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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올바른 성탄축하
  본문 : 마 2:1-12
RevSuh  2010-12-20 09:48:00, 조회 : 3,311, 추천 : 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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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성탄축하(마 2:1-12)

예수님 나신 날이 세계의 명절이 된 것은 경하할 일이다. 그러나 성탄절이 상업화하고 향락화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시지 싼타크로스가 아니며 성탄절에 부를 노래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이지 징글벨이 아니다. 또 성탄축하 장소는 예배당이지 유흥업소나 호텔이 아니다. 따라서 오늘의 성탄축하는 개선되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오늘의 교회와 신자는 성탄절의 세속화에 추종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잘못 축하되고 있는 성탄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회와 신자가 먼저 성경적인 성탄절 지키기에 본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실천해야 할 성경적인 성탄축하는 어떤 것인가? 본문의 동방행사의 경배에서 배우려고 한다.
본문에 보면 헤롯 왕때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고 찾았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왔다.
여기 박사들이 온 동방은 어디인가?
동방이란 말은 이스라엘에서 볼 때 동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어디인지를 알기는 힘들다. 어떤 사람들은 아라비아였으리라 한다. 어떤 이들은 페루시아 또는 바벨론이었겠다고 한다. 그러나 팔디아였다는 설이 옳은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 동방은 오늘의 이란이다.
그러면 동방 박사는 도대체 누구였는가?
동방에서 온 박사는 아마 옛날 다니엘처럼 꿈을 해몽하는 자이거나 별을 연구하는 첨성가였으리라고 본다. 성경은 점성술을 금한다. 그럼에도 신약시대에 꿈을 해몽하는 법이나 점성학, 매직, 장래예언을 담은 책들이 흔했다고 한다.
따라서 여기 동방박사들은 꿈 해몽자였거나 별에 대한 특별한 지식과 별다른 능력을 지닌 자였겠다. 또 당시 동방 여러 나라에서처럼 제사장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점성술을 금하셨으나 여기 박사들의 지식과 능력에 맞게 쓰신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메시아의 별을 알게 되었는가?
발람 선지의 예언 중에 민수기 24:17에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난다 하였다. 거기서 별과 홀은 다스리는 자 왕을 가리켰다. 따라서 이들은 아마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갔던 유대인들에게서 유대에서 메시아가 나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구약성경의 사본들을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경을 보고 메시아의 별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주시했을 것이다.
그즈음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이미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었다. 황제 가이사가 호적령을 내렸으므로 요셉은 마리아를 데리고 조상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게 됐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목성과 토성을 만나게 하셨다. 그 별의 특별한 광채는 박사들로 메시아의 별, 유대인의 왕의 별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모두 하나님의 섭리요 간섭이었다.
그러면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의 나심을 어떻게 축하하였나?

