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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두가지 유형의 신앙인
  본문 : 창 30:14-24
RevSuh  2012-05-07 15:04:02, 조회 : 3,125, 추천 : 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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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유형의 신앙인(창 30:14-24)

야곱은 외삼춘 라반의 집에서 14년 동안을 일한 대가로 두 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얻었다. 그러나 일부이처의 그 가정은 마침내 두 자매의 경쟁심과 시기심 때문에 빌하와 실바라는 두 여종까지 야곱의 아내가 되는 일부다처의 이상한 가정이 되고 말았다. 야곱은 그 네 명의 아내들에게서 마침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된 12명의 아들들과 딸들을 얻게 되었다. 물론 이 본문에서 디나 라는 딸만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 야곱의 이 가정사가 여기에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서 일부다처제를 허락하시기 때문도 아니며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이룰 수 있다는 때문도 아니다. 다만 인간의 실패와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뿐이다.
본문속에서 주인공인 라헬과 레아 두 사람의 신앙의 특성을 살펴보며 내 신앙을 검토하고 바로 세우는 시간이 되고자 한다.
여기 라헬의 신앙특성이 있다. 라헬은 라반의 둘째딸이다. 야곱은 그녀를 밧단아람에 도착한 첫 장소인 우물가에서 만났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 그만큼 그녀는 매우 아름답다. 그대의 이름은 암양이란 뜻이라고 하나 불확실하다. 그러나 그녀는 레아와 다르게 눈도 얼굴도 몸매도 퍽 아름다웠던 것이 사실이다. 라헬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과 야곱의 첫 사랑의 대상이여서 남편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말 공평하시다. 예쁘지 못하고 남편에게 덜 사랑을 받는 레아에게는 자녀를 주셔서 마침내 아들 여섯을 낳았으나 라헬에게는 그때까지도 아들 하나를 주시지 않으셨다.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를 되돌아보면 공부만 착실히 잘했던 친구들은 그저 적은 교회를 충실히 목회해 가는데 오히려 공부를 보통 하면서 활동적이었던 친구들은 큰 목회를 한다. 아하!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라헬의 반응에서 우리는 그녀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라헬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다.
라헬이 남편 야곱과 결혼한 것은 그녀의 언니 레아가 결혼한 지 한 주일이 지난 후였다. 그러니까 언니보다 다만 7일이 늦었을 뿐이다. 그리고 결혼 4-5년이 지났다. 언니 레아는 아들을 넷이나 낳았다. 그런데 라헬은 아들은 고사하고 딸 하나도 못 낳았다. 오늘날은 가능한한 자녀를 낳지 않는다고 한다. 왜 우리가 자녀를 많이 낳아서 자녀 뒤치락거리나 하다가 늙겠는가? 그래서 애기를 임신했어도 낙태자유를 달라고 소리친다. 부부 두 사람 즐겁게 살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과거에 특별히 동양에서는 여자가 시집가서 자녀를 못 낳으면 크게 부끄러운 일이고 이혼의 사유가 됐다. 5년이 지나도록 자녀가 없게 되자 라헬은 조급했다. 안달했다. 참을수가 없었다. 언니에게는 아들이 넷이다. 언니를 시기했다. 왜 시기가 생기는가? 신앙이 없어서다. 시기는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잘 되는 것을 못 보는 것이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한다. 미워한다. 마침내 없어졌으면 한다. 언니가 없었으면 내가 아들을 낳았을텐데, 언니 때문에 못 낳는다. 남편! 남편이 뭔가? 내게 자식 하나도 있게 못하는 남편! 내게 잘못하기 때문에 내게는 자식이 없다. 남편에게 불평한다. 책임을 전가시킨다. 그런데 시기가 왜 문제인가? 하나님이 남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축복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불평하니 사실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기는 결국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불평하니 죄이다. 참신앙은 나에게 없는 것이 남에게 있을 때 그것을 남에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하지 않는가? 시기는 다투고 싸우게 된다. 라헬은 남편에게 대든다. 나로 하여금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이 라헬에게 노를 발했다.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랴? 어찌 내가 하나님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라헬은 믿음이 없었다. 생명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신데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데 자기가 잉태치 못하는 것을 남편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생명의 주인도 하나님이신데 죽겠단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기다리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시기한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원망하며 불평한다. 하나님 믿지 못하면 자살까지도 한다. 하나님 믿지 못하면 다투고 싸운다. 함께 못 산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불신앙을 남편 야곱을 통해서 책망하셨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하나의 큰 가정과 같다. 교회는 각기 다른 성도들이 모여서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다. 이 안에는 라헬같은 이도 있고 레아같은 이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에게는 권위를 어떤 이에게는 지식을 어떤 이에게는 기술을 어떤 이에게는 건강을 어떤 이에게는 성령의 이런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성령의 저런 은사를 주셨다. 그걸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빈손으로 오지 않았는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크게 쓰일 수 있는 것이다. 또 탈렌트를 받되 1달란트, 2달란트, 5달란트 각각 다를 수 있다. 5달란트를 받은 자가 1달란트 받은 자를 멸시해서는 안 된다. 없는 자는 있는 자, 더 많이 받은 자를 시기해선 안 된다. 그리 되면 서로 다투고 싸우게 된다. 그 교회는 안 된다. 일을 못한다. 서로 서로 순종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협력하여 섬겨 나가야 한다. 그래야 함께 살아간다. 거기 평화가 있고 사랑이 있고 힘과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라헬은 하나님의 은혜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더 믿고 의지했다. 라헬은 아들을 낳지 못하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적인 방법을 써서 자식을 얻어 보려고 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세상을 따르게 되고 세상 방법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결과를 주목해 보세요.
