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나타난 이단

1) 예수님의 말세 교훈에 나타난 이단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시대의 종말에 대한 징표를 말씀하셨다. 거기서 무엇보다도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시며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고 하셨다(24:4-5). 그리고 11절에서도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다고 하셨다. 또 24절에 가서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이라고 하셨다.
거짓 메시아의 출현은 예수의 이름으로 온다고 하셨다. 이 말은 예수의 체현으로가 아니라 예수님께 합당한 기능과 명칭을 주장할 것을 가리킨다. 유대인의 반란과 성전 파괴로 귀결되기까지 불안정한 시기에 그런 청구자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조세프스에 따르면 한 사마리아인(Ant, 18.85-87), 듀다(Theudas, 20.97-99), 갈릴리와 유다의 아들들(102), 애굽인(169-72), 다양한 이름의 사기꾼들(160-61, 167-68, 188)이 있다. 조세프스는 이들 중에 어느 누구도 실제로 메시아라는 호칭을 주장했다고 말하지 않는다(제 2세기의 Bar Kochba는 확실히 주장했지만). 그러나 어떤 자들은 자신들을 선지자나(Ant. 20,97,169; War 6.285-87) 왕들로 소개했다. 그런 청구자들의 능력은 많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으로 사도행전 5장 36절에 듀다를 추종하는 400명이었으며(Josephus, Ant; 20.97, 큰 군중이나 군중의 다수로 말함), 사도행전 21장 38절에 애굽인을 따른 자는 4,000명의 자객이었다(Josephus, War 2, 261, 그들은 3,000명이었다).
마태복음 24장 24절을 보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을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 하리라고 했다.  따라서 거짓 그리스도들은 택하신 자라도 미혹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저들의 미혹을 저항하고 물리칠 것이다. 저들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재림의 날까지 저들을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이다(빌 1:6).
그러면 거짓 그리스도나 선지자들이 보여줄 큰 표적과 기사가 무엇인가? 조세프스(Josephus)에 의하면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요단강을 가르며(Ant. 20.97) 성벽을 무너뜨리고(Ant. 20,170), 모세의 감추어진 기구들(vessels)을 찾아내어 보여 주며(Ant. 18.85), 보다 일반적으로는 두드러진 기사와 표적들(Ant. 20.168)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여 주신 자유의 표증이었다(war 2. 259)②. 이런 기적들은 하나님의 기적들에 비해 상대적인 것으로 여겨졌을지라도(행 8:9-11; 살후 2:9; 계 13:13-14) 신약의 저자들이 선지자들을 확증하는 표적들에 대한 성경적 전승으로 묘사되었으며(행 11:28), 신약의 사도들은 사실상 하나님의 참된 역사에 수반되는 표적과 기사로 행했다(행 2:43; 4:16, 30; 5:12 등). 따라서 표적과 기사만 가지고는 거짓 선지자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았으나 차이가 있다면 참 선지자나 사도들에게 표적과 기적의 목적은 거짓 선지자와 다르게 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다.

  2) 사복음서에 나타난 이단
복음서에서 이단적인 사상이나 관행은 구주 예수님의 사역에 반대하거나 대적했던 자들에게서 나타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종교지도자로 자처하면서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부인하고 거부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신적 권위 행사를 신성모독으로 몰아 그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면서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신 말씀에 반대하여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신성모독자로서 하나님의 권위를 사칭한다고 공박했다. 저들은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부인했다(마 9:13; 막 2:6-10; 눅 5:18-21).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신 축사의 이적을 사단의 역사라며 무시하고 정죄하였다(마 9:32-43; 12:22-32; 막 22:29; 눅 11:14-23). 예수가 귀신의 왕 바알세블의 힘을 빌어 귀신을 쫓아낸다며 성령의 역사를 귀신의 역사로 돌렸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비난했다. 손을 씻고 음식을 먹는 것은 위생상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종교적인 계율이 되어 신앙을 조정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저들은 율법의 말씀보다는 사람들이 세운 장로의 유전과 전통을 더 중시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인했다(마 22:23-33; 막 12:18; 눅 20:27). 그들은 귀족적인 제사장들로서 로마의 정치 세력과 결탁하여 종교적인 세력을 유지했던 매우 세속적인 현실주의자들이었다. 저들 역시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부인했다(마 23:4-46; 막 12:35-37; 눅 20:41-44; 요 9:22; 10:24).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은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이 성경의 메시아사상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 저들은 선민의 우월감과 자기중심적인 성경 해석으로 고난받는 종으로 오실 메시아 대신에 군왕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의 도래를 기대하고 있었다. 따라서 섬김을 받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려 하시고 당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막 10:45).

3) 사도행전에 나타난 이단
사도행전에 나타난 복음의 대적자들과 그들의 관행은 복음서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두개파의 제사장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도들을 시기하여 반대했고(행 5:12-18),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거부했다(행 9:19, 25; 18:4-8).
바울이 만난 두 철학파는 서로가 경쟁자였다. 스도이고(스토아) 학파는 제노(Cypriat Zeno c. 340-265 B.C)가 설립했다. 스토아 학파의 체계는 본성(Nature)에 일치되게 사는 것에 목적을 둔 철학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이성적 능력과 자족(self-sufficiency)에 강조점을 두었다. 신학에서 그들은 근본적인 범신론으로 하나님을 세계의 영으로 생각했다. 모든 자유인은 동등한 시민의 권리를 가지며 민족이나 계급적 구별을 철폐할 수 있는 세계 국가를 믿었다. 스토아주의에서 최선은 도덕적 정직성과 의무에 대한 최고의 의식이었다. 그들은 존엄성을 유지할 수 없는 삶에서 탈출하는 고상한 방편으로 자살을 하기도 했다.
에비구레오(에피큐리안)파(the Epicurlean School)는 에피큐러스에 의해 창립되었다(Epicurus, B.C.340-270). 그의 윤리적 원리는 데모크리투스(Democritus)의 원자 물리학에 근거하였으며 생의 최고 목적으로 쾌락을 소개했다. 그 쾌락은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불손한 욕망들, 그리고 미신적인 두려움들(특별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포함)에서 자유하여 고요한 삶을 즐기는 데 가장 큰 가치를 두었다.
이들은 그 사상체계에서 서로 달랐으나 모두 바울의 예수와 그의 부활에 대한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었으며, 부활의 예수는 자신들처럼 이성적이고 지적인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한 외계의 신으로 생각했다. 저들은 그들의 철학적인 지식과 우월감에서 그들의 이성으로 이해가 안 되는 바울의 예수와 부활의 복음을 배격했다.


<주>
1. R.T. France, the Gospel of Matthew(Grand Rapids : Eerdmans, 2007), 901-903
2. William Whiston, The Works of Josephus(Peabody : Hendericksen, 1987), 614
3. F.F. Bruce, the Book of the Acts(Grand Rapids : Eerdmans, 1990), 33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