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로마 가톨릭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전 세계에 9억 이상의 교인을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기독교 조직이다. 미국의 경우 개신교 전체 교인의 거의 배가 되는 5천만 명 수준이며, 이는 미국 인구의 에 해당된다.1)
오늘날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세계의 관심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는 과거 로마 가톨릭 교회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중세에 바티칸은 서부 유럽에서 가장 큰 정치 세력이었으며 가톨릭 교회가 세운 대학과 수도원은 학문의 중심지였다. 또 가톨릭의 선교사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미국에 파송되었으며, 서구 문명의 전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그 밖에도 로마 가톨릭 교회에는 음악, 미술, 조각 등 예술에 천재적인 거장들이 많았고, 학교 외에 병원과 고아원 그리고 양로원 등을 운영하여 사회의 건전한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러면 로마 가톨릭은 어떤 교회인가? 로마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와 무엇이 다른가? 왜 로마 가톨릭의 사제였던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는가?
사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정리하고 신학과 교리를 요약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를 패드로사(Luis Padrosa)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1)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설립자나 시작이 없다.
(2)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지속적인 발전은 항상 기독교의 생활과 혼합되어 있다.
(3) 트렌트 회의 때까지는 교의의 제한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특성이 잘 정의되지 않았다.
(4) 트렌트 회의 이후까지도 로마 가톨릭이 되기 위해 기독교의 위대한 저자들, 성도들 그리고 신학자들로부터 제외된 교리들을 어떤 새로운 근본 교리로 첨가하고 있기 때문이다.2)
따라서 여기서는 마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왜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외치며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들이 무엇인지를 성경을 통해 밝히려고 한다.
성경의 권위만을 믿고 주장하는 개신교의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로마 가톨릭의 전통들을 요약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교회는 첫 교황이라고 불린 베드로 위에 세워졌다.
(2) 사후 죄인의 정화를 위해 필요한 연옥의 교리
(3) 중재를 위해 마리아와 성자들에게 하는 기도
(4) 성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
(5) 면죄를 위해 신부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
(6) 구원을 위한 필수로서 미사와 성례들
(7) 로마 가톨릭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
(8) 성찬식 때 미사의 떡과 포도주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피와 몸이 되는 화체설
(9) 고해성사와 속죄권 판매
(10) 최근에 더 크게 증가되고 있는 마리아에 대한 숭배와 예배
(11) 성수
(12) 죽은 성도에 대한 찬미
(13) 신부들의 독신
(14) 묵주(The Rosary)3)
위의 항목들 중에 논쟁적인 것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실제이며 성경의 가르침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전통들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갖게 된 것은 1545년 트렌트(Trent)회의에서 확정되면서부터였다.
여기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통이나 교리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일일이 자세하게 다룰 수는 없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는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사이이며 서로를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따라서 가톨릭의 중요한 교리를 다루면서 가능한 한 위의 항목들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모두 포함시킬 것이다.

