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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승리하려면
  본문 : 삼상 17:41-51
RevSuh  2013-02-24 10:43:30, 조회 : 2,645, 추천 :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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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려면(삼상 17:45-51)(2/9/03)

전쟁을 하면 승자가 있는 반면 패자도 있다. 승자는 모든 것을 얻지만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옛날에는 전쟁에서 지면 이긴 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주권을 잃으니 나라가 없는 백성이 되고 만다. 말도 문화도 전통도 빼앗기고마니 마침내 이긴 나라에 흡수되고 만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전쟁을 명하게 하실 때에는 더 심했다. 아예 그들의 땅만 빼앗는 것이 아니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죽여라. 심지어 가축까지 모두 죽이라고 말씀하셨다. 그야말로 전쟁에 지면 끝장이었다. 왜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 후대를 사는 우리에게 마귀와 영전인 전쟁에서 지면 끝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시므로 반드시 이겨야 함을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탄과 마귀와의 싸움에서 지면 그것은 끝이다. 마귀에게 굴복이요, 마귀에게 예속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자는 영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승리에서 그 비결을 배우며 은혜를 받고자 한다.

1. 이기려면 적을 바로 알아야 한다
다윗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님들이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는 전장을 찾아갔다. 먹을 것을 전해주고 형들이 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왕 사울부터 모든 군사들이 두려워 떨면서 숨기에 바빴다. 블레셋에 골리앗이라는 큰 장수가 있어서 나와 싸울 자는 나오라며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이스라엘을 위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광경을 보다 못한 다윗이 의분이 생겼다. 저가 누구관데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해! 저런 몹쓸 놈을 봤나?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맏형 엘리압이 다윗을 향해 성을 냈다. 주제넘은 놈! 우리가 너만 못해 이렇게 숨어 있는 줄 아느냐? 너 양떼는 누구에게 맡기고 전쟁을 구경하러 왔어? 이 교만한 놈같으니라구. 여기 다윗의 맏형 엘리압은 골리앗과 싸워야 하는데 동생 다윗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다. 동생과 싸우려고 덤볐다. 불필요한 힘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 대적 골리앗과 싸울 수가 있었겠나?  
우리도 종종 엘리압의 우를 범하고 살고 있다. 그래서 신자 중에 내 가족을 원수와 같이 생각하고 사는 자도 있다. 같은 교회 신자를 라이벌로 생각해서 매사에 시비를 걸고 반대하며 싸운다. 편을 가른다. 그래 교회가 갈라진다. 교단이 갈라진다. 서로 내가 더 옳다, 더 잘 믿는다. 너는 틀렸다고 정죄한다. 그리고 원수가 된다. 내 교회밖에 모른다. 그래 전도도 다른 교회와 경쟁적으로 한다. 세상에 복음의 참된 의미를 전달해 주지 못한다. 이것은 아군과 싸우는 격이다. 갈라디아 5장 15절에서 바울은 형제가 서로 물고 먹으며 함께 망한다고 경고하였다. 왜요? 그렇게 되면 정작 싸워야 할 적과는 싸울 힘이 없다. 적과 싸운다고 해도 승리 대신 실패하고 만다. 이기지 못하고 진다. 여기 다윗은 달랐다. 형님이 그의 의분을 교만으로 책망하며 무시할 때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이해했다. 섭섭해 하지 않았다. 그는 형님이지 그의 적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골리앗만 생각했다. 골리앗만이 내 원수요 이스라엘의 원수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적이었다. 골리앗은 그가 싸울 적이었다. 다윗은 그가 싸울 적이 누구임을 바로 알았다.
