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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산 소망
  본문 : 벧전 1:3-8
RevSuh  2010-07-05 19:53:23, 조회 : 2,598, 추천 :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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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망(벧전 1:3-8)

사람은 살집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고 입을 옷이 있으면 살 수 있다. 그러니까 생업이 있고 건강하면 산다. 그러나 이것이 없으면 삶의 의욕이 있을 수 없고 사람다운 삶을 살수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소망이다.
오늘 본문은 소망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지니고 사는 소망은 아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것을 산 소망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이 산 소망은 무엇이 다른가?
1. 그러면 산 소망의 특성은 무엇인가?
1) 세상의 소망과 시간적으로 차이가 있다. 사람들이 지닌 소망은 이런 것이다. 누구나 어렸을 때는 장래에 무엇이 되겠다는 꿈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여자아이들은 선생님, 간호사를 선호한다. 남자아이들은 군인, 경찰, 소방서원이 되겠다고 한다. 이것은 어린이의 소망이라고 할 수 있다.
저도 어렸을 때에는 군인이 되고 대장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아버님이 시골 교회에 가난한 목사님이시고 보니 크면서 돈을 잘 버는 직업이 소원이었다. 그러다가 돈과는 상관이 없는 목사가 되었다. 무슨 예기인가? 우리의 소원, 소망은 환경에 따라 성장에 따라 변한다. 그렇게 가변적이다. 그뿐이 아니다. 뉴올리언스에 사는 사람들의 소망은 카드리나의 태풍에 수장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지진, 테러, 전쟁, 질병이나 범죄로 인해 우리의 소망이 좌절되고 상실되고 바뀌게도 한다. 이렇게 세상의 소망은 변한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 소원이 대통령이 되는 정치적인 야망이든 대기업의 총수가 되는 기업적인 야망이든 박사가 되는 학적인 야망이든, 대장이 되는 군사적인 야망이든지 그런 소망은 모두 영원하지 않다. 대통령은 4-8년이고 대장은 대통령이 바뀌면 끝난다. 기업의 총수도 아들대에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고 박사가 되어 교수하는 것도 20-30년이면 장수하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는가? 세상의 소망은 시간적으로 볼 때 일시적이다.
이에 비해 산 소망, 신자가 지닐 소망은 성장에 환경이나 그리고 시간에 결코 흔들리거나 영향을 받거나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변한다. 영원한 것이다.

2) 산 소망과 세상의 소망은 장소적으로 다르다.
세상 사람들이 지니고 사는 소망, 그 소망은 근거와 목표와 누림이 모두 이 세상에 한정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잘 되고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가변적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사실이다. 그렇게 세상의 장소나 지역은 발전과 개발로 인해서 변하기도 하고 전쟁과 재난으로 폐허가 되기도 한다.
제 동창 목사님은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이다. 얼마나 고향이 그립던지 책상 벽에 고향집과 마을을 그림으로 그려 붙여 놓고 본다. 마침 미국 교포가 이북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리자 곧바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옛 고향은 자취도 없고 사람들도 사라지고 말았다. 트럭을 타고 함경도까지 가 보았으나 기억 속의 고향이 아니었다. 신앙도 그보다 나이가 많던 노인마저 주기도문을 외우지 못할 정도였다.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다. 고향을 더 이상 그리워하던 고향이 아니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폐허가 되어 땅에 묻혀 버리는가 하면 환락의 도시들이 지진으로 바다에 가라앉기도 했다.
요즈음같이 부동산이 인기인때는 평지도 야산도 모두 개발지역이 되어 새로운 집들로 채워지고 있다. 얼마전 제가 덴버에 가보니 수년전과는 전혀 그 모습이 달랐다. 도시의 확장으로 빈터가 거의 채워져 가고 있었다. 수도 없이 많은 개발업자들이 앞을 다투며 건설에 투자하고 있었다. 따라서 세상에 근거를 두고 목표를 삼은 소망은 해일에 지진에 태풍에 개발에 흔들린다. 변한다. 언젠가는 그러나 대격변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산 소망은 그 장소가 하늘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다. 흔들림이 없다. 죄가 없고 죄의 결과로 인한 하나님이 다스리시니 환란이 없다. 참 평안만 있다. 산 소망은 흔들림도 쇠하거나 변하지 않는다.