1.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학

1)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


(1) 성경
개신교에서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권위는 성경이다. 다시 말해서 신구약 성경 66권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도 성경의 권위를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의 권수에서 신약은 27권이지만 구약은 46권이다. 그 이유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경 외에 외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외경은 에스드라 1, 2서, 토빗, 유딧, 더해진 에스더서, 솔로몬의 지혜, 집회서, 바룩, 예레미야서, 세 자매의 노래,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비 1, 2서이다. 이렇게 외경은 전부 15권이다. 그 중에서 구약성경에 포함시키는 것은 토빗서, 유딧, 집회서(시락) 제1마카비서, 제2마카비서 그리고 바룩이다.4) 가톨릭 교회에서 외경을 포함시킨 것은 주전 250년 알렉산드리아의 정경을 채택한 결과다. 그러나 개신교는 주전 100년의 팔레스틴 히브리 정경을 채택했다. 유대인 학자들도 공적으로 알렉산드리아 정경을 배격하고 팔레스틴의 경정을 채택했다.
이런 외경은 사실 신약성경에도 있다. 도마의 복음(The Gospel of Thomas), 빌립의 복음, 야고보의 복음, 니고데모의 복음, 베드로의 복음, 빌라도의 죽음, 안드레행전, 바나바행전, 마리아의 죽음(passing), 목수 요셉의 역사, 베드로의 계시, 바울의 계시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의 영지적 복음 등이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처럼 신약의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구약의 외경만을 정경으로 고집하고 있다.
그러면 외경이란 무엇인가? 외경이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아포크리파’(Apocrypha)로 감추어진 것들을 의미한다. 이 책들(외경)은 위서나 거짓된 책들과는 대조되는 것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어떤 과외의 정경적 성경을 가리킨다.
고대 랍비적인 관례는 이런 모든 책들을 밖에 있는 책들로 간주했으며, 예루살렘의 시릴(Cyril)은 정경 밖에 있는 성경들로 보았다. 토리(C.C. Torrey)는 위서까지를 포함해서 외경으로 불렀다.5)
일반적으로 교회의 작가들은 ① 은밀한 혹은 신비스러운, ② 기원이 알려지지 않은 위조된 혹은 가짜, ③ 인식되지 않은 비정경적이란 뜻으로 썼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외경을 성경에 포함시킨 것은 트렌트 회의(1545-1563) 때였다. 외경 중에서 에스라 제1서와 2서(죽은 자를 위한 기도의 가치를 부인한 내용을 담고 있음)와 아자리아의 기도는 트렌트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거부되었다. 이렇게 더해진 외경들은 신약성경의 가량의 되며 외경 전체를 다 합하면 신약의 84%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흠정역(KTV)의 구약은 592,439의 단어로, 신약은 181,253 단어로 되어 있는데, 외경은 152,185 단어로 되어 있다.
외경은 구약의 마침에서 그리스도의 오심 사이인 주전 300년에서 주후 100년 사이에 팔레스틴에서 히브리어나 아람어 혹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주후 90년 유대인의 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성경에 유대인의 율법과 선지서들을 포함시켰으나 외경은 제외시켰으며, 제롬(Jerome)도 외경은 구약의 부분이 아니었다고 했다.
1518년 루터의 반대자였던 주교 카제탄(Cajetan)은 1532년 교황 클레멘트 7세에게 헌정한 구약의 권위 있는 역사서들에 관한 주석에서 알렉산드리아 성경에 반대하여 히브리 정경을 인가했다. 교황 대 그레고리(Gregory)는 외경 마카비1서는 정경이 아니라고 선포했으며, 주교 조메니스(Zomenes)도 트렌트 회의 직전에 그의 대조 성경에서 외경을 제외했는데 그 책은 교황 레오(Leo) 10세에 의해 인가되었다. 그러나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 53명의 감독들이 외경을 정경으로 선포했다.
1536년 마틴 루터는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구약을 39권으로 제한했다. 1611년 흠정역에서는 외경을 제2의 성경으로 첨부시켰으나, 1885년 흠정역은 공식적으로 외경을 제외시켰다. 1827년 영국과 외국 성서공회에서 외경을 성경에서 제외시키면서 미국도 이를 따르게 되었다.
외경에는 이야기, 종교의 역사, 철학, 도덕적 이야기, 시 그리고 교훈적인 서정시, 지혜 문학, 묵시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2) 외경의 문제점
외경이 정경에 포함될 수 없는 이유는, 마카비 1, 2서는 유대인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책의 대부분이 종교적인 소설이며 경건한 이야기로,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들이다. 외경은 교리를 포함하고 있지만 비성경적이며 그 이야기들이 환상적이고 알기 어렵다. 토빗서의 경우는 주전 130-170년경 경건한 유대인이 쓴 것으로 명백하게 소설이며, 유딧도 마찬가지다. 집회서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데 주전 2세기 동안 팔레스틴의 유대주의에 대한 많은 국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외경의 저자들은 누구도 그들의 작품이 영감되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유딧 제1장 1-7절은 느브갓네살이 앗수르의 왕으로 니느웨를 다스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바벨론 왕이다(단 4:4-6, 30). 토빗(Tobit)의 한 천사는 그가 아나니아의 아들 아자리우스라고 주장함으로써 거짓말을 한다. 천사는 영이므로 사람의 아들이 될 수 없다. 바룩서(Baruch)는 예레미야의 비서에 의해 쓰여졌다고 주장하며(1:11) 다니엘서에서 인용하고 있지만 다니엘서는 예레미야 시대 오랜 후에까지 기록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서는 70년 포로의 초기에 기록되었으며, 다니엘은 그 포로 말기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제이 영(Edward J. Young)은 계시와 성경에서 외경이 유대인에 의해 수용되지 않은 이유로 결코 하나님의 영감된 책들로 간주된 바가 없고, 유딧과 토빗은 역사와 연대 그리고 지리적인 오류들이 있으며 구원을 공로의 행위에 의존하게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구제는 죽음에서 구원해 준다고 말하며, 지혜서는 세상을 선재한 물질에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고(7:17), 집회서는 구제가 죄를 속죄한다고 한다(3:3). 그리고 마카비서에는 역사적, 지리적 오류들이 있다고 했다.6) 따라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외경에 관해 “보통 가경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므로 성경 정경의 한 부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아무 권위도 갖지 못하며 다른 인간적 작품들보다 다른 것으로 인정되거나 사용될 것이 아니다”7)(제1장 제3항)라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구제가 선행으로 구원받을 공로가 되는 것으로 강조되는 외경(토빗 1219)의 경향이 가톨릭 교회의 구원 교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개신교는 성경 66권만이 유일한 신앙과 생활의 권위라고 믿는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은 성경만이 아니라 교회와 전통에도 권위를 부여한다.