레아의 큰 아들 루우벤이 6-7세가 됐다. 하루는 보리타작 때쯤인데 들에서 뛰어놀다가 이상한 열매를 하나 따서 그 어머니 레아에게 가져왔다. 그것은 합환채였다. 여기 합환채는 희고 붉은 꽃을 피우는 넝쿨같은 작은 나무인데 거기에 작은 사과만한 오랜지 색깔의 열매가 맺힌다. 이 열매는 자녀의 생산을 돕는다는 생산의 능력을 준다는 열매다. 그래서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이 그걸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 한국으로 말하면 옛날에 산삼만큼이나 효능이 있었는지 모른다. 제가 한국에서 섬기던 교회에 어느 노집사님이 계셨는데 왜정시대에 어떤 사람이 산에 가서 제법 큰 산삼을 하나 캤다. 그 동네에 제일 부자 노인이 수백원을 내고 그것을 사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떤 이웃집 여인이 아기를 낳게 됐는데 힘이 없어 낳을 수가 없게 되자 그 산삼을 한번 쥐어 보기만 하게 해 달라고 애원을 해서 그 삼을
주었더니 쥐는 순간 힘이 생겨 쉽게 애기를 낳았다는 것이다.  산삼의 힘이 그렇게 큰 것을 처음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인이 그것을 먹지도 않고 손에 쥐기만 했는데도 그 큰 기대를 가지고 산삼을 있는 힘을 다해 줬을때 믿음이 효자를 났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 라헬은 아들을 낳겠다고 언니 레아에게  남편을 양보하고 합환체를 사서 먹었다.
그런데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합환채를 동생에게 양보한 언니가 아들을 낳고 말았다. 자녀를 낳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합환체가 아들을 낳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가 인간의 수단방법을 가지고 시기심에서 남보다 내가 더 잘  되어보려고 애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사업에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 전도서 5장 19절에 재물과 부요도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다. 직장에서 새해가 되면서 승진하고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도 하나님이 해 주셔야 한다. 에스겔 21장 2절에 하나님께서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신다.
요즈음 한참 연말이 되어 도둑이 심하다. 얹그제 Keller목사님과 이야기 중에 그 분이 저에게 당신 그 범죄가 심한 지역에서 철창문을 했는가? 안했다고 하니까 꼭 하라는 것이다. 당신은 나보다 안전지역이지만 다 했단다. 그래서 하면 도적 안 맞을 보장이 되는가? 꼭 그렇지 않다. 도적이 원하면 철장을 뜯는다.  내 집을 지켜 주는 것도 철창이 아니라 하늘에 계셔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안전하다. 신자가 하나님을 제쳐놓고 세상 방법따라 가면 될 것 같아도 안 된다.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께서 아시게 해야 한다. 불가능은 하나님께서만이 가능케 하신다.
여기 레아의 신앙이 있다. 레아의 신앙은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문제를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기보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17절에 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뜻이다. 9절을 보라. 레아가 낳던 자녀생산이 그쳤다. 이젠 늙었다. 경수도 끝났다. 라헬보다 더 어려운 처지였다. 그러나 그때 레아는 사람의 방법을 쓰지 않았다. 아들을 낳는다는 합환채를 아들이 얻어왔는데 아들을 낳고 싶은데도 그걸 먹지 않았다. 오히려 동생에게 양보하였다. 세상방법을 포기한 것이다. 먹기만 하면되는데 오히려 동생에게 그것을 주고 하나님을 믿었다. 왜요? 레아는 합환채, 세상방법보다 하나님께 나왔다.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는가? 그녀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다. 사람이 아니시다. 인간의사도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생명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었기 때문에 레아는 인간의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왔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응답을 받아 아들 잇사갈을 낳았다.  