1.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까지 먼 길을 찾아 왔다.
박사들은 그들이 믿은 메시아의 별이 움직이는 것을 주시했다. 그리고 그 별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께 인도해 준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그 별을 따라 가고 가고 또 갔다. 마침내 유대인의 왕도인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들은 기뻤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이는 유대인의 왕도인 예루살렘에 나실 것이 아닌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박사들이 헤롯 왕을 찾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헤롯 왕도 종교지도자도 메시아 탄생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소리에 온 성이 소동했다. 성경학자들은 그제야 성경에서 다스리는 왕이 베들레헴에서 나신다는 미가서 5:2의 예언을 찾아냈다. 유대인의 왕은 베들레헴에서 납니다. 박사들은 쉬지 않았다. 곧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 9절을 보면 동방에서 그들을 인도했던 그 별이 문득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 위에 머물러 섰다. 10절, 저희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그들이 경배하기 위해 온 유대인의 왕 예수가 계신 곳을 찾았다. 예수님을 만났다. 그래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여기 동방박사들이 팔디아 이란에서 베들레헴까지 왔다면 수천마일을 여행한 것이다. 더구나 이들이 별을 보고 여행을 했다면 밤에만 여행을 했을 것이다. 어둡고 춥고 위험했다. 길이 좋은가? 자동차가 있나? 귀한 예물까지 지닌 저들, 도적은 얼마나 많았겠나? 더구나 예수님은 12월이나 1월 겨울에 나셨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지금껏 그렇게 먼 거리를 여행해 본적이 없었다. 얼마나 힘들고 지루하고 피곤했겠나? 발은 부르트고 추위에 떨고 물 건너 산 넘으며 도적 떼를 만나면서 그러나 중단하지 않았다. 유대인의 왕 예수님을 보고 경배하겠다는 일념이 있었다. 그 일념으로 예수 나신 곳까지 찾아왔다. 만나고 나서야 멈췄다. 그리고 기뻐했다. 예수님으로 기뻐했다.
오늘 우리의 성탄축하가 올바른 축하가 되려면 동방박사처럼 해야 한다. 상술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쾌락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선물보다 여행보다 친구보다 파티보다 스포츠보다도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우선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백화점, 운동경기장, 친구의 집, 라스베가스에 가는 것보다 오늘 예배당에 나오는 것이 더 기뻐야 한다. 이 예배당에서 경배받기를 원하신다. 이 예배당이 예수님을 오신 베들레헴의 말구유, 이 앞자리에 아기 예수님이 계신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동방박사다. 그러니 기뻐하고 기뻐하고 또 크게 기뻐하며 어린아이처럼 하자. 마음에 예수님이 계신가? 캐나다의 어느 교포 교수가 예수는 없다는 책을 써서 best seller가 됐다고 해서 떠들썩하다. 물론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나 성탄을 축하하는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신가? 내 마음속에 깊숙이 차지하고 있는가? 예수님으로 가득하고 그래서 무엇보다도 기쁘고 기뻐하는 것이 바른 성탄축하다.

Ⅱ.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했다.
우리나라는 스스로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랑해 왔다. 요즈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형식일망정 예의는 남아 있다. 어느 연세가 드신 목사님이 LA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지만, 한인교회이니 한국의 전통인 예의를 가르쳐야겠다. 생각하고 학생들이나 젊은 신자에게 어른들이 지나가시면 일어서고 인사드리게 했다. 그러나 예의가 억지로 강요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얼마 지속이 안 되었다.
그럼에도 어른들에게 절하는 것은 예의요 존경의 표시다. 절은 아래 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낮은 이가 높은 이에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동방박사들은 어른인데 아기 예수께 엎드렸다. 절했다. 어른이 아기에게 절한 것이다. 계급이 높은 제사장이 계급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기 예수께 절했다. 부자인 박사들이 가난한 말구유에 나신 아기께 절했다. 어떻게요? 저들은 아기 예수를 아기로 보지 않았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으로 본 것이다. 이제 왕이 되실 것이다. 어린 예수를 왕으로 본 것이다. 왕이라면 어른 중에 어른이요 가장 높은 분이요 제일 큰 부자가 아닌가? 그러니 그 앞에 엎드렸다. 절했다. 올바른 성탄축하는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다.
여기 절했다는 말은 입맞췄다는 말에서 나왔다. 신하가 왕의 손에 입을 맞추는 존경의 표시였다. 그러니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신하입니다 겸손히 엎드려 최고의 경의를 표했다.
어느 신학자가 이런 글을 썼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탄절! 이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단세포로 시작하신 사건이다. 단세포로 마리아의 배속에 10개월을 갇혀 계셨다. 이 얼마나 답답하셨겠나? 이 얼마나 낮아지신 사건인가? 그렇다. 바른 성탄축하는 아기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는데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창조주가 피조물처럼 되셨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죄와 불행을 자취하셨다. 광활한 천국을 버리시고 마리아의 배안에 갇히셨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말구유에 오셨다. 섬김을 받으셔야 하실 분이 섬기시고 영원히 사시며 영광을 받으실 분이 부끄러움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것이 성탄이다. 높은 하늘에서 낮고 천한 이 땅에 사람이 되시기 위해 어린 아이로 오신 예수님! 낮아지시고 낮아지시고 또 낮아지신 예수님!
그렇다면 어린아이로 낮게 오신 예수님보다 더 낮아지지 않으면 경배할 수 없다. 예수님은 우리가 낮아질수록 높아지신다. 우리가 머리를 숙일수록 경배를 받으신다. 이 시간 우리는 더 나가야 한다.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하늘에 오르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심판주로 구원의 주로 다시 오실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되신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고 경배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 이것이 바른 성탄축하다.
Ⅲ. 동방박사들은 귀한 세 가지 예물을 드렸다.
여기 예물을 보면 동방박사는 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 그들은 누구였나? 6세기에 와서 교회의 전설은 이들의 이름이 멜카이어, 발다살, 그리고 게스퍼였다고 한다. 이들은 메시아 예수께 합당한 귀한 예물을 드렸다. 멜카이어는 금을 드렸다고 한다. 금은 왕에게 합당한 선물이다. 예수님은 왕으로 나신 이다.
오늘 우리도 왕에게 합당한 금같은 예물을 드려야 한다. 금은 변치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 금은 무엇인가? 금같은 믿음, 변치 않고 한결같은 믿음이다. 왕께 드리는 충성이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왕되신 주님께 충성하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충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 바른 성탄축하다.
개스퍼는 유향을 드렸다고 한다. 유향이란 무엇이냐?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향품이다. 출애굽기 30장에 보면 제사장은 아침마다 향단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라했고 등불을 켤 때 사르라 하였다. 따라서 여기 유향은 제사장을 위한 예물이었다.  
우리도 예수님께 제사장에 합당한 예물을 드려야 한다. 향내나는 향품의 예물, 우리 자신의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야 한다. 삶이 깨끗해야 한다. 사랑과 섬김의 주님의 삶을 본받아 향기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타락한 죄인의 냄새가 아니라 예수님의 냄새가 나는 삶을 살아드려야 한다. 이것이 성탄축하다.
세 번째 발다살은 몰약을 드렸다. 몰약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자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근쯤 가지고 와서 예수님을 장사했다. 그러니까 몰약은 시체에 바르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물품이었다. 따라서 이 예물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섬기려 오셨고 당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죽으시었다. 그러나 다시 사시고 영원히 사신다. 왜 죽으셨나?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새 생명을 주시려고, 영생케 하시려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몰약과 같은 선물을 예수님께 드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죄로 죽은 생명을 살려야 한다.