여러분! 우리도 적을 바로 알아야 바른 싸움을 하고 또 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우리의 대적은 누군가?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니라.. 마귀요 사탄이 우리의 적이요 우리의 원수 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하는 일은 분명하다. 참소하고 꾀이고 속이고 악담으로 관계를 파괴시킨다. 험담으로 이간시킨다. 형제를 원수로 만든다. 편을 가른다. 싸우게 만든다. 분열을 일으킨다. 서로 보지 않는다. 한 교회를 섬기면서 인사도 안한다. 그것이 사탄의 역사요 사탄의 전술임을 경계해야 한다. 또 사탄은 그런 역사를 사람을 통해서 속이기도 하고 이간도 시키고 거짓말을 하게 한다. 그런 마음이 든다면 사탄의 역사라고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사탄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조심해야 한다. 사탄은 또 우리를 유혹해서 죄에 빠지게 한다. 사탄은 돈으로 가룟유다를 유혹해서 은30에 예수님을 팔아먹었다. 사탄은 또 예수를 믿어보니 소용없어 하며 낙심시킨다. 예수를 믿어보니 사업이 특별히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병든 몸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나 다시 세상으로 나간다. 마귀는 떡을 가지고 시험한다. 먹어야지 살지 주일은 무슨 주일, 성수주일 하는 것을 막는다. 말씀을 의심하여 믿지 못하게 한다. 예수님 다시 오신다. 아니 2,000년이 지났는데 어찌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아오실 수 있어? 그런건 안 믿어도 돼. 동정녀 탄생은 무슨 탄생 - 불가능하지... 이것이 마귀의 역사다. 믿지 못하게 한다.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한다. 우리 영혼을 죽게 한다. 이런 모든 것이 사탄의 역사다. 싸워 이겨야 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다. 마귀는 예배를 방해한다.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한다. 예배시간에 다른 생각으로 가득 채우게 한다. 들어도 잊어버리게 한다. 실천하지 못하게 한다. 신앙의 성장을 방해한다. 어린아이 신앙, 무기력한 신자가 되게 한다. 하나님을 머리로만 안다. 만담식의 설교를 좋아한다. 많이 웃어야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귀만 거룩해진다. 귀에서 머리로도 가지 않는다. 무기력한 성도가 되고 만다. 그것이 오늘 우리의 골리앗이요 사탄이요 마귀다.

2. 이기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다윗이 거장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서니 사람들이 그를 사울 왕에게로 안내했다. 사울은 골리앗과 싸우겠다는 용사가 있다니 귀가 번쩍했고 무척 반가웠다. 오죽 했으면 골리앗과 싸워 이긴 자는 그가 누구든지 사위를 삼고 많은 재물을 주고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고 했겠나? 위기를 극복해야겠기에 가릴 처지가 못됐다. 가문이나 지위를 골라서 골리앗과 싸워 이긴 자를 사위로 삼고 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 데리고 온 다윗을 본 그는 곧 실망하고 말았다. 기대하던 용사가 아니라 소년이었다. 미성년자요 군대에 입대조차 할 수 없는 나이였다. 게다가 목동으로 짐승과는 막대기를 들고 싸웠으나 사람과는 싸워 본 경험이 없었다. 그러니 칼이나 창 무기를 써 본 일도 없었다. 그래도 싸우겠다니 사울 왕이 친히 그의 갑옷을 벗어 입히고 놋투구를 씌웠다. 칼을  허리에 차게 했다. 다윗이 걸어보니 옷이 맞지도 않고 불편하기만 했다. 그러니 다윗은 그 모든 것을 마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사울은 더 실망이 컷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싸워야 할 블레셋의 거장 골리앗은 어떤가? 그는 키가 6규빗 한 뼘이었다. 9 피트 9인치였다. 머리에 놋투구를 썼다. 그리고 그의 몸에 맞게 특별히 맞춘 갑옷을 입었는데 그 옷의 무게가 놋 5,000세겔이었다. 지금으로 하면 무게가 126파운드였다. 또 다리에 놋경갑을 쳤다. 무릎과 종아 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무기도 대단했다. 단창을 멧는데 베틀체같고 그 칼날만 철 600세겔이었다. 15.1 파운드였다. 게다가 큰 방패로 그를 보호하는 자가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 보호되지 않은 곳은 눈 코 입에 앞이마 조금 뿐이었다.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찬지 이스라엘 진에서도 쩌렁쩌렁 울렸다. 나와 싸울 자는 나오라! 그러니 사울왕인들 이스라엘의 군인인들 누가 감히 골리앗을 대적할 수 있었겠나? 그에 비해 다윗은 소년이요 목동이다. 칼도 창도 싸울 무기도 없었다.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싸움에 나온 세 사람의 형이 고작이었다. 무명의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전사 골리앗에게 없는 믿음이 있었다. 35절을 보면 제가 양떼를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게서 새끼를 물어 가면 따라가서 사자도 곰도 치고 새끼를 건져냈습니다. 사자나 곰이 덤벼들면 그 수염을 잡고 쳐 죽였습니다. 37절에 여호와께서 죽은 사자와 곰의 발톱과 이빨에서 건져내셨다. 