3) 세상의 소망과 산 소망은 그 소망을 이루고 누리는 것이 다르다.
이 세상에서 소망을 이룬 이가 얼마나 될까? 아니 환경과 처지에 따라 바꾼 소망을 이룬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소망을 이루고 누리며 사는 이들은 얼마일까? 그렇게 많지 못할 것 같다.
보세요. 우리 자녀들이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소원이다. 그런데 그것은 미국이니까 쉽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 학교가 서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경제적인 이유로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런데 그 고등학교 졸업하고 좋은 대학을 소망한다. 그런데 그게 쉬운가? 소망 때문에 내 실력 이상의 학교를 지원하지만 어렵다. 한국의 경우는 내가 소망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 삼수도 한다. 그러나 그래도 안 된다. 어찌하나? 자살한다. 학생으로서 재수생으로 소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면 서울대학에 입학한 셈이란다. 서울에 있는 대학말고 정말 서울대학 졸업하면 내가 소망하는 곳에 취업이 보장되나? 아니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 취직은 수십대 1의 경쟁인 경우가 많고 심지어 수백대 1의 경쟁까지 있다.  결혼은 어떤가? 소원대로 되나? 눈높이를 낮추고 낮춰야 한다. 짝사랑한다. 자살하기도 한다. 부모 반대로 동반자살도 한다. 경우에 따라 소망은 소망대로 남은 채 혼자 사는 경우도 많다. 결혼의 소망도 성취가 쉽지 않다.  

비즈니스의 소망은 어떤가? 한국에서 큰 꿈을 품고 음식점으로 성공하겠다는 야망에서 성공하는 이는 100만불이상하는 식당에 투자한다. 그러나 성공하는 이는 드물다.
정치는 어떤가?  대통령, 국회의원, 소망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재산만 날리고 패가한 사람도 많다.
세상의 소망은 물론 배경이나 여건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이다. 의지이다. 노력에 달렸다. 그런데 그 노력도 주변의 환경의 변수 때문에 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또 있다. 소원, 소망이뤘다. 그러나 시대가 변수로 작용해서 생각한대로 누릴 수가 없는 경우도 생긴다. 이제는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어도 부자는 못 된다. 부나 권력은 옛날처럼 누리지는 못한다.
이민와서 365일 쉬지 않고 일만 했다. 돈을 쓸 시간이 없으니 모았다. 좋은 지역에 집도 사고 고급 승용차도 샀다. 이태리 고급 가구로 채웠다. 돈 버는 소망을 이뤘다. 이제는 누리며 살아보자! 휴가도 가고 정치도 좀 하고 여행도 다니자. 그런데 암이다. 자녀가 마약에 갱단원이 됐다. 지진이 났다. 폭동났다. 태풍이 쓸어갔다. 소망이뤘으나 무익하게 되고 말았다. 어떻게 소망이뤘는데.... 아니 그 이룬 소망누리며 살수 있다. 그러나 영원하지는 않다. 전 부시 대통령이 부통령시절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부레지네프가 사망했다. 부시 부통령이 그 장례식에 미국의 대표로 참석했다. 거기서 그는 브레즈네프의 아내가 침묵의 시위를 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그녀는 군인들이 남편의 관을 덮으려고 관에 손을 대는 수순전까지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러나 관의 뚜껑을 덮으려하자 큰 용기와 소망의 행동을 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소련에서 범한 시민 불복종의 가장 큰 행위로 기억될 행동이었다. 그녀는 잽싸게 몸을 관으로 굽혀 남편의 시신 가슴에 십자가표시를 했다. 브레즈네프는 정치적 야망을 이룬 사람이다. 전 세계 1/3이상인 공산주의의 총수로 대접받았고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브레즈네프의 아내는 그가 이룬 소망은 잘못 되고 헛된 것을 알았다. 그녀는 죽음 후에 생이 있으며 그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 그 십자가의 자비를 죽은 남편에게 소망을 주려고 했다. 그렇다! 세상의 소망 제일 큰 소망이루고 누렸대도 죽는다. 죽음 앞에서는 성취란 소망은 끝난다. 더 이상 소망이 되지 못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 예수의 부활을 힘입어 산 소망을 얻을 수 있는가?
예수님은 요한복음 3:3, 5에서 유대인의 관원이었던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사람은 누구든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 거듭나야 한다. 다시 나아야 한다. 중생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 말을 니고데모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이렇게 되물었다. 사람이 늙었는데 어찌 다시 어머니 배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자요 선생이었지만 영적으로 어두웠다. 예수는 그에게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 무슨 말인가?
이런 저런 해석이 있다. 그러나 핵심은 이것이다. 죄를 회개하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거듭날 수 있다는 말씀이다.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영안이 떠진다. 예수님이 메시야로 보인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임을 깨닫게 된다. 내 모든 죄가 예수의 십자가에서 못박혔다. 죽었다. 그러니 죄사함받고 의로워진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요한복음 1:12대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까요. 이제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의 부활도 나의 부활이 된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어도 다시 산다. 영생한다. 하나님의 자녀이니 천국을 상속하며 하나님께 함께 천국에서 살수 있다. 이것이 산 소망이다. 산 소망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경험될 때 내 것이 된다. 이는 믿음으로 된다. 오늘 본문은 3절에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영어 성경에서는 그 크신 긍휼로 그렇다. 하나님의 긍휼은 나같은 죄인까지도 거듭나게 한다. 산 소망이 있게 하신다.

