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는 불신자에게 도움을 받지 말아야 하나?
RevSuh  2008-08-17 17:15:33 hit: 796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요삼 7절)

초대 교회는 전도자를 전문적으로 교육시킬 신학교가 없었다. 지역마다 많은 가정교회가 섰으나 그들을 목회 할 교역자가 없었다. 자연히 전도자는 여러 곳을 여행하며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선교사(전도자)들은 사람들로부터 자원의 지원을 받거나 바울사도처럼 스스로 일을 해서 의식주를 해결해야 했다(고후 2:17).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전도에 파송하시면서 전대를 가지지 말라 하셨고 머무는 집에서 대접을 받으라 하셨다(막 6:8, 10)
  
그렇다면 선교여행자들이 이교도에게서 도움을 받지 말라는 말씀은 지나치게 들린다. 이 말은 불신자에게 어떤 도움을 받지 말라는 말씀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방인 신자에게 도움을 받지 말라는 말인가? 오늘날 교회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또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간 사람들을 과연 선교사나 전도자라고 할 수 있는가?
  
먼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간 자는 누구인가?
요한 서신에서 나간 자는 두 그룹이었다. 전장에서 이미 밝혔듯이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나간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이단들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였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서 나간 자들은 그 이유가 달랐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라고 한글 개역성경에서는 해석적인 번역을 했는데 원래는 그 이름이란 말이다. 물론 여기서 그 이름은 예수님이다(행 5:41; 롬 1:5; 약 2:7). 그러므로 나간 자는 그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이방인이나 이교도 가운데 있었던 전도자들이다.1)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므로 집과 가정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간 전도자들로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을 파송하셨으니 그들의 필요를 그분이 채워 주실 줄 아는 자들이다.2)
  
다음으로 이방인에게 아무 도움을 받지 말라는 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당시 선교사들은 그들을 파송한 교회의 도움이 아니면 그들이 아는 어떤 신자들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그렇지도 않다면 바울처럼 스스로 의식주 문제의 해결을 해야 했다. 이런 형편에서 이방인에게 아무 도움을 받지 말라는 것은 쉽게 이해가 안 된다. 이방인 불신자가 예수를 믿고 나서 도움을 주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손님 대접을 잘하는 이방인들도 있었을 것인데 그런 호의를 꼭 거절할 이유가 있겠는가?
  
여기서 이방인이나 이교도에게서 도움을 받지 말라는 말은 이방인을 염두에 두었다면 유대 기독교의 전도는 이방인 기독교인들로부터 선교비 지원을 꺼려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설득력이 없다. 바울의 경우도 이방인의 교회들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이방인보다 이교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며 그 이교도는 비유대인을 가리키지 않고 기독교 신자와 대조적으로 쓰였다.3)  따라서 이방인 기독교인에게서라도 도움을 받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불신 이교도에게서 도움을 받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1. 복음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고 무상이다.  값없이 받은 복음은 값없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복음을 모르         는 불신자에게 돈을 받고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은 무상의 복음의 원리에 위배된다.
   2. 그 당시 이교도들은 그들의 교리를 선전할 때 돈을 받았다. 당시에 스토아 철학자들이나 여러 가지 이교 종파          의 제사장들은 구걸하며 여행을 하였다. 예컨대 씨리안의 종으로 자처한 사람은 매번 여행 때 70개의 돈주머니        를 가지고 다녔다. 그러므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은 돈을 받기 위해서 전도한다는 인상을 남겨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전대를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다(마 10:10). 전도나 선교가 그들의 배나 채우
      고 자신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되었다. 선교사들이 그들의 교회를 떠나는 것은 불편해서가 아니라 그        들의 주님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도를 위해서는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가능하였다.  그러므로 같은 신자의 도움       이나 교회의 도움이 필요하였다.4)

마지막으로 오늘의 교회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선교사는 전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 선교사는 불신자의 도움은 사양해야 한다. 복음은 그것을 전달받은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것처럼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늘의 교회는 선교사들이 중세의 수도원의 일부 수도사들처럼 구걸하며 복음을 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선교비를 부담해서 불신자들의 도움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교회와 교역자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교역자가 세상 직업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므로 불신자가 복음 전하는 일에 간접적인 도움을 주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역자가 돈에 시달리고 돈을 요구하게 해서는 안 된다. 복음 전도자들은 돈을 몰라야 한다. 복음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그 교회의 교역자를 지원하는 것과 선교사들이 불신자에게서 돈을 구걸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주
   1.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 p.232
   2. Simon J. Kistemaker, James and I-III John, p.394
   3. John R.W. Stott, The Letters of John, p.226
   4. Peter H. Davids, Ibid.,  pp.23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