그러니 제가 저 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어찌 소년이 짐승의 왕 사자와 곰을 이기겠나? 당시는 사자나 곰은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저들의 공격으로 온 마을이 두려웠다. 그러나 그것들도 이겼으니 싸움은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골리앗을 보니 자기 상대가 아니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다윗은 전사는 아니었으나 믿음에 용사였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싸움은 사단과 마귀다. 영물이요 간악하며 사납다. 지혜롭다. 그러나 마귀 사탄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사가 타락한 자다. 그러니 그것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만이 주권자이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탄, 마귀들을 이기시었다. 마귀는 하늘에서 세상으로 쫓겨났다. 하나님은 마귀를 무저갱에 가두시어 활동을 통제하시며 마침내 불못에 던져 멸하신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님이시다. 우리와 함께 하사 도우신다. 이 믿음이 있어야 한다. 마귀와 싸움에서 우리로 구원하신다.  마틴 루터는 이 신앙으로 그를 억압하는 교황권을 대항해서 싸울 때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믿음을 가지로 마귀 사탄을 대적했다. 알머딩이란 사람이 동물원에 들어가 사자를 구경하고 있었다. 마침 일하는 사람 하나가 사자우리 뒤쪽에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빗자루 하나를 들고 들어갈 뿐 허리를 보아도 권총이나 다른 무기가 없었다. 그 사람은 사자 우리로 들어가더니 비로 쓸기 시작했다. 보고 있던 알머딩은 걱정이 되었다. 저러다 사자가 성이 나서 달려들기라도 한다면 어쩔려구! 그런데 이제는 우리 앞쪽을 다 쓸고는 사자가 앉아 있는 곳을 청소하기 위해 사자를 빗자루로 쿡쿡 찔렀다. 그러니까 사자가 으르렁거리면서 일어나더니 어슬렁어슬렁 다른 쪽 구석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사자가 앉았던 자리를 계속 비질을 했다. 알머딩이 보니 정말 놀라웠다. 그래 여보시오! 보기에 위험한 것 같은데 괜찮습니까? 정말 용감하시군요. 동물원에 있는 사자니 길들인 사자인가요?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특별히 용감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 사자는 길들인 사자도 아닙니다. 다만 저 사자는 늙어서 이가 다 빠져 이빨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보다 지혜롭다. 힘이 세다. 눈에 안 보이는 영물이다. 천사처럼 가장한다. 속인다. 위협한다. 시험한다.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이단에 빠졌다. 많은 사람들이 낙심되어 세상으로 돌아갔다. 시험받아 범죄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탄을 이미 이기셨다. 사탄은 이 빠진 사자와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사탄의 역사로 인한 환난도, 곤고함이나 핍박도 기근이나 적신도 위험이나 칼로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다. 이 모든 이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이 믿음으로 늘 충만하시기 바란다.  

3.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대적하여 싸워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을 밟고 대면한 첫 성은 여리고였다. 그 성은 견고한 성이고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왕과 그 용사들을 여호수아의 손에 붙였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성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이길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가 그 성을 에워싸고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 하고 제 칠일에는 일곱 번을 돌되 제사장들은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들릴 때에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르라. 그러면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라. 이길 것을 약속하셨다. 또 저들이 할 일도 말씀해 주셨는데 큰 일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에 한번 성을 에워싸고 돌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군사들이 그 성을 돌지 않고도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께서 저절로 그 성이 무너지게 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들로 실제로 싸우라 하지 않으셨으나 그럼에도 군인들로 무장을 하고 매일 한 번씩 성 주위를 돌게 하셨다. 싸우지 않고 성벽을 돌기만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이다.