2) 권위로서의 교회


성경이 권위가 될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해석에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경은 올바르게 해석되어야 하는데 개인은 누구도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성경의 해석권이 교회에 있다고 주장한다. 사도들은 교회 안에 복음이 영구히 온전하게, 또 생생하게 보존되도록 주교들을 후계자로 세워 교도직의 자리를 넘겨주었다(제2바티칸 회의 No. 7). 트렌트 회의는 “교회의 가르치는 권위는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말씀이다. 그것이 교회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라 성경에서부터 거룩한 전통에 이르기까지 신적 계시의 전부가 보호와 적절한 해석을 위해 교회에 위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읽으라고만 말씀하지 않고 들으라고도 하셨다.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면 그리고 그가 교회에 그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온전한 권세를 주셨다면 성경과 교회 사이에는 경쟁이 없으며 거룩한 성경과 거룩한 전통 사이에는 어떤 반대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8) 그러므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교회의 권위와 분리할 수 없으며 성경과 그 해석의 권위를 동등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고 구원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경의 진리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약성경을 기록한 헬라어가 전문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쓰는 헬라어였다는 사실이나 성경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 말씀에서 분명해진다(계 1:3). 만일 성경을 읽는 자가 교회의 해석이 없이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다면 성경을 읽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3) 권위로서의 전통


교회의 전통은 결코 무익하지 않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만 전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교회는 시대마다의 전통이 있고, 그 전통은 그 시대의 신앙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좋은 전통은 계승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 전통은 신앙과 생활에 유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은 성경과 같이 불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옛날의 전통이 오늘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성경도 처음에는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후대에 기록된 것이므로 이런 전통은 거룩한 전통이며 그것은 교회가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로마 가톨릭의 전통에 대한 입장은 “거룩한 전통은 기록된 것이 아니지만 거룩한 성경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하는 방편이며 거룩한 성경은 기록된 말씀이고 거룩한 전통은 기록되지 않은 말씀 혹은 구어다(spoken word). 따라서 기록된 말씀과 기록되지 않은 말씀이 신적 계시의 전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9)
성경과 전통은 모두가 같은 원천(하나님)에서 나오며 서로가 모순되지 않는다. 거룩한 전통은 거룩한 성경보다 앞선다. 기록된 말씀(성경)이 되기 전 수세기와 여러 세대 동안 구어였기 때문이다. 거룩한 전통은 성경이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부분을 메워 준다. 거룩한 전통은 예수님은 결코 결혼하지 않으셨고 자녀를 낳지 않으셨다고 본다. 거룩한 전통은 동정녀 마리아는 그녀의 전 생애를 동정으로 지냈으며 아들 예수 아닌 다른 자녀는 없었다고 본다. 거룩한 전통은 어떤 책들이 성경에 포함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한다. 따라서 성경과 전통 사이에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몸의 두 폐와 같고 한 동전의 양면 같아 둘 다 기원이 하나님이시며 둘 다 교회에 의해 진실되게 해석된다. 성경과 전통은 둘 다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기원되기 때문에 동등하다.10)
그러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5장 3절에서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신 사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예수께서 ‘너희 유전’(전통)이라고 하신 것은 그것이 사적이거나 거룩한 전통과 구별되는 인간이 만든 인간의 전통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11) 그러면 로마 가톨릭 교회의 다양한 전통이나 교리는 누가 만든 것인가? 트렌트 회의는 성경과 전통에 대한 교리(1546)에서 “진리와 복음의 훈련은 기록된 책들과 기록되지 않은 전통들을 포함하며, 이런 기록되지 않은 전통들은 그리스도 자신의 입에서부터 사도들에 의해 받은 것이거나 사도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을 받은 것으로 우리에게까지 전수된 것이다. 따라서 성경과 전통은 동등한 사랑으로 존경되어야 한다”고 한다.12)
이런 주장은 전통이 성경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성경과 같은 하나님의 계시로 오히려 성경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전통과 교회는 권위로서 적합한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그 최종 권위가 되어야 한다. 전통과 교회도 성경의 판단과 비판을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성경만이 신학과 신앙 그리고 교회의 관습까지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로마 가톨릭의 전통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바리새인들이 지켰던 장로의 유전과 마찬가지로 종교 지도자(인간)들이 만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마가복음 7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전통을 더하는 것을 경계하셨다. 그것은 인간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막 7:1-9, 13).