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단 9:24)
이 구절은 메시아의 사역과 시대를 설명하고 있다(9:24-25). 어떤 해석자들은 70주간들과 사역의 범위를 이스라엘 백성과 팔레스틴 땅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제한시킨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은 모든 민족을 위한 구원이다(롬 11:1, 11-12, 25-26). 구원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그리스도와 그 분만을 통하여 온다. 따라서 이 구절은 메시아의 구원사역에 여섯 가지 양상을 소개해 주고 있다. 1) 허물이 마치며 2) 죄가 끝나며 3) 죄악이 영속되며 4)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5)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6)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이다(24절). 카일(Keil)은 이 여섯 가지 언급을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환상대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시고 그들이 그의 백성이 되며 그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바 사람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성막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계 21:1-3).1) 따라서 이 예언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가 우리 죄를 위해서 죽기 위해 오셨으며 그를 통해서 우리가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의 새 생명으로 살아나게 된다(롬 6:2, 18).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런 일이 성취되었으므로 은혜가 의로 사람을 다스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롬 5:21). 뿐만 아니라 이상과 예언이 응한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시며(히 1:1) 그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이 예가 되고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후 1:20).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말씀 역시 예수께서 지성소로 설명된 모든 것을 채우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그가 육체로 오시어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했고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았다고 하였다(성막에서 나타났던 하나님의 세기나 영광)(요 1:14). 더 나아가서 그가 우리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위해 그의 아버지의 존전으로 들어가셨다고 말씀한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신다고 하셨다(요 17:19). 예수님 자신이 지극히 거룩하셨고 거룩하시다.2) 따라서 이 예언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그가 오셔서 이루실 구주의 사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70주간이 가르치는 의미와 기간 그리고 사건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아쳐(Archer)가 지적한대로 이 70주간의 예언은 기독교 교회 전체의 모든 교파의 연구가들과 학자들에 의하여 가장 광범하게 토의되고 있는 주제일 것이다.3) 여기서 먼저 영(Young) 박사의 70주간에 대한 네 가지 학파에 대한 해석을 소개하기로 하고 그 후에 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 보기로 한다.
1. 전통적인 메시아 해석: 이 견해는 70주간의 예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특히 그의 죽음과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어 거스틴이 그 첫 해석자요 푸세이(Pusey), 라잇(Wright) 그리고 윌슨(Wilson)이 이 학파에 속하는데 영(Young)도 이 해석을 지지한다.
2. 자유주의적인 해석: 이 견해는 70주간은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nes 시대와 마카비(Macabbes)하에서 그의 패배의 기간을 기술 하고 있는 예언일 뿐이라고 한다. 끊어진 메시야는 안디오커스의 방어를 위해 살해된 대제사장 오니아스(Onias)와 동일시한다.
3. 기독교회의 해석: 이 견해에서 70은 정확한 해의 주간이 아니라 메시아의 첫 번째 강림과 죽음, 유대 인을 귀환시킨 고레스의 칙령과 적그리스도 의때 그리고 종말에 그의 멸망의 때 사이에 기간을 포함하는 상징적 수로 이해한다.
4. 괄호적인 해석: 70이레는 7이레와 62이레로 나누이며, 마지막 일곱은 정해지지 않은 괄호에 의해 그 나머지에서 분리된 것이다. 69이레는 메시 아의 첫 강림과 죽음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포함한다. 마지막 7은 시대의 끝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시기이다. 이 괄호 해석은 세대주의적 해 석이다.4)
여기서 이레란(sabu) 말은 일곱이라는 말 세바(seba)에서 파생되었다. 이 말의 정상적인 복수는 그 형태에 있어서 여성인 세부옷(sebuot)이다. 그런데 오직 다니엘서의 이 장에서만 이 단어가 남성 복수인 사부임(Sabuim)으로 쓰였다. 따라서 70이레는 70개가 7번 있는 날이라기보다는 그만큼의 해이다. 그래서 전체는 49년이 된다고 한다.5) 그런데 만일 페르샤의 왕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 있었던 느헤미야가 그 왕 20년에 예루살렘 중건에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의 통치 20년은 454년이 된다. 그리고 7+62이레는 69이레나 483년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주후 29년이라는 햇수에 이르게 된다(483-454 = 29). 이 해가 예수님의 사역의 정점의 해가 된다. 그 해 봄에 예수님은 기뻐 환호하는 군중들에 의해 메시야와 왕으로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을 하게 된다(슥 9:9; 마 21:5).6) 그러나 칼빈은 그 계산은 예루살렘으로 포로의 귀환을 위한 고레스의 칙령과 시작해야 되며 이렇게 할 경우 예레미야의 70년에 대한 예언이 다니엘의 70주간과 직접 연결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칼빈은 해의 정확한 수는 그것들이 연대적이기 보다 상징적이므로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지 않았다. 카일(Keil) 역시 시간의 측정에서 상징적인 견해를 지지하였다. 따라서 실제적인 그 시기의 기간은 우리 인간의 연구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70주간은 말세에 그 완성에로 가는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를 포괄한다고 주장하였고 영(Young)은 메시아의 끊김은 69주간만 아니라 70이례도 역시 정점에 이르는 것으로 믿었다. 우리는 여기 나오는 7의 숫자를 루폴드의 견해처럼 하나님의 활동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수로 보아야 할 것이다. 70은 7x10으로 완전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칠십 이레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사역의 완성기간을 비유한다.7) 따라서 칠십 일곱들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거룩한 성을 위하여 정하신 것이다. 그 작정은 그의 완전히 지혜로우신 섭리에 의한 것이므로 그 기간이 얼마나 오랠는지는 하나님께서만 아신다.8) 성경에는 어려운 내용들이 적지 않다. 그 중에 상당수는 그 설명이 성경 안에 들어 있어서 해석에 그리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말세에 있을 사건이나 상징적인 숫자에 대해서는 우리의 제한된 지혜로 다 풀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성취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지혜에 속하기 때문이다.
주 1. C.F. Keil and F. Delitzsch, Daniel(Grand Rapids: Eerdmans, 1980), p.349 2. Sinclair B. Ferguson, Daniel(Waco: Word, 1988), pp.201-202 3. 글리슨 아쳐, 성경 난제 백과사전(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395 4. E, J. Young, The Prophecy of Daniel(London: Banner, 1972), pp.192-194 5. 글리슨 아쳐, Ibid., 6. Beacon Bible Commentary, Vol.4(Kansas: Beacon, 1966), p.674 7. H. C. Leupold, Exposition of Daniel(Grand Rapids: Baker, 1969), p.409 8. 박윤선, 다니엘서(서울: 영음사, 1970), p.4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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