미국의 대학들에서 교도소학을 가르치고 한국에 가서도  교수를 하신 분이 경주에 있는 구치소를 방문했다. 거기에는 한동대학교의 김영길 총장과 오성연 부총장이 갇혀 있었다. 그들이 구치소에 갇히게 된 이유는 대학재단운영비를 절법하지 않게 썼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돈을 쓴 것이 아니라 학교발전을 위해 썼는데 원래 써야 할 곳이 아닌데 썼다는 것이었다. 두 분은 한 달간 장범으로 수감된 죄수들과 한 감방을 쓰고 있었다. 첫 번째 면회를 가니 성경 20권과 전도지를 부탁했다. 한 감방에 10명씩 수감되어 있었다. 감옥에 갇힌 총장의 말이다. 대학에서 공부에 너무 쫓기다보니 개인전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치소로 불러 주셔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기회를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Praise the Lord!!
한달 경주 구치소에 수감됐던 그들은 다시 대구 구치소로 넘어갔다. 거기서도 한 달간 복음을 죄수들에게 전했다. 영치금이나 과일 등 음식을 감방에 들여보내면 감방에 있는 죄수와 똑같이 나눴다. 그래 감방에서 다른 죄수들과 음식과 말씀을 나눴다. 마지막으로 면회를 갔을 때 교도관이 이렇게 귀띔을 해 주었다. 총장님과 부총장님은 죄수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합니다.

여러분, 참된 성탄축하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구주로 오신 예수님의 소식을 사랑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성탄축하는 세상의 것과 달라야 한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시고 내 기쁨이 되어야 하고 변치 않는 신앙으로 주님께 충성을 새롭게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냄새요 향기가 되어야 한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성탄축하가 이렇게 성경적인 성탄축하가 되시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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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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