸우는 우리야를 불러들여 아내와 동침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우리야는 충신이었다. 내 어찌 동료들이 전장에서 고생하는데 아내와 평안히 지내리오. 죄 은폐에 실패한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써서 적진 최전방에 우리야를 서게 하며 적에게 맞아 죽게 하였다. 다윗은 살인죄를 더 지었다. 죄를 덜으려면 더 큰 죄를 지음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쓰셨다. 어떻게요? 선지자 나단이 그의 죄를 지적해 주자 부인하거나 합리화하거나 왕권으로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죄인이요.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엎드렸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느냐? 왜 충성하지 못하느냐? 네 죄가 이것이라고 지적해 주신다면 어찌 하시겠나? 사울이 되지 말라. 핑계하지 말라. 합리화하지 말라. 회개하라. 새롭게 되라. 솔직하자. 정결케 되자. 하나님은 정결한 심령에 은혜를 부어주신다. 거룩하신 하나님, 정결하신 하나님은 성도와 함께 일하신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심는 삶이든 심는대로 거두게 하신다. 심은대로 거두는 것이 인생이다. 하나님의 판단은 정확하고 옳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다. 그는 아말렉을 쳐서 이겼다. 그러나 승리했을 그때 그는 교만을 심고 부끄러움을 거두었다. 그는 불순종을 심고 축복을 상실했다.  내 거짓을 심고 지도력과 왕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결국 사울 왕은 죄를 심고 불행을 거뒀다. 여러분! 2003년 회개와 아름다운 수확을 원하시나? 사울의 죄 범하지 말자. 겸손을 심자. 순종을 심자. 진실을 심는 한 해가 되셔서 기쁨으로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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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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