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지 6주쯤 후 애굽에서 먹던 고기를 그리워하여 울면서 고기를 달라고 요구한데 대한 응답이다.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게 하사 메추라기 떼를 그들 주변에 쌓이게 하셨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그들의 양식으로 예비하신 메추라기를 먹을 때 진노하시고 큰 재앙으로 치심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말았다.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먼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메추라기에 대해 알아보고 본문을 이해한 후에 문제를 다루기로 한다.
여기 메추라기의 이름에 대한 출처는 불확실하다. 다만 여기서 본문과 연관시켜 볼 때 이 새는 정결한 새였을 것이며, 또 그 수가 엄청나게 많은 떼 지어 다니는 철새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행 중 이스라엘 백성을 기적적으로 공급해 주신 일이 두 번인데 그 첫 번째는 시내반도의 남서쪽에 위치한 신 광야에서요, 두 번째 것이 본문의 사건이다. 여기 메추라기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자연적인 자원을 이용하여 기적을 베푸신 사건 중에 하나다. 메추라기는 아라비아와 아프리카에서 봄(3월 중순)에 북향하여 이동했다가 가을(8‐10)에 되돌아온다. 그 리고 그 이동의 루트는 애굽, 시내 그리고 팔레스틴이다⑴. 사람들은 일년에 두번 있는 이동 기간에 메추라기를 잡아 식용하였다. 19세기와 20세기에 메추라기 떼의 대 이동이 있었는데 1920년대 여러 해 동안 애굽에서는 이 백만 마리를 수출했고 최고로는 300만 마리까지 수출한 때도 있었다. 이 메추라기는 7인치 길이에 갈색 반점이 있으며 작은 자고새와 같이 생겼는데 유럽 전역과 서부 아시아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⑵.
이제 본문의 내용 중에 이해를 바로 하기 위해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31절에 메추라기가 지면에 두 규빗쯤 내리게 했다는 말씀에서 두 규빗은 3 feet로 대략 90cm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말은 땅에 3 feet가량 메추라기가 깔려 있었다는 말이기 보다 그렇게 낮게 날아갔다는 뜻일 것이다⑶. 그러나 본문대로 하면 그렇게 땅에 덮인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기적적으로 예비하신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32절에 적게 거둔 자도 10호멜이라 하였는데 이 말도 이해가 쉽지 않은 것으로 그 단위가 엄청나게 커 500갤론이나 2200리터를 가리킨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그 메추라기를 먹는 백성을 진노하시고 죽이셨는가? 그것들을 양식으로 준비하신 이가 하나님이 아니신가? 저들을 죽이시려면 왜 메추라기를 주셨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들에게 준 것인데 그렇게 함으로서 자기들이 택한 것을 더 좋아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할당해 주신 좋고 충분한 양식을 경멸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보여 주려고 하셨다⑷. 저들에게는 양식이 없지 않았다. 저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와 친절을 크게 경험했을 때 그것을 탐욕으로만 구했기 때문이었다⑸. 뿐만 아니라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 없이 먹기만을 탐하였다⑹.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우리는 새 은혜와 축복을 구하기 전에 받은 은혜와 받은 축복을 헤아리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해야 하며 내 형편에 맞는 생활을 해야 한다. 과욕이나 감각적인 욕구의 채움은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 불평하면서 자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선물도 무서운 심판의 방편으로 변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이 말씀을 해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괴하게 하셨다(시 106:15).
주 1. Gorden J. Wenham, Numbers(Downers Grove: IVP, 1981),p.109 2. The Zondervan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Bible(Grand Rapids: Zondervan, 1976), p.2 3. Philip J. Budd, Numbers(Waco: Word, 1984), p.129 4. G.L.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Grand Rapids: Zondervan, 1982), p.136 5. Matthew Poole, Commentary on the Holy Bible(London: Banner, 1968), p.285 6. 박윤선,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서울: 영음사, 1971). p.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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