성 카드벌트는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동행자들의 길이 막힌 것을 탄식하자. 하나님께서 하늘나라 가는 것을 막지 않으셨으니 감사하자 하였다. 그렇다! 믿으만 있으면 세상이 막지 못한다. 그래서 기도는 성도의 가장 큰 특권이다.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갈 것이다. 기도할 것이다. 하나님께 소원을 가지고 나와 구하는 성도를 내쫓지 아니하신다. 모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올 때 뒤에서는 바로왕의 군대가 추적해 오고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막았을 때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했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다. 바울과 실라는 깊은 감옥속에 갇혔으나 하나님께 기도했고 지진이 나며 옥터가 움직이며 착고가 풀어지고 옥문이 열려 구원받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고 식물이 없는 광야에서 40년동안 배운 귀한 진리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환경이 아무리 어렵게 되어도 하나님으로 충분하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물이 없을 때 양식이 독사에게 물렸을 때 전쟁을 할 때 하나님이 주셨다. 고쳐 주셨다. 이기게 하셨다.
레아는 감사의 신앙을 가졌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본다. 그래서 자연히 감사하게 된다. 18절에 5번째 아들을 낳고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고 했고 20절에 6번째 아들을 낳고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하였다. 자녀를 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신줄 알았다. 그것을 깨닫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렇다! 자녀를 얻고 누구에게 감사를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먼저 하나님께 해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친다. 감사하는가?  젊은 신자들이 꽤 많은 우리 교회는 해마다 10명 이상의 자녀를 낳는다.  그런데 아들을 주신 분이 누군가, 딸을 주신 분이 누구인가? 어느 집사님 친구가 출산을 하게 됐는데 의사가 틀림없이 아들이라 해서 아들 턱을 크게 냈는데 낳고 보니 딸이라 먹은 것 내놓으라 해서 혼이 났다고 한다.  여러분, 딸을 주신 분이 누군가? 하나님이시다. 섭섭해 할 수 있는가?
성경은 야고보서 1장 17절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하였다. 그렇다! 주신 자는 여호와시다. 이 신앙이 있으면 그것을 잃어버려도 감사한다. 크게 보면 가져가신 분도 여호와시다. 이것이 욥의 신앙이었다. 섭리중에 되어지는 것이 아닌가? 어느 성도님의 가정에 도적이 들어와서 패물함을 열고 몽땅 목걸이, 귀고리들, 캐쉬, 카메라 등을 가져가 버렸다. 그런데 그 성도님이 하나님께 감사한다. 보석만 가져 간 것 감사합니다. 그 중에도 값진 것은 남긴 것도 있다. 물건이 많이 있었는데 그것만 가져가게 하시고 사람은 안 다치게 하셨다. 도적을 보고 놀라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조금 가져가게 하시고 경각심을 주셔서 철창문을 만들어 큰 것 많은 것 잃지 않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말이 불신자의 입에서 나올수 있는 말인가? 아니다. 환난과 어려움을 당했을 때 재산을 잃었을 때 잃어버린 것을 헤아리며 손해를 계산하며 도적을 원망하며 그것을 지켜 주지 않으신 하나님께 불평하는 대신에 다 하나님이 주신 것 중에 잃어버린 것을 헤아리며 남은 것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이것이 참 신앙이다.
제가 심방을 가서 마태복음 6장 19절을 읽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 성도님 정이 많고 사랑이 많다. 어느 모임에 갔을때 어느 전도사님이 사모님이 전도사님 공부시키느라 고생고생하시며 뒷바라지 하시는데 너무 딱했다. 돕고 싶었다. 주머니에 캐쉬가 없었다. 주고 싶었다. 목걸이 아끼는 것 벗어서 손에 꼭 쥐어주며 사랑을 베풀었다. 그게 뭐예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다. 집에 있는 것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 것, 가난한 자에게 베푼 것, 남을 대접한 것은 다 하늘에 간직되어 있다. 그러니 보석이 없어진 것 보지 않고 하늘에 쌓은 것 보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른신앙이다.
여러분! 주실 때도 하나님께 감사 못하면 불신자보다 더 못하다. 참 신자는 주실 때 감사하고 도로 가져가실 때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여러분! 나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나는 라헬처럼 살아왔는가? 감사보다 불평을 많이 했는가? 세상방법들을 더 믿고 의지해왔는가? 레아의 신앙으로 바꾸자.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세상방법 대신 하나님께 기도하면 레아에게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감사할 조건, 감사할 일들을 더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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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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