당시 여리고는 가나안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종려의 도시로 불렸다. 성읍의 크기는 2만mt니 그리 크지 않으나 그 당시로서는 컸다. 언덕 위에 성이 건축되었고 성벽은 이중으로 되어 있었는데 외벽은 경사가 져서 잘 오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성이 굳게 닫쳐 있었다. 전쟁준비가 완전히 되어 있었다. 저들은 성을 공격하는 적과 싸우기 위해 성벽에 구멍을 내고 적에게 화살을 쏘거나 창을 던지거나 돌을 던지던지 적을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성 주위를 싸우지 않고 돌기만 한다는 것은 쉽게 공격의 표적이 되는 일이었다. 실제로 공격을 하는 것보다 더 위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날 날을 더할수록 더 위험했을 것이다. 숨을 죽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순종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말씀대로 했다. 그것은 싸움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대로 여리고성은 무너졌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 군사들이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싸움과 매한가지로 힘든 일이었다. 희생을 각오한 결단이요 순종이었다. 다윗을 보자. 칼과 단창으로 그에게 나오는 골리앗을 향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는 네게로 간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를 우리 손, 내 손에 붙이시리라. 그것은 다윗의 믿음이었다. 골리앗의 무기와 비교가 되지 않지만 다윗은 냇가에서 주운 조약돌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그 중에 한 개를 꺼내 물매에 넣고 달려가면서 골리앗의 이마를 향해 힘껏 던졌다.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를 맞췄다. 다윗이 달려가면서 그를 향해 달려오는 골리앗을 치니 물매의 힘이 탄력이 붙었고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총알처럼 박혔다. 거장 골리앗이 쿵하고 쓰러졌다. 급소에 돌이 박히니 순간에 쓰러져 기절한 것이다. 만일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를 맞추지 못했다면 다윗은 죽었을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이기게 하실 것을 믿었으나 아마 싸우기 위해 나가면서 얼마나 기도했겠나? 그런데 하나님이 도우사 한방에 골리앗이 쓰러졌다. 보잘 것 없는 물맷돌 그러나 하나님이 사 용하시니까 그 돌이 화살과 창보다 더 강한 무기가 되었다. 쓰러진 골리앗에게 달려가 발로 밟고 그의 칼을 집에서 빼어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자르니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용사가 죽은 것을 보고 도망치니 그날에 전쟁에서 승리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적어도 하나님 도우심 받고 내 것 드려서 최선 다해 싸우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는데 다윗이 물맷돌 다섯 개로 싸우려고 했는데 물맷돌 한 개로 이기게 하셨다. 네 개를 남게 하셨다. 이기고도 남았다. 하나님께서 넉넉하게 이겼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다. 그러나 저절로 하나님 믿기만 한다고 사탄의 유혹과 시험이 물러가는 것은 아니다. 인기 TV 설교가요 사업 경영자였던 Jim Baker 목사가 간음죄를 짓고 재정처리 잘못으로 감옥에까지 갔다. 그가 옥에서 나와 ‘나는 잘못되었다’라는 책을 썼다. 그는 방송을 통해 유명한 목사가 됐다. 3,000명 이상의 고용인을 두고 1년에 1억 9천만 달러의 예산으로 200개의 TV 방송을 통해 일했을 때 정말 그는 대단했다. 그런데 그때 그는 너무 바빴다.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다보니 더 이상 조용히 앉아서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기도할 수 없었다. 그래 유혹이 그를 향해 다가왔을 때 그에게는 그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힘이 없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었다. 목사였지만 영전에서 승자가 되지 못하고 패배자가 되고 말았다. 사탄의 공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여러분! 오늘도 사탄은 살아서 우리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유혹하고 시험한다. 고난과 시험에 낙심케 한다. 우리의 신앙을 무기력하게 해서 골리앗처럼 우리를 압제한다. 우리는 다윗과 같아야 한다. 항상 믿음이 충만해야 한다. 사탄의 역사를 경계해야 한다. 다윗이 물맷돌로 던지기를 연습했듯이 갈고 닦고 훈련해야 한다. 그래야 이긴다. 그것이 무엇인가? 에베소서 6장에 진리로 허리띠를 매야 한다.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한다.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해야 하고 항상 그 능력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기를 갖춰야 한다. 다윗의 물매와 물맷돌은 성령의 검이요 말씀이다. 훈련해야 한다. 성령안에서 깨여 기도해야 한다.
여러분! 사탄이 살아서 아무리 우리를 위협하고 유혹해도 모두 이렇게 깨여 기도하고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골리앗과 같은 사탄의 역사를 파하고 승리의 삶을 사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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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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