그러면 이 산 소망을 가진 우리는 어찌 살아야 하나?
먼저 이 소망을 소유했으니 누리며 살아야 한다. 산 소망은 구원으로 인한 소망이다. 구원의 축복은 이제 주님을 모시고 이 세상 죄와 불의 다 심판하시므로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에서 완전히 누리게 된다. 그런데 이 세상엔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이 없다. 우리의 환경은 천국이 아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 환경이나 신분이나 천지가 어떠하던지 사업이 어떠하던지 내 건강이 시원치가 못해도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이 아니가? 구원받은 우리가 아닌가? 기뻐뛰며 주님을 보고 찬양하며 경배할 수 있다. 어떤 어려운 처지에 처할지라도 나는 구원받았다. 설사 죽음이 닥쳐온대도 죽음은 더 좋은 생명 우리의 참 소망의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요 이별도 영원하지 않고 잠시다.

세상의 소망이 산 참된 소망을 더 복되고 더 빛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소망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사람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데 도움이 되고 유익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세상의 소망이 앞선다. 우리는 신앙대신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가게 된다. 경쟁하고 싸운다. 이기적이고 욕심을 낸다. 정직하지 않고 부정직하다. 진실하기보다 거짓된다. 사랑하기보다 시기한다. 하늘에 보화잡기 보다 세상에 보화를 찾는다. 산 소망은 시들고 흐려지고 만다.

오래 전 칼럼니스트요 아동문학가인 최준성 목사는 천국행 비자를 발급을 받을 수 없는 7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교만한 사람, 욕심쟁이, 남을 헐뜯는 사람, 거짓말쟁이, 화를 잘 내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화합을 깨는 사람, 우리도 세상의 소망만 지니고 살면 마지막으로 세상의 소망만 지니고 사는 사람들을 깨우쳐 내가 지니고 사는 산 소망을 갖게 해야 한다. 예수님은 메시아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실 때 그 선구자였다. 세례 요한의 사역은 회개하고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메시야로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다시 사시므로 우리에게 구원의 참 소망을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죄에서 구원받고 우리처럼 참소망을 갖게 해야 한다. 이는 죽은 자로 살리는 일이요 우리가 살길이다. 이 복음을 지녔던 유럽의 교회는 살았었다. 그러나 지금 이 복음을 포기한 유럽의 교회는 죽었다. 산 소망을 지닌 신자는 반드시 전도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원래 한 쪽 다리가 없어서 의족 불구자다. 흑인들에게 자기가 받은 은혜를 전하고 싶다. 서부락 찾아가 전도, 식인종들이 이 백인인 선교사를 공격하자 이 선교사 잡혀 죽게 되었다. 그는 침착하게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주위에 둘러선 식인종 흑인들에게 자기의 고무 의족을 빼서 던져 줬다. 그것을 보고 놀란 흑인들이 땅에 엎드렸다. 이 선교사를 신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됐다고 한다. 무슨 예기인가? 여러분 산 소망을 지닌 우리 복음의 빚진 자로 살수 있다.  우리는 전도자가 될 때 구원의 기쁨 감격이 새롭다. 전도자가 될 때 하늘의 소망으로 세상의 소망을 통제할 수 있다. 여러분 모두 시 산 소망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가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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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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